5. 범사냥
윤진사네 대청 앞마당은 처참했다.
머리 없는 번치의 시신에서 나온 피가 마당의 여기저기에 튀어 있었다. 대청 큰 마루에는 피가 비처럼 떨어져 댓돌로 다시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범의 앞발에 얻어맞은 하인은 혼절한 것 치고는 멀쩡했는데 범이 발톱을 세우지 않고 때렸기 때문이리라 추측되었다.
아마도 창귀호, 영우도 가능하다면 자신의 원한과 관계없는 자라면 함부로 피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인 것 같았는데 항현은 여기에 주목했다.
대청 마루 위에는 윤진사가 입만 뻐금뻐금 대는 데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옴짝달싹 못했다.
항현은 그 모습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귀곡성을 그대로 듣게 될 경우, 기가 약한 자들은 넋을 잃고 미치는 일이 많고 심하면 죽기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정에 실력자와 선이 맞닿는 토호가 그런 식으로 죽는 것은 항현들에게 나쁘면 나빴지 결코 좋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서 주인마님을 방으로 모셔라! 이 현장은 살인 현장이니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물러라! 그리고......”
항현은 아직도 방안에서, 짚가리 뒤에서 부들대는 하인들에게 소리쳐 지시했다. 그리고 이어서 물었다.
“이 집 윤오강 도령은 어디 계시나! 아버님이 이리 되셨으니 이젠 가장, 가주일 것이다. 그 분에게 직접 여쭐 것이 있느니라!”
하인들을 둘러보는 항현과 눈이 마주친 방안에 여종 하나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대청의 가장 가엣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서워 울었는지 여종의 얼굴도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항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엔 정자마냥 방하나가 별채로 떨어져 있었는데 불이 다 꺼져 있어서 사람이 없는 곳 같았다. 항현이 다가가 문을 벌컥 열어 제쳤다. 사람 하나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항현이 이불 끄트머리를 붙잡고 확-! 잡아당기자 오강이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
“마당 좀 보시오. 무서워 할 땐 하더라도 일단 보고 무서워해야 하지 않겠소?”
“......”
오강은 항현이 하는 말을 듣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리고 멍한 눈으로 마당으로 시선을 옮겼다.
“히이이이이익-!”
사방 천지에 쑤셔 박혀져 있던 사람들이 핏기 없는 하얀 얼굴로 걸어 나오고 피범벅이 된 대청과 그 아래에 놓인 목 없는 시신 한 구를 본 오강은 비명도 크게 못 지르고 사색이 되어 주저앉았다.
“.....어어어.....”
“번칩니다. 오강도령과 뭔가 일을 했었다죠? 그래서 이리 된 겁니다.”
“........으,......으.......히익.......”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집에서는 다시 호랑이가 온다면 다음은 도령의 차례가 될지도 모릅니다.”
“........흐...흐엉~.......”
오강은 덩치에 안 어울리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집에선 절대로 이 범을 못 막습니다. 저희와 같이 가시지요. 관아라면 훈련받은 군졸들이 있으니 한결 안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아버진.....?”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울먹이는 가운데서도 아버지를 찾았다.
관아가 영 내키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때는 아비인 윤진사도 도움이 될 상황이 아니었다. 오강은 입을 반쯤 벌리고 눈이 멍하게 초점을 못 맞추는 아비 윤진사가 하인들에게 들려 옮겨지는 것을 보았다.
“....아부지-!.... 아니 우리 아부지 어찌 된 게요?”
“넋이 홀린 겝니다. 귀곡성을 그대로 다 받아..... 도령은 이불을 뒤집어 쓰셔서 귀찮겠지만 아버님은 그러지 못하셨습니다.”
“........으...으흐응~........”
오강이 다시 흐느끼자 이번엔 수빈이 다가가 손을 잡아 진정시키며 다시 한 번 동행을 권했다.
