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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작약과 함께 한 시간
작가 : 엘리엘리스
작품등록일 : 2017.6.27

한 여자의 이별로 인해서 우연과 악연이 겹쳐 만나겐 된 두 사람과 오래전의 인연이 만든 세 사람... 또는 네 사람의 이야기..

 
좋은 길?
작성일 : 17-06-28 19:23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9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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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뒤 나는 세진이와 로마에서 시간을 보냈다.

 

 룸메이트가 집을 나가며 침대를 두고 간 덕에 나는 전에 룸메이트가 살던 방에서 지냈다.

 세진이는 마침 가장 큰 복원작업을 막 끝냈던 터였고, 나와 시간을 많이 보내며 내가 말의 공백에 , 감정의 들쑥 날쑥함에

 다시 무너지지않게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실제 남매라 한들,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친 나처럼 까다로운 사람을 그렇게 살뜰히

 보살필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을것이다. 나는 지뢰밭이었다. 온통 감정지뢰가 매설된 무시무시한 지뢰밭. 어떤것을 밟아서

 터질지 나 자신도 몰랐다.

 

 며칠이 지난 뒤 아침, 나는 거실로 나와 오래된 듯 하지만 몸이 꼭 맞는 소파에 앉았다. 앉아서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치는 햇살은 얼굴을 따스히 어루 만질뿐만 아니라 기분까지도 맑게 해 주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세진이가 내리는 커피 향때문에 세진이도 깨어 났음을 알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세진이는 내게 잔 먼저 내밀었다. 내가 좋아하는 옅지만 향이 깊은 그런 커피..

 

 "고마워-"

 

 "오늘은 뭐 하고 싶은거 있어?"

 

 

 하고싶은거라.... 그때 내 시선에 내 꼬질꼬질한 컨버스화가 눈에 들어왔다.

 꼬질꼬질하다못해 구멍이 나기 직전- 사실 급하게 오느라 그러기도 했고 , 워낙 쇼핑엔 취미가 없기도 했다.

 

 발에 걸리는대로 주워입는 스타일이었지 꾸미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내 처지처럼 딱해보이는 신발이 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새 살이 빠지며 커진 듯한 청바지도- 안에 받쳐입은 빨고 또 빨아 부드럽다 못해 내 몸처럼 느껴지는 티셔츠도, 추워서 빌려입은

 세진이의 셔츠는 작업할떄 입는거라 물감이 부분부분 묻어 있었다...

 

 

 "아무래도 신발도 사고- 쇼핑도 좀 해야되지 않겠어? 머리도 좀 정리하고-"

 

 이 이야기를 꺼낸건 내가 아니라 세진이었다....

 

 

 

 뭐 내가 할려던 말이기도 했었지만 조금 심술이 났다. 위에건 자기 옷인데 -

 

 "별로란 말이 하고싶으면 말야, 돌리지 말고 직설적으로 말하시지 그래-"

 

 

 세진이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쁜 얼굴 물려 주셨는데 그렇게 사용하니까 안타까워서 그러지-

 옷도 전체적으로 다 커진것 같은데- 잘 아는 미용실 있어, 친구 하나가 미용실 견습사원으로 일하다가 샵을 냈거든....

 

 거기 갔다가 옷도 좀 사고-.... 나야 좋은 옷 사 봤자 작업할때 입을 일 없어서 그렇다 쳐도 넌 여자잖아, 쇼핑하는거 평생 잘 못본거 같네-"

 

 

 "쇼핑 , 안 즐기니까... 발도 아프고 , 다 비슷비슷하게 보이고... 비교하는것도 피곤하고.."

 

 

 세진이는 딱 잘라 말했다- "미술 한다는 애가.. 자기가 하는거 엉망으로 하고 다니는 사람한테 무슨 감각이 있어 보이겠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좀 꾸미고 다녀- 이제 화장 안하는건 실례야- 나야 괜찮지만 공식적인 자리에 갈땐 좀 해야지!"

 

 

 "........"

