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어제 학교 끝나고 하민과 대화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요.’
“좋아하는 사람이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던가...”
하윤은 하민의 질문을 되새겨 보았지만 자신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데.”
복잡한 마음에 잠시 밖으로 바람을 쐬러 갈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 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이 선생님.”
“네? 아 신 선생님.”
“요즘 안 좋은 소문 때문에 힘드시죠?”
“아니요. 괜찮아요. 뭐 학교에서 소문이야 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소문이 이렇게 안 좋은데.”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끼리 알아서 이야기 잘 해볼게요.”
“알겠어요. 더 이상 묻지 않을게요. 그래도 조심해요.”
“네. 알겠습니다.”
기분 좋게 웃으며 걱정해주는 신 선생이 참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다른 선생들이 박 선생을 따돌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챙겨주는 선생이라고 했지? 참 좋은 사람이네. 이렇게 깨끗한 인간은 처음보네.’
신 선생님의 기분 좋은 웃음은 하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편안해지게 만들었다.
“아 이 선생님 밖으로 나가게요?”
“네. 기분 좀 전환 할 겸 학교 뒤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려고요.”
“아하. 알겠어요. 잘 다녀와요. 애들이 뭐라고 해도 그냥 무시하세요.”
“알겠어요. 신 선생님도 수업 들어가시기 전에 좀 쉬세요.”
“알겠어요.”
하윤은 대화를 마친 뒤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좋아하는 사람... 그런 거 없어.’
결심한 듯이 단호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하윤 쌤!”
“어. 하민이구나. 이리와서 같이 바람이나 쐴래?”
“좋아요! 단둘이 있는 것도 좋고.”
“솔직하네.”
“이게 또 제 매력이죠.”
“... 나 따라하는 거야?”
“좋아하니깐 뭐든지 똑같이 행동하고 싶어서.”
“그래. 이리와.”
하윤이 옆자리를 손으로 탁탁 치며 옆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고 하민은 기분 좋은지 웃으면서 옆자리에 앉았다.
“쌤 어제 제가 물어본 거요.”
“없어.”
“네?”
“없는 거 같아. 좋아하는 사람. 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거든.”
“... 음 그게 뭔지 물어봐도 돼요?”
“나중에 알려줄게.”
“나중에 언제요?”
실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하민을 보며 하윤은 이쁘게 웃으며 하민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쳤다.
“내가 확신이 설 때.”
“그게 뭐에요.”
“있어. 그런 게. 지금은 당장 이야기 못해줘. 미안해.”
“음. 알겠어요. 대신에.”
자신의 머리를 만지던 손을 내리며 꽉 쥐고서는 단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대신에 저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셔야 돼요. 절대 다른 사람한테 먼저 이야기 하지 않기!”
“... 그래. 너한테 가장 먼저 알려줄게.”
“고마워요. 쌤.”
“이정도로 뭘.”
“헤헤- 기분 되게 좋네요. 근데 차라리 저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해주셨으면 기분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너는 나를 정말 좋아해?”
“안 좋아했으면 고백 안했죠.”
“응? 고백?”
“...”
하윤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하민은 어이없다는 듯이 인상을 헛웃음을 지었다.
“어제 학교 끝나고 복도에서 고백 했잖아요. 뭐 물론 보기 좋게 차였지만.”
“그거 진심이었어?”
“... 당연히 진심이었죠. 설마 제가 장난쳤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아니. 네가 어제 소문이 신경 쓰이면 사귀자고 한 거잖아. 당연히 장난인 줄 알았지.”
“그건 그냥!!! 아... 아니에요.”
“미안해.”
“흥... 됐어요.”
“정말 미안해. 그냥 네가 장난치는 거 좋아하는 거 같아서...”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진 않아요.”
진지한 눈으로 상처받았다는 듯이 쳐다보는 하민은 이내 고개를 돌려 땅만 바라봤다. 그런 하민이 신경 쓰여 하윤은 자신도 모르게 상처받아 늘어진 어깨를 잡아 자신의 품으로 안아줬다.
“미안해. 네 마음이 진심일 줄 몰랐어.”
갑자기 자신을 안아주는 하윤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내 자신도 하윤을 끌어 안았다.
“그럼 제가 다시 고백하면 받아주실 건가요.”
“하민아...”
하민의 말에 하윤이 당황하며 하민을 살짝 떼어냈다.
“농담이에요.”
“아... 그래.”
“근데 뭐 조만간? 다시 고백할 거니까 그렇게 다행이라는 표정은 짓지 마세요. 저 또 상처 받아요.”
“다행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어. 쌤도 당황해서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나보네요?”
당황한 나머지 소리를 지른 하윤의 행동에 하민은 크게 웃으며 놀렸고 그 모습에 하윤은 살짝 삐친 듯 하민은 째려봤다.
