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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작약과 함께 한 시간
작가 : 엘리엘리스
작품등록일 : 2017.6.27

한 여자의 이별로 인해서 우연과 악연이 겹쳐 만나겐 된 두 사람과 오래전의 인연이 만든 세 사람... 또는 네 사람의 이야기..

 
무너지는 경계 knight & pawn
작성일 : 17-07-26 22:29     조회 : 17     추천 : 0     분량 : 16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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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가 나가고 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원래대로 옷을 갈아 입었다. 그에게 받은 셔츠는 잘 접어서 개켜 두었다.

 

 

 그리고 그저- 그림을 한동안 그렸다. 일보단 그리고 싶은 마음에 한동안 매진했다.

 

 일은 이미 마무리 단계들이었다. 일을 다시 받지 않은건 쉬고 싶은마음이 우선이었지만-....

 

 그림을 그저 그리고 싶어진건 오랫만이었다. 일이 아니고 - 그저 그리고 있는 것 만으로도 걱정하는 마음이나 우려의 마음

 

 또 어느새 몸 전체를 통솔하듯 두근대는 듯한 난리통의 한 중심에 서있는 심장도 그것으로 다스릴수 있었다.

 

 

 포트폴리오를 진작에 이렇게 꽉 채웠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한참을 그리다 다시 새카매진 소매를 보고서야 연필을 놓았다.

 

 

 

 

 하임이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내려다 보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나는 사랑하면 감성이 풍부해지는 사람일까? 그림에선 '지금 나 누굴 사랑하고 있어요' 가 뚝뚝 묻어났다.

 

 

 핑크빛이나 파스텔 톤으로 번진 색감하며- 그림의 선이 동글동글 해 진것 까지- 그리고 어떤 선을 그려도 그와 닮은 듯

 

 아릿한 선 까지도...

 

 

 

 

 

 ... 아까 들은 이야기만 해도 사실 맘은 좀 복잡했다. 나로썬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 였으니까-

 

 

  예전에 강비서님이 그랬던가? 아니면 나 스스로 생각했던 것일까... 정말 다른 세계였다

 

 

 완전히 다른- 다른 세계-

 

 

 

 

 

 

 

 

 나는 그야말로 나름대로 평범하게 자랐다. 그래도 아주 어렵게 살아온것 같진 않다. 부모님은 나를 많이 도와주셨고..

 

 

 동생의 경우도 지금이야 다른 어시스턴트를 해서 유학비를 충당하고 있었지만 처음에 갔을 때 경우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살았다.

 

 

 물론 사치를 부릴 정도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특별히 부족함을 느끼고 살아본적은 없다.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부자들의 사고 방식은 정말로 .... 아예 나와는 방향이 달랐다. 그를 본 나는 - 그를 알게된 나는 그가 그 재산을 포기할 것을 반사적으로

 

 느낄수 밖에 없었다.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탓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의 형이란 사람이 다녀가고 나서의 그를 보았었으니까....

 

 그게 돈 때문이란걸 모르진 않았지만- 그가 그런 지독한 일을 당하면서도 형을 측은하게 여기는 맘이 있는걸 보니 그는 어쩔수 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가족이래도 그의 형은 정말 - 그의 목을 바짝 조르고 있었다. 숨을 쉬기가 불편해 보일만큼- 눈에서 묻어나던 독기...

 

 하임은 스치듯 보았을 뿐인데도 그 눈이 잊혀지질 않았다..

 

 

 가족인데....

 

 

 아니....... 가족이라서 더....

 

 

 

 자신이 냉정한 것인지 몰라도 가족이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단점 약점-상처를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의 말 보다- 가족이 상처를 줄 때는 약점을 정확히 가격당한다- 어쩔수 없다.

 

 

 

 예민한 부분을 서로 알고 있고- 사람이란 존재는 다투면 쉽게 이성을 잃기 마련이니까-...

 

 이성을 잃지 않는다 해도- 싸우는 중이면 못되게 거길 꼭 때리고 싶어지고- 결국엔 입 밖으로

 

 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그건 자신도 그랬었으니까- 다른 가족들도 가끔은 그럴테고-

 

 

 하임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피로가 염려스러웠다. 그에게... 정말 내가 그가 말하는 그런 존재라면 그에게 대답과 따뜻한 의지를 줄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뿐이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두려운건 나 때문이라는 듯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별로 그 사람이 두렵지 않았다.

 

 

 파티장에서 아슴아슴 눈이 부딫히기도 했지만-... 나를 오히려 조금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바라보았을 뿐 길게 보는 일은 없었다.

 

 

 

 그때는 오히려 좀 , 평범한 내 자신이 감사했다.

 

 뒷 배경이 훌륭하고 , 뛰어나게 아름다웠다면- 그 분은 나를 더 오래 보게되었을 테고- 오래 봤다면

 

 누구나 알아 챌 만큼 , 작약은 그 파티에서.... 나를 조금 특별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특히 김희영이란 여자랑 마주 쳤을때 이성을 잃었다는게

 

 적어도 내 눈엔 티가 났다. 나는 괜시리 그때 그가 낚아 챘던 팔목에 손을 가져다 대 본다.

 

 그때 그는 나를 처음 안아주었다- 포근했지만- 그가 날 잃을까 걱정하는 태도가 드러나 보여서-

 

 

 

 

 더 그랬다.

 

 더 마음이 많이 쓰였다.

