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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더럽(The Love)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9.9.3


"나, 다른 사람 같이 좋아해도 돼?"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관계와 사랑
그것의 시작,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하여.

#대학생 #캠퍼스물 #악의꽃 #섹슈얼리티 #조별과제 #폴리아모리

 
1. 진흙탕 속에서 피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3)
작성일 : 19-09-04 22:17     조회 : 33     추천 : 0     분량 : 7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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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로 돌아온 나는 새삼 개운해진 마음으로 노트북을 켰다. 배도 상쾌했고 기분도 좋았다. 이대로라면 미루고 미뤄왔던 교양수업의 과제를 해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예술_그 경계를 가르는 전복에 관하여]

 

  처음 주제를 들었을 때부터 떠오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바르셀로나에 있는 그 이름도 유명한 성가족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두 달간 다녀온 유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두 가지 중 하나였다(다른 하나는 모나리자).

 

  다만 나를 반하게 했던 아름다움이 교수님에게까지 설득력이 있으려면 어쨌거나 주제와의 적합성을 맞춰야 했으므로, 나는 그것을 봤을 때의 놀라움을 ‘전복’이라는 키워드와 연결시키기 위해 궁리했다. 가령, ‘예술에서의 전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그 정의에 부합하는 예술로서 가우디의 건축이 합당한가?’에 대한 추론까지.

 

 

  -예술에서의 전복이란 무엇인가.

 

  시대의 통념을 뒤엎는 새로움을 말하는 것인가? 강압에 의한 침묵을 깨는 저항의 외침인가? 그도 아니면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구분지어 버리는 또 하나의 잣대에 불과한 것일까?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이전과 다른 무엇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다를 뿐 아니라 힘을 가지고 있어 후대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작품 자체의 질료나 기법의 새로움을 통해 전복을 이뤄낸 경우도 있고, 시대의 금기를 꿰뚫는 통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가도 있다. 두 가지 경우가 함께 진행된 경우도 물론 존재한다.

 

  그렇다면 가우디는 예술사에서 어떠한 전복을 일으켰을까?

 

 

  여기까지 적었을 무렵,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은 무척이나 은밀한 것이어서, 때마침 창문으로 비쳐든 불청객 같은 햇살을 피하려 불쑥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결코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나는 시선의 진원지를 찾아보았다. 왼편 테이블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커플, 그 건너편에서 두 개의 테이블을 붙여놓고 공부하는 두 명의 여학생,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던 두 명의 점원, 그 앞에서 메뉴를 고르기 위해 고심하고 있던 두 명의 아주머니…… 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어쩌다 잠시 머무른, 지나가는 시선의 흔적이었을 뿐이리라.

 

  나는 다시금 과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우디의 건축을 보고 현대 건축의 출발이라 보는 관점도 있고 단순히 이전과는 ‘다름’ 정도에 그치는 시각도 있다. 주로 아르누보 양식이나 이슬람 건축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지만 이전의 어떤 선례와도 연결되지 않는 유일무이함으로 그의 작품을 보는 경향도 존재한다.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이토록 말들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그의 특출함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의 영향력이 후대의 예술사적 방향을 뒤엎어 버릴 정도의 강력함을 지녔는가에 대해선 다들 이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복의 대상으로서는 조금 부적합하다는 얘기일까?

 

  경계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

 

 

  또다시 예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번엔 조금 전과 달리, 그다지 희미하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진 않았지만 이미 저편 너머 시선의 주인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토록 진득한 눈길을 받아본지가 도대체 얼마만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것은 강렬한 것이었다.

 

  내가 막 고개를 들어 올리려던 찰나였다.

 

  “저…….”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 이는 내게 티슈를 받고 커피를 내주었던 바로 그 여자애였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있을까 하다가 자꾸 눈에 걸려가지고…… 말 안하고 있다 갑자기 눈 마주치면 어색해질 것 같기도 하고, 또 궁금한 것도 있어서…….”

