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박사는 조용히 지혁을 응시했다. 지혁은 다급해 보이진 않았으나 참담해 보이긴 했다.
묘하게 달떠 보이기도 했다. 이 아이는 내내 내 치료를 받고 있었음에도-
결코 날 100% 신뢰하진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먼저 도와달란 소리가 나오다니...
이 아이는 그동안엔-
예민한 야생동물처럼- 언제라도 다시 돌아갈 어떤것처럼-
누구도 깊게 신뢰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는데-
아이의 눈에 뭔가 , 걷힌 듯 빛이 든다- 희망차다고 까진 표현치 못하겠다.
그래도 달라진건 확실하다- 끝을 모르는 암흑처럼 보였던- 그 눈동자에 든-
한줄기의 빛-
그 빛과 어둠의 차이는 극명해서- 어둠에 빛만의 그림을 그려넣어서
인상까지도 달라보인다.
아이는 달라져 있었다. 많이
아주 많이.
나는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언제나- 언제나 도와 줄수 있단다. 말해 보렴-"
지혁이는 평소와 다르게 얼굴에 붉은 빛이 살짝 돌았다. 볼만- 예전엔 그런 일이 없었다.
아이는 자꾸만 입을 달싹이며 망설였다.
부르튼 입술- 입술은 붉고- 따가워 보였다.
한참만에 나온 말은 아직 날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서 나온 얘기였다.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야기 할수 있어요-"
갑자기- 방어적인 태도였다. 정옥이에게 다 이야기 하진 않았다. 언제나 난 아주 살짝- 정옥이가 희망을 잃어서
울거나 할 때만 방향을 지시해줬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아인- 최근에 눈치 챈듯 했다. 내가 간단히라도 이야길 전한 단 사실을, 아마 정옥이는 마음이 앞서
아이를 보호하려 나섰을 것이다. 그래서 예민한 지혁이는 눈칠 챘겠지..
주의를 줬지만- 그 이상으로 아이는 예민했다.
아이는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저를 많이 걱정하셨고.. 선생님이 이야길 다 안하신것도 잘 압니다. 그래도 이 이야긴 다르네요- 말씀...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중해 보이는 눈빛- 언제나 내겐 예의보단 방어가 먼저였는데-아이의 목소린 깍듯했다.
그러나 눈은 내 진심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더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그래- 그러마... 절대로 말 하지 않으마-"
.......
지혁이는 그 대답에 자신의 얼굴을 살짝 쓸었다.
건조한 향기가 났다. 이 아이에게서 언제나 나던 향기- 달콤한 향기-
"그때 말했던 사람- 기억나시나요?......"
지혁이의 목소리는 떨렸다. 왜 떨리는지 묻고 싶었지만- 아이의 입술을 찬찬히 살펴보며 난 뭔가 예감할수 있었다.
저 입술의 살짝 난 생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판단을 내릴 때는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인 것이다.
"... 물론 기억한단다"
나는 가볍게 들리게 대답했다.
지혁이를 변하게 한 여자분-
도저히 살려낼수 없겠구나- 영원히 이 아이의 가슴엔 얼음이 박혀서- 그 얼음이 녹을 일은 없어
영원히.. 이 아이는 한 없이 차갑게 살겠구나 싶었는데...
어느순간 아이는 변했다.
갑자기, 봄이 없고- 여름을 만난 꽃이 활짝 피어나듯이-
자신을 제어할수 없는 순간이 왔다고 했을때부터-
그것은 지혁이에겐 불안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무엇을 던져도 어떤것이 떨어져도 파동하나 일지 않았던 아이의 고요하디 고요한 마음에
물보라가 인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겐 이미 긍정적인 이야기였다.
드디어- 제대로 반응하는 , 그야말로 '사람' 같아 지고 있단 의미로 듣겼으니까-
아이는 조금씩 변했다.
그걸 제 자신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여전히 날 신뢰한다곤 할수 없었지만.. 변했고 내 말을 듣는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옥에게 말했던 거였다. 그 여자분이 존경스러워 질 지경이라고..
아이의 표정이- 아이가 내 말을 듣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결코 꺾일 일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였기에-
"........ 제가 하민이한테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건 잊을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언제나 기억해야만 하는 거였죠-..."
