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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페이크 라이프.
작가 : 빈둥남
작품등록일 : 2017.9.9

인기 장르소설 작가였던 박건호. 소설 속 엑스트라인 금발 미소년 '노아'가 된다. 왜? 하필 주인공도 아닌 엑스트라? 본격 생존을 위해 주인공에게 빌 붙는 엑스트라 이야기. 페이크 라이프!

*표지는 무료 이미지 입니다.

 
episode 1. 미소년 x 미소년 #5
작성일 : 17-09-11 01:26     조회 : 63     추천 : 0     분량 : 1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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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나는 지금 욕조에 몸을 누우며 마음껏 평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적절한 온도의 온수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그동안 걱정과 고단함이 모두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호스트 일을 시작할 줄 알았지만, 스텔라는 일단 얼굴에 붓기부터 빼라며 일주일간 유예를 주었다. 크으 역시. 직원 생각해주는 건 싸장님 뿐이야.

 

 나는 더욱 욕조에 몸을 잠기며 마음껏 여유를 느꼈다. 말하자면 이 일주일간은 신병 보호기간 같은 거다. 군대에서 신병이 잘 적응할 수 있게 하기위해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며 건드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시키지 않았다고 눈치 없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신병의 앞날은 어둠만이 가득하겠지. 요는 쉴 수 있을 땐 확실히 쉬고, 잘 배워놓았다가 보호기간이 끝나면 바로 행동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목욕탕 안으로 한사람이 들어왔다. 수증기 때문에 정확히는 안보이지만 키는 나보다 두 뼘 정도 커 보이는 청년이었다.

 

 “누구야? 못 보던 얼굴인데?”

 

 그는 욕조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야 잘 보이는군.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남자한테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게겠지만 실로 매끄러운 몸매였다. 근육이 우락부락하지 않고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필요한곳에 존재감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얼굴은 막 성인이 된 것 같은 소년 같은 느낌과 어른스러움이 공존하는 이미지랄까. 말이 길었지만 한마디로 미남. 이 한 단어로 정리가 될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노아라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 둘이 벌거벗고 있는 상황이라 웃길 만도 했지만 나는 차분히 인사를 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온탕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탕 안은 두 명이 아니라 장정 5명이 들어가도 괜찮을 정도로 넓었기에 딱히 불쾌감은 없었다.

 

 “너 꼬맹이 주제에 굉장히 어른스럽구나? 난 엔드류 크리스토퍼. 이 클럽 에이스지.”

 

 그가 분명 연상이야 하겠지만 나이는 그리 차이가 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꼬맹이‘라는 말에 딱히 반박할 생각이 안 드는 건. 노아가 체구가 작고 워낙 남자답지 않게 예쁘장한 느낌이라 충분히 그래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엔드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창조해낸 인물이 아니었다. 키리얀 전기에서 중요도로 분류하자면 이 클럽자체가 그리 큰 비중은 아니기에 일개 직원들까지 캐릭터를 만들진 않았다. 그리고 확실한건 이 남자가 에이스는 아니다. 에이스는 내가 만든 다른 인물이니까.

 

 엔드류는 목까지 탕에 잠그더니 눈을 감았다. 내가 근처에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떤 인물일까? 앞으로 계속 부대낄 텐데 괜찮은 사람 이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잘생긴 거 아니까. 그리 안쳐다 봐도 돼.”

 

 나는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신경쓰지 않는게 아니었구나. 하긴 사람을 신기한 물건처럼 바라봤으니, 부담스러울 만 했다. 탕에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크리스토퍼씨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될까요?”

 

 실제로 궁금한 점도 있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기도 했다.

 엔드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대꾸했다.

 

 “너 정말 애늙은이구나? 그냥 엔드류라고 불러”

 “그럼 엔드류씨. 정말 이 클럽의 에이스인가요?”

 

 그제야 엔드류가 눈을 팍 뜨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뭐야 내 말을 의심 했던 거냐?”

 

 당연히 못 믿지. 인마. 그 사람이 뜬금없이 죽었거나 사라진 게 아니라면 명백히 에이스가 누군지 아니까. 하지만 입에선 생각하곤 다른 말이 나왔다.

 

 “그럴 리가요. 다만 저랑 나이차이도 얼마 안나 보이는데 벌써 가게 넘버원이라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엔드류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이 폈다. 알기 쉬운 타입이군.

 

 “비슷한 나이? 너 몇 살인데?”