 

  “궁금한 거요?”

 

  “여기 계셨으면서 휴지는 왜 사 오신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곁에 서서 물었다.

 

  “아……” 하고 입을 연 와중에도 나는 잠시간 멍해 있었다. 아니, 사실은 무척이나 당황해있던 상태였다. 이렇듯 잘 모르는 여성이 느닷없이 말을 걸어온 경험도 처음이었을 뿐더러, 질문 자체도 대답하기에 난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물어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두루마리 휴지는 제가 급해서 못 기다릴 것 같았고, 저기 있는 1회용 냅킨은 제가 직접 사용해봐서 아는데 까끌까끌해서 감촉도 별로인데다 얇아서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가 있거든요.’

 

  나는 잠깐 망설이다 “그냥…… 편의점이 가까워서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입을 빼쭉 내밀더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산하고 그러는데 시간이 더 걸리지 않나?”

 

  “얼마 안 걸렸어요. 사는데.”

 

  “아…… 그랬구나.”

 

  그런 다음 그녀는 웬일인지 내 옆의 의자에 손을 살포시 올리고는, 머뭇머뭇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내가 그곳에 앉으라고 말해주길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내가 아무런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자 그녀는 무안했던지 크게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러곤,

 

  “잠시 앉아도 되죠?”

 

  하며 불쑥 의자를 빼고 앉는 것이었다. 미처 놀랄 새도 없었다.

 

  “뭐하는 중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 위로 불쑥 고개를 내밀어온 그녀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어…….”

 

  나는 몹시도 당황하여 잠시 동안 말을 내뱉지 못하다 겨우 “……과제요”라고 작게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과제? 아…… 계절학기 듣는가 보구나. 저 사실은 친구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아직도 이십 분은 더 걸릴 것 같다고 해서요…… 혼자서 심심한데 딱히 가져온 것도 없고, 배터리도 간당간당 하고 그래서…… 옆에 앉아 있어도 괜찮을까요?”

 

  뭐랄까, 나는 이렇게까지 스스럼없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본래부터 여자 대하기를 어려워하던 터라 딱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저돌적인 모습에 조금 움츠러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나는 꽤나 경계가 분명한 인간인지라 어떠한 관계든 보이지 않는 선을 매번 그어놓는 타입이었다. 그녀 정도라면 선을 넘으려드는 침입자로까지 간주할 건 아니더라도, 경계 대상으로 지정하기엔 충분했다.

 

  나는 꽤나 방어적이 되었다.

 

  “네…… 저 근데 제가 지금 할 게 조금 있어가지고…….”

 

  “뭔데요? 그 과제라는 거?”

 

  어쩌면 뻔뻔하다고까지 느껴질 만한 대답이었지만 나는 신기하게도 그녀의 반응에 조금 흥미를 느꼈다.

 

  “네…… 예술 관련한 리포트요.”

 

  “아, 예술! 우와!”

 

  “아뇨, 아뇨. 그냥 교양수업 과제예요.”

 

  나는 그녀의 번쩍이는 눈빛이 겁이나 얼른 덧붙였다.

 

  “저 미술관 가는 거 좋아해요!”

 

  “……네?”

 

  나는 순간 ‘이게 무슨 말이지?’ 싶어 조금 멍한 상태가 되었다.

 

  결국 머뭇거리다 “아…… 그러시구나. 그럼 저보다 훨씬 더 잘 아시겠네요” 하고 대답했다.

 

  “아뇨, 그냥 한 번씩 놀러가는 정도? 대림미술관 이런 곳 있잖아요. 막막 무슨 유명 전시회 한다거나 그럴 때.”

 

  “아…… 네.”

 

  “근데 몇 학년이에요?”

 

  “저는 2학년이요.”

 

  “스물한 살?”

 

  나는 멋쩍게 웃었다.

 

  “아뇨, 스물셋이요. 군대 갔다 오느라고…….”

