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페이크 라이프.
작가 : 빈둥남
작품등록일 : 2017.9.9

인기 장르소설 작가였던 박건호. 소설 속 엑스트라인 금발 미소년 '노아'가 된다. 왜? 하필 주인공도 아닌 엑스트라? 본격 생존을 위해 주인공에게 빌 붙는 엑스트라 이야기. 페이크 라이프!

*표지는 무료 이미지 입니다.

 
episode 2. 지명 출장 #3
작성일 : 17-09-17 21:40     조회 : 51     추천 : 0     분량 : 967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로이드와 나는 마차 안에서 무려 이틀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물론 먹고, 자고, 쉬는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강행군이란 사실은 변치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우리가 고용한 B급 용병 바이칼은 마부로서도 괜찮은 실력자인 것 같았다. 이리 오랜 시간 앉아있어도 그다지 불편함을 못 느끼는 것을 보면.

 

 마차의 특성상 덜컹거리기야 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참아 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거가지고 불평을 한다면 정말 애송이나 하는 짓이겠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만기전역 군필자인 나에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었다.

 

 사실 키리얀전기 세계관에서는 비행기와 비슷한 비행선이 존재한다. 보통 비행선이란 단어는 ‘큰 기구 속에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이나 수소 따위의 기체를 넣고 그 뜨는 힘을 이용하여 기관의 조종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도록 만든 항공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서 말하는 비행선은 문자 그대로 하늘을 나는 배를 뜻했다.

 

 그리고 열차와 비슷한 마력열차란 것도 존재했다. 마찬가지로 마력이 ‘동력이나 단위 시간당 일의 양을 나타내는 실용단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흔히 판타지 세계에서 나오는 마법의 힘을 말했다.

 

 무슨 중세시대 세계관을 그리 차용했으면서 어떻게 비행기가 나오고 열차가 가당키나 하냐? 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지만 따지지 마라. 작가 마음이니까.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이야기인거고 그래서 재밌는 게 아니겠는가. 어쨌든 기회가 된다면 저 둘은 꼭타고 싶은 이동 수단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날이 밝자마자 출발했었는데, 하늘이 이제는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아직은 사물이 보일정도라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더 늦어지면 마차 운용의 차질이 생길게 분명해 보였다.

 

 “이봐, 잘생긴 형씨. 어떻게 할까, 야영준비라도 하는 게 좋을까?”

 

 우리가 고용한 B급 용병 바이칼의 질문이었다. 여기서 잘생긴 형씨는 로이드를 가리키는 거였다. 나이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는 첫 만남부터 우리에게 반말을 해왔다. 나야 겉보기엔 소년이니 그렇다고 치지만, 로이드가 워낙 동안이라서 그렇지 바이칼과 또래이거나 어쩌면 더 연장자 일 수도 있었다. 아니, 애초에 나이를 떠나서 고용주한테 저래도 되나? 안내원양 우리 고용인 성격이 저모양이란 말은 없었잖수.

 

 그럼에도 로이드는 별로 불쾌하거나, 화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지금처럼.

 

 “제가 종종 와봐서 압니다. 30분 정도만 더 가면 작은 마을이 있을 거요. 야영보다는 거기서 쉬도록 합시다.”

 “ok”

 

 바이칼은 대답과 함께 다시 힘차게 말을 몰았다.

 

 “소년. 마차는 처음 일 텐데 힘들지 않았어?”

 

 얌전히 앉아있는 나를 보며 로이드가 한 말이었다. 그는 나를 부를 때 ‘노아’라는 이름보다는 ‘소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무시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단어의 어감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요. 이정도야 뭐. 그냥 앉아있기만 했는걸요. 저보다는 바이칼씨가 고생이 많겠죠. 그리고 처음 타본 것도 아니에요. 예전에 소피아씨랑 타봤어요. 물론 탑승 시간은 비교조차 안 되지만요.”

 

 “그래도 대단한걸. 아무 내색 없이 묵묵히. 불평할 만도 했는데 말이야”

 

 로이드는 기특하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허허. 계속 아이 취급당하니까 기분이 묘하다. 아 물론 애가 맞지만. 아니기도 하거든 이 양반아. 손 좀 얼른 치우시지.