 

 

 내려놓은 연필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그림도 못 그리게 하실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건 좀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림은 내게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잃는다는 이야기가.... 전혀 현실감 없게 느껴질 만큼...

 

 

 

 

 하임은 길게 내려 온 자신의 작업복을 내려다 보며 창 밖에 어스름하게 내려 앉은 어둠에 눈길을 주었다.

 

 

 

 겨울은 해가 짧아, 원래는 겨울을 좋아하는 하임이지만- 밤에 고뇌할 그를 생각하니 찾아온 겨울을 마냥

 

 좋아할수만도 없었다. 해는 느리게 뜨고 - 일찍 져버렸다.

 

 

 

 그의 곁에 있고싶었다. 그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하임은 낮게 싫은 소릴 내었다.

 

 그의 향기가 필요해졌다. 나도 모르게끔-

 

 

 

 

 

 

 

 하임은 더욱 더 그를 강하게 그리워하는 자신이 , 이젠 좀 겁날 지경이었다.

 

 

 

 

 

 -

 

 

 

 

 

 

 지혁은 돌아 오다가 제이미가 일하는 병원 앞을 스쳐 지나고 있었다... 창을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까망이가 좋아하는 쥐 모양 인형이 너덜너덜해졌단 생각이 들어 제이미도 볼겸 동물병원 에 들어섰다.

 

 

 

 가게에 들어서자 가게 안의 분위기가 싸아악 식는 게 느껴졌다

 

 

 

 

 

 

 

 괜찮아 진줄 알았는데- 나의 차가운 인상은 여전하군-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하필 어머님을 뵙고 오는 길이라 옷도 얌전하게 정장같이

 

 

 

 입어서 더 그런것 같았다. 간호사가 바짝 긴장하는게 느껴졌다.

 

 

 

 

 겁먹은 눈동자가 - 몹시 흔들리면서 나를 향했다. 먼저 말을 걸듯 말듯- 머뭇대는 입술-

 

 

 

 

 어쩔수 없었다. 제이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냥 물었다.

 

 

 

 "제이미 데이비스.. 있습니까?"

 

 

 

 내가 먼저 말을 꺼내자 간호사는 몹시 반갑다는 듯 살갑게 말을 꺼냈다.

 

 

 

 "아! 제이미요? 아시는 사이세요? 잠깐 자재 때문에 나갔어요-... 출발한지 꽤 됐으니까.... 곧 돌아올 텐데요-"

 

 

 그 말에 고갤 끄덕이고 그냥 살것을 사서 갈 맘을 먹었는데.... 쭈뼛쭈뼛- ... 안쪽 진료실에서 그때 본 의사가 고갤 내밀었다.

 

 

 

 

 

 "아- 그때 고양이 데리고 오신 분이군요-.. 안녕하셨어요?"

 

 

 

 

 

 내가 별다른 말 없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시간 있으시면... 저랑 차 한잔 하실래요?"

 

 나는 의외였지만- 이 사람이 , 아무리 좋게 이야기 해도 독대하기엔 벅찬, 벅차고 저렇게 겁을 내는

 

 나랑 차를 한잔 하고 싶다고 하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구나 싶어서 , 생각보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선뜻- 또 고갤 끄덕였다.

 

 오지랖이 늘었군- 이건 장하임 영향이겠지 싶어서 쓴웃음이 났지만 적어도 겉으론 티 내지 않았다.

 

 

 

 

 진료실은 약하게 소독약 냄새가 났다. 여전히 의사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여전히- 어린애 같은 인상때문에 나이 가늠이 쉽지가 않았다. 제이미의 말이 떠올랐다.

 

 다가가도 좋을지 그것조차 알수 없어하던 그 모습도 떠올라서 난 맘이 좀 괴로웠다.

 

 

 장하임이 만든 것 중 하나였다. 남의 일에도 어김없이 마음 쓰게 만드는 것-

 

 그녀답게 다정한 것- 그런 것들은 나에게 마치 고양이가 말을 할줄 아는 것 처럼 한때 내게는 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일들이었는데....

 

 

 

 

 

 

 "고맙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네-"

 

 

 내 짧고 건조한 대답에 그는 당황한듯 했지만 , 내가 눈을 바라보자 그제야 더듬 더듬 말을 이었다.

 

 

 

 

 

 "전에 그 고양이를 , 제이미도 데리고 왔었거든요- 그래서 두분이 아시는가.. 했어요- 친구이시죠?"

 

 

 

 

 나는 그 말에 왜인지 좀 망설였다. 스스로 뭐 , 그럭저럭- 뭐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남의 입을 타고 나오니 좀 낯설었달까

 

 그렇지만 대답 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거 같아 대답을 했다

 

 

 .

 

 "네-... 뭐, 친구입니다-"

 

 내 목소린 내 귀에도 왠지 확신없이 들렸다... 친구 맞나?

 

 

 "그러세요?....."

 

 

 

 

 남자는 하고 싶은말이 있는듯 했지만 말을 선뜻 못 꺼내고 망설이는 것 처럼 보였다. 나는 슬슬 주제 넘은 참견이 하고 싶어졌다.

 

 

 이것도 내가 바뀐 것 중 하나였다. 예전엔 이런일 절대로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니 애초에 차 따윌 같이 마시쟀다고 순순히 앉지도 않았겠지만-

 

 

 들은척도 안했을 확률이, 훨씬- 훨씬 높았겠지....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시면, 하시죠- 머뭇거리시지 말고"

 

 

 

 그럴 의도까진 없었지만 기다리다 지쳐 내뱉은 내 톡 쏘는 듯한 말에 그는 더욱 당황한 듯 더듬 거렸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내 미간엔 아마 장하임이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귀엽게 핀잔주던

 

 인상이 쓰여져 있을 것이었다.