 

 

 딱히 할말이 없어 세진이를 훑어보니.. 세진이는 몸에 딱 맞춘듯한 진에 깔끔한 셔츠, 얇은 스카프까지 타이처럼 매고있다

 작업 할때와는 또 다른 멀끔한 모습, 머리는 뒤로 묶었다... 머리 긴 남자 질색인데... 세진이한테는 흠잡을 때 없이 어울린다.

 살짝 긴 단발- 점점 이탈리아 남자처럼 변하는것 같기도 하고.... 느낌이 좀 달라진건 확실한데...

 

 

 

 "뭘 그렇게 봐? 뭐 묻었어?"

 

 

 

 세진이가 자신을 계속 보는 내 얼굴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아...아니야- 뭐.. 쇼핑하러 가자- 로마보단 밀라노가 더 패션도신줄 알았는데-.."

 

 

 거기까지 가자고 해도 갈 생각이 아니기도 했지만... 아는 지식은 그까지였다. 좁고- 얕은 지식- 웅덩이수준이다 ...

 

 

 "이탈리아는 어디나 패션 도시야....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너무한 발언 아니야? 심지어 수도인데- 옷 깔끔하게 입고 씻고 나와-

 쇼핑하러 가자- 샵에 예약 좀 해놓을게 전화는 해야 안 기다릴 테니까-"

 

 

 세진이는 그 말을 끝으로 전공 서적을 집어 들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는 멍하게 있다가 이내 화장실로 향했다

 세차게 세수를 하고 바라본 얼굴,

 

  여전히 파리하게 혈색이란 없다. 무시무시 할정도로 내려온 다크써클...

 술도 안먹었는데 어디서 진탕 마시고 뻗었던듯한 얼굴이다... 언제 뿌리염색을 했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갈색에서 쑥쑥 뻗어나온

 검은 머리- 긴 머리 끝은 상해서 자기들 끼리 엉키고 난리가 난 상태- 난 여자고 나이도 있는데 어째 이까지 여행오면서

 파우치도 하나 안 가지고 왔담-..... 나는 한숨을 쉬며 브러쉬에 물을 묻혀 머리를 벅벅 빗었다. 머리가 막 빠진다 단순

 

 엉커서 이제껏 달려 있었던 모양이군.. 그리고는 가져온 트렁크에서 가장 깨끗한 청바지와 체크무늬 셔츠를 걸쳤다.

 

 세진이 앞에 가서 서자 세진이는 고개를 들고 바라봤다.. 뭔가 말을 하려다 만다..

 

 

 

 "말을 할려고 했으면 해- 욕할려고 그랬지?"

 

 나는 괜히 툴툴대고 만다 왠지 어색해서,

 

 

 

 "아니야- 잘 입고 나왔다 그럴려고 , 근데 신발은 그거 한켤레 가져왔어?"

 

 

 "그럼.. 여행 오면서 구두신고와? 이게 다야-"

 

 

 발치만 부끄러운 느낌이다. 꼬질꼬질 때가 탄 신발.

 마지막으로 신발 산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세진이는 씩 웃더니,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문을 열어주더니 - 바보처럼 "나가시죠 아가씨- "

 

 세진이랑 같이 있으면 이렇다, 바람도 어깨의 무게감도 언제나 솜털 처럼 가벼워진다. 마치 어렸을 때의 나처럼..

 

 "멍청이 같아 그러지마-"

 괜히 퉁명스레 면박을 줘도, 나도 씩 웃게되는-

 

 

 오래된 계단에서 나는 나무 냄새까지도 상쾌하게 느껴질 만큼 청명한 날씨-

 나서는데 나이가 60즘 되보이는 노 부인과 마주쳤다.