아이는 언제나 그 아이 이야길 꺼낼 때 그렇듯 눈은 웃고- 입매는 슬펐다.
아름다웠던 기억이 잔인한 기억으로 변모할때
그 기억의 힘은 무시무시 해 진다.
아이는 곧 다시 말을 이었다.
" 선생님은 제게 사랑은 한가지 감정이 아니라고 하셨죠-
무엇이나.. 어떤 감정이나 사랑이 될수 있다고요...."
"....."
그랬지. 김박사는 대답대신 긍정의 눈짓을 하였다. 그러나 지혁은 마치 부끄러운걸 고백한다는 듯한 투였다.
다시 힘겹게 입을 연다.
"처음엔 아니라고 부정했습니다. 부정도 하고-, 밀어내기도 했어요- 살짝 흔들리는걸 느낄때마다... 상상도 할수 없을 만큼 죄책감을 느꼈어요
차라리 죽는게 낫다 싶을만큼 저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
이건, 고백이지......
아이는 내 앞에서 한번도 말 한적 없던 감정을 내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이야길 해야 할 만큼- '어떤 것'이 간절하다는 이야기겠지-
아이의 이야긴 담담해 졌지만 ......
나는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님이 된것 같은 기분마저 느꼈다.
" 사고 후에 저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나도요... - 한없이 스스로 고립되어 살아왔기에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죠- 아니 다가온다고 해도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그렇게 있다보면 무시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라지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죠- 다른 사람하곤 너무나 달랐어요-
다른 사람은 누구나 나를 겁냈죠- 겁내거나.... 혹은 너무 조심조심 다뤄서 내 자신이 부서져서 엉망이란걸
확인하는 계기만 되었어요... 그게 언제나 더 싫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안 그랬어요- 그럴수도 있지..
그럴수도 있다고- 그렇게 넘어가 버리는 거죠- 제 어깨에 매여있던 것들의 무게를...
그대로 날려버려요- 이게 사실은 큰 상처가 아니라는걸- 모두가 살아가기엔 자신이 매야 하는 상처의 무게가 누구나 있다고-
지금 내가 주저 앉아 있는건... 내가 일어날 생각을 안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요-
말도 안되죠- 그런데.... 이 여잔 그걸 믿게 만들어요-"
지혁인 쓸쓸하게 웃었다. 차라리 우는게 나을텐데-
저런 웃음은 심장에 해로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김박사는 제 가슴도 쓰려져 헛기침만 할수 밖에 없었다.
"잠시지만- 처음엔 그랬죠- 처음엔 잠시만 그랬었어요-....
이렇게 , 잠시만 옆에 있다가 - 언젠가 이 사람도 내게 누구나 그랬듯이 오래 기다리게 하면
또 곧 떠나지 않을까....
그럼 그 사이에라도- 이렇게 위안 얻으면 되지 않을까.............
그럴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잠시..... 잠시 이렇게 바람통하는 창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그 정도 자격은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그 여잘 오래 기다리게 했는데도 그 여자가 떠나지 않았단걸 알았어요......
그리고 그 창에서 드는 바람이 너무 간절해졌죠-
아주 잠시뿐이었는데- 곧 간절해졌어요-
그러고 , 그러고 그 방향으로 향하다보니"
"....."
숨조차 쉴수 없는 긴장감..
아이는 드디어 , 긴 얘기 끝에 결정적인 단어를 내 뱉었다.
"...... 저는 그만... 그녀가 좋아졌습니다. "
심장이 쾅 떨어지는것 같다. 대체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처지에 맞지 않는 일인것도 알고-..... 심지어는 그 바보같은 여자는 내가 하민이를 놓지 않는단 것도
놓지 못한단 것도 압니다.
그런데도.... 저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아낌없이 자기 감정을 나한테 써요-
그때마다 정신 차려야지 , 이러지 말아야지 - 더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나도 모르게 , 그녀의 손을 잡아요... 그러면 안된단걸 알면서-"
왜 지혁이는 이렇게나 고집스럽게 자신을 미워하는 걸까-
그 사고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아니면 하민양을 사랑했기 때문에? 시작과 중간- 행복은 있는데
끝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니면 혼자선 끝을 낼수가 없어서?
