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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페이크 라이프.
작가 : 빈둥남
작품등록일 : 2017.9.9

인기 장르소설 작가였던 박건호. 소설 속 엑스트라인 금발 미소년 '노아'가 된다. 왜? 하필 주인공도 아닌 엑스트라? 본격 생존을 위해 주인공에게 빌 붙는 엑스트라 이야기. 페이크 라이프!

*표지는 무료 이미지 입니다.

 
episode 2. 지명 출장
작성일 : 17-09-15 09:07     조회 : 62     추천 : 0     분량 : 4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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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잘리지 않았다. 스텔라에게 혼날 것을 걱정했었는데 그녀는 어떤 비난도 그렇다고 칭찬도 아닌, 현실적인 조언만을 해줬을 뿐이었다.

 

 ‘손님에게 정중해야 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그렇다고 모욕을 참을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손님들 대부분이 노아씨 정도는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다음부터 그런 일이 있다면 상대 하지 말고 그냥 나오도록 해요. 그 정도는 제가 어찌 해줄 수 있으니까요.’

 

 그 일이 있은 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벌일 것 같았던 루시아 폴튼은 며칠이 지나도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긴장 했던 나도 이제는 긴장을 풀고, 지금처럼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그간 많은 사람들을 접했지만, 아직은 첫날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손님을 만나지 못했군. 그게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말이다.

 

 마침, 머리를 감고 있을 때었다. 한 남자가 들어섰다. 훤칠한 키에, 넓은 어깨. 그리고 금발벽안의 미남. 분명히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나는 확신했다. 호스트들 중에서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인물.

 

 “안녕? 처음 보는 소년이네.”

 

 사내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선한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절로 마음이 화사해지는 걸 느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연예인이 웃어준 느낌이랄까.

 

 “안녕하세요. 노아라고 합니다. 여기서 일한지는 얼마 안됐어요.”

 

 “여기서 일한다고?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한 걸? 아무튼 반갑다. 난 로이다.”

 

 역시나, 그는 우리 클럽의 에이스 로이 맥클레인이었다. 그가 악수를 청해왔다. 서로 알몸이라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손을 마주 잡았다.

 

 통성명이 끝난 후, 우리는 말없이 목욕을 재개했다.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로이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정녕 저게 30대 초반의 얼굴이란 말인가. 아무리 높게 쳐줘도 20대 후반으로 밖에 안 보인다.

 

 시선을 느낀 듯 로이는 나를 보았고 눈이 마주치자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내가 만든 인물이지만, 직접 만나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다. 정말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완벽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저번에 하다가 말았던 그에 대해 알려주자면, 본명은 로이드. 대륙 남부에 있는 작은 왕국 ‘카밀‘ 이라는 나라의 무려 백작가 장남이다. 원래라면 작위를 이어받고 화려한 삶을 살아야겠지만. 모든 것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스텔라를 따라와 지금의 에이스(….)가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많은 여인들에게 사랑받는 야왕(밤의 왕)이 된 것이니 지금도 화려하다면 화려한 삶이겠지만.

 

 크흠. 각설하고, 눈치 챘겠지만 스텔라와 로이드는 동향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사모하고 있었다. 유부녀였을 때는 심정이야 어떻든 포기했겠지만 그녀가 남편의 성을 버리고, 이블린으로 돌아왔을 땐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가 받아줄 때 까지 말없이 옆에 서서 사별한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렇게 로이드는 여성이 좋아할만한 모든 것을 갖춘 남자였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성격은 어떤가? 다정다감하고 바르고 정의롭다. 더군다나 어렸을 때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 문무까지 겸비한 완벽남이였다. 마지막으로 한 여자만 사랑하는 순애보까지. 실로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 하지 않은가?

 

 스텔라가 로이드를 아직까지 받아주진 않고 있지만 그녀도 마음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자신의 주변에서 서성거리게 놔둘 만큼 만만한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4살 연상이긴 하지만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일부러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로 내가 설정한 거기도 하고 후후.

 

 나와 로이드는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소피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었다.

 

 “오셨군요. 로이씨. 마담이 찾으세요.”

 “오랜만이야. 소피아양. 알았어. 곧 찾아가도록 할게.”

 

 소피아가 이번에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연이네요. 노아씨에게도 볼일이 있었거든요. 마찬가지로 마담이 찾으니까 알아두세요.”

 “저와 로이씨 둘 다요?”

 “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난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명실상부 클럽 최고의 에이스와 첫날부터 사고 친 신입. 연관 점은 없어 보이는데?

 

 “글쎄요. 저도 이유는 모르겠네요.”

 “…뭐 가보면 알겠죠.“

 로이드가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그럼, 목적지도 같은데 지금 갈까?”

 우리 둘은 소피아와 작별하고, 스텔라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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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텔라는 동시에 들어온 우리 둘을 묘한 웃음기가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와 로이드는 영문을 몰라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해요. 같이 서 있는 둘을 보니, 아빠와 아들 같아서.”

 “…….”

 “…….”

