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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10. 단 한 번의 여행(3)
작성일 : 17-06-29 00:31     조회 : 23     추천 : 1     분량 : 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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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enos dias! (좋은 아침!)"

 

  스페인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아침 식사 뒤 그라나다(Granada)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니 도로 옆으로 길고 투명한 해변이 펼쳐졌다.

  말라가(Malaga)에 도착한 것이다.

  북아프리카와 가까워 지중해의 싱그러움을 느끼면서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공존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곳.

  남부지방이어서 그런지 그라나다와 달리 열대지역에 온 듯한 느낌이다. 겨우 1시간 반으로 이런 차이가 나다니, 역시 신기하다.

 

 "역시 스페인은 해변이지!"

 "여긴 누드 비치 없다니?"

 

  스태프들의 의욕이 벌써부터 충만하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 달리 우리는 일정상 해변을 뒤로하고 피카소 박물관을 먼저 찾았다.

 

 "여기가 피카소네 집이었단 말이지?"

 

  말라가의 메르세드 광장(Plaza de la Merced) 끄트머리에 위치한 피카소의 생가(La Fundación Picasso Museo Casa Natal)를 개조해 만든 작은 갤러리.

  1층에는 기념품 가게, 피카소가 말년에 그린 스케치와 드로잉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가 아담하게 자리잡았다.

  2층에는 도자기와 비디오실, 그리고 작업실처럼 꾸며놓은 작은 방을 만들어뒀다.

 

 "그림과 조각 등 이곳의 작품들은 모두 그의 며느리와 손자가 기증했대요."

 

  그래서인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한 가족이 사는 집 같은 분위기다.

  내딛는 걸음을 따라 피카소가 태어난 후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 입었던 옷과 어린 시절에 찍은 사진, 노년에 낳은 자식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괴팍하단 소문만 들었는데, 가족이 함께 지낸 공간을 보니 상당히 인간적이네요."

 "아, 네. 뭐..."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밀가루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그의 갑작스런 등장에 깜짝 놀라 주위를 살피자 석훈 씨가 나는 안 찍히니 자연스럽게 행동하라 일러준다.

 

 "인간적이라..."

 

  밀가루가 한 인간적이란 말이 입안에서 모래처럼 까슬 거린다.

  난 까슬 거리는 건 뱉고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난 성격이다. 그 덕에 나는 뒤에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입을 열고 말았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사는 삶인데, 인간적이지 않은 순간이란 게 있을까요?"

 

 "무슨 뜻이죠?"

 "사실 넓게 본다면, 인간적이란 말 속에는 비열함과 차가움이란 의미도 내포되어 있을 텐데요. 그것도 인간의 모습이니까요."

 "하긴. 그럴 수도 있네요."

 

  카메라를 의식한 건지 밀가루는 말을 더 잇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세 걸음 뒤에서 그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피카소는 조각조각을 모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내는 독특한 기법이 유명한 화가다.

  보는 이에 따라 기괴하다 느낄 수도 있지만, 조각마다 색과 선의 형태가 달라 보는 재미가 있다.

  어떤 사진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삶은 퍼즐 조각 같아서 각기 다른 삶의 조각을 모으다 보면 하나의 인생이 완성되죠.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울 제 자신의 조각을 모으는 중입니다.'

 

  문득, 지금 이 순간의 내 조각은 과연 어떤 색과 선을 가졌는지 궁금해졌다.

  그림자를 진하게 칠하고 있을까? 그럼 지금 저기 서 있는 꼬마 밀가루의 조각은 블링블링, 황금색이려나.

 

 

 *

  말라가의 상징,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

  맨발로 사각사각 모래사장을 걷다 보면 하얗게 부서져 들어오는 파도가 발가락 사이를 기분 좋게 간질여준다.

  태양의 해변이란 이름답게 오후 3시가 넘은 시각에도 태양은 여전히 짙푸른 바다 위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다.