“아 알겠어요. 안 놀릴게요.”
“후... 어쨌든 그런 거 아니니깐 오해 하지마.”
“네. 믿을게요.”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두 사람 앞에 신기하듯이 쳐다보는 영인의 모습이 보였다.
“어라. 하윤 선생님. 이하민이랑 무슨 사이에요? 둘이 되게 다정하네요.”
“장영인...”
“우와. 설마 둘이 그런 사이인 줄 몰랐네요. 괜히 미안해지네요. 그런 건줄 알았으면 불안해하지 않았을 텐데. 말씀해주시지.”
“그런 거 아니야. 영인이 네가 오해하는 거 같은데.”
“음. 저희 대화 내용 다 들었는데요?”
“뭐야. 야. 장영인 너 뭔데 여기서 남의 이야기를 엿듣냐?”
“뭐야. 이하민 우리가 먼저 여기 있었거든?”
“우리?”
“그래. 내가 먼저 우찬 선생님이랑 여기 있었는데 둘이 온 거잖아. 그렇죠. 우찬 선생님.”
“... 응.”
갑자기 뒤에서 나온 우찬은 아무런 감정 없이 하윤과 하민을 쳐다봤다.
“우리는 가만히 있었어. 둘이 와서 다정하게 이야기한 거지.”
“아 그래. 뭐 나랑 하윤 쌤이 방해한 거면 미안. 쌤 저희 들어가요. 어차피 곧 종도 칠 텐데.”
하윤은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려 하민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 앞에서 아무런 감정이 자신을 쳐다보는 우찬이 마음에 걸렸다. 그걸 눈치 챈 하민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고 영인은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우찬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 끌며 귓속말을 했다.
“야. 박우찬 너 뭐하는 거야.”
영인이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이 하윤만 바라보는 우찬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하민이 하윤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찬은 하민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하염없이 하윤만 바라봤고 결국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이 선생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우찬이 하윤을 불렀다.
“우찬 쌤. 있잖아요. 쌤은 옆에 애인 놔두고 이러는 거 하윤 쌤이나 장영인한테 못할 짓 하는 겁니다. 그냥 하윤 쌤한테 신경 끄세요.”
“나는 너 안 불렀어.”
“하. 하윤 쌤 그냥 가요.”
“그냥 하고 싶은 말만 하게 해줘.”
간절한 목소리로 하윤을 끌고 가는 하민에게 부탁했다.
“그냥... 그냥 저는...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 선생님이 하민이와 그런 대화를 하는 건지 모르겠고 제가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 짜증납니다. 모든 게 다 싫습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아 울음을 토해냈다.
“박우찬 일어나.”
영인의 말에도 그저 눈물만 흘리며 하윤을 바라보는 우찬에게 하윤이 다가가 앞에 앉아 화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박 선생님은 정말 이기적이시네요. 영인이한테도 저한테도 그리고 자신한테도 진짜 이기적이세요. 언제는 영인를 위해서라도 멀어져야 한다고 하셨으면서 갑자기 다시 가까워지려고 하시고 또 다시 멀어지더니 다시 가까워지려고 하시잖아요. 그리고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계시잖아요. 도대체 저한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화난 목소리로 따지고 들자 우찬은 정신을 차렸는지 숨을 고르며 슬픈 눈으로 하윤에게 말 했다.
“하...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감정 조절을 못한 거 같네요. 일단 곧 종칠 거 같으니 이만 들어가세요. 영인이랑 유하민 너희들도 교실로 들어가.”
“... 그래요. 대화 가기 싫으시면 관두세요. 너희 둘 빨리 교실로 가서 수업 준비해.”
“네.”
영인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대꾸조차 하지 않고 우찬의 팔을 잡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하민은 화난 하윤이 마음에 걸렸는지 대답은 했지만 옆에서 안절부절 거리며 눈치보고 그 자리에서 하윤이 자리를 뜰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너도 어서 가. 수업 늦겠다.”
“쌤이랑 같이 갈래요.”
“됐어 너 먼저 가. 너 다음 교시 내 시간인 거 알고 있지? 준비 안 해놓으면 가만 안 둔다.”
“아! 쌤 시간이에요? 그럼 빨리 가서 준비 해야겠네요. 혼나기는 싫으니까요.”
“그래. 혼나기 싫으면 빨리 가서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손으로 경례하며 밝은 소리로 대답하는 하민이 귀여워 머리를 쓰담아주고 교무실로 돌아갔다.
교무실로 들어온 하윤은 먼저 들어온 우찬이 눈에 들어왔고 작게 한숨을 쉬며 수업에 들어 갈 준비를 하는 도중에 우찬이 눈치를 보며 하윤에게 말을 걸었다.