 

 “15살입니다만?”

 

 “뭐? 나랑 세 살 차이밖에 안 난다고?”

 

 엔드류는 놀란 얼굴을 해보였다. 그렇게까지 내가 동안이니? 그리고 그는 지입으로 나와 세 살 차이라고 했다. 예상대로 갓 성인이 된 솜털 보송보송한 애송이로군.

 

 “뭐 제가 어려보이긴 하죠. 그나저나 아무것도 모르고 이일에 끼어들었는데 정말 걱정입니다. 선배님.”

 

 “선배님 이라고? 거 듣기 좋은데 하하하. 너무 걱정 말라고 신입. 다 이 가게 넘.버.원이 책임지고 보살펴주지.”

 

 유난히 넘버원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군. 내 아부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니? 엔드류는 기꺼운 마음을 숨기지 않으며 내 근처로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야야. 맨살인데 그렇게 달라붙지 말라고.

 

 “사실 신입 네가 오기 전까지. 내가 이 호스트의 막내였다고. 이렇게 나이도 어리고 잘생긴 내가 잘나가자 꼰대들이 얼마나 괴롭히던지. 그거 아냐? 남자들의 질투가 얼마나 꼴불견이고 노골적인지? 원래는 신입을 이렇게 친근하게 대하면 버릇 나빠지지만 특별히 키워 주도록 하지. 나만 믿고 따라와.”

 “.....네”

 

 엔드류는 이 이후에도 쉴 새 없이 나불댔고 나는 반복적으로 작게 ‘네’라며 호응해줄 뿐이었다. 내가 풀려난 것은 욕탕 안에서 한참이 지난 뒤였다. 정말 사회생활 힘들구나.

 

 

 ***

 

 

 피로가 풀리기 보단 몸이 무거워진 것을 느끼며, 목욕탕을 터벌터벌 빠져나왔다. 내 발길은 미리 들었던 소피아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욕을 끝마치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그녀의 말 때문이었다.

 -똑똑

 

 “곧 나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사무적인 톤이었다. 문자 그대로 잠시만 기다리자, 소피아가 나왔다.

 

 “가죠”

 

 “어디로요?”

 

 “일주일간 휴식이라는 말은 들었어요. 하지만 준비는 해둬야죠. 그 누더기 같은 옷도 바꾸고요.”

 

 맞는 표현이지만 당사자는 마음이 아프다고.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하다니. 나는 딱히 할 말이 생각이 안나 말없이 그녀를 따라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번화가라 그런지 거리에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으며, 활기가 넘쳐 보였다. 내가 창조한 세계이지만 이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이지 신기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감상을 느끼고 있을 때 소피아는 그들 사이로 휘적휘적 잘도 걸어갔다.

 

 아이참, 선배님 목적의식이 분명 하시네요. 좀 더 거리를 느끼고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다간 소피아를 놓치게 생겼다.

 

 “잠시 만요, 소피아”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소피아. 나는 그녀와 눈을 맞췄다. 키는 그녀가 반 뼘 정도 약간 컸지만 이정도 차이는 올려다 볼 정도는 아니고 딱 적당했다.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이런 번화가는 처음이라 구경을 하고 싶은데요.”

 

 소피아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제가 배려가 부족 했군요. 지금 가는 곳도 시간이 급박한 것은 아니니까요. 노아씨 손 좀 내 밀어 봐요”

 

 무슨 일인지 몰라 의아했지만 나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소피아는 파우치 지갑에서 화폐를 꺼내 들었다.

 

 “2만 겔더예요. 이정도면 일주일간 쓰는 데 문제없을 거예요. 한시간정도 둘러보다가 저기 분수대 보이죠? 거기서 만나기로 하죠.”

 

 마크로스 자치주에서 중산층 4인 가족이 쓰는 한 달 생활비를 3만 겔더 정도라고 설정한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쓰는데 문제없는 정도가아니라 15살 소년인 노아가 용돈으로 쓰기에는 말도 안 되는 액수였다.

 

 소피아는 그리 큰돈을 주고도,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미련 없이 돌아서섰다. 아이고. 선배님 쿨 하기도 하시지 이러니 내가 반해 안 반해.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있을 때 그녀는 금방이라도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나는 다급해져서 달려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소피아씨.”

 

 소피아는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바보 같은! 남성혐오를 갖고 있는 여성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나는 황급히 손목을 놓아주며 고개를 숙였다.

 

 “죄...죄송해요. 고의는 아니었어요.”

