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엎드렸던 원길이 고개를 들었다. 남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울
렸다. 환영이 보이는 듯 고개를 젓고 눈을 부릅떴다. 미령과 성현이 나란
히 앉아 뜨거운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울렁거려 심장을
때렸다. 쌕쌕... 호흡이 거칠어졌다. 성현이 미령 옷 속에 손을 넣고 애
무했다. 미령이 까르르 웃고 즐거워했다. 안 돼... 안 돼... 가위에 눌리
는 것처럼 입밖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손을 뻗어 막으려
했지만 거리가 멀었다. 이어 성현과 미령이 보란 듯이 원길을 향해 웃었
다. 하하하... 하하하... 원길이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다.
"회장님!! 회장님!!"
남비서가 원길을 흔들어깨웠다.
식은땀을 흘린 원길이 눈을 떠 실내를 둘러봤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책
상을 내려 봤다. 약병에서 알약이 쏟아져 있었다. 남비서가 병에 알약을
하나씩 담았다.
"병원에 가시죠"
"아냐... 아냐... 기운이 없어서 그래..."
"이 약 드시고 점점 안 좋아지는 거 아닙니까."
"요새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래..."
약병을 서랍에 넣고 숨을 가다듬었다.
"남비서도 쉬지 않고... 무슨 일 있나?"
"저 회장님..."
"그래 말해봐!!"
남비서가 정색하고 뜸을 들였다.
"잠시... 여행이라도 다녀오겠습니까."
"이 사람이 무슨... 내 한가롭게 여행이나 다닐 형편이야.."
"검찰이 조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조사? 무슨... 아 푸른 눈을 가진 거머리 말인가?"
"아니요... 회장님을..."
"날?"
원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에 시선을 뒀다.
"이미 상당한 증거를 확보한 모양입니다."
"증거라니!! 증거가 어딨다고!!"
"연구진 몇 명을 불러들여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조사했답니다. 아무래
도 회장님을 타켓으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
올 것이 왔군... 원길이 애써 담담해했다.
"주가조작 혐의까지 받고 계시니 억울하지 않습니까. 짧게 몇 일이라도
피해 계시는게......"
"사이버수사대장한테는 연락이 없었나..."
"없었습니다."
"난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네....."
원길은 단호히 말하고 남비서를 내보냈다.
사진 속 故 장 회장에게 용서를 빌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못난 아들... 현명하게 대처하도록 도와주세
요..."
원길이 비어있는 집이라도 미령은 가사 일을 도왔다. 언젠가 원길이 자신
을 용서하고 저 문을 열고 들어오리라 확신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미령
이 힘겹게 받았다.
"여보세요...."
"미령이니?"
"교수님이 웬일이세요?"
"응... 할 말이 있어서... 지난번에 미령이가 가져온 약 있지."
"예..."
미령이 초조하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미령이가 약을 챙기다 알약을 떨어뜨렸어. 그래서 아는 전문의한테 의뢰
해봤어."
"............"
"그랬더니 브롬페리돌이라는 정신분열증 치료제야..."
"정신 분열증이요?"
"응... 수면 진정 작용이 있는 반면 강력한 환각 망상 작용을 해. 하루
50mg 까지는 복용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을 넘을 경우 위험할 수 있거든.
누가 복용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어? "
"죄송해요......"
"알았어. 그럼 미령이가 그 사람한테 중단하도록 권해. 전문가 조언에 따
라 복용해야하는데 아무래도 암거래 같은 데서 구했을 가능성이 크거
든..."
"감사합니다..."
"내가 뭘... 이제 개강이니까 학교에서 봐..."
미령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되새기듯 말했다.
정신 분열증이라고....
남편은 멀쩡한데 황박사님이 어떻게 그런 약을.....
다시금 불안감이 엄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