"그러면 그녀는 언제나 내가 가 본적도 없는 길로 저를 이끌어요- 갈 수도 없고 갈일도 없다 믿었던 길로요-
잔잔하게 멈추어 있었던 내 마음이... 이제 자꾸만 철썩이며 물살이 이는데도-
처음엔 그게 불편해서 도망치고 싶고 견딜수가 없었는데............
이젠 그 소리 없이 .... "
지혁이는 입을 꽉 깨물었다. 그러지 말라고 위로 해주고 싶었지만 김박사는 입이 붙기라도 한 듯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 내가 살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른거 떠나서... 그 사람이 이제는.....
좋아졌어요- 좋아져 버렸어요- 그 사람이 좋아요..... "
그제야 쏟아져 나오는 고백, 그야 말로 터져나오듯- 아이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
그 끝에 지혁이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어쩔줄 모르겠다는 듯이-
"그런데 나는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저 때문에 하민이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그러고 있어요-
죄책감 물론 아직도 느껴요 죄책감 때문에 죽을것 같은데... 그 사람이랑 있으면... 저는 그 사실도 잊어요-
그냥 좋아서-... 그 사람이랑 있고픈데..... 그런데....... 내게 하민이를 다 잊었냐고 물으면...."
지혁이는 그냥 다 내려 놓은 것 같았다. 부끄러움이나 그동안 견고하게 지켜냈던
제 안의 감정을- 그 높디 높아 어떻게 공략하려 해도 열린 적 없던 그 감정을....
내 앞에선 단 한번도 보이긴 커녕 내색조차 한적 없었던...
그런 감정을... 그대로 내려 놓았다. 그 감정은 눈에 물로 맺혀있었다.
목에선 이젠 끅끅대는 소리가 난다.
"그것도 대답 못하겠어요- 그런 내가 칠칠치 못하고 맺고 끊음도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쓰레기같이 느껴져요-
정말 죽어버릴거 같은데....... 그 사람은 날 소중하게 느끼고 있어요-"
지혁이는 울었다.
다들 지혁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의견을 낼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렇게도 좋으면 하민양에게서 손 떼고 행복해 지라고-
혹은 나쁜 사람이라고 욕하며 하민양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모두들 -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말을 거들기는 쉬워진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말 하기가 쉬워진다.
모두가 그렇다. 남의 가슴에 박힌 창 보다야, 제 발의 물집 하나가 더 따갑고 아픈 법이다.
모든 사람이- 제 가슴에 달린 짐이 가장 크다고 느끼는 법이다.
나는 이 아이의 아픈 과정을- 유리처럼- 예민하면서도 딱딱해서- 물 한방울 스며들질 못했던 과거를 보았다.
그 과거 내내 - 나는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바뀔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내가 다른건 몰라도 이것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건.... 아니... 이 문제를 제기한건 '시간' 이 아니라는 것-
이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은.... '그 여자분' 이 아니었으면 안될 일이었다는 것이다.
다른사람들은 욕 할지도 몰랐지만 난 지혁이의 기분을 이해 할수 있을것 같았다.
이해 할수 있었다. 그 복잡한 심경을...
사랑이란 원래가 그런거였다. 모든 세포 한줌 한줌까지 그 사람에게 쏠리고 마는 것-
아이는 내게 말 하기 전에 제 손으로 마스크를 벗었다. 내가 그걸 보고서 무엇을 예상할지 알 면서-
알고 있으면서-
스스로 알리는 것이란 걸 - 내가 알아챌 거란 걸 알았을 만큼
지혁이는 영민한 아이이기도 했다.
예전의 지혁이는 그런걸 보여주는 것 자체를 치욕이라 여기는 아이였는데....
'도와달라고'...... 그 말은 그 어떤것보다 내게 임팩트가 강했다.
손을 뻗었으니...... 그 손을 안 잡아 줄 이유가 없었다. 태풍을 , 폭풍을 사라지게 해 줄순 없어도-
그 바람 속에서- 어디 단단한 나무- 절대 뿌리 뽑힐 일 없는 나무에-
이 아이를 단단히... 못 묶어줄 이유는 없었다.