 

 “됐어요. 할 말이 뭐죠?”

 

 평소와 다름없는 고저 없는 톤이었지만, 한기가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 기왕이면 소피아씨가 안내해주면 안 될까요? 아무래도 혼자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곳 사정을 잘 아는 분과 함께 하고 싶은데요.”

 “.....”

 

 소피아에 무표정한 얼굴에서 처음으로 난처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한숨을 작게 쉬었다.

 

 “뭐 그전에 실수 한 것도 있고 이참에 갚는 셈 하죠.”

 

 “그렇게 귀찮으시면 안하셔도 되는데요. 애초에 그 일은 괜찮다고 했잖아요.”

 

 “내가 안 괜찮아요. 가죠.”

 

 이번에도 소피아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걸어갔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따라갔다. 단, 이번엔 그녀의 뒤가 아니라 옆이었다.

 

 “소피아씨 처음하곤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제 착각인가요?”

 

 “정확히 무슨 의미죠?”

 

 “아니, 첫 만남 땐 그래도 정중 했잖아요. 지금은 마치 뭐랄까...”

 

 “아랫사람한테 구는 것처럼 행동한다고요?”

 

 소피아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래 맞아. 여전히 무표정하고 사무적인 태도였지만, 분명히 변화가 있었다.

 

 “맞아요! 너무 빨리 태도가 변하는 거 아닌가요?”

 

 장난스럽게 소피아를 힐난하자 첫 만남 때 보았던 도발적인 미소를 다시 지어보였다.

 

 “그때는 노아씨가, 손님신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제 관리하에 놓여 진 아랫사람이 맞아요. 문제 있나요?”

 

 “.....”

 

 아니, 그러니까 이 아가씨야. 다 인정하는데, 그런 태도 전환이 너무 빠르다고, 순식간에 서열정리당한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소피아는 나를 바라보며 작게 풋-하고 웃었다.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 말아요. 첫 만남 때 실수를 해서 그런가?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노아씨는 편해서 그런 것 같아요.”

 

 소피아가 미소 짓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간 그녀의 무표정만 보아왔던 나는 마치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것 같은 그 극심한 온도 차이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주책이지만 속으로만 생각해야할 될 단어를 무심코 입 밖으로 꺼내게 되었다.

 

 “...귀엽다.”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키도 나보다 작은 꼬맹이 주제에 따라오기나 해요.”

 

 소피아는 드물게 당황하며 고개를 홱 꺾었다. 얼굴이 붉어진 것 같은데 내 착각일까? 그녀는 잰 걸음으로 아무 말 없이 걷기 시작했고, 어색해진 분위기를 느낀 나는 힐끗 소피아 쪽을 바라보았으나 각도 상 표정은 보지 못했다.

 

 

 

 “소피아씨 질문 좀 해도 될까요?”

 “... 말해 봐요.”

 

 이건 이 숨 막히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일단 아무 말이라도 내뱉어 본거였다. 뭘 물어볼까? 아 그래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이거군.

 

 “엔드류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소피아의 표정이 평소에 무표정이 아니라 눈에 띄게 굳어졌다.

 

 “노아씨 매니저로서 충고하나 할게요. 그런 천박한 사람하고 친해져서 좋을 것 없어요. 거리를 두도록 해요.”

 

 크흠, 소피아 눈에는 엔드류가 그렇게 보이나보다. 천박하다는 표현은 심하긴 하지만, 분명 가볍다는 느낌은 나도 받았었다.

 

 “그래도 실력 있는 사람 아닌가요? 가게 에이스라는 말도 들었는데요.”

 “실력? 에이스? 흥. 가진 거라곤 언젠가 썩어 문드러질 얼굴하고 허세가 전부인 남자에요.”

 “......”

 

 애초에 엔드류가 에이스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넘버원임을 자처 하길래 나름 클럽 내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인줄로만 알았다. 소피아의 반응을 보니 그것도 아닌가 보다.

 

 그녀가 그에 대해 노골적으로 말하기 꺼려하는 기색이라, 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못했다. 훗날 소피아가 엔드류를 이리 기피하는 이유를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시일이 걸리지는 않았다.

 

 우리 둘은 또 할 말이 없어져, 어색한 침묵이 다시 감돌고 있었다. 정말 미치겠군. 누가 모녀 아니랄까봐 쉬운 사람이 없어요. 나는 필사적으로 화젯거리를 찾다가 인파가 몰려있는 한 노점상을 발견했고,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그녀를 끌고왔다.