 

 내 싸늘한 눈빛을 보자 로이드는 손을 회수했지만 입가에 있는 웃음은 멈출지 몰랐다.

 

 “…저기 그만 웃으시고, 우리를 산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내가 말하는 건 우리의 사장님. 스텔라를 뜻하는 게 아니었고, 로이드는 금방 알아들었다.

 

 “아…. 나일리아 자작가의 아가씨를 말하는 건가?”

 

 “네. 그래도 고용주잖아요. 미리 알고 가면 좋을듯해서요.”

 

 “…흠. 그래도 샀다는 표현보다는 우리를 초대했다는 게 어감이 좋겠구나.”

 

 퍽이나, 누가 손님을 이렇게 급하게 불러재끼겠는가. 정말 그런 좋은 마음이었더라면, 이처럼 물건 택배 받듯 하진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이문제로 그와 언쟁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네. 아무튼요.”

 

 로이드는 잠시 오른손으로 턱을 만졌다. 적당한 말을 찾는 성 싶었다.

 

 “글쎄다. 그냥 평범한 귀족가의 아가씨인데?”

 

 “우리 클럽 손님 중에 평범한 사람이 있던가요?”

 

 살짝 들어난 내 진심에 로이드는 소리 나게 웃었다.

 

 “하하하. 그런가? 내 말은 우리 손님처럼 평범하게 오만하고 변덕이 심한 여성일 뿐이야.”

 

 “…그렇군요.“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군. 내 걱정을 눈치 챘는지 로이드는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그녀가 무도한 인물은 아니니까. 의외로 정이 많은 아가씨야. 네가 진심으로 행동한다면 얻는 게 더 많을 거야. 그건 보장 하마”

 

 “…네”

 

 로이드는 드물게 고민하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어린 너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몰라서 망설였는데, 아무래도 해야겠다. 정말 간혹 평범하지 않은 손님들도 있어, 예를 들면 몸을 요구 한다던가…”

 

 “…켁.”

 

 만약 내가 어떤 것이라도 마시고 있었으면 분명 뿜었을 것이다. 그만큼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폭탄 발언이었다. 내 기색을 눈치 챘는지 로이드는 겸연쩍은 모습이었다.

 

 “…나도 뜬금없다는 거 아니까. 그런 표정 짓 지마. 그래도 필요한 이야기니까. 잘 들어. 손님과 접대부라는 입장차라도 분명 남녀사이. 그런 일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어. 자연스럽게 서로 호감이 생겨 관계를 갖는다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만, 만약 힘없는 소년이라는 것을 이용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만든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정말 그럴 땐 어떡해야하나. 나는 과연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럴 땐 어떡하죠?”

 

 “…응하는 척 하다가 수면제라도 먹이고 도망가렴.”

 

 “…켁”

 

 “크흠. 그러니까. 그런 표정짓지 말라니까. 나라면 무력으로라도 뚫고 나갈 수 있지만, 너는 그게 아니니까. 그리고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클럽의 피해가 가진 않을까라는 생각은 말고. 네 생각보다 스텔라는 힘 있는 사람이다. 자기 직원에게 불합리한 상황을 강요할 정도로 매몰찬 성격이 아니까. 믿고 의지하도록 해.”

 

 "네. 그럴게요.“

 

 로이드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알고 있었다. 그런 여장부라는 걸 알기에 이 곳에 취업하기로 결심한 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마차 안은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어색함을 뚫고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로이씨 질문해도 되요?”

 

 “뭔데?‘

 

 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이씨도 그럼 그런 상황이 있었어요?”

 

 “…켁.”

 

 이번에는 로이드가 뿜을 것 같은 표정으로 지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시고요. 대답해 보세요.”

 

 “…뭐. 있었지.”

 

 로이드는 긍정했다. 뭐 당연한 일이다. 명색이 우리 클럽 에이스인데 그런 경우가 한번 도 없었을까? 그걸 떠나서 내가 봐도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인데 여성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리라.

 

 “그렇다고 오해 하지는 마. 네가 생각하는 ‘불합리한 상황' 같은 일은 없었으니까.”