 

 

 

 

 도저히 이래선 말이 나오질 않겠군 싶어 결국엔 내가 먼저 말을 먼저 끄집어 내야 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제이미는 , 오랜시간 알진 못했지만, 적어도 사려깊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눈치도 빠르고요 거의 본능적으로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아차려요-

 

 그쪽이 부담되어서 경직될 정도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부러 피하거나 부러

 

 싫은 티를 팍팍 안 내도 바싹 다가서는 일 따위 , 없을텐데요"

 

 

 

 

 내 차가운 목소리에 그는 정신이 갑자기 번쩍 든 듯이 내 말에 반박했다.

 

 반박이라지만 조심스러웠고- 여전히 앞뒤 구두점이 명확하지 않고 멈블대는 말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아니-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에요-.... 최근 생각해보니 내가 오히려 그를 신경쓰고 있어서-... 관심이 있는건 제 쪽이죠-"

 

 그 말에 내가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그래서요?"

 

 

 

 "그에게 물어봐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 감정이 뭔지 내 스스로는 알수 없으니- 그에게 물어보는게... 물론 멍청한 짓이었지만

 

 바보같은 짓이었지만 당시엔 해답이 될 꺼라고 생각했어요-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을 보니.....

 

 불쑥... 튀어나가고 말았어요...

 

 

 

 그래서....그렇다고 이야기 했더니..... 그가 화를 내더군요...."

 

 

 

 

 

 

 남자의 말은 당황한듯 빨랐다. 이 사람 참- .. 제이미가 어려운 사람을 택했다는 생각 말곤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좀 안타까웠다.

 

 제이미가 불쌍하게 미련한 기다림을 하고 있던 나를 안타까워 했듯이.... 장하임이 기다리는 걸 뻔히 알면서도 손 내밀지 않는 나를

 

 보고 안타까이 여겼듯이....

 

 

 그것보다는 단순한 마음일테지만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긴 했다.

 

 

 

 "화를 냈어요?"

 

 

 내가 딱딱하게 되 묻자 그는 눈에 띌 정도로 풀죽었다.

 

 이런... 너무 겁을 줬나...

 

 

 그는 다시 머뭇 머뭇 말을 꺼냈다.

 

 

 

 

 

 "네..... 저에게 몹시 실망한것 같았어요, 그때 괜한 소릴 ... 돌이켜 보니 여러마디 했더군요

 

 그의 감정을 신경 쓰지 못했어요.. 그저 제가... 예상밖의 마음을 너무 품고 있단것에만 당황해서요

 

 그 뒤로 그는 나를 좀 피하네요-... 말 걸기가 쉽지 않아요-"

 

 

 

 남자는 입술을 못살게 물어 뜯고 있었다. 피가 옅게 베어나는 데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를 건조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기를 겁내고 있었다. 나는 위협하고 싶진 않았으나 왠지 눈길이

 

 그저 곱게만 나가진 않았다. 정리가 되는 사람이 아니로군- 처음 본 그대로였다. 둔한건-

 

 

 

 그러나 용기라곤 없어 보였기도 했기에... 그렇게 빨리 말을 꺼낼줄은 몰랐지..... 심지어 스스로 정리도 안 된걸 이야기 할 정도로-...

 

 

 

 지혁은 서늘한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말을 꺼냈다. 늘 그렇듯 예의가 있고 깍듯했으나 서늘했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는 이럴때면 늘 그렇듯이 , 스스로의 귀에도 싸늘하게 들렸다.

 

 

 

 어쩌면 제이미를 , 내가 생각한 거 이상으로... 스스로가 제이미를 좀 더 안타깝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민이가 그토록 아꼈던 친구다.

 

 그런 나를 도와주겠다고 몇번이고- 무시를 당하고 험한꼴을 당해도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

 

 물론 좀 성가실때도 분명히- 아주 '분명히' 있었지만-

 

 

 

 나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주제넘게... 조언을 좀 하자면- 스스로를 좀 돌아보세요-.... 아니 정확하게 그 감정이 뭔질 탐구해 보시는게 낫겠군요-..."

 

 

 내 말에 그 남자는 충격 받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그 남자를 차갑게 그저 쳐다보았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스스로 뭔지도 규정짓지 못한 감정부터 신경써야 정상이 아닌가?

 

 

 

 나는 장하임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뭔지 모르고 있었다고는 대답 못하겠다.

 

 부정하고 싶었던 거였지.... 하지만 부정은 쉽지 않았다. 내가 부정이 아니라 밀어내건 뭐를 하건

 

 이미 맘 속의 호수는 바다로 변했고

 

 

 파도가 내 발에 찰싹 찰싹 밀려오며 나를 일깨웠다... 자각하라고- 아니 자각하는걸 '미루지 말라고'

 

 

 싫든 어쩌든 생긴 감정이니 무시할수 없을거라고...

 

 

 

 나는 내게도 힘든 시간이 있었음을 고려하여- 아까보단 조금- 눈곱만큼 조금 상냥하게 말을 꺼냈다.. 물론 그는

 

 전혀 느끼지 못한거 같았지만..