묶어만 둬도- 그 바람은... 언젠가는 지나갈 테고-
아이는 누가 곁에 남아있는지 알수 있을것이다.
그럴수 있을 것이다.
"맙소사...."
지혁이는 말도 안된다고 중얼거리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러고 또 한참-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혁이가 진정 되길 기다렸다.
나는 할 말을 고르고 골랐다. 적어도 이게 내가 해 줄수 있는거라면....
"지혁아...
무슨 말인지- 잘 알았단다.
너는 내게- 정리와 확신을 원하는 것 같구나-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말이다.
사랑엔 자격이 필요 없단다. 그게 너라고 해도 말이지-"
내 말에 지혁인 고갤 들었다. 여전히 슬픔이 내려 앉은 눈가에
놀란 기색이 들었다.
정옥이와 똑같이 닮은 얼굴-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자 김박사는 용감해졌다.
그래 이 정돈 해 줄수 있다. 그때의 나에게 - 이런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바보처럼 맘 속에 사랑을 묻어버릴 일은 없었을 테니까-
너에게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면
너에게 그런 의지가 필요하다면-
"그리고.....너는 그 여자분을 사랑한다고는 말 하지 않는구나-... 니가 표현하기 겁나는 거라면 .....
내가 말해주마..
내가 느끼기에- 너는 그 여자분을 사랑하고 있구나- 이미 말이야
사랑이라는건 -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별스런게 아니란다.
이 사람 없으면 , 어떻게 살지.....
이 사람 없으면- 나 당장 괜찮을수 있을까....
이 사람 하고 있으면 나 너무 좋다 , 행복하다
그런게 사랑이지...... "
김박사의 말을 조용히 들은 지혁의 얼굴엔 왠지 모르지만 충격이 있었다.
마치.... 중력이라는게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안 사람처럼-
모든 당연시 되는 것들을
공기나- 중력이나- 혹은 시간의 흐름같은 것들을
마치 처음 안 사람처럼-
어리둥절한 표정-
"나는 너를 오래 봐 왔지- 기억하고 있니?
처음 약속에서도 ..... 그 다음도- 그 다음다음도.... 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주 솔직하게.. 니가 내 친구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너를 나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에.....내가 너에게 가장 크게 놀랐던것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걱정되고 우려 했었던 게 뭔지 아니?......
모두가 의심하는 상황에서도 넌 단 한치의 의심이 없었다는 거였어. 말 하지 않았지만.... 하민양 상태는 나도 잘 안단다-
맡았던 의사들이 다 내 친구들이야- 모를수가 없지- 특이한 케이스긴 해- 뇌사는 보통 그 수순에선 어쩔수 없이 진행되는 거니까-
솔직히 너만 생각해서는 뇌사이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을 게다. 그런데 너는 한치의 의심이 없었지-
꼭 깨어날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마치 당연한 일처럼.."
지혁이는 내 말을 하나하나 다 새겨 듣고 있었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 지금 니가 하민 양 에게 하고 있는게- 사랑인지 부터- 확인해 보라고 하고 싶구나...
물론 내가 사랑에 여러가지가 있다고 얘기한건 너도 기억하고 있을 테니..
그게 어떤 사랑인지부터- 한번 확인해 보렴-
어떤 건지- 그게 현재에 존재하는 감정인지- 아님 예전의 감정이 그대로 뜯어내듯 멈추었기에
그대로 계속 그렇다고- 단정지은 감정인지.......
그리고 , 만약 하민양이 깨어 난다면-
너는 지금의 그 여자분하고 헤어지고- 하민양에게 충실할수 있겠니?- 그 여자분을 싹 잊고?
만약- 그렇다면 그 여자분을 보내는게 옳다. 내게도 - 너에게도- 너의 어머니에게도- 천금같은 단 한번 오는 기회의 여자분이지만
보내는게 옳아.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그러나...... 하민양이 깨어나도 이 여자분을 보낼 자신이 없다면- , 싹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순간에 충실하렴- 죄책감은 잊으라곤 못하겠어.... 잊으라고 한다고 잊혀질 사실도 아니겠지.....안다..