“관아로 가시죠. 주변이 받을 해악도 더 심할지 모릅니다. 지금 관에는 살구나무 댁의 아드님도 와 계시니 같이 계시면 저희가 전력을 다해 지키겠습니다.”
오강이 수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예..... 예엣!.....”
오강이 대답을 한 바로 다음에 관아의 군졸들도 들이닥쳤다. 수빈과 혁춘, 검지는 오강을 보호 겸 동행하여 먼저 출발하였다. 오강은 자신을 친절하게 대한 수빈의 뒤에 숨어서 오들오들 떨며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 위에서 범이 날아와 덮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자꾸 뒤와 남의 집 지붕 쪽을 흘깃흘깃 쳐다보며 걸어갔다. 항현은 군졸들을 지휘, 번치의 시신을 수습한 후 윤진사 댁 식구들을 안심시키고 함구를 부탁한 후에 뒤 따라 관아로 돌아왔다.
“검지가 갔네.”
“예-?!”
혁춘이 뒤에 들어온 항현에게 검지의 이탈을 고하자 놀라며 움찔했다.
‘그리 심지가 약해보이지 않았는데, 그럴 리가?’
항현이 말없이 동그란 눈으로 혁춘을 보고만 있자 혁춘이 퉁울 놓았다.
“그만한 걸 봤잖나? 귀신이 들린 큰 범을! 어쩔 수 없는 게야! 자기 목숨들이잖나? 아까우면 그만 두는 게지-! 제 입으로도 그랬잖은가? 상황이 내키지 않음 가버리겠다고.”
“......”
혁춘이 떽떽거리는 투로 퉁을 놨지만 서운한 감정이 말 속에 묻어났다. 사람 난 자리에 허전함을 숨길 수는 없었다. 항현도 언잖기는 했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받아 치든 떠난 자는 떠난 거니까.
오강과 일균을 확인한 항현은 그 때부터 창귀호의 재습에 대비해 아직 자지 않고 있던 고을의 현령과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오늘 밤에는 더 습격이 없을 것이다! 그리 말하는 것인가?”
“예, 정확히 아는 것은 없사오나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라는 말만 믿고 경계를 풀 수는 없구먼.”
“예, 경계는 해야 합니다만, 상대는 원귀의 힘으로 움직이는 커다란 호랑이 시체죠. 아마도라고 얘기는 했지만 틀림없을 겁니다.”
“......”
현령의 말 없는 수긍에 항현이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원한의 당사자중 나머지 둘이 이 관아에 있으니 내일 밤은 여기로 들이닥칠 겁니다.”
“음......”
현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현에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물론 같이 귀신, 호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둘을 수용하기로 정한 것이었으나 무서워진 것이다.
“아니~ 그럼 지금 이 밤에라도 당장 들이닥칠 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습니다만 방금 윤진사댁에서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 충돌로 알게 된 것인데 지금 그 창귀호는, 귀신 영우는 낯설어 합니다. 그 호랑이의 몸을......”
“.....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었지 않습니까? 영우는? 그러나 지금 그 사람의 넋이 짐승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사용하는 중인 겁니다. 아마도 능숙하게 사용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확실한가?”
“칼로 겨루어 보고 내린 평가입니다. ”아마도“ 그렇다는 겁니다. 귀신을 얘기하는 것이니 산사람이 어찌 장담을 할 수 있겠습니까?.”
“......”
현령이 불안한 얼굴을 하는 것에 아랑곳 않고 항현은 말을 맺어 버렸다.
“외람되오나, 전 잠을 좀 자야겠습니다. 연 이틀을 잠을 변변찮게 잤더니 몸이 피곤하여서...... 제 침방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가 자는 동안 그 귀신 범이 내려오면 어떡하나?”
심드렁한 표정의 항현이 답을 해주었다.
“깨우십시오.”
당연하고 별스럽지 못한 대답에 현령은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었고 관아의 사람들은 맥이 빠진 얼굴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항현은 내아로 돌아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