 

 

 

 

 

 " 제이미는 떠나고자 맘만 먹으면 떠날수 있는 존재입니다-

 

 물론 지금은 머물겠다고 결심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영원히 떠날수도 있어요-

 

 그런 그에게 - 말하고 나서 돌이킬수 없는걸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그는 뭐 ... 둘이 뭘하다가도 떠나야 겠다는 마음이 들면

 

 만약 둘 사이에 확신이랄께 없으면 떠날 수도 있겠죠- 그렇게 무책임한 타입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뭐...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당신은 아니죠- 여기 남아야 하니까 감당해야 할게 훨씬 클 껍니다 달아나기엔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적어도 제가 겪어보니...... 제이미는 섬세한 사람이더군요- 만나보니 그걸 좀 , 낯선 사람들에게감추는 기색은 있었지만

 

 꼼꼼히 보셨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란걸 알아챌수 있는 틈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요..."

 

 

 그는 여전히 입을 떡 벌린채 내 말을 마치 처음 꺠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처음 본 인상대로- 지나치게 순진했다..... 지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약간 심술궃게 비틀었다.

 

 

 

 

 "겉으로 웃는다고 사람이 다 좋기만 한건 아닙니다- 웃는다고 다 괜찮을 리도 없죠

 

 

  스스로를 좀 돌아보세요-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 감정을 남들이 혹시나 알게 되도 감당할수 있겠단 생각이 들면- 그때는 제대로 부딫혀 봐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자기도 뭔지 모르는 감정 가지고 당사자한테 미주알 고주알 말 하는건-

 

 

 제이미 입장에선 실망 할 수밖에요- 그건 그렇게 쉬운 감정이 아니거든요- 사랑은 원래도 쉬운 감정이 아니죠 호감만 해도 그런데- ...

 

 그런 쪽은 더 할 겁니다- 그런데 선뜻 입에서 낸 쪽이 그쪽이면서 당황해서 괜한 소릴 해 댔으니...... 내가 제이미라도 당신을 피하겠는데요

 

 당신 말을 대충 조합해 보니- 평정심을 잃어 말하면서 안내도 될 상처를 콕콕 낸거 같은데요

 

 물론 제이미가 과민 반응한것도 약간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버튼을 눌러서 폭팔하게 만든건

 

 결국엔 당신이잖아요- 아닌가요?"

 

 

 

 

 

 "그... 그건"

 

 남자는 뭔가 말하려 했지만 난 끊고 다시 대꾸했다.

 

 

 

 

 "그저 단순히 좋은 사람이니 호감일수도 있죠- 말하기 전에 그런 건 고려 안 해보셨나요 , 스스로 좀 고민을

 

 더 해 보는게 해답인거 같네요 다시 물어보면.. 아마 속의 말은 알고 있을걸요 더 고민 안해도.... 진실이 뭔지- 뭐 .... 진실을 부정하시고 싶으시면

 

 좀 더 잘 하셔야 될것 같은데요 표정관리...... 전혀 안되는거 , 설마 스스로도 알고 계시죠?"

 

 

 그 말에 그 남자가 얼굴을 붉혔다... 나는 자꾸만 못되게 그 남자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나중에 뭐.... 잘 되든 안되든 다른 사람한테 더 쇼크를 먹을것 같아서

 

 예방주사 차원이라고 생각하며 난 말을 계속 이었다.

 

 

 

 

 "그쪽이 정말 호감을 넘어섰고 뭐, 말하자면 사랑이라도 하게 되면

 

 그때는 말 하고 싶지 않아도 말하게 될 겁니다-

 

 

 참으려고 해 봤자 별 소용 없을거에요

 

 

 

 사랑은 보통은 그렇죠- 그 전에 선을 규칙을 만들어 놓으란 겁니다- 어디까지 공개할 수 있을지- 그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얼마만큼 놓을수 있는지.... 그런 걸 속으로 정하고 움직여도 안 늦을겁니다.

 

 뭐..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네요 그건 뭐 ... 지금이 특수한 상황이니 그런걸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전에 사람 먼저 제대로 보라는 이야기 정돈 할수 있겠군요-

 

 당신이 어떤 맘으로 말을 꺼냈든- 저는 공정하게 제이미 편을 들어야 겠네요-이번엔 제이미가

 

 현명한거 같으니까요 화도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로 낸 것 같고요- "

 

 

 지혁이 심드렁하면서도 , 내용은 전혀 다르게.... 말을 끝내자

 

 

 

 현호는 그때 제이미의 말과 같은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사랑한다면 말하고 싶지 않아도 말 하게 될 거라던 제이미의 그 말,

 

 

 

 이 사람은 몹시 냉정했지만 포인트를 짚었다.

 

 정리를 해 주었다.

 

 

 

 

 그러나 눈 앞의 지혁의 눈은 한없이 차가웠다. 서늘해서 끝을 모르겠다고 .. 심해 같다고 느꼈던 그 눈은 그대로였다...

 

 

 제이미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입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았다.

 

 

 

 길고 긴 눈꼬리에서 약간의 한심해하는 듯한 눈빛이 드러나 있었으니까-

 

 

 남자는 확실히- 제이미를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을 꺼냈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혼란스러웠지만.... 그런건 아니었는데.......아니.. 의도 한 건 전혀 .. 아니었는데

 

 

 

 

 남자의 짙은 검은 머리는 그처럼 차가워 보였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촛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아서 더 두려워졌다. 살짝도- 웃질 않으니까-

 

 

 

 

 

 "그렇군요......새겨 듣도록 할게요... 고맙습니다..."

