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령이 2학기 복학을 앞두고 학교에 찾았다. 과사에 들러 조교를 만나 그
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교수실로 갔다. 교수가 그녀를 보자 반가워
껴안았다. 유명인이 된 제자를 보고 교수는 여러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
았다.
"교수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
"응.. 무슨 말인지 해봐."
핸드백에서 작게 포장된 흰 봉투를 내밀었다.
"무슨 약인지 할 수 있을까요?"
교수가 포장을 펼쳐 약을 봤다.
돋보기 안경을 끼고 손톱 끝으로 알약 하나를 집어올렸다.
"누가 이 약을 먹지?"
"아는 사람이요..."
"이렇게 위험할 걸...."
"위험한가요?"
"신경안정제인데 다분히 마약으로 사용되고 있지."
"마약....이요....?"
미령이 놀라 약을 뚫어져라 봤다.
"응. 틀림없이 마약이야.. 시중에선 구하기 어려울텐데... 누가 이런 약
을 복용하고 있을까?"
교수가 미령에게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령이가 원한다면 전문의한테 의뢰해줄 수 있어."
미령은 떨리는 손으로 약을 주섬주섬 챙겼다.
"괜찮아요...."
어지럽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정말 괜찮아?"
"가봐야 할 때가 있어요!!"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미령을 배웅했다. 미령은 쫓기는 사람처럼 대
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 기사가 시동을 걸고 룸미러로 미령을 봤다. 파
르르 입술이 떨렸다.
"황 박사님한테 가주세요."
종합병원에 도착한 미령이 한걸음에 진료실로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장기간 출장중이세요."
"출장이요?"
"미국 세미나에 가셨어요."
"그럼 언제 돌아오시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의국비서가 짧게 인사했다.
미령이 허무하게 진료실을 나왔다.
고의적으로 마약을 투약한다? 왜?
암만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 앞서 생각하는 거 같아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불길한 예감을 놓칠 수 없는 듯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연희동이요.. 아니 회사로 가주세요..."
원길한테는 꼭 물어보고 싶었다. 만약 모른다면 투약을 중단시키고 싶었
다.
"아 씨바.. 우리는 뭐 좋아서 온 줄 알아요?"
비서실은 소란스러웠다. 오전부터 방문중인 용주골 아가씨들 덕분이었
다. 소라는 슬쩍 미소짓고 있었지만 남비서는 난감하게 그녀들을 막았
다. 요란하게 치장을 한 아가씨들을 결혼식장에도 봤지만 그때도 미령이
친구가 아니라고 딱 잡아뗐었다. 폭력적으로 위협해오자 남비서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경비실에 연락해."
"아뇨. 제가 잘 말해볼게요."
"소라씨가?"
"혹시 알아요. 정말로 여사님 친구분들일지...."
소라가 그녀들을 데리고 나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남비서가 회장실로 들어섰다.
"누가 왔나?"
"저... 그때 그 여자들이요..."
"누구 말인가?"
"결혼식때..... 친구들이라고 우겼던 여자들 있지 않습니까?"
"아..... 근데 또 왔어?"
"회장실에서 연락받았다고 막무가내 들이닥쳤습니다."
"연락을 받았다고...?"
"뭐.. 지난번 일로 사과할테니 회장실로 와달라고 했답니다. 말도 안되
는 소리죠.."
"그래서 지금 어딨어?"
"소라씨가 달랜다고 데리고 나갔습니다."
"불러오게..."
"예? 만나시려구요?"
"친구라고 하지 않나. 어디 차근차근 얘기를 들어보고 이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막아야지..."
원길이 태연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