 

 로이드가 변명하듯 말했다.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순수한 유혹이었다는 말이군.

 

 “오해한적 없는데요?”

 

 “…아 그래? 그러면 됐고 크흠…”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하는 로이드. 얼씨구? 귀엽다 귀여워.

 

 “그러면 그 요구에 응한 적은 있었나요?”

 

 이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말이라 이번에는 조심스러웠다.

 

 “지금 그건 굉장히 무례한 질문인거 아니?”

 

 알다마다. 하지만 반드시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15살 소년답게 천진난만 표정으로 말했다.

 

 “네? 무례한 질문이었어요? 그래도 너무 궁금한걸요. 대답해주세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게요”

 

 로이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럴 때만 어린 척 하는 거냐? 약은 녀석. 뭐…그래 이야기를 꺼낸 것도 나고. 대답을 해주자면 …없었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 말을 이었다.

 

 “내 마음속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거든.”

 

 “…….”

 

 그 사람이 누군지는 뻔했다. 그가 누구랑 무얼 하든 나랑은 상관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묘한 안심이 드는 건 왜일까?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 커플을 많이 좋아하고 있었구나.

 

 “…민망하게 왜 아무 반응도 없는 거냐?”

 

 “네. 멋·지·십니다. 존·경·합니다. 낭·만·적이시군요.”

 

 “…….”

 

 나의 영혼이 없는 기계적인 반응에 로이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미안하지만 이미 원하는 답을 들었기에 너의 이용가치는 끝났단다.

 

 그때였다. 묵묵히 마부 일을 하고 있던 바이칼이 나직하게 말했다. 마차 안은 조용했기에 그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잘생긴 형씨… 누가 가까이 오는데?”

 

 곧바로 바이칼은 소리쳤다.

 

 “게다가 여인… 맙소사 나체잖아.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군.”

 

 로이드와 나는 놀라서 급히 마차에서 내렸다. 거기에는 나체의 여인이 힘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입술은 터져있었고 온몸에 멍이 들어있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너무나도 작고 미약한 음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애처로웠다. 로이드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가 담요를 꺼내 여인의 몸을 덮어주었다.

 

 “아가씨. 무슨 일인가요?”

 

 “…살려 주세요 … 살려 주….”

 

 “정신 차리세요.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사정을 설명해주세요”

 

 “…살려 주세요.”

 

 로이드의 질문에도 여인은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일단은 마차 안으로 그녀를 들여보냈다.

 

 “…저 여인…. 욕을 당한 것 같군.”

 

 안타까운 기색이 가득한 바이칼의 말에 로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것뿐이 아닌 것 같군요. 아무리 밤이라도 이쯤 되면 행인들이 보일만도 한데 아무도 보이지 않다니… 이상하군요. 일단 마을로 가서 도움을 청하도록 하죠.”

 

 “…그러지… 잠깐.”

 

 그때였다. 아주 멀리서지만 인기척이 들려왔다. 바이칼은 오른손을 들며 우리들을 제지했다.

 

 저벅저벅-

 

 작지만 분명한 사람 걸음 소리였다. 게다가 한사람도 아니었다. 마침내 불길한 소음의 정체가 들어났다. 간편한 복장이지만 모두 무장을 하고 있는 세 명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각각 활, 칼, 둔기를 들고 있었다.

 

 칼을 차고 있는 사내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혹시 나체의 여인이 이쪽으로 지나가지 않았소?”

 “글세. 못 봤는데? 당신들은 누구지?”

 

 바이칼이 대표해서 말했다. 칼을 찬 사내는 우리들을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값을 매기는 듯한 시선으로. 아직 확증은 없지만 이자들이 좋은 느낌으로 여인을 찾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도 글쎄? 지나가는 행인이라고 해두지. 그러는 당신들은 정체가 뭐야?”

 “…우린 과객이라고 해두지. 더 이상 용무가 없다면 이만 지나가고 싶은데?”

 

 “…과객이면 잡을 이유가 없지. 근데 나는 왠지 당신네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거든.”