 

 이유는 알았지만 뭔가 꺼림칙하다. 동시에 나와 로이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머리색이 금발로 같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해보자면 로이드는 선이 굵은 미장부 느낌이라면 노아는 예쁘장한 느낌이라 닮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스텔라. 급히 찾은 것 같은데 이유나 알려주시오.”

 

 로이드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줬고,

 “…네. 그러죠. 일단 둘 다 앉아요.”

 

 스텔라는 우리가 앉자, 차를 테이블 앞에다 올려주었다. 로이드가 찻잔에 손을 대 입가로 천천히 가져갔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똑같이 따라했다. 향이 진하고 상큼했다. 한 모금 마셔보자, 과즙을 먹은듯한 달콤 쌉싸름한 맛이 났다. 이쪽은 견문이 좁아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고급차는 맞는 것 같았다. 뭐 먹어봤어야 알지(….) 굳이 비교하자면 귤강차와 비슷 하달까.

 

 로이드가 찻잔에 손을 떼자, 스텔라가 입을 열었다.

 

 “로이씨에게는 복귀하자마자 미안한 얘기지만 또 지명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어디요?”

 “나일리아 자작가의 레이디에요”

 “또 그녀인가? 이번에도 다란 산의 있는 별장?”

 “네, 맞아요. 같은 사람한테 지명출장이 5번이라니. 로이씨는 그녀한테 어지간히 사랑 받는군요”

 

 로이드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그런 말은 농담이라도 듣기 싫군. 스텔라.”

 “하지만 사실이잖아요? 좀 더 자랑스러워해도 괜찮아요, 인.기.남.씨.”

 “…지금 질투하는 거요?”

 

 스텔라의 표정이 못들을 것이라도 들은 듯 한 표정이 되었다.

 “…웃겨. 내가 고작 자작가 레이디한테 그럴 것 같아요?”

 “맞는 것 같은데?”

 “전혀. 잘못 짚었어요.”

 

 로이드의 오른쪽 입 꼬리가 묘한 호선을 그렸다.

 “글쎄. 맞는 것 같은데…. 스텔라. 원한다면 가지 않겠소.”

 “당장 가서 돈이나 벌어 오시죠.”

 

 나는 말싸움하는 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신조어지만 이것보다 이 상황을 잘 표현하지 못하리라. ‘꽁냥꽁냥’.

 이 뒤에도 둘은 말 그대로 ‘꽁냥꽁냥’거리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자, 내가 끼어들었다. 사랑싸움은 나중에 하시구랴.

 

 “…저기요. 스텔라씨?”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스텔라는 표정을 바로 했다.

 “…뭔가요. 노아씨.”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지명출장이 뭔가요?”

 

 뭐… 대충은 짐작이 가지만, 확실하게 듣고 싶었다.

 “아… 그건…”

 

 스텔라는 멋쩍게 웃으며, 다소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다. 간단히 내가 대신 말하자면 지명출장이란, 지명 받은 선수가 엉덩이 무거운 귀부인들을 위해 직접 가서 접대를 하는 것을 말했다. 무슨 왕진도 아니고 호스트 일까지 찾아가며 해야 되다니. 잠깐 소름이 돋았다. 정말 어마 무시한 사업 수완이군.

 

 그녀가 덧붙인 말로는 출장 지명을 당하는 것은 호스트로서는 영예(….)로운 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통상 가격의 10배는 지불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니까. 그래도 그 말이 조금은 이해는 가는 게 애초에 고가의 유흥비를 받는, 이 클럽에서 10배라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액수였다.

 

 하지만 아직 이해가지 않는 게 있었다.

 

 “…그런데 저는 왜 부르셨죠? 설마 저도 지명 당한건가요?”

 “…그럴 리가요. 아무리 사치를 좋아하는 레이디들도 굳이 비싼 겔더를 쓴다면 클럽에서 인기 많은 사람을 쓰고 싶지 않을까요? 그래야 자랑도 할 수 있고요.”

 “그럼 저는 왜?”

 

 스텔라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난 왜 추위가 느껴지는 걸까.

 

 “이제 노아씨도 미소년 X 미소년의 확실한 일원이 되었으니, 미래를 위한 투자랄까? 마침, 이번이 우리클럽 에이스한테 배울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이기도하고요. 잘 다녀와요.”

 “…….“

 

 말하자면 원 플러스 원이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뻥긋 거렸다.

 

 “그럼 언제부터 준비하면 되오?”

 벙어리가 된 나대신 로이드가 질문했다.

 

 “그녀가 로이씨를 아주 애타게 찾더군요.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출발해야 돼요.

 “…쉴 틈이 없군.”

 로이드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스텔라는 드물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점은 항상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렇게 미안하다면 소원하나만 들어주시오.”

 

 스텔라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소원이 뭐죠?”

 “그건 갔다 와서 즐거움으로 남겨두겠소.”

 

 로이드는 아직도 멍하니 앉아있는 나의 등을 살짝 쳤다.

 “소년. 정신 차려.”

 그가 앞장서서 걸어갔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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