 

 그녀는 너무나도 빠르고 큰 소리로 이탈리아 어로 막 세진이에게 말을 해 댄다 세진이가 씩 웃는걸 봐선 나쁜 말은 아닌것 같은데

 이탈리아어는 다 이런가.. 목소리가 무지 크다-

 세진이도 능숙하게 뭐라뭐라 말을 하는데 난 좀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말 되게 잘하네- 외국어엔 소질 영 꽝인 줄 알았는데

 

 그러더니 날 보며 인사하라고 한다- "바렝 교수님이셔- 내가 말했지? 복원사 교수님-"

 

 나는 좀 당황했지만 고개를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Buongiorno-"라고 덧붙였다. 인상좋은 이 교수는 상식적인 인사는

 말라는 손동작을 하더니 나를 껴안고 인사로 뺨에 쪽쪽 입을 맞춘다.. 어찌나 동작도 큰지 .. 맞닿았던 뺨이 얼얼한 지경이다

 

 세진이는 "하하하하하-" 미친듯 웃어대더니 챠오- 하고는 차 문을 열어준다 교수님이 손을 흔들며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뭐가 훅 지나갔나.. "뭐야-.... 뭐..뭐지-"

 

 "니가 내 친구라 그랬거든- 딱딱한 인사 하지 말자고 하셨어 내 친구면 자신 제자나 마찬가지시라고-

 원래 권위보다 제자들을 더 생각하시는 분이셔- 좋은 분이시거든-" 차 창문을 열고 선글라스를 꺼내 낀다. 난 급하게 오느라 선글라스도 까먹었던

 지라 눈살을 찡그리며 창 밖을 내다본다.. 낮게 음악을 튼다- 시끄러운 목소리 사이로 잔잔한 노래가 깔린다

 

 "뽀뽀가 인산건 알지만-... 뭐랄까 교수님 보다는"

 

 "엄마 같은 느낌이시지? 알어- 정이 되게 많으시거든-"

 

 세진이의 목소리엔 애정이 가득하다- 내가 도하랑 살고 있었던 동안- 다른 세상에 있던 동안 세진이도 정체되어 있지 않고

 여기서 인맥을 넓히고 하고 싶은 일을하면서 맘껏 , 펼치고 있었구나.. 뭐랄까 질투도 아니고 샘도 아닌.. 좀 복잡미묘한 기분이다

 내가 없어도 상관없이 잘 살 애긴 하지.. 나의 공백이 아무 의미 없었구나 , 아무 타격도 없었구나.. 친구 사이에 이런 샘내는 모습이라니

 내 스스로가 참 못나게 느껴졌다.. 나도 그냥 픽 웃고 창밖을 바라본다-

 

 "처음은 미용실부터야- 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거야 알았지? 오늘은 토 달기 없기!! 공짜 숙소 제공해줬으니 이정돈 해도 되겠지??"

 

 .... 불안한 감이 밀려온다.. 왜 토달기 없기부터 말하는거지..

 

 "설마.. 레게머리나 이상한거 시킬려고 그래? "

 

 세진이가 살짝 콧등을 찡그리더니 말을 잇는다..

 

 "날 대체 뭘로 생각하는거야-........ 안그래, 염색은 시킬수도 있지만-"

 

 세진이가 그럴리는 없었지만- 나는 그냥 노파심에 말을 덧 붙였다

 

 

 

 "나 작가야-- 장작가 소리 들으며 그림으로 돈 번다구.

 

 녹색 형광색 이런건 좀 곤란한데-.. 개성보단 보수쪽이라"

 

 

 

 "안그럴께 믿어 - 이 친구 손질 잘해- 나한테도 그루밍의 기초를 톡톡히 가르쳐줬지 깔끔하게 정돈 된 내 얼굴 보고도

 

 그친구 못믿겠어??"

 

 

 나에게로 얼굴을 쭉- 뻗는다

 확실히 얼굴이 멀끔하다. 전에 비해서 확실히

 

 "얼굴 들이밀지마 운전하면서... 위험하잖아-

 뭐 니 스타일이 뭔진 몰라도 , 너무 많이 바뀌어서-"

 

 "다른 일 때문에 가는게 아니라 .. 니 모습이 가관이라서 가는거야- 여자애면 여자애 답게 좀 굴지.. 어릴땐 레이스 치렁치렁

 달린 원피스 아니면 집 밖도 안나서더니 어째 거꾸로 돌아가는것 같냐?"