 

 

 겨우 더듬더듬- 느리다 못해 겁먹은 달팽이마냥 느리게.... 입을 타고 나오는 말은 이정도였다.

 

 그때였다-

 

 

 

 

 멀리까지 의료용 장갑을 사러갔던 제이미가 돌아왔다. 그러다 유리 창 틈 사이로 흘끗 이 쪽을 보다가 안에 있는 사람이 이 사람이란걸

 

 확인해서 인지 문을 두드렸다.

 

 

 참으로 오랫만에 내 진료실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거였다.

 

 청소도 일찍 나와서 후다닥 해 버리고 나갔기 때문이었다...ㅡ

 

 

 

 "저... 미스터 심?"

 

 

 그 말을 듣자 - 그 남자는 표정 변화도 없이 너무나 우아하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의자를 삭 밀어넣는다. 소리도 안 내고- 매번 바닥에 끌리는 무거운 의자를 ....

 

 

 

 

 

 "그럼- , 차 고마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진료실을 나간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도 볼일이 있어 왔을수도 있는데.....나는 왜 이렇게 대책이 없지?

 

 왜 대뜸 말을 하자고 했을까... 저 사람은 생각해보면...... 나와는 다른 안면도 없는 남인데...

 

 

 나는 좀..... 다급했다.....

 

 

 

 

 

 진짜 스스로가 조금 한심했다. 제이미의 눈에 의아함이 묻어 있었지만 ,

 

 

 

 제이미는 내겐 별 말없이 그를 따라 나갔다.

 

 

 

 그가 손도 대지않은 찻잔이 싸늘하게 식고 있었다.

 

 

 

 

 

 

 

 

 -

 

 

 

 

 

 

 "쥐 사러 왔어- "

 

 제이미는 잠시 갸웃하다 이내 웃었다. 금방 내 손에 새 쥐 인형을 주었고 나는 값을 치르려 하자 제이미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갤 짜증스럽게 저어서 아니란걸 표하고 나서야 어쩔수 없이 계산을 해 주었다.

 

 

 "나한테 말하면 가져다 줬을 텐데요?"

 

 

 제이미가 살갑게 대답했다.

 

 

 

 "앞을 지나고 있었어...... 그 김에 너있나 싶어서 물었더니 일이 귀찮아 졌을 뿐이야-"

 

 

 내 퉁명스러운 말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방싯방싯 웃었다.

 

 

 

 

 "저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

 

 안쪽의 있는 간호사 에게 이야기한다- 간호사는 이제 내가 간다는 것에 티나게 안도하며 고갤 끄덕였다.

 

 

 

 제이미는 나를 따라오다가 길에 있는 벤치를 손짓하며 내게 말했다.

 

 "잠시... 앉을래요?"

 

 

 "싫어-"

 

 

 내 냉정한 대답에도 그는 픽 웃으며 다시 물었다.

 

 "잠시만 앉아 줘요-... 나도 좀 쉬어야 겠어요..."

 

 

 나는 그를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 쉬었다.... 정말 하는 수 없이 , 벤치를 털고- 한참만에 앉았다.

 

 

 

 

 

 

 ".....원장님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요?"

 

 

 

 

 

 제이미가 물었다. 바짝 긴장한 얼굴에 왠지 모르게 난 짗궃은 마음이 일었다.

 

 

 "겁은 나나보군-"

 

 

 

 제이미는 땅을 쳐다보며 안타깝데 웃었다.

 

 

 "지난번에... 뭐 말하자면 좀 다투었어요.....그 뒤로 피하는 중이라서요... 당신 겁내는 거 같던데

 

 굳이 뭐... 할 이야기가 있었나 싶어서... "

 

 

 

 

 "말하자면 궁금하다는 이야기 아니야?"

 

 

 내가 정곡을 찌르자 그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 성질은 잔뜩 내 놓고서.. 여전히 포기는 못했다 이거군- "

 

 

 내 한마디에 그의 얼굴이 완전히 붉어진다.

 

 

 

 "진짜... 당신은 눈치가 왜 이렇게 빨라요?"

 

 제이미가 투덜거린다...

 

 

 나는 그 얼굴에다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내가 눈치가 특별히 빠른게 아니라- 저 남자가 나한테 술술 털어 놓은거야.... 한번 본 사인데도.. 너랑 안다 싶어서 그런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미주알 고주알 별 이야기를 다 하던데 뭐,

 

 

 

 자각이 느릴 뿐이야- 굳이 말하자면 말이야...너는 어쨌든 호감이니까- 그냥 받아주는게

 

 더 좋은 일 아니었어? 남의 인생이야 뭐 알아서 할 일이지 하고 넘겨버리지... 왜 신경질 내면서 까칠하게 굴었는데? 알것같긴 해서... 나는 적어도

 

 아는 사람 편 들어야 될것 같아서 니 편 들긴 했어- "

 

 

 

 

 제이미는 말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한참만에 나온 말은 그 답게 예리했다.

 

 

 

 "당신도 남의 인생이지 그러면서- 하임씨를 가볍게 넘길수 있었어요?"

 

 

 

 그 말에 난 입을 닫았다... 내 무덤 내가 팠군..... 그런 감정이란 말야?

 

 제이미는 한숨처럼 말을 이었다.