그러니까- 눈 앞의 한 걸음에 집중하라는 거란다. "
지혁이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눈에는 어리둥절함이 가득했다.
나는 설명에 지혁이가 알만한- 것을 빗대어야 했다.
"너 처음 재활할때.... 기억하니? 일어서기까지 한참- 보조기구를 차고도 자력으로 일어나기까지 한참- 그 뒤....
가장- 처음에 한 걸음..............
그 한걸음에 모든걸 집중했지- 너 그 한걸음 걸으면서 다른걸 생각한적... 있니? 뛰거나- 니가 달린다거나 걷는다거나..
그런 생각 한 적 없잖아. 단 앞의 한 걸음- 그 순간에 집중했잖니-
그러니까- 이 것도 그렇게 하렴-
그 여자분이 어디까지 수용해 줄지는 니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란다- 니가 결정을 끌어 갈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
그러니까- 니 상황을 정직하게 알렸다면-
이제 눈 앞의 한 걸음에만 집중하면 되는거야-
복잡할 것 없다. 그저 그 여자분이 사랑스럽고- 그 여자분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면 되는 거란다-
아무도 널 나무랄수 없지-
어디도- 어떤 곳에서도- 어떤 상황도 사랑은 죄가 될수 없다.
특히 너의 경우는 더 그렇단다.
그냥- 다 같이 가 보렴- 다 같이..........."
내 대답에 지혁이는 한참을 내용을 곱씹는 듯 했다.
"다..... 같이라뇨?"
지혁이가 한참만에.. 다시 되 물었다.
"어떤 손도 놓을 필요가 없다는 거란다- 너는 언제나 ... 아주 충실하게 정공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두 사람을 보고 있어선 안된다- 한쪽만 봐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거 같은데-"
"......."
"너의 경우는 특별한 상황이지- 항상 정공법이란게 통하는 것은 아니잖니- 그러니까 일단 두 손 다 잡고 가보라고-
느끼는 대로 느껴- 겁낼 필요 없어- 당당해 져라 부끄러운게 아니니까-
만약 그 여자분이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신다면- 그때는 어쩔수 없는 거지만-
지금 .... 적어도 너는 도망가지 마-"
김박사는 처음- 지혁이에게 힘을 실어서 말했다. 그리고 지혁도 처음- 그 얘길 온 맘으로 담았다-
도망치지 말라고- 아픔이던 죄책감이던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냥 다 가지고.......... 가 보라고-
지혁은 어제의 입맞춤을 떠올린다. 자신이 자신 의지라고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것에 죄책감은 끼여들 자리조차 없었다.
돌아버리도록 달콤했고-
그걸 달콤하다고 느끼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술이 올라 쓰러지면서도 내게 가지 말라고 - 가지 말라고- 웅얼거렸다. 나는 그녀를 편하게 눕히고-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녀의 옆에 조심스레 누웠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가 잠결임에도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내 손에 마치 원래 감겨 있었던 듯 스며들었다.
날이 새도록- 색색 거리는 숨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좋았다.
그녀다운- 따뜻한 숨소리-
그 평화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찬찬히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재기 발랄한 눈동자는 얇고 비칠듯 투명한 눈꺼풀 뒤에 있었지만
그 얼굴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충분하게 좋았다.
잠을 못드는 버릇은 이럴때는 좋네... 그런 생각을 했다. 막연하게-
그러면서 그녀의 얼굴을 마음에 담았다.
미안하고- 애처롭고- 나 때문에 부르터버린 입술을 살짝 쓰다듬었다.
온 맘으로 품어주고 싶은데- 나 때문에 반절의 가슴에 품어져야 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다 내어 주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속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해가 떴다. 밤의 장막이 걷힌 그녀의 얼굴은
마치 나처럼 , 나를 닮아가고 있었다.
나 같이 파리했다.
나 같아지고 있었다.
빛으로 가득차 있던 그 여자가
나처럼.......
파리해지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빛을 뺏아가고 있냐는 물음이 마음에 떠올랐고
난 답을 못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 김박사를 찾아왔다.