 

 그러자 세 사내들이 위압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선한 인상의 미남인 로이드에게 견제하는 시선을 보낼 뿐 세 사내의 신경은 모두 바이칼에게 가 있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게 바이칼은 용병답지 않게 체격은 다소 작은 편에 속했지만 몸은 매우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날카로운 얼굴이나 무장한 사내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 충분히 인상적이었으리라. 다행히 소년인 나에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자고?”

 

 “마차 안을 확인하게 해주면 무탈하게 보내드리지.”

 

 “…좋아. 확인해 보도록 해. 그런데 나체의 여인은 왜 찾는 거지? 이 밤중에? 미친 여자라도 되나?”

 

 칼을 찬 사내는 능글거리며 웃었다.

 

 “지나가는 과객께선 그냥 지나가시지.”

 

 바이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도 그렇군.”

 

 칼을 찬 사내가 턱짓으로 사내 둘을 가리켰고. 신호를 받은 그들은 마차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끄으윽…”

 

 갑자기 쓰러지는 칼을 찬 사내. 그제야 나는 바이칼의 단검이 날아가 사내의 목을 꿰뚫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이변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는 나머지 일당들.

 

 “이런 …미친.”

 

 그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둔기를 들고 있는 사내는 로이드에게 제지당했고 활을 든 사내는 바이칼의 다른 단검에 미간을 꿰뚫렸다.

 

 둔기를 떨 군 채 벌벌 떠는 사내. 바이칼은 소리 없이 걸어가, 허리춤에 있는 시미터(Scimitar: 만곡도)를 그의 목에다 갖다 대었다.

 

 “기회는 딱 한번 준다. 늦게 말해도 죽고, 거짓이라 느껴도 죽고, 망설여도 죽는다. 너희 정체는 무엇이며 나체의 여인은 왜 찾고 있었지?”

 

 서릿발 같이 차가운 목소리였다. 사내는 머리 굴릴 새도 없이 모든 걸 고했다.

 

  “저희는 프라트니부스라는 의적단의 형제들입니다. 여인은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노예인데 도망갔기 때문에 찾고 있었습니다.”

 “노예라… 그게 성노예를 뜻하나?”

 “그렇습죠.”

 

 사내는 비굴하게 웃었고, 바이칼은 시미터로 그의 왼쪽 어깨에 옷을 잘랐다. 그러자 나타나는 문신. ‘네모필라‘라는 꽃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꽃말은 애국심. 도적단 따위에게 쓰이기에는 너무 거창한 심벌이었다.

 

 그것을 본 바이칼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거짓은 아니군.”

 “누구의 말이라고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닥쳐.”

 “…….”

 

 나는 인생 처음 살해 현장을 직접 본 충격도 가시기전에 다시 놀랄 줄은 몰랐다. 프라트니부스는 도적단이 맞지만 의적의 가까운 일을 행해온 것은 맞았다. 그들은 모두 마크로스 자치주 빈민가 출신들로, 탐관오리들이나 악덕상인들의 재산을 빼앗아 사람들을 도와 왔었다. 결코 여인이나 겁탈하는 망종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프라트니부스의 두령은 도적이지만 의협심이 있는 인물로 나중에 키리얀의 동료가 되는 영웅호걸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 진걸까….

 

 “근처의 동료가 있나? 있다면 몇 명이나 되지?”

 

 다시 시작된 바이칼의 질문에 사내는 곧바로 대답했다.

 

 “20명 정도가 더 있습니다. 형제들은 이 근처 마을을 점령 하고 있습니다.”

 

 나는 끼어들었다.

 

 “거짓말일거에요. 프라트니부스는 그런 작은 도적단이 아니니까요.”

 

 사내는 기겁하며 손사래를 저었다.

 

 “억…억울합니다. 정말입니다. 사실 저와 몇몇 형제들은 며칠 전에 의적단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형님. 살려주십시오.”

 

 사내는 필사적으로 바이칼에게 매달렸다. 저 말이 진실이라면 어느 정도 상황이 이해는 가는군. 두령의 통제 하에 있었더라면 결코 저런 패악은 저지르지 못했으리라.