 

 상인은 온후한 인상에 중년 남성이었고, 노점에는 딱히 컨셉을 갖추고 파는 게 아니라 악세 사리 부터 생필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물품들을 구경하다가 힐끗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많은 여성들이 몰려있는 악세사리 쪽이 아닌, 구석에 있는 손바닥만 한 새끼 호랑이 인형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저게 마음에 들어요?”

 “무슨 소리에요. 그냥 우연히 저쪽을 보았을 뿐이에요.”

 

 소피아가 입으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시선은 여전히 인형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살짝 웃었는데 미쳐 숨기진 못했나보다.

 

 “그 기분 나쁜 웃음은 뭐죠?”

 “크흠. 딱히 아무것도 아니에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화낼 것 같아서 대충 얼버무렸다. 소피아는 한번 쌜쭉하게 째려보더니 발 걸음을 옮겼다.

 

 “뭐... 됐어요. 더 이상 볼게 없으면 가죠.”

 

 소피아와 그리 오랜 시간 걷지 않았음에도 번화가 곳곳엔 버스킹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각양각색으로 연주와 노래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돈이 모이는 곳에 문화가 싹튼다는 말이 있다. 대륙제일의 상업도시인 마크로스 자치주다운 위용이랄까. 노아가 사는 빈민가와 다르게 모든 사람들이 활기차고 여유가 있어보였다.

 

 나는 한 젊은 여성 연주자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무척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에 멜로디라, 마음 한편 갖고 있는 장래에 대한 걱정을 잠시나마 떨쳐 낼 수 있었다.

 

 내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듣고 있자, 소피아는 채근하지 않고 말없이 옆에 서서 기다려주었고, 이윽고 연주가 끝나자 주변 사람들과 그녀는 힘차게 박수를 쳐주었다. 나도 진심으로 젊은 연주자를 응원하며 거리를 빠져나왔다.

 

 “마음에 들었어요?”

 

 “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소피아의 물음에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실제로 작가시절 때도 음악은 항상 끼고 살았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었으니까.

 

 “덕분에 한 시간은 훌쩍 넘긴 것 같군요.”

 

 “... 죄송합니다.”

 

 딱히 힐난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소피아는 내 사과에도 별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는 듯이.

 

 “제가 자랑할건 아니지만 마크로스 자치주의 역사는 100년 채 안되지만 문화와 예술로 유명하죠. 길거리 공연도 수준 높은 것은 말 할 것도 없지만 단연코 백미는 아틀리에 [atelier] 연극단이에요. 나중에 기회 되면 꼭 가보도록해요.”

 

 

 키리얀전기 세계관에서도 연예인은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아틀리에 [atelier] 연극단 배우들은 말하자면 톱스타들의 모임이라고 할까. 설정 상 대륙 각지에 재능 있는 배우들이 모여 평생을 갈고닦아 항상 최고의 무대를 위해서 같은곳을 바라보는 곳이라고 되어있다. 타이핑으론 몇 글자 안 되는 이 말들이 어떻게 구현될지 실로 궁금하다. 소피아가 추천하지 않았어도 원작자로서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다.

 

 소피아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시간은 이미 많이 잡아먹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곳 더 들렀다 가죠.”

 

 소피아와 함께 한 20분쯤 걸었을까. 빌딩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 건물들보다 앞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띈다. MSJ (Macross Street Journal).

 

 "마크로스 자치주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사에요. 노아씨도 한번쯤은 들어 봤을 거예요. 이름은 그냥 우리가 서있는 번화가 이름을 본 따 MSJ예요. 간단하죠?“

 

 글씨는 읽지 못했지만 소피아의 설명을 듣고, 어딘지 단박에 이해했다. 키리얀전기에서 각국의 언론사들이 존재하지만 공신력이 있는 건 MSJ뿐이었다. 다른 회사들은 권력의 시녀 역할이랄까. 아무도 그들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지만 오직 이 언론사만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중립적인 보도를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마크로스 자치주이게 가능한 일이랄까.이곳을 마지막으로 소피아의 안내는 끝이 났다. 그녀는 이미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별 수 없다며 마차를 잡았고, 우리는 편안하게 원래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한눈에 봐도, 나 고가품이오라고 맘껏 오라를 뿜어내는 옷들이 진열되어있는 매장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반백의 머리가 인상적인 할아버지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반듯한 정장을 입고 태도 또한 중후해서 멋있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어르신이었다.