 

 

 

 "....기대보다도... 훨씬..... 너무 쉽게 말을 꺼내잖아요 ... 나는 백번은 고민했을 텐데...백번이 뭐야...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고민했을 거에요-

 

 말이란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현실이 되기 쉽잖아요....... 현실성?....... 이 말 맞나요?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그 자리에 탁 붙어서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구요- 사실이 아닌데도요...... 그랬더니 화가 났어요 나는 그것때문에 그 인정이란것 하나 때문에

 

 잃은게 너무 많은데... 그는 그 말의 무게를 전혀 모르고 있고- .."

 

 

 

 난 그까지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덧 붙였다.

 

 

 

 "또 정말 진지했다면 그런 이야길 하지 않을꺼라고- .... 지례 짐작도 했겠지 아마-"

 

 

 

 

 제이미는 다시 한숨을 내 쉬었다... 괴롭다는 얼굴이었고 - 얘도 입술을 물어뜯고 있었다..

 

 

 

 

 

 

 "네 ... 그랬어요... 괴로워요 솔직히- "

 

 

 

 "뭐가.. 저 사람이 가볍게 생각했다는거? 아니면 너 때문에 니가 잃은걸 잃을지도 모른다는거?

 

 내 말이 맞아- 너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면 그 사람에게 가지 말았어야 했잖아-"

 

 

 "눈이 쫓는걸.... 어떡해요- 게다가 저 사람이 이렇게 나올꺼라곤... 솔직히 눈곱만큼도 기댈 하지 않았어서....."

 

 

 

 

 "어리석군"

 

 

 제이미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멍청했죠....."

 

 

 

 

 

 

 

 

 "내가 저 사람한테.. 좀 못되게 말했어- 생각을 정리 할거야-

 

 정리 하지 않을수 없도록 일목 요연하게 말해줬으니... 아마 스스로를 되 짚어 볼꺼야... 그러면 너에게 뭐라 말을 하겠지....

 

 그때는 열 내지 말고 들어"

 

 

 제이미가 힘없이 날 쳐다보았다...

 

 

 "당신이 못되게요? 그 사람이 왜 바짝 굳어 있었는지 알겠네요... 당신이 못되게 말하면 상대는 완전 얼거든요?"

 

 

 "......"

 

 

 

 나는 냉소적이게 웃었다. 뭐 ... 몰랐던 사실 아닌데 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이젠 성질 부리지마- 니가 피해서 기가 확 죽었더라고- 뭐 더 혼낼것도 마땅치 않던데...

 

 어떤 결과라도..... 좀 순응해- 서투른 사람이니까-, 이런 일뿐 아니라 모든게 서투른거 같으니까... 니가 좀 이해를 베풀라고"

 

 

 

 

 지혁은 생각보다 따스하게 덧붙였다.

 

 

 

 

 "....."

 

 

 

 지혁이 제이미를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설마- .... 이야기 해서 화난건 아니지? 저 사람이 차 한잔 하쟀으니- 앉긴 했으나... 말하는 것 보다도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 많더라고

 

 물론.... 기대한 답은 아니었겠지만 말이야-"

 

 

 

 

 지혁이 씩 웃었다. 처음이려나- 저런 웃음은...

 

 제이미는 자신도 모르게 지혁을 멍하니 보았다.

 

 

 

 

 " 여튼 힘내- 다른말 뭘 할수 있겠어- "

 

 

 그는 내 어깰 툭 쳤다. 떨쳐버리라는 듯이

 

 

 

 "그럼 간다"

 

 

 

 그는 산뜻하게 일어났다. 다른 의혹들이 넘쳐났지만 ... 무슨 이야길 했는지 더 묻고 싶었지만... 그는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아하는것 같았다.

 

 그는 내게 손을 슬쩍 흔들고는.. 한손으로 쥐돌이를 톡톡 던졌다 받으며 사라졌다.

 

 

 

 

 

 -

 

 한참만에 집으로 들어서니 집은 써늘했다.

 

 

 

 

 이제 난방을 틀어도 추운 느낌이다- 이상한게.. 겨울만 되면 유난히 다리가 뻐근하다-

 

 

 

  어르신들이 삭신이 쑤신다고 하시더라만.. 나도 그만큼이나 나이를 먹어 버린건가 싶어 왠지 기분이 서글프다 ,

 

 

 이건 아마도 나이탓이 아니라 순전히 사고의 탓이겠지만-

 

 

 

 

 내 손에 들린 것을 보았는지 목의 방울소리를 짤랑 내며 까망이가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쑥쑥 크질 않지? 아직도 작다- 꽤 커질 만도 한데....

 

 

  장하임에게 말했더니 길냥이들은 어릴때 영양이 부족해서 , 나중에도 쑥 안커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까망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르릉 거린다- 이름을 바꿀까보다... 블랙이라고.. 까망이라니

 

 지나치게 큐트해서 내 입엔 도저히 붙질 않는다.

 

 

 

 

 요 녀석은 다른 사람들이 내 곁에서 그러듯- 동물인데도 눈치를 보고 내가 싫어하는것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깔끔하고- 뭔가를 긁어놓는다던지 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끔 내가 쓰다듬어주는 것은 좋아하는거 같다.

 

 

 귀 뒤를 삭삭 쓰다듬어 주었더니 고르릉 고르릉 좋다는 듯 눈을 지긋이 감는다.