 

  그러자 그녀가 깜짝 놀랐다는 듯 그리 크지 않은 눈을 크게 치켜떴다.

 

  “어? 나랑 같네!”

 

  그 말엔 나도 살짝 놀랐는데, 솔직히 나보다 두어 살 정도는 어린 줄 알았기 때문이다. 제법 앳된 인상인데다 체구도 작아 어쩌면 고등학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지금 시간에 카페에 있다는 것과 옷 입은 걸로 봤을 땐 아마도 대학교 1학년?’ 하며 은연중 가늠해보고 있었던 것이다.

 

  “흐음…… 전 1년째 휴학 중이에요.”

 

  혹시라도 그녀가 다짜고짜 말을 놓진 않을까 조금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었다.

 

  “아…… 그러시구나.”

 

  “아…… 그러시구나.”

 

  그녀는 그러고 내 말을 따라하더니 조금 지루하다는 듯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내가 그녀가 바랐을 만큼의 의욕적인 대화상대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좀 전에 느꼈던 약간의 흥미는 희미해진지 오래였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부담스러웠고, 그녀를 위해 말을 재밌게 꾸며내야 할 어떠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며, 어쨌거나 해야 할 일을 방해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만남이 그리 흔치 않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런 상황을 평소에 꿈꿔왔다거나 바란 건 아니었다. 밋밋할 순 있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렇기에 나는 별 아쉬움 없이 그녀에게 멈춰있던 시선을 다시 노트북으로 돌렸던 것이다. 이제 우리 대화는 이것으로 끝난 거야.

 

  잠깐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결코 그녀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오히려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작고 하얀데다, 심지어 여우상이었으니. 다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접근이 내겐 조금 부담이 됐을 뿐이다.

 

  그러나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는 그저 고개를 돌리기만 했을 뿐 자리를 뜨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근데 진짜 휴지 사온 이유가 가까워서였어요?”

 

  갑작스런 물음이었다.

 

  “아, 집착하려던 거는 아닌데…… 그냥 조금 이해가 안 되서.”

 

  “……뭐가요?”

 

  “아니, 먼 거리도 아니고…… 그냥 이곳에 와서 휴지를 가져갔으면 훨씬 더 편하고 좋지 않나요? 돈도 아끼고, 시간도 더 절약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처음에 내게 말을 걸어왔을 때처럼 어느새 반짝이는 눈으로 변해 있었다. 이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피식 웃고 말았는데, 어째선지 그녀가 무척 웃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엄청 특이하다던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웃었고, 그녀도 따라 웃었다.

 

  “사실은…….”

 

  “거봐, 뭔데요?”

 

  “여길 먼저 생각하긴 했죠, 일단 나도 손님이었으니까. 근데 저기 저거 보여요?”

 

  나는 냅킨과 빨대, 물 컵 등이 올려져있는 소모품 진열대를 가리켰다.

 

  “저기 빨대 통 옆에 붙어 있는 글이요. 화장실 갈 때 저기 있는 냅킨 들고 가지 말라고 적혀있는 거. 전에 한 번 저걸 왕창 들고 갔던 적이 있거든요? 이후에 저 글이 붙었더라고요. 저 글이 저 때문일 수도 있는 거예요. 왠지 부끄러워서…… 또 사용했을 때의 휴지 감촉도 그리 좋진 않았고…… 그래서 저걸 가져가는 건 별로라고 생각했죠.”

 

  “그럼 점원한테 휴지를 달라고 했으면 되지 않나요?”

 

  “이미 제게 누가 먼저 휴지를 들고 갔다고 말했던 게 저기 저 사람이에요. 당시에 무척 바빠 보이기도 했고, 이것저것 사정설명하며 휴지를 새로 받아내는 것도 꽤나 시간이 걸리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나는 내 말을 들은 그녀가 정색을 한다거나 금방 싫증난 얼굴을 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 흥미롭게 들을 만한 내용도 아니었고…… 하여튼 좀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갑작스레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저만의 생각에 훌쩍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 내 이야기의 어느 지점이 그렇게나 깊이 있는 생각을 필요로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심지어 고개를 끄덕거리며 혼자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사용했을 때 휴지 감촉이 좋지 않았어요?”