  나는 태양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아, 멤버들이랑 같이 왔으면 진짜 좋았을텐데... 얘들아, 보고 싶다!!"

 

  하얀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밀짚 페도라를 얹은 밀가루가 두 손으로 확성기를 만들어 큰 소리로 같은 그룹 멤버들을 부른다.

  나 참, 저런다고 한국까지 들리나?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변을 보는 사람처럼 엄청나게 좋아한다. 16살짜리 소년이라 해도 믿을 만큼 해맑은 얼굴로 팔짝팔짝 뛰는 모습이 태양만큼 눈 부시다.

  ... 그래서 더 맘에 안 들어.

 

 "Hola. Señorita. (안녕. 아가씨.)"

 "Hola. (안녕.)"

 "Eres muy bonita. (너 정말 예쁘다.)"

 "Muchas gracias. Tu tambien, muy guapo. (고마워. 너도 잘 생겼다.)"

 

  누가 남자 아니랄까 봐.

  현지인 여성들과 짧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주고 받는 밀가루를 내버려 두고 통역가인 나는 해변가에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하얀 보석을 부숴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수평선 아래로 녹아내리는 태양. 그 반대편에는 하얀 쪽달이 선연하게 떠 있다.

 

 "이제 곧 달빛이 힘을 얻겠지."

 

  빛나는 건 태양만이 아니다. 달도, 별도, 가로등 불도, 심지어는 핸드폰조차도 저마다의 빛을 지니고 있다. 단지 태양에 가려 있을 뿐.

 

 '정답에 집착하는 습관이 무개성을 낳는다.'

 

  볼리비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책 속에 정답에의 집착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래. 나는 계속 정답에 집착해왔던 걸지도 몰라. 일도, 가정도, 사랑도.

 

 "그 결과가 무개성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

 

  정답에 대한 신념으로 쌓아온 탑이 무너지던 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27년간 내 이름으로 만들어 온 세상은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졌다.

  이제는 안다. 정답이란 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단 한 사람이든 대다수이든 정답이란 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선택에서 나온 것일 뿐.

  갈림길에서의 선택지는 정답과 오답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그대로가 정답이다.

 

 "그러니 뒤를 돌아보며 후회할 이유도 없어."

 

  이곳에서 잠시 내게 주어진 휴식의 시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간다.

  삶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갈림길에도 태양은 떠오르겠지.

  부디 그 순간 나의 선택은 저 태양을 닮지 않기를.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다른 빛들이 제힘을 찾는 시간.

  즐거운 한 때를 보낸 밀가루는 해변이 보이는 식당 테라스에 앉아 빠에야를 주문하겠다며 메뉴판을 보고 있다.

  3일 동안 애써 눌러왔던 애주가 진해연의 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달콤한 와인(Vino Dulce)의 전통적인 생산지인 말라가에 왔으면 와인 한 잔 정도는 마셔줘야 예의이지 않을까?

 

 "말라가 와인은 워낙 좋아서 러시아 왕에게 보내지기도 했대요. 한 번 드셔보세요."

 "오, 그래? 도준이 한잔할래?"

 

  장 PD님의 제안에 밀가루는 뜻밖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코를 찡긋하는 모습을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저 술 못 마셔요."

 "와인은 향을 즐기는 거예요."

 "그래, 도준아. 카메라에 담기만 하면 되니까 한 모금만 마셔봐."

 

  방송을 위해서란 말에 밀가루의 입이 다물어졌다.

  말없이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밀가루는 해산물 빠에야와 와인을 주문했다.

 

 "우와, 이게 빠에야구나!"

 "대박. 이건 무조건 사진부터 찍어야 돼!"

 

  밀가루에게서 두세 자리 떨어진 우리 테이블에도 주문한 빠에야와 와인이 나왔다.