 

 

 "그때도 엄마 아니었으면 그런 옷 안 입었어- 순전히 엄마 취향이었지 .. 공주풍 드레스- 내 맘대로 옷입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데-"

 

 "아 맞다 부모님은 잘 계셔?"

 

 

 "응....뭐......별다른 일 없어-......"

 

 

 

 그러고 보니 부모님은 도하랑 헤어진것도 아직은 모르신다.

 언제나 날 지지하고 믿어주시는 부모님이니까...... 이번 일도 날 이해 하실테다. 하긴 누구랑 사귀던 상관 안 하시기도 했지.

 뭐 한달에 한번도 전화도 잘 안하시는데 뭐- '다 키워놨으니 니 앞가림은 너 알아서 해라 난 일없다!!' 호탕하시다고 할지

 방목주의라고 할지...

 

 "어머님은 여전히 소녀같으셔? 우리 부모님이랑은 가끔 만나시는것 같던데-"

 

 "소녀가 아니라 - 철이 안드시는 체질이신거지-그런대로 뭐, 나도 내 동생도 괜찮게 자랐잖아.

 바보같이 가끔 사고치는거 빼면 말야"

 

 "물어보려다 깜빡했네, 하진인 어때? 잘 지내고 있어??""

 

 

 "요즘 발굴작업인지 뭔지 한다고 , 미국에 있어 .. 다코타라 그랬던거 같은데.. 자주 연락 안해주니 뭐 알수가 있어야지"

 

 하진이는 나와 겨우 두살 터울의 동생인데- 고고학에 빠져 사는 고고학자(가 되려고 하는 학생)이다보니 매일 매일 외국

 발굴 작업에 참여 하느라 바쁘다 .

 

 그걸로 논문 써서 ph.d (박사학위) 딸거라고 하니 영 안되는건 아닌 모양이다 매번 세진이랑 마주칠때 마다

 세진이 칭찬하는건 하진이다, 누나같은거 챙겨주는거 보면 세진이 형도 어지간한 사람이라니까- 잘해 무조건 . 가끔 만나면 하는 얘기라고는

 정신 못 차렸다느니- 지금 나이가 몇인데 라느니- 별로 도움될거 없고 분란 야기하는 소리만 잔뜩한다. 그러니 반가울리가 있나.. 나이도 어리면서 한발 물러서

 나를 가르치는 입장인척 한다. 차라리 , 이런말 하면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자주 안보는게 나은 존재다. 엉뚱한 면도 좀 있고.

 

 세진이가 운전하다 나를 흘긋 보더니 웃으며 말을 잇는다

 

 "여전히 사이 별로구나-... "

 

 "뭐 녀석이 계속 시비를 거니까.. 만나면 좀 다투는 편이지 뭐-"

 

 세진이는 피식 웃더니 차를 살짝 멈춘다.

 

 "여기선 아무대나 대면 차 털리기 딱 좋아- 흠집도 막 날테고 - 요 앞에 내려줄게 잠시만 기다려 , 파킹하고 올테니-"

 

 

 "알았어-"

 

 

 이른 오후의 강렬한 햇살 - 세진이는 내리려는 찰나 나를 붙잡아 자기 선글라스를 씌워준다-

 

 "빛 싫어 하면서 챙기지 그랬어 - 좀만 기다려 세우고 올테니까-"

 자연스럽게- 내 얼굴에 안경은 그렇게 올라 앉는다

 

 길에 남겨진 난, 서서 길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어디론가 바쁘게 가는 사람들-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고

 또 건강해 보이고 튼튼해 보인다- 벌써 봄이 끝나는건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세진이는 금방 왔다, 자연스럽게 나를 팔로 감싼다. 왠지 어색하다.. 전엔 이런거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세진이가 변한건지 내가 변한건지, 우리 사이에 공백이 그만큼 길었던 건지.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꽤 고풍스러 보이는 숍이다- 안에는 머리를 하는 여자들이 잔뜩 앉아있다. 이탈리아 여성만

 그런건 아니겠지만, 왠지 유난히 힘준 여성들이 가득한것만 같다. 맞춤 옷, 큼지막한 주얼리 ,짙지만 세련된 하이라이터를

 넣은 머리칼들.. 나는 괜히 쪼그라 드는 기분이다.