어떠한 말이라도 좋으니- 누군가가 그녀를 곁에 둬야 한다고 말해줬으면 해서-
그게 다였다.
나는 간사하게도 그 한마디를 원한 거였다.
간사하면 어떤가...
나는 이제 그녀 없인 안된다.
그 한마디면 족하다. 내 안에 들리는 선명한 대답-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김박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김박사는 말 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 얼굴엔 어떠한 비난도 , 다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단지 따뜻한 눈빛만이 있었다.
나는 다시 마스크를 꼈다. 들을 이야기는 다 들었다.
죄책감도- 하민이도- 하임이도......
다 안고 가보기로 했다.
김박사가 내게 확신을 준게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스스로에게 확신이 섰다.
이게 필요했다.
다가온 아침의 빛에- 창백하게 질려 - 내가 뛰어왔던것
그 감정에 필요한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저 내가 안은 것들이... 내가 안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길 기도하면서- 그렇게 가 보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내 말에 김박사는 살짝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나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뛰기 시작했다. 다리가 아렸다.
아려도 상관 없었다. 찢어질것 같이 쓰렸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뛰었다.
-
하임은 샤워 후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여전한 내 얼굴-
어제의 일이 현실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마치 꿈이라도 꾼 것 처럼- 그러나 느낌은 달랐다.
불이라도 떨어진듯 강렬한 그 기분
입술에 살짝 , 내려앉던 그의 입술-..... 계속 자는 척 하기엔 그대로 떼어 낼까 두려웠다.
망설였다.
그때 그의 눈에서 떨어졌을 그 눈물이 내 이성을 잠재웠다.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팔을 감았다.
이렇게 마음이 통하고 있었는데... 왜 우린 망설였을까-
상대의 마음, 그 문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문고리를 잡았다가 손을 놓았다.
입술을 쓸어본다- 내 마음속- 어드메 쯤에서 , 누가 말했던 것처럼 나비가 파닥대는 듯한 설레임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 나비가 기지개를 피는 듯-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가 적어놓은 메모를 보고 피식 웃고만다- 그는 우리가 술을 먹은 흔적조차 없이 정리하고 사라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그는 그 와중에도 옷을 개켜 놓고- 흔적조차 없이 치우고....
깨끗한 식탁에 시선을 둔다.
하임은 그의 행동에 잊고 있었던 세진이를 떠올린다. 어제 말을 떠올린다.
아직 세진이를 잃을 자신도- ... 잃고 싶지도 않다던 자신-
속에서 올라오는 한숨이- 아릿한 입가를 스친다-
나는 이제, 간격 재는데는 지쳤다. 그냥 - 모든게 원하는 데로 돌아갈수 없다면- 그렇다면-
하나는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 뒤 오랫동안 난 세진이를 찾지 않았다. 세진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마치 내가 대답하는걸 겁이라도 내는 것 처럼-
그 대답에 대한 겁은 나도 내고 있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아니 내가 대답을 할순 있을까-
세진이를 잃을 자신이 있을까-
웃는 세진일 떠올린다. 그 아이의 부드러운 갈색 머릴 떠올리고 나는
눈을 살짝 감는다.
당장의 감미로움을 잃지 않고자....
작약은 보면 어떤 얼굴을 할까
마치 잊은 것 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그라면-
그토록 조심성이 넘치는 그라면-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말간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옳은 선택-'
하임은 입으로 그 말을 울려본다.
"옳은... 선택...."
옳은 선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슴이 움직이는 일이다.
내 가슴이 움직이는 일-
불가항력-
거부할수 없는 어떤 일-.........
작약처럼-
젖어있는 머리 끝으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톡톡-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 것은-
-
내가 정신없이 달려간 곳은
우습게도- 장하임의 집 앞이었다.
마음의 고삐가 풀리자- 마음가는 대로 다리를 두자-
마음은 ,
금방 그녀를 찾았다. 아주 당연한 것 처럼-
지금쯤은 깨어났겠지 그리고 , 애초에 나는 그녀를 오늘은 마주 대할 생각도 없었다.
어제 내가 벌인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왠지 두려웠다.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까...
그녀가 날 책망하진 않겠지만.... 나는 이런일엔 도통 익숙하질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다.
