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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더럽(The Love)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9.9.3


"나, 다른 사람 같이 좋아해도 돼?"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관계와 사랑
그것의 시작,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하여.

#대학생 #캠퍼스물 #악의꽃 #섹슈얼리티 #조별과제 #폴리아모리

 
2. 해는 때론 바람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낼 때가 있다(5)
작성일 : 19-09-09 21:42     조회 : 38     추천 : 0     분량 : 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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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늦은 새벽, 이성친구의 집에서 맞닥뜨린 고요는 생각보다 그리 정적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탓인지 숨을 들이 마시는 소리에서부터 침 넘기는 소리, 옷과 침대커버가 맞닿으며 생기는 소리, 냉장고 팬 돌아가는 소리, 창밖의 벌레소리마저도 어수선하게 들렸고, 옆에서 느껴지는 자그마한 기척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게다가 이미 집 안 풍경에 익숙해진 탓에 달리 흥미를 두고 관찰할 거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만 앉아 있었음에도 기가 다 빨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아무 말이라도 걸자 싶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지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옆얼굴에선 우울과 피로가 짙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온종일 마음고생하다 늦게까지 술 먹고, 또 그걸 게워내기까지 한 상태였던 것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에 많이 부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많이 피곤하겠지…….’

 

  빨리 일어나는 게 서로에게 좋을 듯싶어 이만 가보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해가 살포시 고개를 들었다.

 

  “오늘 고마웠어. 늦기도 늦었고 피곤했을 텐데 같이 술 마시러 와줘서.”

 

  해의 눈빛이 그렇게나 보드라웠기 때문일까, 절로 우물쭈물하는 대답이 나왔다.

 

  “아니 뭐…… 딱히…… 어차피 내일 할 것도 없는데.”

 

  “그리고 미안. 오늘 너 고생 많았지?”

 

  해가 그러고 씩 웃으니 왠지 모르게 나도 따라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건 좀 그랬지.”

 

  “나 많이 무거웠어?”

 

  “뭐…… 아주 깃털 같진 않았지.”

 

  “흥, 웃기시네.”

 

  평소와 같은 대화가 고작 몇 마디 이어졌을 뿐인데도, 사라진 줄 알았던 편안함이 어느새 다가와 살포시 스며드는 느낌이 났다. 곧 기분 좋은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동생은 왜 신부님이 되려는 거야?”

 

  의식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것이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궁금해 하던 것도 아니어서, 어째서 갑작스레 저 질문이 나온 것인지 스스로도 조금 의아할 정도였다.

 

  불편한 물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깐 멈칫하여 해를 돌아봤으나, 해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주님이 부르셨대.”

 

  “……뭐?”

 

  “하느님 말이야. 하느님이 자길 불렀대.”

 

  뭐랄까, 생뚱맞은 이유였다.

 

  “음…… 그건 뭐 신 내림 같은 거야?”

 

  “글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나도 잘 몰라.”

 

  “그럼…… 원래부터 좀 그런 기질이 있었어?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말이야. 아프다거나 막.”

 

  그러자 해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귀신 씐 건 줄 알아? 원래부터 그랬던 것도 아니야. 물론 우리 삼남매가 다 어릴 적부터 성당을 다니긴 했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애만 따로 더 독실한 것도 아니었어.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는 성당에 잘 나가지도 않았고.”

 

  “그런데 갑자기?”

 

  “갑자기. 진짜 말 그대로 갑자기. 한 2년쯤 전인가?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그런 얘길 하는 거야, 신부님이 되겠다고. 그냥 하루아침에 말이야. 애가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더라고.”

 

  나는 해의 동생과 같은 경우를 한 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다. 나 또한 초등학교 때까진 꾸준히 성당을 다녔던 터라 여러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 그리고 복사 서는 형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눠봤지만, 그런 이유로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고 말한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대개 마음의 평화를 좇는다거나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으로 길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단 성당뿐 아니라 교회를 나가는 이들의 경우도 비슷했다. 그쪽은(물론 내 생각이지만) 아예 무슨 가정환경이 그쪽으로 치우쳐져 있다거나, 좀 더 ‘직업 선택’의 차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더더욱 그랬다.

 

  “공부도 엄청 잘했었는데…… 모의고사 치면 전국 순위에도 들고 그랬어. 서울대 보내려고 했던 아들이 느닷없이 신부가 되겠다고 하니 집이 완전 난리가 났었지 뭐.”

 

  “……혹시 공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

 

  “딴에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것 때문은 아닐 거야. 꿈도 있었고, 목표도 확실했던 애라 오히려 부모님이 쉬엄쉬엄 하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

 

  “아…… 그런데 왜…….”

 

  “걔 말로는…….”

 

  그러고 해는 한 차례 침을 꼴깍 삼켰다.