 

 

 

 

 내가 잠시 멈추고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저- 바라보자 다 끝났냐는 듯한 눈빛으로 쥐를 물고서 제 집으로 미련 없이 돌아간다-

 

 

 

 

 주인 닮는다더니... 저 녀석도 모든일에 시큰둥하군

 

 

 나는 픽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그녀의 목소리를 되살렸다.

 

 

 

 

 

 참지 말라던 - 보고 싶으면 보자고 하라던- 그녀의 방울꽃같은 목소리-

 

 

 

 하지만 난 또 망설인다..... 시간은 애매하다-

 

 

 

 나는 우선 꽃집에 전화를 넣었다.

 

 

 

 내일 , 작약을 가득 보내어 달라는 부탁- 꽃집 주인은 내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알겠습니다- 라는 정갈한 대답을 남겼다.

 

 

 그녀는 언제나 내가 그랬듯 아주 풍성한 작약을 엄선해 보낼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한숨을 쉬었다- 숨에서 죄책감이 스윽 일어나 실체가 되어 내 어깨에 싸늘한 손을 올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난 오늘 어머니를 만났지만 결국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 어머니에게 들켰을순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 일에 관해서는 설마 심증으로만 움직이실 분은 아니실것이다. 겁나시겠지...

 

 

 

 

 내가 장하임을 놓을까봐서-

 

 혹시라도 잘 되고 있는데... 내가 놓을까봐서-

 

 

 

 

 

 

 이 기대가 순전히 나쁜 기대가 아니란걸 알지만 , 왜 이렇게 부담스럽고 난 죄스럽게만 느껴지는지-

 

 

 

 내가 소파의 손걸이 부분에 기대 앉아 소매를 내려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마음에 울려퍼지자 그 소리가 무어라 느끼기도 전에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조그마한 손으로 내는- 내 얼굴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그 소리.....

 

 

 

 나는 손으로 입을 막고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눈이 이례없이 확 휘어져서

 

 설탕에 폭 찍힌듯- 달달하게만 느껴졌다.

 

 

 

 

 

 이런게 행복이려나-

 

 

 

 저렇게 내 문을 똑똑 두드릴 사람

 

 저렇게 가을밤에 떨어지는 도토리같이 예쁘게 토독 거릴 사람은 단 한사람밖에 없다.

 

 

 

 

 

 

 내가 문을 조금 열고 얼굴을 내밀었더니

 

 

 

  그녀는 놀란듯 웃었다.

 

 

 "에.....?"

 

 

 

 

 

 

 내 얼굴에 묻은 행복한 미소때문에 조금 어리둥절해 하는거 같았다. 나는 문틈으로 보이는 그녀가 너무나 좋아서 얼른 그녀를 꽉 안고 싶었다.

 

 

 

 

 "역시- 왔네요? 방금 왔어요?"

 

 

 

 

 내가 대답도 없이 그저 밝게 웃고 있자 그녀는 걱정을 던듯 편안하게 웃었다. 사실 그녀때문에 웃은건데

 

 그런 사실까지는 모르는 거 같았다.

 

 

 

 아까와는 다른 차림이다. 내가 아는 장하임같은 복장 그림을 그릴때 옷에 묻을까봐 작업복으로 입는

 

 아주 커다란 , 린넨의 옅은 하늘색 셔츠-

 

 

 셔츠는 그녀가 그려내는 그림의 꿈같이 다양한 색으로 곳곳이 물들어 있다. 안에는 점퍼스커트 차림이다.

 

 

 내가 아는 그녀답다- 내가 기억하는 그런 그녀- 더 편해 보이지만 더 아름답다-

 

 

 

 내가 알면 알수록 그녀는 너무나 다양한 색을 품고 있다.

 

 

 

 

 

 사랑은 모두가 같지 않다지만- ... 정말 많은것을 몰랐고 나는... 정말 많은것이 다르다

 

 나는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고 그녀를 집안으로 손을 끌어 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말했다.

 

 

 "다녀왔어-"

 

 

 

 

 그녀가 그 말에 웃었다. 그리곤 작은 두 손으로 내 등을 감쌌다, 그리고 내 대답보다 한템포 느리게... 대답했다.

 

 

 

 

 

 "잘 왔어요-"

 

 

 

 

 

 

 

 

 

 

 -

 

 

 

 

 

 지견은 종이를 팔락팔락 넘기고 있었다. 희영의 말은 간단했지만 희영은 뱀같은 여자였다.

 

 뒤로 무슨 짓을 하는지까지는 다 알수 없었다.

 

 

 시선에 닿는 곳에 걸린 그림을 멍하니 바라본다 펜을 휙휙 돌리며... 그곳에는 체스판의 말들인 나이트(knight)와 폰(pawn) 이 그려져 있다.

 

 무너지는 것 같은 시선으로-....

 

 

 지견은 예전부터 체스를 좋아했다.... 체스의 중심은 이거다-

 

 남의 두 수- 혹은 세 수 앞까지도 계산해 가면서 하는것.... 그게 좋았다.

 

 

 남의 수를 먼저- 읽는 것-

 

 

 하지만 희영의 두 수 앞은- 무엇을 할지는 아는데- 그저 나이트나 폰을 잃는 정도가 아니었다.

 

 킹과 퀸을 모두 잃는 일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모든 걸 내주어야 하는 그런 일이었다.

 

 

 

 

 지견은 희영이 건내 준 싸인하라던 - 말하자면 계약서를 보고 있었는데...

 

 계약서라니..

