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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더럽(The Love)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9.9.3


"나, 다른 사람 같이 좋아해도 돼?"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관계와 사랑
그것의 시작,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하여.

#대학생 #캠퍼스물 #악의꽃 #섹슈얼리티 #조별과제 #폴리아모리

 
2. 해는 때론 바람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낼 때가 있다(4)
작성일 : 19-09-08 00:59     조회 : 48     추천 : 0     분량 : 4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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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해의 원룸 화장실 안에서 나는 계절학기 교양수업의 과제주제였던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에 대해 떠올렸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하게 될 것이란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 영웅의 행로를 걸으며 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결국 자신에게 지어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마는 비극의 주인공. 모든 비극 작품의 시작이자 끝이라 불리는 이 이야기를 가지고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것이 수강생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때 내가 써냈던 답은 다음과 같다.

 

 

  -세상사 다시없을 비극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인간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며 무도한 생각을 일삼던 오이디푸스였지만 운명을 맞닥뜨리고 절망하게 된 순간, 그는 그 자신이 아닌 두 딸을 위해 눈물 흘린다. 자신의 주체성이 온전히 발현됐다는 점에서 본다면, 스스로 두 눈을 찔렀던 그때 그 순간이야말로 오이디푸스의 진정한 삶이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비극의 끝은 뒤집어놓고 보면 희극의 시작과도 같다.

 

 

  복도 계단에서 해에게 일격을 맞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그때의 순간이 쉬이 잊히지 않을 끔찍한 기억으로 남으리라 예상했었다. 그 감촉, 그 냄새, 그 처참한 서글픔……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건 거절을 용납지 않는 해의 그 막무가내 고집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해의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부터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무엇인가가 내 오감을 확 사로잡았다. 그것은 두 눈에 비친 싱크대 한가득 쌓인 설거지거리도, 여기저기 뒤숭숭하게 널린 옷가지들도 아니었다. 진득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농후한, 어느 정체 모를 냄새였다.

 

  그것은 뭐랄까…… 향수 향도 아니고 섬유유연제 향도 아닌 것이, 마치 바닐라 향 로션을 민트 향 나는 방향제 통에 넣고 세 달간 숙성시켜 놓은 것만 같은 냄새였다. 또한 그간 해에게선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그 생각이 든 순간, 어째선지 나도 모르게 잠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잠시간 내 코를 간질거리던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는데, 놀랍게도 내 몸에서 나던 역한 냄새의 대부분을 함께 데려가주는 마법을 부렸다(물론 그즈음 내 코가 완전히 맛탱이가 가버렸던 것일 수도 있다).

 

  “좀 지저분해.”

 

  “이 정도야 뭐.”

 

  “여기가 화장실. 일단 들어가 있어. 옷 갖다 줄게.”

 

  화장실은 샤워호스와 세면대와 변기가 일렬로 딱딱 붙어 있는 형태로, 세 명 이상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협소했다. 안쪽엔 몇 가지의 세면용품들이 세면대 거울 바로 아래쪽에 진열되어 있었고, 변기엔 아동용 변기커버가 다소곳이 씌어져 있었다.

 

  나는 거울 속에 들어있는 한 추레하기 짝이 없는 거지를 보며 지금까지의 일들에 대해 곰곰이 되짚어봤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에 굳이 노곤한 몸을 이끌고 와줬더니 야동에, 오바이트에, 고함쳐, 울어, 드러누워…… 거기에다 고생고생하며 집까지 데려와줬더니 보답이라고 돌아온 게 이토록 무지막지한 폭발물이야. 분명 전에 없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나야 마땅한 상황인데…… 희한하게도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가 않다?

 

  아니, 나쁘기는커녕 왠지 모를 설렘과 야릇함이 번져오면서 외려 바람 든 것 마냥 들뜨는 기분이었다. 여자애의 비밀스런 사적공간에 침범하듯 성큼 들어와 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의지완 관계없이 자연스레 시작된 은밀한 망상 때문에? 위화감 없는 침입과 기묘한 설렘, 그리고 그 사이 숨어 있던 해의 보드라운 살결의 기억…… 그리하여 그즈음에 나는 ‘오이디푸스 왕’에 대해 떠올렸던 것이다.

 

 

  자, 마치 운명처럼 비극을 맞닥뜨린 나의 자아여 말해보라. 짜증과 분노와 서글픔으로 검게 얼룩진 이때, 갑작스레 번져온 이 묘하디 묘한 설렘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대답해보라, 거지 청년이여. 온전한 주체로서의 너는 진정 무엇을 욕망하고자 하는 것이냐!

 

 

  “저기, 문 열어도 돼?”

 

  “어!?

 

  때마침 문이 살짝 열리면서 옷을 든 해의 손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남동생이 저번에 와서 두고 갔던 거. 사이즈 맞을 거야. 씻고 있어 난 저기 복도 좀 치우고 올 테니까. 근데 속옷은 없어…… 괜찮지?”

 

  “어…… 어.”

 

  이윽고 화장실 문틈으로 해가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재차 거울을 바라보았다. 목덜미부터 시작해 팔 아래, 다리부분에 이르기까지 누런 얼룩이 군데군데 져 있었다. 옷은 말할 것도 없었다. 눈가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고, 피부는 메말라 보였다. 이래저래 지치고 피곤한 얼굴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얼어 죽을.’

 

  문득 잊고 있던 피로감이 온몸을 강타하면서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그 모든 공상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찝찝함과 역한 냄새들이 다시금 내 주변을 채워왔다.

