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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더럽(The Love)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9.9.3


"나, 다른 사람 같이 좋아해도 돼?"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관계와 사랑
그것의 시작,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하여.

#대학생 #캠퍼스물 #악의꽃 #섹슈얼리티 #조별과제 #폴리아모리

 
3. 시간을 돌리는 마법의 주문, 워프(1)
작성일 : 19-09-10 19:40     조회 : 35     추천 : 0     분량 : 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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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솜 같은 햇살이 눈가에 살랑거렸다. 따사롭고 포근한, 아직 뜨거워지기 전의 볕이었다. 아침이었다.

 

  막 잠에서 깨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해였다.

 

  “아직 자?”

 

  “……안 자.”

 

  “지금 깼나보네. 왜 이렇게 게을러?”

 

  시계를 보니 9시가 겨우 넘어 있었다. 가끔 주말 아침에 해에게서 전화가 오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오늘은 평일이었다.

 

  “뭐야…… 밖이야?”

 

  수화기너머로 들려오는 소음이 집에서 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해에게 있어 오전 9시는 집밖은커녕, 이불 밖도 벗어가기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밖이지 그럼. 누가 여태 집에서 뒹굴고 있겠어.”

 

  “……왜?”

 

  “왜? 왜 밖이냐는 질문이야? 아니면 왜 전화했냐는 질문이야?”

 

  “둘 다.”

 

  “나 지금 강남이야.”

 

  “강남?”

 

  “응. 토익 학원 왔어.”

 

  “……토익?”

 

  나는 해의 저 말이 정말이지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자격증이나 영어점수를 따는 일이야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에게 있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대부분 학기가 끝나자마자 시작하기 마련이다. 방학이 다 끝나갈 무렵에서야 갑작스레 학원을 등록했다고 하는 게 선뜻 이해되질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토익이니 자격증이니 하는 걸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해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것은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해를 보고 있다 보면 문득문득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나는 때때로 그것을 동경하듯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런 해가 다른 사람들과(혹은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토익학원에 간다는 말은, 그래서 그런지 무척이나 생뚱맞게 들렸다. 차라리 무슨 리투아니아어나 슬로베니아어 같은 것을 배우러 언어교환을 왔다라고 말을 했다면 오히려 먼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원래 요번 방학에 준비하려고 했어. 조금 늦어진 것뿐이야.”

 

  “개강이 3주도 채 안 남았는데?”

 

  그러자 해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2주 완성이야. 빡세게 하고 빨리 끝내버리려고.”

 

  “방금 등록한 거야?”

 

  “아니. 등록은 저번 주에 했고 오늘 당장 수업.”

 

  나는 조금 의아해졌다. 수업 전에 전화를 했다고 하기엔 시간이 조금 애매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아직 수업 시작 전이야?”

 

  “시작은 아까 했지. 갑갑해서 나왔어. 강사가 들어오자마자 처음 한 말이 뭔지 알아? 지금 많이 늦은 거 다들 알고 있죠? 죽자고 달려들지 않으면 2주 그냥 허송세월되는 거예요…… 근데 그걸 듣자마자 확 뛰쳐나가고 싶은 거 있지. 괜히 답답하고 갑갑해져서. 뭐라 뭐라 말은 하는데 집중은 안 되고, 숨은 막혀오고…… 그래서 그냥 나와 버렸어.” “아하…… 그래서 땡땡이 치고 기껏 찾아간 데가 화장실이야?”

 

  해의 음성이 줄곧 울리고 있었던 데다가, 마침 변기 물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응, 학원 화장실. 어쨌든 다시 들으러 가긴 가야 되니까…… 근데 시간이 너무 안가. 무슨 교장선생님 훈화방송 듣는 것 같아.”

 

  “그것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법이야. 게다가 오늘이 첫날 아니야? 뭐 벌써부터 지겹다고 땡땡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 날씨 좋은 날, 아침부터 비좁은 강의실에 수십 명이나 모여 앉아선 명사, 형용사, 동명사 따위를 구분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끔찍하지 않아? 그것도 자그마치 4시간 동안이나!”

 

  해가 울분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럼 학원 같은 델 가지 말고 혼자서 공부하면 되잖아?”

 

  물론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야 혼자면 잘 안 하게 되니까…… 또 좀 불안하기도 하고.”