 

 세진이는 들어서자 마자 어떤 남자에게 우렁차게 인사를 건내고 머리를 커트하던 남자는 뛰어와서 세진이를 얼싸안는다

 그리고 둘은 빠른 이탈리아어로 뭐라뭐라 이야기를 한다- 남자는 몹시 깡마르고 검은 머리를 젤로 머리에 딱 붙인

 모습이다.. 왠지 젊은 시절의 살바도르 달리가 생각난달까- 나를 쭉 훑어본다.. 몸에 뻣뻣히 긴장이 들어간다

 달리를 닮은 미용사는 세진에게 이탈리아어로 묻는다.

 

 "이 여자가 니가 푹 빠졌다는 그 여자야? 세진 너의 취향은 좀더 클래식한 여성일줄 알았는데"

 

 김샜다는 듯한 태도다 , 그레이스 켈리 뺨치는 우아함을 기대했는데- 세진은 이탈리아에서 남자든 여자든 인기 만발이었으니까.

 그래도 누구도 만나지 않기에 마음에 품은 누군가가 있겠거니 할뿐, 다들 세진의 옆자리를 탐냈다.

 그런데 오히려 작고- 아담한 여성이다.. 세진의 눈에서 이렇게 애정이 느껴지는데 모르는 것 보면 어지간히 둔한 여자인 모양이다.

 "니가 몰라서 그래- 원래 아주 아름다운 여성이야- 니 실력 믿으니까 너한테 모셔왔지! 눈이 번쩍 뜨이게

 아름답게 부탁해- 니 실력이면 무리없지?"

 

 그는 당연한걸 묻는다는듯 피식 웃는다- "맡겨만 둬- 지갑이나 열 준비 하시고-"

 

 그리곤 하임에게 다가가 머리칼을 면밀히 살핀다 그러더니 "piacere! chiamo -Luka-"

 란 말을 하더니 가볍게 하임의 손등에 입을 맞춘다- 어리둥절 한듯 뻔히 쳐다보는 하임의 반응에 세진이 낄낄댄다

 "자기 이름말한거야- 반갑다고- 루카야 여긴, 놀라운 미용사지- 실력있어 정말"

 

 루카는 대충 알아들은듯 눈을 찡긋하며 하임을 의자에 앉힌다. 그러더니 세진에게 뭐라뭐라 설명을 한다. 세진은 진지하게 듣는다.

 "좀 밝은 갈색으로 염색할꺼래 하이라이터도 넣고, 머리 좀 커트한다는데 괜찮겠어? 밑 머리가 너무 상해서 못쓴데"

 하임은 기른 머리가 아깝다기보다 짐스러웠기에 시원스레 응- 이라고 대답한다. 승낙이 떨어지자 마자

 시원스레 들어오는 가위질- 얼굴형에 딱 맞게 잘 자르는 것 같아 보인다. 하긴, 달리 세진이가 추천했을까..

 그 와중에도 루카는 세진이랑 대화를 나눈다, 뒷 자리에 앉은 세진과 거울로 눈으로도 말로도

 진작에 언어 좀 배워둘걸 그랬다.. 하긴 이탈리아에 올줄 상상이나 했나 내가...

 

 "이 여성분- 한국 여성 치고도 참 작다- 근데 피부가 곱고 예쁜데 왜 이렇게 화장도 안하고-"

 

 "원래가 꾸미는걸 좀 귀찮아하는 스타일이야-.. 오늘 부턴 안그러게 해야지?"

 

 "너 작업은 끝나가? -"

 

 "하나는 끝났고- 이제 더 큰 작업을 위해 다시 돌아갈려고-"

 

 "응?... 어디로-"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이 친구가 너무 궁금해 한다, 이탈리아 어 전혀 못하거든-"

 

 눈짓으로 세진이는 찡긋 해 보인다-

 나른 하고 따뜻함에 졸음이 조금씩 몰려온다- 난 누가 머리카락 만지면 막 졸린데-

 눈치 챈 세진이가 조용히 말을 건낸다.

