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태 네도 피난을 가기 위해 짐을 싸서 식구들이 각자 짊어지고 집을 나서서 피난민들과 뒤섞여 ‘백마’ 이모네로 피란을 간다.
한 시간이나 걸려 이모네 집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집 안이 텅 비었다. 이모네도 피난을 간 것 같다.
은태 네는 할 수 없이 그 밤을 이모네서 자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자려는데 멀리 들려야 할 대포소리 기관총 소리가 더 가깝게 들린다. 김 구장은 그 소리에 걱정이 돼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은태도 궁금해 뒤 따라 올라가 ‘청석골’ 쪽을 쳐다보니 대포소리, 기관총소리가 가까운 봉일천 (벽제 지나 일등도로변에 위치) 쪽에서 들리는 것 같다.
꽝꽝, 따르륵 따르륵, 딱콩 딱콩 그렇게 콩 볶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 나는 북
쪽 하늘은 불꽃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가느다란 불꽃, 굵은 불꽃이 뒤섞여 온 천지가 불꽃으로 뒤덮였다. 은태는 그것을 보고 무서운 것 보다 야~아 전쟁 너무 재미있다.
국방군의 늠름한 모습 또 이 밤중에 저기가 ‘봉일천’ 쯤 일 텐데 국방군과 인민군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 아닐까?
“전쟁은 무섭기도 하지만 재밌다.”
‘봉일천’에서는 지금 한참 전쟁을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버지가 “이제 들어가 자자” 은태는 못내 아쉽다.
속으로 조금 더 보고 싶은데 그러나 아버지가 들어가자고 하니 형들과 같이 들어와 잤다.
아침이 되어 일찍 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나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도로 북쪽으로 가는 것이다. 은태 아버지 김 구장은 의아해서 “아니 당신들은 왜 북쪽으로 가시오?” 그렇게 물으니?
피난민들은 “아니 인민군이 벌써 ‘서울’을 점령했다는데 피난을 가면 어디로 가겠소? 그래서 도로 집으로 가는 거요.”
그 말을 들은 은태 네도 아침을 먹고 이모네 집을 떠나 도로 ‘청석골’로 간다. 어제저녁까지 남으로, 남으로, 밀려가던 피난민들이 하루 밤을 지나고 오히려 북으로 가느라 동둑이 하 얕다.
요란하던 대포소리 기관총 소리도 안 들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방이 조용하다.
피난민들은 그렇게 하얀 물결을 이루어 지나가면서도 앞으로 이 전쟁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에 얼굴들이 어두워 보인다.
그런 표정들을 하고 가니 그 많은 사람이 지나가도 발자국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은태 네도 그들 피난민들 속에 섞여 집으로 오니 동네사람들이 먼저 와있다.
그들은 은태네 바깥 마당가의 큰 은행나무 밑에서 이 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서로 의견교환을 하고 있었다.
뒷집의 ‘규석’ 아버지는 국방군이 “그렇게 힘이 없나?” 그러니 옆에 있던 ‘경태’ 아버지가 “그래도 저 인민군은 얼마못가 질 거예요,”
“지다니? 그런데 왜 어제는 그렇게 힘 한번 못 쓰고 후퇴를 해”
“그거야 북한군이 기습공격을 해 국방군이 밀렸을 거예요,
그러나 규석 아버지는 이해가 안 간다. 기습을 당해도 어떻게 사흘 만에‘서울’을 내 준단 말인가?
김 구장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제 전쟁이야기는 그만하고 일들이나 해, 전쟁이 낱 건, 안 낱 건, 산 사람은 먹어야 살아”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은태는 은행나무 밑에서 바둑이들과 놀다가 바둑이 들이 앞뜰을 보고 경계를 하며 우~ 웅 짖으려하니 왜 그래 하면서 앞 동둑을 쳐다봤다.
쳐다보니 거기에는 어제와 다른 군인들이 줄지어 ‘고봉산’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은태는 호기심에 바둑이들과 동둑으로 가 군인들을 자세히 보니 그들은 어제 군인들 하고 판이하게 다르다.
어제 군인들은 철모에 수류탄에 근사했는데 이들은 철모도 안 쓰고 군복도 파란 잔디 색 군복이 아닌 누런 군복에다가 모자는 헝겊으로 만든 것을 썼다.