나는 진심이란걸 어떻게 다룰지를 잘 몰랐다.
사람마다 다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더 몰랐다.
아주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그때의 나는... 과연 이런 상황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신경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문을 두드렸다.
그저 그녀가 보고싶었다. 그녀의 얼굴이.........
내 마음에 확신을 가진 한마디가 생기자
나는 그녀를 보고싶었다. 그냥 보고싶었을 뿐이다.
단 한걸음이라면-
아니 한 걸음 씩이라면-
지금은 그저- 볼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걸음씩- 한걸음씩 하자....
내가 가장 잘 아는 감각-
그건 한 걸음씩 걷는, 그 감각이었다.
문이 열리고 장하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여전히 나와 똑같이 입술엔 부르튼 흔적-
방금 샤워한듯 젖어있는 머리- 흰 티셔츠 위엔 하늘색 린넨
머리 끝이 살짝 닿은 그 린넨엔 젖은 끝머리가 그린
수묵화처럼 짙은 파랑이 번져 있다.
동그랗게 커진 눈망울에 내가 비치운다.
너무나도 말갛게 , 투명해서
그 눈망울에 내가 비친다.
그녀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마음과 달리 난 어색한 말이나 건네는게 고작이었다.
"또... 감기걸리려고-......."
그녀는 어리둥절해 하며- 웃었다.
모처럼
밝게- 그녀답게-
-
지금........
작약이 내 머리를 닦아주고 있었다.
이 어색하고 이상한 상황-.....
그는 신경쓰지 않는거 같다 꼼꼼한 손길-
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그는 의자에 앉아서 , 한손에 타월을 들고 요령있게 내 머리를 닦아준다.
안그래도 된다고 10번도 더 이야기 했지만 그는 귀에 듣기지도 않는듯 들어와서 내게 수건을 달라고 했다.
그 뒤로 이 상황-
오늘의 그는 이상했다.
그는 문을 열자 숨이 차는듯- 헉헉대고 있었다. 그는 뛰어 온 것 같았다.... 그보다 그가 뛸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런 일 을 하면 다리가 아파 견딜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의 얼굴은 나와 눈이 맞닿자 말도 안되게 밝아졌다.. 그가 나를 보고 그렇게 웃는건 처음 봤다.
원래도 잘 웃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자리를 비워서- 또 이렇게 ... 이 일이 그냥 지나가면 어떻게 하지
솔직히...그랬는데- 그는 얼마 안되서 이 집에
제 발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때... 그는 그 답게 웃었다. 소년같이 해사한 웃음..
그 웃음에 난 맘이 찡했다.
따라 웃고 말았다. 그의 웃음은 힘이 있어서-
웃고 있으면.. 그만 나도 웃고 만다..
그런데 그는 엉뚱한 소릴 했다.
"또.... 감기걸리려고-........."
그의 머리닦는 손길이 굉장히 부드럽다...-
툭 한마디가 내 마음으로 떨어진다
"감기 걸린다니까-... 왜 매번 잘 안닦고 나와.... "
나는 우물쭈물 대답한다.
왠지 혼나는 기분- 목소리는 너무나도 부드러운데-
"... 길어지니까- 영 닦기 불편해서..."
대답하고 보니 어린애같은 대답-
".....약은 먹었어? "
그의 목소린 줄곧 따뜻하다. 원래 알던 그가 이 사람이 맞던가?
나는 계속.... 어리둥절하다.
"아... 아직요-"
"머리는 안 아파?-"
머리에 사르륵 들어오는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
마음이 와락와락 떨리어 온다-
고작해야 머릿카락인데-
온몸의 감각에 그에게 곤두서 있는것 같아서-
사랑... 그동안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이토록 설레었던 사랑은 없었던 거 같아서-
맘 끝까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토록 떨리고- 이토고 설레이고- 이토록 기다려온 사랑은...... 없는거 같아서-
나는 용기를 내 ,
쳐다보지도 않고 그의 손을 잡는다. 내 머릿칼에 스며들어 있는 그의 손을-
그는 좀 놀란듯 했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그리곤 부드럽게 내 손을 살짝 잡았다.