 

  그녀는 다시 한 번 갑작스런 물음을 던졌다.

 

  “어…… 예?”

 

  “휴지 감촉이요. 어땠는데요?”

 

  나는 그것이 궁금한 이유를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궁금하다면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될 일이지 굳이 나에게 물어봐야 하는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 대해 아주 친절히 대답해주었는데, 그녀의 호기심에 찬 두 눈을 보는 순간 ‘뭐가 됐든 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되게 까끌까끌하고요, 저게 재생지라 그런지 생각보다 수분에 엄청 약하더라고요. 잘 닦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다, 조심스럽게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구멍이 뚫릴 것 같았어요. 왕창 들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두 세장씩 덧대어 사용하니까 뭐…… 양도 좀 애매했고.”

 

  “그랬구나. 혹시 그래서 휴지 사 오신 거예요? 제가 저거 쓰기에 불편할까봐?”

 

  그래, 어쩌면…… 나는 줄곧 이와 같은 질문을 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만난, 그것도 목소리만 들었던 여자의 편의를 그토록 고려했던 내 숨겨진 배려를 물어봐주기를. 그리고 어쩌면…… 그녀 역시도 그에 대한 대답이 듣고 싶어 그토록 집요히 굴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까진 알 수 없었지만.

 

  “네, 뭐…… 어느 정도는? 아무래도 여성분이시니까.”

 

  그녀는 내 대답에 꽤나 만족해하는 듯 보였다. 어쨌거나 눈의 반짝거림이 사그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

 

 

  그녀는 그로부터 십여 분 정도가 지난 후 뒤늦게 들어온 친구와 함께 카페를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이 희미해져 보이지 않게 될 즈음, 나는 노트북으로 눈을 돌려 작성 중인 글의 마지막 문장을 보았다.

 

  경계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

 

  “경계라…….”

 

  그토록 쉽게, 그리고 그토록 갑작스럽게 나의 경계선을 넘어온 이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처음’과 ‘낯선’이란 영역에 쳐져있던 장벽도, ‘여자’라는 영역에 쳐져있던 울타리도 그녀 앞에선 어느새 다 허물어져 있었다. 마치 내 안에 있던 무수히 많은 것들이 한순간 전복되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그게 가능했던 이유를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저 냄새나고 더러운 화장실에서의 경험이 공감대가 되어서? 하필 그때 우연히 내 눈에 들어왔던 편의점 때문에? 어느덧 배려의 상징이 되어버린 저 휴대용 티슈가 서로를 이어줘서? 아니, 어쩌면…….

 

  창을 통해 한가득 들어온 쨍쨍한 햇살이 나를 천천히 어루만져주었다. 밝게 빛나는 따뜻함이었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따뜻함이었다. 내 입가에 어렴풋 미소가 피어났다.

 

  어쩌면…… 더럽다는 생각에 은연중 답하기를 꺼려하던 나를 이상하리만치 집요하게 추궁해오던 그때의 그 반짝거리던 반달모양 눈 때문이었는지도.

 

 

  그녀의 이름은 ‘해’였다. 그리고 나와 같은 대학이었다.

 

  해는 무턱대고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는 자기 번호를 입력한 뒤 돌려주었다. 이제부터 친구하자는 말과 함께였다. 자기는 이 근방에 산다고 자주 보자고도 말했다. 또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기는 배가 자주 아프다는 말까지 했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냥 “그래”라고만 대답했다.

 

  우리는 헤어지기 몇 분 전 말을 놓았고, 서로를 향해 한 차례 씩 웃어주었으며,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그래, 이것이 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나저나 누군가 들고 갔다던 카페의 두루마리 휴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던 걸까? 나는 줄곧 그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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