 

  “그럼 뭐 별 수 없네. 좀만 참아. 어차피 2주면 끝이라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등록한 건데, 2주는커녕 2분도 참기 힘들어…… 나 어떡해?”

 

  난들 무슨 수가 있겠냐고 말하려 하다가도, 곰곰이 다시 되짚어보니 아, 지금이 바로 뭇 여성들이 말하는 ‘해결책이 아닌 공감이 필요한 상황‘이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들었다.

 

  “그래…… 너 많이 힘들겠다.”

 

  “……응?”

 

  “아, 나 같아도 정말 힘들 것 같아. 2주를 어떻게 버텨. 지루한데다 잠도 오고…… 끔찍하다 끔찍해.”

 

  “……지금 뭐하는 거야?” 해의 물음엔 미묘하리만치 서늘한 한기가 배어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긴 했으나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알지 못했다. 혹시나 영혼이 부족했나싶어 침착하게 몇 마디 더 덧붙이려 할 즈음,

 

  “내가 지금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너한테 전화건 줄 알아? 나 어떻게 하냐고, 어? 나 어떻게 해야 되냐니까!?”

 

  나는 갑작스런 해의 호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내가 뭘 해줄 수 있다고.”

 

  그러자 해가 “아이, 진짜! 너 평소 말하는 거 들어보면 그래도 좀…… 도움 된단 말이야. 이것저것……” 하며 우물쭈물 말꼬리를 흐렸다.

 

  “……음?”

 

  순간 나도 모르게 헤벌쭉 미소가 지어졌다. 해의 칭찬은 희소한 만큼 듣기가 좋았다.

 

  “허참, 좋은 말 많이 해줘도 코웃음치고 빈정거리기나 하더니 갑자기 웬일?”

 

  그러자 겸연쩍었는지 “뭐래…… 아, 그래서 나 어떻게 하냐구우?” 하며 해가 볼멘소리를 냈다.

 

  해의 투정이 자극제라도 되었던 걸까, 때마침 잊고 지내던 옛 기억 하나가 어렴풋 머릿속에 떠올랐다. 옛 기억속의 나는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에 불과했지만 놀랍게도 시간에 관한 아주 특별한 마법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이전에 해주었던 훌륭한 조언들과 마찬가지로 문제에 부닥쳐 힘겨워하는 해에게 제법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러니까 나한테 전화를 건 것 말이지.”

 

  “또 뭐래…….”

 

  “이를테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거 아냐. 지루하고,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들을 빨리빨리 휙 감아버리고 싶은 거, 맞지?”

 

  “……그런데?”

 

  “운 좋은 줄 알아. 사실 내가 꽤나 특별한 비법 하나를 알고 있거든.”

 

  “……참나, 그게 뭔데?”

 

  해가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물론, 쉽게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아…… 근데 이건 나만 알고 있는 거라 좀 아깝긴 한데…….”

 

  “이씨…… 무슨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려는 거 아냐? 그냥 빨리빨리 말해봐.”

 

  해의 재촉에 나는 만족스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기분 좋게 우쭐함을 즐겼다. 나만의 비법을 알려줄 땐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어느 정도 거들먹거릴 필요가 있는 법이다.

 

  “아직 화장실 안이지? 잘 됐네.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일수록 좋거든.”

 

  “응? 여기 화장실이 그리 편안하다거나 익숙하진 않은데…….”

 

  “어쨌거나 앞으로 자주 갈 것 아니야 거기도.”

 

  “뭐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그대로인 공간이어야 해. 그게 포인트거든. 그런 면에서 화장실은 굉장히 우수한 곳이지.”

 

  “……뭔데? 뭐하는 건데?”

 

  “우선” 하고 말한 다음, 나는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진지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약간의 뜸 들이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의 마법은 대개의 효과적인 방법론들이 그러하듯(혹은 종교에서 믿음을 요구하듯), 듣는 이가 진지한 태도로 임하지 않을 경우 그 즉시 효력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네가 바라는 미래의 순간을 상상해야 돼. 최대한 구체적으로. 수업 끝나는 시간이 몇 시야?”

 

  “……수업? 끝나는 건 2신데…….”