가느다란 감촉- 손은 젖은 머릴 만진 후라- 살짝 차가우면서도 안쪽은 따스하다-
나는 조금, 놀랐다. 손을 당연히 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를 올려다 보자 그는 내 이마를 톡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
달콤한 목소리-
"...... 왜 이래요?"
내 목소리는 멍청하게 들린다. 내 귀에도-
그러나 그의 눈은 따뜻하다- 내가 그런 말 할줄 알았다는 듯이-
"뭘?"
되물으며 다시 웃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눈매-
빛을 받으니 부드럽게 빛나는 하얀 피부-
"...... "
이 사람이 진짜... 왜 이럴까?
이럴리가 없는데 싶으니까 어젯밤의 일도-
지금도 꿈인가 싶다.
꿈인가 싶게 몽롱하다.
머릿속의 멍한게 숙취의 기운인줄만 알았는데-
혹시 이게 꿈이라면.....
나는 힘을 짜내어 다시 되 물었다.
"불안하게 .. 왜 이래요?"
그는 짖궃은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는다.
이런 표정도 처음보는 것 같다.
처음 만난 듯한- 하지만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셀수없이 많은 면을 지닌 ,
셀수없이 많은 꽃잎을 가진-
작약-
"불안하긴 뭐가 불안한데?"
.........
목소리는 내내 달콤하다-
눈길은 여전히 나에게만 향해 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마치 내게로 그대로 흘러드는 것 처럼-
진한 그의 향이- 내 눈으로 스며들어 몸안에 퍼져나가는 것 처럼-
그대로 잠겨-
잠식당할 것 처럼-
"어제... 기억 안나요?"
내가 용기를 내어 한마디 한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본다. 이젠 피하지 않는다. 나도- 그도-
우리의 눈은 스쳐 지나는 빛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맞 닿아 있다.
"왜-.... 내가 술취해서 까먹었을까봐?"
그의 목소리가 참을수 없이 달콤하다- 내 눈을 내려다 보는 그 눈-
우리의 거리는 가깝다. 전에 없이-
그는 내게 조용하게 되 묻는다. 속삭이는 듯 애틋한 목소리-
작고 - 조그맣고- 그런데 내 맘에 더 없이
큰 파동을 일으키는 그 목소리로-
"너는 술 취해서 까먹을수 있었어?"
내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대자 그는 더 씩 웃었다.
그가 이렇게 웃을수 있는 사람이었나?
옆 창에서 스며드는 빛- 따뜻한 눈빛이 내 눈으로 바로 떨어진다-
그는 수건을 내려 놓고는 여전히 잡고 있는 손을 일으켜 나를 의자에 앉힌다.
그리곤 자신이 가져다 놨던 연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 발을 당겨서 바른다-
자신이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다-
그의 손이 닿는것 자체가 유리구두같다.
유리구두처럼 , 아니 유리구두보다 더 섬세한 그의 손길-
하얗고 가느다란- 긴 손가락이 발에 감기어 온다- 부끄러움도 없이-
"발 되게 작네-"
조용하게 속삭인다- 꼼꼼하게 약을 바른다.
발이 못나서 창피한데- 그의 손에 잡혀 있으니 몸이 녹진녹진 해져서 힘따위 들어갈거 같지 않다.
뼈까지 부드러워진 기분-
몸이 녹아내려 버리는것 같다- 왠지 맘이 뭉클하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슬플 이유는 없는데-
콱 목이 매는 이상한 기분-
약을 다 바르곤 밴드를 붙인다. 꼼꼼한 손길로-
"다 됐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앉아 있는 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나는 그를 계속- 올려다 본다.
그는 내 눈을 쳐다본다 아주 한참동안- 나도 말없이 그의 눈을 쳐다본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 머릴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아무런 말 없이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마침내 결심한듯 내게 말을 건냈다.
여전히 따스한 목소리로-
" 할 이야기 있는데..... 하면 들어줄래?"
"........"
그의 부드러운 눈길- 옆에서 드는 빛-
나는 그에게 압도 당한다.
그는 거리낌 없이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갤 끄덕였다.
그는 웃었다. 다시 한번-
너무나도 달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