 

 “그런데 정말 궁금하군. 관광지로 유명한, 게다가 유력자들의 별장이 많은 다란 산 근처에서 무슨 배짱으로 이런 일을 벌였지? 너희들은 목숨을 여벌로 갖고 다니기라도 하나?”

 

 이번엔 묵묵히 상황을 보고 있었던 로이드가 끼어들었다. 생각지 못했지만 예리한 질문이었다. 귀족들이 별장에 놀러 오는데 혼자 오겠는가, 짱짱한 경호원을 대동할 것이며 그중에는 도적 따위가 상대할 수 없는 실력자도 분병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치지 않고서야…

 

 “…그…그건”

 처음으로 사내가 머뭇거렸다. 바이칼의 시미터가 가차 없이 그의 목을 갈랐다.

 “끄윽…”

 

 “무슨 짓 이오. 바이칼!”

 로이드가 처음으로 화를 내며 소리쳤다.

 

 “진정해…. 생각 없이 벤 건 아니니까. 필요한 정보는 이미 다 얻었어.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곧 이놈의 동료들이 찾으러 올 거야. 빨리 자리를 뜨지. 어두워서 마차 운용이 어렵지만 불평할 계제가 아니군.”

 

 “…….”

 

 로이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가, 이내 눈을 뜨며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곳엔 여인이 아직도 떨리는 몸을 주체 못하는 것 같았으나 눈빛은 또렷한게 이지를 되찾은 것 같았다.

 

 “아가씨 견디기 힘든 상황을 겪은 것은 알겠소.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설명해주시오. 그래야 제가 도울 수 있습니다.”

 

 여인은 드문드문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오늘 새벽 참극은 벌어졌으며 남성들은 모조리 죽고. 젊은 여인들만이 지금 마을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듣고 있던 바이칼은 혀를 찼으며 로이드의 얼굴색은 어두운 밤중인데도 느껴질 만큼 창백해져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노아….”

 이번엔 ‘소년‘이 아닌 내 이름이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네.”

 

 “이번 출장은 포기한다.”

 “네. 알겠습니다.”

 

 로이드가 화를 참듯 씹어뱉듯이 말했고 나는 두말없이 동조했다. 바이칼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명하군. 그럼 바로 돌아갈까?”

 

 로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바이칼 당신은 노아와 여인을 데리고 돌아가시오. 그리고 되도록 빨리 길드에 지원을 요청해주시고. 나는 마을에 가봐야겠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바이칼은 다시 혀를 차며 말했다.

 

 “…형씨. 마음은 알겠지만. 당신 좀 식어질 필요가 있겠어.”

 

 “나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냉정하오.”

 

 “그게 제정신으로 할 소린가? 무장한 사내 20명과 지켜야 될 수많은 여인들까지 저당 잡혀있지. 우리로선 무리야. 돌아가서 길드의 도움을 받지. 그게 최선이야.”

 

 바이칼 의견에 나는 내심 동조했다. 당연한 말이다. 나는 로이드가 뛰어난 검술사라는 건 알지만 혼자선 도저히 무리다. 바이칼 제발 당신이 저 답답이를 설득해줘.

 

 “알고 있소. 그게 최선이겠지. 하지만 우리가 모두 사라지면? 동료들을 찾으러온 그 일당들이 곧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도주하겠지. 그럼 여인들은? 그 패악한 무리들이 그녀들을 온전히 놓아줄까? …나라도 가야하오.”

 

 로이드의 고집스러운 말에 시종일관 냉정한 태도를 취했던 바이칼도 폭발했다.

 

 “이런 씨발. 나라고 마음이 편한 줄 아나? 나도 저런 쓰레기 같은 놈들 당장 내손으로 죽이고 싶지.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이 소년을 지키는 일이야. 영웅놀이를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지금 하는 행동은 용기 같은 게 아니야 철없는 객기일 뿐이지.”

 

 “그러니 당신은 당신일이나 잘 하라고 하지 않소!”

 

 로이드도 마주 소리쳤다. 항상 다정다감한 그가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바이칼도 이제는 원래의 냉정을 되찾았는지 싸늘하게 받아칠 뿐이다.