 

 “소피아양 오랜만이군요.”

 

 “그러게요 점장님. 오랜만이에요. 한동안 신입이 없었거든요.”

 

 “그러면 이 소년이?”

 

 할아버지는 재밌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허허. 그렇게 뚫어져라 보시면 부끄러운데요. 어르신.

 

 “이런 실례를... 이리로 오시죠. 옷은 평상시대로 제작하면 되겠습니까?”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스럽게 그냥 옷만 사려는 게 아니라 맞춤옷을 제작하려 하려나 보다. 크흠, 영광스럽게도 직원들이 여럿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른신이 직접 내 몸을 재고 있었다.

 

 소피아의 표현처럼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었으니 분명 냄새가 날 터 임에도 불 구 하고 그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아직 성장기 소년이니, 치수를 좀 넉넉하게 하는 게 좋을까요?”

 

 할아버지 질문에 소피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땐 다시 맞추면 되니까. 최대한 체형에 맞게 해주세요.”

 

 허허. 마치 엄마랑 같이 교복을 사러온 중학생이 된 기분이다. 나는 민망함에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지만 꾹 참고 서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치수를 재는 일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워낙 어르신이 일을 꼼꼼하게 했기 때문이리라.

 

 “고생하셨어요. 점장님. 제복은 일주일 안에만 도착하면 됩니다.”

 

 소피아는 어르신에게 노고를 표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노아씨는 여기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봐요.”

 

 “이미 옷은 맞춘 거 아닌가요?”

 

 “그건 일 할 때 입을 제복이고요. 설마 휴가동안 그 누더기 같은 옷을 계속 입고 다닐 생각은 아니죠?”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 옷은 하나같이 비싸 보이는데요.”

 

 사실 실용적인 성격에다가 전형적인 집돌이인 나는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듯하기만 하면 되었다. 명품 따윈 개나 줘버리라지. 소피아는 쓰게 웃었다.

 

 “걱정 말아요. 노아씨 값은 제가 치 룰 거니까요.”

 

 아니, 이 아가씨야.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이미 소년이 쓰기엔 너무나 큰돈을 받았는데, 주는 것도 없이 더 받기만 하기에는 면목이 안 섰다.

 

 “유니폼이야 일적으로 필요하기에 받는다 해도 제 옷은 제가 알아서 사도록 할게요. 이미 너무 큰돈을 받았어요.”

 

 “까불지 말아요. 노아씨. 제가 그리 큰돈을 준거는, 일종에 투자 같은 거예요. 저희 손님들이 아무생각이 돈을 퍼 붇는 자선가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들의 마음을 살려면 때론 겔더를 쓸 줄도 알아야 해요. 그 돈 역시 일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허튼 데 낭비 하지 말고 잘 활용하도록 하세요.”

 

 들어 본 적이 있다. 아무리 막대한 재산을 가진 여성이라도, 받기만하는 찌질 한 남자에게 호감을 품을 수 있을까? 때론 그들이 볼 땐 별거 아닌 미약한 선물이라지만 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남성들과 다르게 감성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마치 연인에게 받은 것처럼 그런 기분만이라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일종의 고객 만족을 위한 노력이랄까.

 

 소피아와 나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어도 내키지 않는다. 뭐 남자의 치기어린 자존심이라고해도 좋다.

 

 “소피아씨 뜻은 이해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자기 옷을 자기가 사는 게 허튼일 이라곤 생각되진 않는군요.”

 

 소피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노아씨는 첫 만남 때도 그렇고 고집이 정말 쌔 군요. 좋아요, 마음대로 해요.”

 

 소피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토라진 아이 같아서 마음이 아팠지만, 이미 빼든 칼이다. 무라도 썰어야지.

 나는 원래 이곳에서 옷을 살 마음이 없었지만 바뀌었다. 저렇게 단호하게 말했는데 궁상 떨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옷이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겠어! 고른 옷은 검은색 계통의 무난한 티와 바지였다.

 

 “15000 겔더 입니다.”

 “......”

 

 옷 한 벌 이 비싸 봐야,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 반뿐이 안 되는구나. 하하하하. 어이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을 꾹 참았다. 친절하게 웃고 있는 여직원에게 값을 지불하고 매점을 빠져 나왔다.