 

  나는 서둘러 옷을 벗어던지곤 샤워기를 틀었다. 물이 뜨거워지길 기다릴 여유조차 없었다. 쏟아지는 물벼락 아래로 냅다 머리를 들이미니 벼락 맞은 것 마냥 온몸이 짜릿했다. 몸에 쌓인 불쾌함이 일거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대충 다 씻고 나왔으나 웬일인지 해가 보이질 않았다. 아직 복도를 치우는 중인가 싶어 나가려던 차에 불현듯 화장실 바닥에 내팽개쳐놓은 옷 생각이 났다. 우선 그것들부터 처리해야 할 듯싶었다.

 

  설거지거리들이 그득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막 인상을 찌푸릴 만큼 더러운 주방은 아니었다. 때가 끼기 쉬운 가스레인지 주변도 말끔했고, 그릇 정리도 잘 되어 있었다.

 

  나는 ‘실례일 순 있겠지만 크게 상관은 없겠지’ 하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부엌서랍을 뒤졌다. 기대와는 달리 비닐봉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평소에 내가 그런 곳에 모아뒀던 까닭에 당연히 해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서랍 속에는 배달쿠폰을 모아놓은 통과 젓가락 두어 개, 그리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벗어서 그대로 넣어 둔 것 같은 양말 한 켤레와 검정색 실크 팬티 하나가 들어 있었다.

 

  “뭐하는 거야!”

 

  그래, 왠지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검정 실크 팬티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손이 갔고, 그걸 들어 올린 순간 거짓말처럼 해가 들어왔던 것이다.

 

  해는 내 손에 들린 팬티를 보곤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그…… 비닐봉지 찾다가…….”

 

  “뭐야! 이거 어디서 난건데!?”

 

  “아, 여기…….”

 

  나는 손가락으로 주방서랍을 가리켰고, 그와 동시에 해의 눈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이익!”

 

  해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양말과 팬티를 화장실 안쪽으로 급히 던져 넣었다.

 

  “……흥! 다 씻은 거야? 비닐봉지는 왜?”

 

  “아…… 저기 내 옷 좀 담아가려고.”

 

  “됐어. 내가 빨아서 다음에 줄게.”

 

  “아냐.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줘도 돼. 괜히 더 번거로워져.”

 

  “싫어. 내가 빨아서 줄 테니까 너 오늘은 그냥 가.”

 

  해의 얼굴엔 쉬이 거역하기 힘들 정도의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그래, 아무렴 어떨까.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해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하더니, 내게 잠깐 앉으라고 말했다.

 

  “뭐라도 마실래?”

 

  “아니…… 그냥 물이나 있으면 줘.”

 

  집이 워낙 좁았던 탓에 침대와 책상 자리를 제외하곤 거의 남는 공간이 없었다. 내가 앉을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자 해가 그냥 침대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그래도 발은 올리지 마!”

 

  침대 위엔 녹색의 아기자기한 곰들이 그려진 얇은 이불이 깔려 있었고, 그 위로 크고 작은 인형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내 몸의 반만 한 곰돌이 인형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그것은 물론 그 인형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저걸 한 번 안아 봐도 될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해가 물과 오렌지 주스와 비타민C 2알을 챙겨가지고 왔다.

 

  “비타민C?"

 

  “피곤한 것 같아 보여서. 건강해지라고.”

 

  나는 ‘비타민 C가 보장해주는 건강이라야 괴혈병 예방 정도에 불과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해의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곧바로 한 알을 삼켰다.

 

  “두 알 다 네 거야.”

 

  “어…… 두 개나?”

 

  “네 거야.”

 

  그렇게 말하는 해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결국 한 알을 더 삼켰다.

 

  “이것도 다 마셔.”

 

  비타민C 다음엔 오렌지주스였다. 비타민C를 무슨 만병통치약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 마셔.”

 

  그것까지 다 비우고 나자 우리 둘 사이엔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기에, 나는 그 침묵의 시간 동안 해의 방안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었다.

 

  책상 바로 위 벽면에는 노인정에나 걸려 있을만한 촌스런 디자인의 달력과 어느 이름 모를 외국인 모델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자그마한 세계지도 하나가 붙어 있었는데, 군데군데 빨간색 압정이 박혀 있었다. 아마 가봤던 곳이나 가려는 곳을 표시해둔 것 같았다. 책상 위엔 기본 화장품(스킨로션) 몇 가지와 컴퓨터와 작은 거울이 하나 놓여 있었으며, 바로 옆 책장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전집과 문학고전 몇 가지, 그리고 자기계발 서적 두 권과 여러 경영학 관련서적들이 꽂혀 있었다.

 

  “악의 꽃?”

 

  “알아?”

 

  “몰라. 그냥 표지가 독특해서.”

 

  “개정판이야. 나도 표지 때문에 저걸로 골랐어.”

 

  나는 냉장고 위에 올려져있던 「악의 꽃」이란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겉표지엔 새빨간 꽃송이들 사이로 사악하게 웃고 있는 한 소녀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무슨 책인데?”

 

  “시집이야. 아주 더럽고 추악한 것들에 관한…… 그런데 그만큼 아름답기도 해. 엄청 유명한 책인데 이거. 시인의 왕 보들레르, 몰라?”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나중에 한 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오늘 가져가도 돼. 난 몇 번이나 읽었어.”

 

  “어, 정말?”

 

  나도 어느 정도 책 욕심이 있는 편이라 그 말에 반색해선 얼른 책을 챙겨들었다. 시완 그다지 친한 편이 아니었으나 왠지 모르게 끌림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리고 다시, 언제 사라졌었냐는 듯 침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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