 

  “좋아. 지금부터 2시 무렵의 네 모습을 상상해보는 거야. 어쨌거나 수업이 끝났으니 꽤나 홀가분한 마음이겠지?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있고, 드디어 끝났다며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또 뭐 손을 씻는다거나 볼일을 본다거나…… 아, 지금 네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이 어디야?”

 

  “뭐야 진짜…… 내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 음…… 벽…… 아니, 지금은 두루마리 휴지를 보고 있긴 한데…….”

 

  “좋아 휴지. 자, 그럼 지금부터 2시 무렵에, 네가 앉아있는 바로 그 칸에서, 지금과 같은 자세로, 그 휴지를 보고 있을 너를 떠올리는 거야. 휴지의 문양 같은 것을 기억해 두는 것도 좋아. 그러고 나서 외우는 거야, 주문을.”

 

  그러나 해 쪽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내 말을 받아들이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듯싶었다.

 

  “어…… 음…… 근데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건지……?”

 

  “의심은 잠시 접어두길 바랄게. 방해만 되거든. 도와달라는 것 아니었어?”

 

  내 태도가 당당했던 것 때문인지, 해는 미심쩍어 하는 마음을 억지로 눌러두는 것처럼 보였다.

 

  “주문…… 갑자기 웬 주문이라니…… 그래서 주문이 뭔데?”

 

  “그건 개인마다 임의 설정이 가능한데, 내 경우엔…… 워프라고 해.”

 

  “뭐? 워프?”

 

  “워프. 음…… 타임워프 할 때 그 워프야(이때 해가 킥킥거리며 비웃었다). 어릴 때 만들어두었던 건데…… 웃지는 말고. 어찌됐건 반드시 주문을 외워야 해. 그때부터 시작된다는 의미거든. 그러니까 ‘시간 빨리 감기’ 말이야.”

 

  “오, 우와…… 시간 빨리 감기…… 근데 그게 끝이야?”

 

  “설마. 지금부터가 핵심인데. 잘 들어. 어쨌거나 너는 변함없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여전히 힘겹고 고통스러울지도 모르지. 하지만 한 번 워프를 걸어두면, 조금은 그게 덜어질지도 몰라. 내 경우엔 그랬거든. 그리고 시간이 지나 2시가 됐을 때, 아까 이루어지리라 상상했던 그대로를 네가 행하면 돼.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지. 그럼 거짓말같이 주문을 외우기 직전의 상황이 네 머릿속에 오버랩 될 거야. 그때의 지루함과 끔찍함을 모두 포함한 채로. 그러면 그 즉시 깨닫게 되는 거지. 바라던 시간이 도착했다는 것을! 너는 더 이상 지루하지도, 끔찍하지도 않아. 왜? 학원 수업은 이미 다 끝나있으니까! 자, 이러면 워프가 성공한 거야.”

 

  “……대체 뭔 소리야.”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결코 주문을 외웠다는 걸 중간에 떠올려서는 안 돼. 물론 이것은 조금의 훈련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아예 까먹고 있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 그래서 미래의 네 행동패턴을 추측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상황을 설정해두는 게 베스트야. 문득 떠올려낼 수 있도록.”

 

  그러나 해는 뭔가 마땅찮다는 듯 계속해서 들릴 듯 말 듯한 신음을 흘렸다. 할 말은 많은데 내가 신나 얘기하고 있으니 딱히 뭐라 하진 못하고 어물쩍거리고만 있는 것 같았다.

 

  “근데 효과가 있긴 한 거야?”

 

  “때론 지나칠 정도로. 나는 중학교 때 이걸 남발하다 결국 땅을 치며 후회했던 적이 있어. 무려 5년이란 시간이 훌쩍 날아가 버린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군대에서 정말 힘들 때 잠깐 쓴 것 말고는 장시간 봉인해 두고 있었지.”

 

  “아…… 뭐…… 그래. 한 번 해볼게.”

 

  해는 그러고 대답한 다음에도 나지막하게 몇 마디 더 중얼거렸는데, 어찌된 게 내 귀에 쏙쏙 다 들릴 정도였다. 난 또 무슨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고…….

 

  “현실적인 조언? 야, 이건 훨씬 더 대단한 거야! 마치 마법과도 같은 거라고!”

 

  당장의 반응은 시원찮은 것이었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얼마 뒤, 해가 놀라운 탄성을 동반한 채로 내게 연락해 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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