  여자들만 모인 이곳에서는 음식이 테이블에 놓였을 때 한 번, 윤기 흐르는 빠에야의 맛을 보고 한 번, 향긋한 와인을 입에 머금고 또 한 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징어와 홍합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이 만들어낸 스페인식 볶음밥은 완벽하게 우리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특히 한국의 웬만한 대하보다도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새우가 일품이었다.

  거기에 곁들인 향긋하고 달짝지근한 와인은 신의 한 수였다.

  혀끝에 말아 올리는 달달한 포도의 맛과 진하면서도 깨끗한 향기가 어우러져 마치 봄내음이 나는 꽃을 입에 문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

 

  그런데 저 허여멀건 한 놈이 아까부터 자꾸 나를 노려본다.

  어제 고스톱에서 져서 아이스크림 산 게 그렇게 억울했나? 아님 싫다는 와인을 억지로 먹여서 그런가?

 

 "엄마, 깜짝이야."

 

  잠시 화장실에 갔다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불쑥, 불퉁한 얼굴을 한 밀가루가 튀어나왔다.

 

 "저기요. 통역은 무슨 일을 하죠?"

 "네?"

 "나는 새우 알레르기가 있어요. 스페인어를 못해요. 메뉴판에는 스페인어만 적혀있어요."

 

  갑자기 이게 웬 뜬금포야?

  앞뒤 접속사를 자르고 문장만 툭툭 내뱉으니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다.

  테라스를 밝게 비추는 조명에 비친 그의 양 볼이 발가스름하다.

 

 "그래서요?"

 "그랬더니 새우가 떡, 하니 나왔네요."

 "음, 그렇네요."

 

  밀가루가 자신의 자리를 가리켰다. 손도 대지 않은 새우가 관능적한 자태를 내뿜으며 수북이 쌓여있다.

  해산물에 새우가 있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네 알레르기를 내가 알 게 뭐냐?

  잠깐, 와인잔이 깨끗이 비어 있다...? 뭐야, 못 마신다더니 다 마시고 취한 거야? 아닌데. 취한 것 치곤 꽤 말짱한데.

 

 "안타깝게 됐어요. 하지만 먹고 싶은 사람은 밀... 아니, 문도준 씨지 내가 아니잖아요."

 "뭐라고요?"

 "그럼 입까지 수저로 떠다 주길 바래요? 이 총각, 생각보다 뻔뻔하구먼."

 

  그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이런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걸 보면 나도 심술보가 참 못됐다.

  나는 미련 없이 자리로 돌아가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런 게 다 외국 여행의 재미고 추억이에요. 나중에 생각날 걸요?"

 "두 번 재밌었다가는 병원에 실려 가겠네요."

 

  이놈은 내가 친히 여행의 묘미를 알려주는데도 여전히 이를 앙 다물고 대꾸한다.

  어휴, 저 투덜이. 26살 맞아? 대한민국 대표 아이돌 그룹 리더 맞냐고?

 

 "Gamba."

 "음?"

 "스페인어로 새우란 뜻이에요. 알아두세요."

 

  각종 티켓 구매에, 가이드 통역에, 이동 시 기사 상대에, 각종 흥정까지...

  내가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네 입맛까지 신경 써 줄 겨를이 어디 있겠니?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거란다.

  녀석은 주문 외우듯 계속해서 단어를 중얼거리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식당을 나와 길을 걷는 동안에도 내내 중얼중얼, 중얼중얼...

 

 "저거 취한 거 맞네. 아니 무슨, 와인 한 병도 아니고 겨우 한 잔으로 취해?"

 

  헤밍웨이가 사랑한 라리오스(Larios) 거리에서도 그의 취중촬영은 이어졌다.

  아니, 밀가루 포대가 쓰러질 듯 아슬아슬해 보이는 건 나뿐이야? 왜 다들 아무 말이 없는 거냐고?

  잠시 뒤, 알록달록한 조명이 환히 빛나는 거리에서 밀가루는 결국 내 속을 뒤집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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