 

 "좀 자- 머리만 좀 고정하고- "

 

 그러고 나서 얼마나 졸았을까... 머리를 감으러 이동하자는 어떤 늘씬한 언니의 손짓에 따라가서

 머리를 감고오니 어깨까지 가볍게 내려오는 커트의 살짝 밝은 갈색의 머리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우선 머리가 가볍고, 잘 들어간 하이라이트 덕에 머리가 윤기가 도는것 처럼 반짝반짝해 보인다

 드라이까지 정성스레 루카는 해준다- 세진이는 지겹지도 않은지 간간히 루카와 대화를 나누며 눈으로 나를 쫓는다

 다 끝난듯- 짜잔- 하는 손동작으로 루카는 마무리하고 세진은 조용히 박수를 톡톡 처준다

 머리만 비까번쩍 화려한듯 하지만 , 그래도 훨씬 정돈된 모습이다 -가볍기도 하고

 나는 또 조용히 기어들어가는 듯한 말로 "그라치에- " 라고 인사를 하고, 루카는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빠른 말로 뭐라고 덧붙인다-

 세진이는 웃으며 통역해준다- "다신 그렇게 엉키게 두지말고 손질 주기적으로 해 주래- 이렇게 예쁜데 아깝데-"

 

 사실 루카는 예쁘단 말은 안했지만-.. 세진이는 은근 슬쩍 자신의 감정을 끼워 넣는다. 루카가 눈치가 빨라도 이건 못 알아 듣겠지.

 루카와 인사 한 뒤 숍을 나서-길에 가득한 옷가게들에 하임은 좀 어리둥절 했다.

 

 전혀 당황치 않는 세진과는 달리- 들어설때마다 한아름 이것도 저것도 옷을 골라준다- "이걸 뭐 어쩌라고-" 바보처럼 반문한 하임에게 세진은 뭘 당연한걸 묻느냐는 듯한 태도다,

 "뭐긴 뭐야- 들어가서 입어보라고~ 한벌씩 입고 나와봐, 나도 보고 살지 말지 결정해야지-" ... 이녀석 진짜 단단히 결심했나보다.

 길에있는 샵마다 들어서는 세진에 탓에 하임은 완전이 지쳤다. 그래도 끝까지 따라 나서야 했다. 한아름씩 골라주는 옷들... 몇년치 쇼핑을 한번에 하는 기분이다.

 

 

 

 -

 

 

 수없이 탈의실을 순회하고 나서, 어둠이 내려 앉은 거리- 반짝반짝 빛나는 야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만큼 하임은 지쳤다

 길에 있는 벤치에 두 손 가득했던 집을 내려놓고 자신도 앉는다..발이 너무너무 아프다 집요한자식.. 한시를 안 쉬어-

 

 "야.. 돈 쓰는것도 정도가 있지... 쇼핑중독이냐? 왜 내돈을 쓰고 왜 이렇게 내가 고생을 해야해~ 난 이렇게 많은 옷은 필요 없다구"

 

 잠시 벤치에 앉아 다리를 쭉 편다- 아이고 발바닥이야 물집 잡힌듯한 발바닥이 따끔 따끔- 새로 발 얻은 인어공주의 발이 이러했을까

 걸을때 마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했다고 하니 아마 이랬겠지.. 생각해보니 인어공주 책은 세진이가 내 5살 생일에 줬던 동화책이다..

 세진은 말 없이 물병을 건네며 옆에 앉는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을한다.

 

 "거의 다 했어- 야 이렇게 길 곳곳이 아이템 하나하나가 장인의 손길이 들어간데가 잘 있는줄 아냐-?

  온 김에 장만해야지 그러니까 평소에 깔끔하게 하고 다니면 좋았잖아? 원래 하나사면 줄줄이 사게 되는거야-"

 

 세진이는 이탈리아에 정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마치, 원래 여기서 오래 산 사람처럼..