 

 “그러지…. 용병은 만능이 아니야. 나는 할 수 있는 일만 할뿐.”

 “…….”

 

 말없이 떠나려는 로이드를 내가 붙잡았다. 이런 식으로 보내선 안 된다.

 

 “로이씨 주제 넘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 이번에 바이칼씨 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생각을 바꾸는 건 어때요? 그들이 도주할 시간도 아까워서 여인들을 내팽개치고 달아 날수도 있잖아요.”

 

 다행이 로이드는 날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런 희박한 확률에 기댈 순 없어. 노아. 나도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한명이라도 구출해 보겠다. 그것도 안 되면 시간이라도 벌어서 그놈들 발목이라도 잡겠어.”

 

 “…그럼. 이건 어때요. 다란 산에 있는 나일리아 자작가 한 테 도움을 요청하죠. 그녀라면 로이씨의 청을 뿌리치진 않을 거예요.”

 

 “…….”

 

 로이드는 고심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바이칼이 무심한 말투로 끼어들었다.

 

 “…애송이가 훨씬 어른스럽군.”

 

 “…….”

 

 저기요. 아저씨. 저는 지금 전력으로 설득 중 이거든요. 분위기 깨지 마시죠.

 

 

 “……안돼. 그것도 너무 오래 걸려. 산의 도착해도 거기서부턴 걸어서 올라가야한다. 게다가 그녀가 반드시 들어준다는 보장이 없어. 용병길드가 제일 확실해. 어서 바이칼과 함께 떠나 부탁이다. 노아.”

 

 으으… 나도 더 이상 못 참겠다. 저런 고집불통이라니. 나는 소리를 빽 질렀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자기 목숨은 신경도 안 쓰는 거예요? 조금 편하게 살면 어때. 우리가 이 참극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빨리 돌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으로도 도리는 다 한 겁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을 스텔라를 생각해 봐요.”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반칙의 가까운 말을 꺼냈다.

 

 “…노아. 편하게 살 거였으면 집을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작은 왕국이지만 나름 명문가의 장남이었거든. ”

 

 로이드의 말투는 담담하고 편안했다.

 

 “그리고 난 그리 똑똑하지 않아.”

 

 이 양반아. 그건 내가 물은 답이 아니잖아.

 

 로이드는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바이칼. 새삼스럽지만 노아와 여인을 부탁하지”

 

 “…정말 새삼스럽군. 그건 원래 내 일이니 걱정 마시지.”

 

 마지막으로 로이드는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해야 될 말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음. 그냥 여신께 행운을 빌어주렴. 간다.”

 

 그는 끝까지 스텔라에 대해선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6 episode 2. 지명출장 #8 2017 / 9 / 21 92 0 2771   
15 episode 2. 지명출장 #7 2017 / 9 / 20 59 0 7338   
14 episode 2. 지명 출장 #6 2017 / 9 / 19 56 0 4062   
13 episode 2. 지명 출장 #5 2017 / 9 / 19 55 0 3154   
12 episode 2. 지명 출장 #4 2017 / 9 / 18 53 0 5357   
11 episode 2. 지명 출장 #3 2017 / 9 / 17 52 0 9674   
10 episode 2. 지명 출장 #2 2017 / 9 / 16 57 0 7087   
9 episode 2. 지명 출장 2017 / 9 / 15 63 0 4491   
8 episode 1. 미소년 x 미소년 #7 2017 / 9 / 12 67 0 6234   
7 episode 1. 미소년 x 미소년 #6 2017 / 9 / 11 63 0 9179   
6 episode 1. 미소년 x 미소년 #5 2017 / 9 / 11 64 0 11856   
5 episode 1. 미소년 x 미소년 #4 2017 / 9 / 10 68 0 8299   
4 episode 1. 미소년 x 미소년 #3 2017 / 9 / 10 67 0 3750   
3 episode 1. 미소년 x 미소년 #2 2017 / 9 / 9 90 0 3509   
2 episode 1. 미소년 x 미소년 2017 / 9 / 9 118 0 6574   
1 프롤로그 2017 / 9 / 9 293 0 584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흔한 양판소 세
빈둥남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