“하민이랑 친하신가 봐요.”
“네.”
“...”
그저 우찬이 짜증난 하윤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짧게 대답을 한 뒤 수업 준비물을 들고 교무실로 나가려는 찰나 우찬은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우찬과 대화하고 싶지 않은 하윤은 뭐라고 했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무시하며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 이 선생님이랑 같이 있으면 편해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러는지... 진짜 계속 보고 싶은데...”
이미 나가서 듣지 못하는 하윤에게 중얼 거리는 우찬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졌다.
“저 좀 살려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 너무 힘들어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는 우찬의 울음소리만 가득히 채워갔다. 그 시각 하윤은 복도에 서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 수업 들어가기 싫다. 그냥 오늘은 자습이나 시킬까.”
곰곰이 생각을 하는 하윤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 왜 자신이 이런 일에 휘말려 힘들어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학교 선생이 그런 생각해도 됩니까?”
어디선가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하윤은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에요. 하윤님.”
“너는...”
하윤은 창 밖에서 보이는 존재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윤님.”
창밖으로 보이는 천사의 모습에 하윤은 크게 놀라며 눈이 커다래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윤님.”
창밖으로 보이는 천사의 모습에 하윤은 크게 놀라며 눈이 커다래졌다.
“... 로엘... 네가 여기를 어떻게 온 거야...”
“어떻게 오긴요. 제가 하윤님을 얼마나 찾아다녔는데요.”
“네가 나를 왜 찾아. 아버지께서 버림받은 나를 네가 왜... 돌아가.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돼. 너는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식이잖아.”
“... 아버지는 하윤님도 사랑하십니다.”
“웃기지마!!!!! 누가? 아버지가? 아니 절대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나를 버리신 거겠지. 만약에 나를 사랑하셨다면 이렇게 버리시지 않았을 거야.”
“아니요. 사랑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하윤님을 많이 아끼셨어요.”
“흥. 그래봤자 뭐해. 어차피 지금은 버림받은 몸인데.”
하윤은 오랜만에 만난 형제 로엘의 말이 거슬렸다.
“하윤님. 저는 하윤님을 사랑합니다.”
“그래. 나도 너 사랑해. 형제인데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겠어.”
“... 네. 그렇죠... 뭐 일단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하윤님 아버지께서 오해하신 겁니다. 제가 조금 알아봤습니다. 근데 사건 중간에 이상한 점이 있어요.”
“이상한 점?”
“네. 아무래도 거기서 조금 상황이 이상해진 거 같아요. 아직은 이유를 못 알았어요. 그러니깐...”
“됐어.”
“네?”
“됐다고 네가 그거 알아 보지마. 내가 알아볼테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도움 주고 싶으니깐 저도 같이 알아볼게요.”
“너는 예전부터 말 참 안 듣지?”
“그게 또 제 매력이죠.”
“뭐라는 거야.”
“하윤님도 항상 그러셨잖아요.”
“음. 그래. 인정. 일단 알겠고 알려줘서 고맙다.”
“네. 언제든지 필요하시면 불러주세요.”
“그래. 알겠어. 어서 가봐.”
“네. 그럼 이만...”
로엘은 하윤에게 짧게 인사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로엘을 배웅하고 나서 생각이 많아진 하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왜... 도대체 뭐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다리에 힘이 빠진 하윤이 넘어질 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하윤을 안았다.
“어... 너...”
“이 선생님 괜찮으세요?”
“박우찬...”
“너무하시네요. 저번에는 저보고 반말하지 말라고 하셔놓고.”
“아... 죄송합니다. 박 선생님.”
“아 아닙니다. 음... 죄송해요. 그 천사분과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버렸네요.”
“...”
하윤은 우찬의 말에 머리를 쎄게 맞은 듯이 어지러워졌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 네, 그래주면 고맙겠네요.”
이미 우찬이 자신은 이미 버림받고 타락천사인 것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자신의 모습을 들킨 거 같아 착잡했다.
“이만 들어가 보세요. 수업 늦겠습니다.”
“... 박 선생님 부탁이 있는데요. 3학년 10반에 가셔서 애들 자습 좀 시켜주시겠습니까?”
“네? 아 뭐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거 같네요.”
“네. 좀 쉬어야겠네요.”
“... 이 선생님. 아까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응원 필요 없습니다.”
“...”
“저 말고 박 선생님 자신한테 먼저 신경 쓰세요.”
“... 신경 쓰이는 걸 어떻게 합니까...”
“박 선생님이 왜 저를 신경 써요? 됐어요. 저 잠시 양호실에 가 있을테니 10반애들 잘 부탁합니다.”
“... 네.”
하윤은 기가 죽어있는 우찬을 뒤로 하고 바로 양호실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