 

 

 지견은 스스로를 살짝 비웃는다. 그 대목에서...

 

 

 그야 말로... 참으로 조심성 없는 단어들이 가득했다.

 

 

 

 자기 비서도 마찬가지고- 아무리 비밀 유지 서약을 했다고 해도 - 변호사에게도 보일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잔인하기 그지 없는 내용은 마음에 들었다.

 

 

 

 

 다시 '못 일어날것'이라는 그 얘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재기불능- 녀석이 사고가 났을때만 해도- 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어느순간 녀석은

 

 봄날에 다시 피는 고목의 나뭇잎처럼- 뭔가...

 

 

 희미하지만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지견은 못마땅하다는 듯 쯧 하고 낮은 한숨읏 내쉬었다.

 

 

 다들 의아해들 했다. 적어도 아는 사람들은 그랬다. 희영도 처음에 자신에게 물었었다. 대체 왜 그렇게

 

 동생을 미워하느냐고-

 

 

 

 

 그 녀석은 내가 피 땀흘려야 , 아니 가슴에 바람 구멍을 숭숭 내야 가질수 있는걸 척척 가지는 녀석이었다.

 

 

 아버지의 인정, 어머니의 사랑.. 그 뿐만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 녀석은 내가 가지고 싶어하는걸 한 걸음 먼저 다가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에 넣었다.

 

 

 

 물론 그게 미워서였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나를 일으켜세우는 저력은 질투와 미움이었고-

 

 그 녀석은 어느순간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되는 미운 존재였다.

 

 

 절대 악같은 존재였다.

 

 

 

  미워서 견딜수가 없는 존재- 나는 스스로에게 자문하곤 했다. 저 녀석이 사라져버리면 어떨까 하고.... 그럼 나는 더 달릴 이유가 없어질까?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더 소중한 존재가 될까?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 녀석때문에 태산이라 믿었던 두 분의 눈물을 보았다. 어머니는 그러실수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없다 생각하시곤 서재의

 

 문이 열려 있는지도 모르시고 낮게 흐느끼셨다... 지혁아 지혁아- 안타까워 부르기도 소중하다는 듯이 되뇌이시면서...

 

 

 

 난 정말 믿을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그 녀석을 예뻐하시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 아버지가 우시다니? 그런 지혁이도 냉정하게 평가하시고 가끔은 사람을 붙여

 

 조사도 하시고- 기업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시고 죄책감도 못 느끼셨던 그분이...

 

 

 

 그 녀석을 위해.. 단 한번도- 그 누가 돌아가셔도 보인 적 없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절망하시면서-......

 

 

 그건 너무나 내 세상을 뒤집어 엎고 조각조각 내어버리는 , 그야 말로 내 모든걸 무너뜨리는 어떤 것이었다...

 

 

 

 녀석은 병실에서 꼼짝도 못하고 말도 들리지 않는듯 그저 멍하니- 불빛이 나가버린 전구같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뭘 보는지도 알수 없는 얼굴로 소리도 내지 않고 우는게 다 였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간병인을 둘이나 붙이고도 수시로 그 앞에 가 앉아 계셨다.

 

 

 

  대답조차 하지 않는데.... 말도 , 하물며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는데도.... 열심히 메아리를 기다리시면서- 뭐라고 대답하기를 기대하시면서

 

 끊임없이 말을 거셨다.

 

 

 쉴새없이 그 자식을 보살피셨다.......

 

 

 

 

 

 나는 그 흐느낌 소리를 들으며

 

 그럭저럭 평정을 찾고 있던- 지진이라도 난 듯이 지지하고 있던 어느것이 와르르 무너졌음을 느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부모님은 저만큼 흔들리시지는 않으셨을 거란 생각이 스멀스멀 -

 

  가느다란 연기처럼 피어난 건 한 순 간이었지만-

 

 그것은 점점 더 확신이 되어 나를 덮쳐왔다.

 

 

 연기 속에 갖혀 - 무엇이던 저 녀석이 먼저 가져가는 여러것들을 곰곰히 되 짚었고 나는 더욱 냉정해졌다.

 

 냉정해 지고 또 내 스스로가 나쁜놈이라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졌다. 그래- 아버지의 말씀 그대로 였다.

 

 

 

  나는 아버지의 자리에 앉기 위해 키워졌다. 그래서 많은걸- 아주 많은걸 포기했다.

 

 

 아주 많은걸 버렸다.

 

 

 그러니 아버지가 가르치신 그대로 할 것이었다. 경쟁자는 - 제거하라-

 

 

 

 

 아버지가 가르치신 것이었다.

 

 아주 혹독하게-

 

 

 

 

 

 그대로였다.

 

 

 

 

 

 "이젠 후회하실 거에요 아버지.... 그 경쟁자가 누군지도 봐가며 제거하란 말씀은 안 하셨잖아요-"

 

 

 

 

 지견은 중얼거렸다- 그리곤 얼굴을 쓸었다... 손바닥 밑의 얼굴엔 죄책감이 눈곱만큼 붙잡고 있는 약간 씁쓸한 미소가 붙어 있었다.

 

 손을 뗄 즈음엔 그건 이미 그냥 미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곤 고쳐야 될 세부 사항을 체크해놓은, 피를 흘리듯 붉은 펜으로 점철되어 있는

 

 그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펜 끝에 피라도 뭍은 듯- 그 계약서엔 휘갈긴 글씨로 그의

 

 이름 석자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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