그래도 모자며 윗옷에 줄로 얼기설기 엮어 거기다 나뭇가지를 꽂고 간다.
그것이 근사해 보이질 않고 우습 게 보였다. 신발도 구두가 아닌 농구화를 신었다.
그런데 그 중에는 근사한 옷을 입고 어깨에는 반짝이는 작은 별이 빛나는 견장 단 군인도 가끔 눈에 뛰었다. 그들은 제법 근사하다.
은태는 바둑이들이 마구 짖어대니 “그만 짖어!” 하고 악을 썼다.
그래도 짖으니 지나가던 군인이 바둑이 들을 쳐다보며 너 나중에 보제이, 내레 이 동네 또 오게 되면 꼭 된장 바르갔어” 하며 지나간다.
은태는 그 말을 들으니 섬뜩한 생각에 바둑이들과 재빨리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바깥마당 은행나무 밑에서 사람들이 건너편 동둑으로 가는 군인들을 쳐다보며 저 군인들은 인민군 같은데 그렇다면 어제 간 국방군들이 ‘행주’ 나루를 건넜을까?
건넜어야 저들에게 죽지 않을 텐데 그러면서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은태는 그제 서야 저 군인들은 인민군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부상병도 별로 없고 그냥 묵묵히 걷기만 했다.
어제는 국군이 후퇴를 했고 오늘은 인민군이 그 뒤를 따라 행주산성 쪽으로 갔다.
은태는 전쟁이 났으니 학교 갈 생각은 않고 공부 와 동 떨어진 전쟁 한 가운데서 전쟁을 재미난 놀이로 생각하고 지낸다.
새로운 것을 많이 보게 되니 그래 전쟁은 재미있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공중에서 별안간 굉음이 울려 쳐다보니 그림으로만 보던 비행기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쌩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비행기가 저공으로 날아가니 순간적으로 지나간 것 같아 야 그거 한 번 더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아쉬움에 젖었었다.
다음날은 아버지의 성화로 들로 나갔다. 감자 캐기가 늦어 더 지체하면 썩으니 오늘 캐야 된다며 식구들을 다 동원해 감자 캐기를 재촉했다.
아버지 성화에 은태네 식구들은 부지런히 감자를 캐니 저녁때가 되어 거의 다 캔 것 같다.
김 구장은 캔 감자를 가마니에 넣어 지게에 지고 집으로 오려는데 왼 건장한 청년이 감자밭으로 오더니 “어르신 제가 힘껏 도와들일 테니 일주일만 일을 하게 해 주십시오.”
김 구장은 그 청년을 찬찬히 보고는. “농사일은 해 보셨소?” 하고 물었다.
“예, 저 농사일 잘 합니다.”김 구장은 그의 말에 그럼 내일부터 일 해요. 잘하지 못하면 도로 보낼 거야.
“청년은 알았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청년은 고맙다고 인사를 깍듯이 하고 지게에 얹어놓은 감자를 지고 김 구장 내 식구들과 집으로 와서 씻고 저녁밥상을 받았다.
은태네 식구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 감자를 지고 와서 밥을 먹으니 그를 힐금힐금 쳐다본다.
머리는 빡빡 깎았고 또 씻을 때 보니 다리종아리가 하얀 것이 농사짓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저녁밥을 먹고는 어르신 고맙습니다.”
“김 구장은 응 이제 저 사랑방에 가서 쉬게”
“청년은 고맙습니다. 하고는 사랑채로 갔다.”
김 구장은 저 사람이 국군 패잔병 같은데 우리 집으로 오려고 한 것을 보면 누가
우리 인품에 대해서 알려줘서 온 것 아닐까?
그런데 만약 내가 모르는 척 한다면 저 사람은 다른 집으로 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위험해 질 수도 있다.
그래서 알면서 모르는 척 일을 시킨 것이다.
그는 김 구장을 따라 아침 일찍 들로 나가 일을 하고 저녁 해가 넘어 갈 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남의 눈에 뛰지 않게 아침에는 일찍 나가고 저녁에는 해가 넘어가야 집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십일 만에 잡혀갔다.
은태는 그 일꾼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다. 은태 네는 그런 일이 있고나서 매일 매일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