 

 밖은 해가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소피아와 인상적인 만남이 있었고, 스텔라와 긴박한 면접도 있었으며 엔드류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화자찬을 듣는 일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단연코 소피아와 함께 번화가를 걸었을 때이다. 그 시간 만큼은 걱정도 잊고 즐거웠으니까.

 

 소피아는 밤이 되었으니 마차를 타고 권했으나,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딱히 두 번 권하지는 않았다.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지는걸 보고, 나는 황급히 뛰었다. 제발 아직 문을 닫지 말아야 할 텐데.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숨이 찰 정도로 열심히 뛴 보람이 이었는지. 노점상은 철수하지는 않고 돌아갈 준비만 하고 있었다.

 

 “허억...허억... 아저씨 이 인형 얼마에요?”

 

 “소년. 진정하게 어디 도망가지 않으니까.”

 

 “허억...그래서 얼마냐 구요.”

 

 “허허. 성격도 참. 2000겔더 일세”

 

 “허억... 무슨 조금한 인형이 그리 비싸요.”

 

 온후한 인상에 중년 상인은 펄쩍 뛰었다.

 

 “무슨 그리 섭한 소리를 하는가. 이 재질을 보게 이게 얼마나 고급원단인지 아는 가. 그리고 이름난 장인이 한땀한땀....”

 

 노점상이 열심히 제품에 대한 장점을 블라블라 설명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말을 끊고, 겔더를 지불했다.

 

 “허허.. 어린 소년이 성격도 참..”

 

 노점상은 투덜거렸지만 눈은 분명히 묘한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왠지 당한 것 같지만 받을 사람을 생각하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다시 웃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는 목적한 바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야광에 비친 거리와 사람들을 감상하며, 클럽으로 돌아갔다.

 

 ‘역시 집이 최고야.’

 

 나는 벌써부터 이 건물이 편안해진 걸 느끼며, 얼른 침대에 피로해진 몸을 파묻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똑똑

 나는 조심스럽게 소피아 방을 노크했다.

 

 “누구세요?”

 

 “노아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야심한 밤, 여성 혼자 있는 방에 남자가 들어왔으니 긴장할 법 하지만 소피아는 전혀 그런 기색은 없었다. 단지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의아함만을 담고 있었을 뿐

 

 “이 밤에 무슨 일이죠?”

 

 나는 등 뒤에 감쳐놓았던 인형을 꺼내놓았다. 그것은 소피아가 신경 쓰던 새끼 호랑이였다. 그녀는 그것을 보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기대했던 표정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성공이다.

 

 “뭐긴요, 소피아씨가 마음에 들어 했던 인형 이죠”

 

 “누...누가! 웃겨, 정말. 노아씨 제가 허튼 일에 겔더를 쓰지 말라고 충고했었죠. 하여튼 정말 말을 안 듣는 다니까. ”

 

 포커페이스도 무너진 채 눈에 띄게 당황하는 소피아를 보며,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북풍한설처럼 차가워 졌다. 아유 무서워라.

 

 “글쎄요, 직장상사에게 점수 따는 게 허튼 일은 아니지 않나요?”

 

 “... 그걸로 점수를 딸 수 있는지 어떻게 확신하죠? 헛수고일지도 모르잖아요.”

 

 “소피아씨 표정을 보면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윽”

 

 정곡을 찔린 듯 소피아는 그제야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인형에 대한 시선을 거두었다.

 

 “저기... 제 손이 민망한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죠?”

 이러지 않으면 소피아는 언제까지고 가만히 있을 것만 같아 한 말이었다.

 

 “이번에는 주는 사람 성의가 있으니까 받는 거예요. 다음부턴 절대 이런 짓 하지 마요.”

 

 마지못해 들어주는 것처럼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어 인형을 가져갔다.

 정말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하지만 더 이상 놀리는 건 위험하니까, 나는 담담하게 그렇겠노라고 했다.

 

 “받기만 해선 면이 안서니까. 소원 한 가지 들어줄게요.”

 

 소피아는 금세 원래의 무표정을 되찾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선물이란 게 대가를 바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건 뇌물이잖아요? 짜증나게 굴지 말고 빨리 말해요.”

 

 소피아의 강경한 태도에 나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점수를 따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만 기쁘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애초에 내 돈도 아니었잖은가? 생각해보니 이건 엄청난 창조 경제 아닌가.

 

 하지만 소피아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나는 고민하는 척 했다가, 정말 필요한 게 생각났다. 이러면 정말 속물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지.

 

 “글을 배우고 싶어요.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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