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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라니에스는 정말 라니에스인가
작가 : 사로야
작품등록일 : 2020.8.3

소설에서나 흔하게 겪는 일인 여자주인공한테 빙의를 했다.
원작 남자주인공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이 사랑했던 여자주인공인 라니에스는 이제 없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6.
작성일 : 20-08-05 15:56     조회 : 24     추천 : 0     분량 : 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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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나가야 한다는 하녀들의 말에도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한꺼번에 모든 걸 잊어버렸지? 잊어버리면 안 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잊어버렸다.

 부모님의 얼굴을 잊어버려서야 돌아가서 부모님을 만나면 알아볼 수나 있을까?

 이곳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돌아가서 찾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다.

 

 이대로 다 잊어버리면 어쩌지? 아니, 애초에 이곳에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원래 내 몸은 교통사고를 당했을 터였다. 어쩌면 호흡기에 몸을 맡긴 채 간신히 숨만 쉬고 있을지도 몰랐다.

 최악의 상황은 내 몸은 이미 죽어 없어졌다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거지?

 

 “아니야…. 돌아갈 수 있어, 돌아갈 수 있다고…….”

 

 자신의 고향으로 어쩌면 돌아갈 수 없다는 공포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대로 라니에스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라니에스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흐려졌다.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시녀들이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것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눈을 뜨자 어느새 바깥은 어두워져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기절했던 거지?

 이 세계에 와서 불편한 점은 이것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몇 시인지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

 원래 지내던 시계라면 침대 바로 옆에 핸드폰이 고이 놓여 있어서 몇 시인지 궁금하면 화면을 터치하면 됐었다.

 하지만 여긴 자신이 아는 세계가 아녔다.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꽉 막혀왔다.

 침대에서 일어서자 어떻게 안 것인지 하녀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가씨…! 일어나셨군요!”

 

 “지금 몇 시야…?”

 

 “저녁 6시가 조금 넘었어요.”

 

 “…내가 그렇게 오래 기절해 있었다고? 파, 파티는? 파티는 어떻게 됐지?”

 

 “시종에게 시켜 몸 상태가 좋지 못해 못 간다고 전언을 전해달라 부탁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누우세요.”

 

 “그래…….”

 

 이 순간에도 자신은 혹여 라니에스의 입지가 무너질까 불안해 파티가 어떻게 됐냐부터 묻게 됐다.

 자신은 라니에스가 아니라고 그렇게 부정하였으나, 이렇게 행동하는 것 자체가 라니에스다운 행동이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는 라니에스가 아닌 걸까, 하는 의문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네? 아가씨, 무슨 말씀 하셨어요?”

 

 “아냐,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이제 괜찮으니까 나가봐도 돼.”

 

 “하지만 또 쓰러지시면 어떡해요.”

 

 “진짜 괜찮아. 그러니까 나가봐.”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몸이 안 좋아지시면 설렁 줄을 당겨 불러주셔야 해요, 아셨죠?”

 

 하녀의 걱정스러운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하녀는 방 밖으로 나섰다.

 방에 혼자 남으니 그제야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째서일까, 왜 이렇게 한꺼번에 모든 걸 잊게 된 걸까?

 시간이 흘러가며 몇몇 사소한 기억은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억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자신에 대한 기억이 모두 사라지자 남는 건 초조함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내가 라니에스가 아니라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정말 라니에스로 살아갈 것 같아서.

 내가 나를 잊고, 그렇게 라니에스로 살아간다는 게 싫었다. 자신은 영원히 자신이어야 했다. 남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발 아무거나 좋으니까 떠올라…….”

 

 하다못해 손톱의 길이여도 좋으니까.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까 떠올라…….

 그렇게 간절하게 빌었건만,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가슴 아플 정도로 서러워 눈물이 흘러내렸다.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서럽게 울고 있을 때 노크 하나 없이 갑작스레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에드워드였다. 에드워드의 얼굴엔 걱정이 한가득 달려있었다.

 

 “라니에스…….”

 

 그가 부르는 내 이름에 나는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유일하게 나를 알고 있는 남자마저 내 이름을 모른다.

 라니에스가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그 작은 욕심 하나마저도 채우지 못한다.

 이곳에서 내 이름은 지독하게 낯설게 들릴 뿐이었다. 마치, 그 이름이 이곳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몸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은 겁니까?”

 

 “하나도…. 하나도 안 괜찮아요.”

 

 “어디 아픈 겁니까? 그런 거라면 의원을 불러와야…….”

 

 “전부 잊어버렸어요.”

 

 “…네? 라니에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또 라니에스. 그가 내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꾸 무언가 목 안에서 들끓는다.