 

  “꿈속에서…… 아니, 그게 꿈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진 않지만…… 여하튼 누가 계속 자기를 부르더래. 오라고, 어서 오라고. 빛인지 아니면 사람인지도 모를 그것이. 한참을 그러고 듣고 있었나봐.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을 딱 떴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래. 나를 부르셨구나. 내가 가야겠다.”

 

  조금은 놀랄만한 얘기였다.

 

  “그럼 그야말로 신의 부르심을 받은 거네?”

 

  “모르지.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는 거고. 어쨌든 그렇게 말하는 걔 눈을 보니 도저히 뭐라 말할 수가 없겠더라. 아빠는 그래도 몇 마디 더 하셨지만. 당시에는 학교까지 그만두겠다고 하는 걸 간신히 설득해 보낼 정도였어.”

  쉽사리 이해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타박할 수도 없을 것 같긴 했다. 아마 해 또한 비슷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어떤데?”

 

  “지금이야 뭐…… 걔는 잘 생활하고 있고, 가족들도 어느 정도는 다 익숙해졌지. 부모님이야 여전히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 인생에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오늘 일은 글쎄…… 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해가 슬며시 잦아드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쯤 힘들어 하고 있던 게 아닐까? 자기가 정한 삶의 방향과는 별개로 현실적인 문제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혹시나 동생이 후회한다고 말한 적은 없어?”

 

  “그런 적은 없었어. 그리고 후회를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조금 힘들다 하더라도 결코 자기 자신에게서 눈 돌릴 애는 아니니까. 걔가 언젠가 그랬었어, 가장 진실한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해는 어느새 꿈꾸는 눈이 되어 있었다. 몽롱하니 빛나는 두 눈동자는 형광등 불빛과 세계지도 사이의 허공 어딘가를 부유하는 중이었다. 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해의 생각이 진심으로 궁금했던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가끔은 동생이 부럽기도 해.”

 

  해가 허공에 두었던 시선을 내 쪽으로 끌어내리며 말했다. 초점이 맞지 않는 공허한 눈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나 애타게 불러준다는 거…… 그게 정말로 부러운 거 있지. 그렇게 애가 닳도록 불러대니까 말이야 봐봐, 지금은 반대로 동생이 좋아 죽고 있잖아? 거기 하염없이 빠져들어선 본래의 꿈도, 가족도, 뭣도 다 잊어버리고…… 어쩌면 그런 것도 사랑일까?”

 

  나를 바라보던 해의 시선에 서서히 초점이 잡히는가 싶더니, 곧 두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해는 내게 답을 바라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 또랑또랑한 눈동자 앞에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고차원적인 대상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하등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러고 가만 입을 다물고 있자 해의 눈동자 속에 떠올랐던 빛도 점차 힘을 잃고 사그라졌다. 대상을 잃은 물음은 그토록 공허한 것이다.

 

  해는 다시 고개를 숙였고, 그와 동시에 조금 전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질문도 함께 가라앉고 말았다.

 

  넌 어떤데? 넌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

 

  *

 

  슬슬 날이 밝아오는지 창문 틈 사이로 짙은 남색 빛깔의 하늘이 손을 내밀었다.

 

  “이만 가봐야겠다.”

 

  “얼른 가. 너 엄청 피곤하겠다.”

 

  “너도 빨리 자. 일어나면 연락하고.”

 

  “응.”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갈 즈음, 해가 급하게 따라 나왔다. 배웅을 해주겠다고 했다.

 

  “깨끗하게 치웠네?”

 

  복도는 말끔했다.

 

  “흔적도 없지?” “그러게. 잘했네.”

 

  내 말에 해가 “헷” 하고 웃었다.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어디선가 불어온 선선한 바람이 피부를 간질였다. 모처럼만에 뜬눈으로 맞는 새벽아침이었다. 공기가 아주 달았다.

 

  “이제 진짜 가볼게. 들어가.”

 

  “응, 가.”

 

  나는 해가 건물에 들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해의 뒷모습을 보며 서있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날이 막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의 학교 앞은 한산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들떠 보이는 게, 곧 시작될 왁자지껄한 하루를 숨죽여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간신히 살아있는 휴대폰 배터리에 감사해하며 그즈음 즐겨듣던 음악을 재생시켰다.

 

  이윽고 부드러우면서도 허스키한, 매력적인 목소리가 내게 다정히 속삭여왔다.

 

  「Duet」

 

  Oh Lover, hold on

  till I come back again

  for these arms are growin' tired,

  and my tales are wearing thin

  if you're patient I will surprise,

  when you wake up I'll have come

  All the anger will settle down

  and we'll go do all the things

  we should have done

  yes I remember what we said

  as we lay down to bed

  I'll be here if you will only come back h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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