 

 "그래-.. 덕분에 돌아갈떄 수화물 초과할것 같네- 오버차지 내야 될꺼야 이게 뭐야 진짜.."

 

 ... 엄청나게 늘어난 쇼핑백을 보며 , 좀 허무하다- 버는덴 오래 걸렸는데- 쓸떈 한나절이면 끝나네-

 이제 집 보증금, 그리고 적금 하나 남았나? 이번 여행에 적금 하나는 완전이 박살이 났다

 정말 오래 모은 돈인데- 허무하고 허무하구나- 긴 연애도- 모아둔 돈도- 끝나는건 이렇게 간단하다니

 요즘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 현실... 그리고 허무함-

 

 "참- 인생이 왜 이러냐-"

 

 세진이는 내 기분을 짐작했는지 뜬금없는 말을 꺼낸다-

 

 "너 그 이야기 알지? 좋은 구두가 좋은 길로 주인을 데려다 준단 말 말야-"

 말을 하며 머리를 쓸어넘겨주는 세진의 손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이성인데도 가까운 친구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동생보다 더 남매같은 우리- 불어오는 바람결이 시원하다

 

 "뜬금없이.. 왠 쌍팔년도 이야기셔-"

 

 "오늘 하루종-일 돈도 많이 쓰고 그래도 안 투덜거리고 잘 따라와줬으니- 내가 선물 하나 해 줄게"

 그러더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작은 상자하나를 꺼낸다

 짙은 네이비색의 메리제인 슈즈- 야트막 하지만 굽도 들어있다. 이래서 장인 장인 하는건가? 심플하지만 예쁘다.

 

 "대체 언제 샀어?? 계속 같이 있었는데?"

 세진이는 대답은 않고 그저 씩 웃는다.

 "자 운동화 벗어봐-"

 나는 냉큼 낡은 운동화를 벗어 던진다

 

 세진이는 섬세한 손길로 버클을 채워준다- 신발이 반짝인다-

 "한번 일어 서봐- 걷기 편한가-"

 굽이 있는데도 신은 가볍고 예쁘다. 뜻 밖의 선물에 조금 쑥스럽다, 고맙단 말이 나올락 말락

 "고,마"

 왠지 새삼 꺼내기 쑥쓰러운 말.

 

 "고맙다고?"

 

 

 "그래. 고마워..."

 

 

 "이젠 좋은 길로만 가라고- 어쨌든 새 출발이니까."

 나는 그저 피식 웃고 만다- 새 출발이라...

 그래 좋은 길- 좋은 방향 따뜻한 곳-.. 다시 내가 있고 싶은 곳.

 

 그런 곳으로 갈꺼야- 가끔은 무너질 지도 몰라- 전의 흔적이 눈을 잡아 가끔은 눈물 흘리고 주저 앉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제는 강해질꺼야 한방 먹었다고 바람결에 날리는 풍선마냥 흔들리지는 않을꺼야

 내 중심은 내가 될꺼야, 내가 나한테 무게를 둘 꺼야.

 

 가끔은 심한 바람이 불어 내가 고난을 겪거나 힘들어 눈물겨울때도

 내 자신은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게 내 몫을 해내고 내 무게를 키워 누군가에게 밀리는 일은 없도록 할꺼야,

 더는 나를 방치하지 않을꺼야 내 자신을 끊임없이, 그리고 또 새롭게 보살필거야

 속으로 나는 다짐했다. 이별하나 했다고 이탈리아까지 도망칠 일은 이제, 없도록해야지.

 

 "고마워 유세진-"

 

 세진은 눈짓으로 찡긋 해 보이고- 나는 여행온지 몇주 만에야

 이탈리아를 만끽하며 감정을 추스렀다- 발에 꼭 맞는 구두를 찾은 듯. 산뜻한 기분으로 마음을 다 잡았다.

 

 자 다시 시작이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한참만에 세진이와 마주보고 환하게 웃었다. 마치 어린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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