 그것은 뜨거운 용암 같기도 하고 차가운 얼음 같기도 했다. 이것을 뱉어내면 최악의 결과만 낳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뱉고 싶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상처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괜찮아지기만 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말을 내뱉으면 최악의 상황밖에 더 되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간신히 모든 말을 가슴 안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내 원래 모습을 다 잊어버렸어요. 내 원래 머리색이 무엇이었는지, 눈 색은 어땠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

 

 “부모님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해요. 이러다 부모님의 이름도 까먹으면 어쩌죠?”

 

 “라니에스…….”

 

 “난 라니에스가 아니에요.”

 

 “…….”

 

 “그러니까 지금은 제발…. 제발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요.”

 

 지나칠 정도로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제대로 말했는지조차 모르겠다.

 에드워드는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나를 그저 끌어안아 다독여줬다.

 그가 라니에스의 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만큼은 그 온기에 기대고 싶어졌다.

 너무 오래 기대고 있지 않을 테니까. 그저 오늘만 빌릴 테니까……. 부디 라니에스가 지금만큼은 눈감아줬으면 한다.

 

 

 

 

 

 

 한참 울다 지쳐 잠든 라니에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에 대한 것을 전부 잊었다고 말하며 우는 여자는 가엾고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순간 그녀를 끌어안고 모두 괜찮을 거라고 달래주고 싶었던 마음은…….

 그저 이 여자가 슬퍼하지 않길 바랐다. 할 수 있다면 흘러내리는 눈물을 모두 닦아주고 품에 껴안아서 달래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라니에스는 아닐뿐더러 나 자신도 순간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는 마음에 단 하나의 사심도 없는 건가?

 나는 이 여자를 정말 라니에스와 다른 사람으로 보고 있는 건가?

 다르다고 생각해봐도 눈에 보이는 것은 내가 아는 라니에스였다. 그렇기에 종종 터무니없는 착각에 빠졌다.

 어쩌면 내 눈앞에 있는 게 진짜 라니에스일지도 모른다고.

 

 “하아…. 멍청한 생각이지.”

 

 나는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며 잠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지나치게 흘린 눈물로 인해 붉게 달아오른 눈가가 애틋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냉찜질하면 나아지겠지. 이따 하녀에게 차가운 수건을 가져오라고 명해야겠다.

 그리고 그녀가 깰 때까지 옆에 있어 준다면……. 이어가던 생각은 그녀가 희미하게 신음을 흘리자 멈췄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뭐라 중얼거리는 그녀는 악몽을 헤매듯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녀의 옆에 앉아 괜찮다고 말하며 손을 잡아주는 일밖엔 없었다.

 그 작은 손길 하나에도 그녀는 안심한 듯 내 손을 꼭 잡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잠든 그녀의 얼굴을 하염없이 내려다봤다. 이대로 그녀의 입술에 입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내가 이상한 걸까.

 

 “라니에스.”

 

 그녀이자 그녀의 이름이 아닌 이름을 불러본다. 지금 내 마음은 누구의 것인 걸까?

 누구에게 키스하고 싶다고 느끼는 걸까? 내 연인이었던 라니에스? 아니면 라니에스의 안에 있는 그녀?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 쳐도 그게 정말 그녀만을 사랑하는 걸까? 라니에스의 외향에 영향받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런데도 내가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걸까…….

 

 “…당신은 여기 있습니다.”

 

 지금 바로 내 옆에 당신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설령 라니에스의 몸 안이라고 해도.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아요. 당신의 외모와 부모님의 이름이 당신을 결정하는 모든 것이 아님을 당신도 알 것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만큼은……. 평범한 다음 날 아침에도 제대로 이곳에 존재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라니에스처럼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사라지는 것만큼은 그만둬요. 당신마저 사라져버린다면 난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내 곁에 자는 게 기쁘다고 느껴지면…. 그건 내 욕심인가요?”

 

 당신이 내 곁에 있어 주면 하고 바라는 것도 내 욕심인가요?

 차마 깨어 있는 당신에겐 물을 수 없는 물음들을 잠든 당신의 얼굴 위로 쏟아낸다.

 당신이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나는 어쩌면 욕심내버릴지도 모르니까.

 

 나도 알 수 없는 이 마음을 꺼내 보이며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무릎 꿇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이 당신에게 어떻게 비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이 마음은 전부 내 몫이라는 걸, 숨겨야 한다는 걸 잘 아니까.

 차마 들리지 않을 진심을 이렇게나마 내뱉는 비겁하고 어리석은 나를 당신에겐 보이지 않을 테니까….

 

 “부디 오늘 밤만 용서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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