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짖든가, 아님 물든가 ---(2)
자신의 의지대로 챙기지 못한 자신의 가족. 마누라, 자식.
어쩌면 홍춘보다 더 괴로운 것은 청현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고통이 약자인 여자보다 더 크다고 말하면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다른 자존심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가장(家長)이라는 놈이다.
어찌 됐든 저찌 됐든 사람은 살기 위해 모여 살고, 사람이기 때문에 그 모임에는 자연스럽게 서열이 생긴다.
누가 대장이고 누가 부려지고 하는 것은 살기 위한 것이다.
그런 곳에서 우두머리라면 어쨌든 자기 구성원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그게 상식적인 의미의 가장이다.
그 가장의 권위가 무너지면 남자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의 의미는 자기 구성원을 보호하는 데서 나온다.
남는 것은 술뿐.
그래서 술에 절은 청현은 헤헤 웃었다.
“아현아, 책 싫어? 그럼 먹을 거 사 줄게.”
비척비척 따라 들어가려는 청현을 홍춘이 가로막았다.
“진작에, 아현이 당신을 포기하기 전에…….”
말이 떨려 나왔다.
홍춘의 눈도 천하무적은 아닌 듯 결국 눈물이 나왔다.
“진작에…… 진작에 좀 그렇게 해 주지!”
절대로, 이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눈물을 보이기 싫었다.
사실 얼마나 꿈꿔 왔던가. 이 사람들 앞에 성공한 후 나타나 표독스럽게 말하는 자신의 모습을.
홍춘은 죽어라 이를 깨문 후 소매로 눈을 슥 문질렀다.
십 년의 마음고생, 십 년의 눈물은 죽기를 각오하는 병사처럼 독한 각오를 먹고서야 그쳤다.
“이미 늦었어. 당신 딸 마음은 닫힌 후라고. 열리지 않아. 이미 늦었다고.”
청현의 손길이 아현의 방으로 향하다 멈춰 버렸다.
저런 소리를 듣고서까지 능청을 부릴 수 없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냉정한 한마디가 홍춘의 눈에서 눈물을 더 얼렸다.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난 그저 나희령을 죽인 사람들을 만나볼 필요로 온 것뿐이지.”
모용중걸은 역시 혹독했다. 홍춘의 입도 얼어붙었다.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녹진자는 머리에 열이 오르기 직전이었다.
“흠, 나 있는 거 신경 쓰는 척해 놓고, 내 앞에서도 말을 그따위로 하냐? 대체 칼 든 자의 약자를 대하는 예의는 어디다 놔두고 혼자 다니는 거냐? 네 애비였던 모용풍광은 안 그랬던 것 같다만?”
칼 든 자의 약자를 대하는 예의, 그걸 짧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개념’이다.
한마디로 개념 없단 소리였다.
확실히 녹진자 같은 배분의 어른이 내뱉을 소리는 아니었고, 뻔뻔한 모용중걸조차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르신, 저는 가문에 매달린 수만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줘야 합니다. 그건 기본적으로 뻔뻔하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걸 광검이 받았다.
“어쨌든 우린 댁이 필요하든 말든 관심이 없으니 어찌하겠소?”
모용중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더불어 그 기세도 같이 꿈틀거렸다.
종남일기가 녹진자에게 전음을 날렸다.
[이 자식 봐라, 이거? 이거, 어떡하냐?]
그러나 녹진자는 팔짱을 끼고 그냥 한숨을 쉬는 것으로 대꾸했다.
녹진자도 그렇고, 지금은 종남일기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세를 풀어 방출한다는 것은 녹진자와 종남일기를 무시한 행동이었다.
물론 그것만 가지고 손을 쓸 수는 없다. 예의란 후배가 알아서 지켜야지, 안 지킨다고 두들겨 팰 수는 없지 않은가.
모용중걸은 그 점까지 이용해 삼 형제를 압박하려는 것이었다.
드디어 광수의 입이 열렸다.
“모용세가에서 내친 혈육은 저희와 살고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오셔서 그나마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닙니까? 이런 모습을 보이는 분들에게 나희령을 이긴 비법을 어찌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모용중걸은 서서히 압박을 더했다.
“너는 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서안 상인들도, 농민들도 우리 가문의 그늘 아래서 걱정 없이 살 테니까. 수십만의 입이 내놓으라는 것이다.”
광검이 킬킬거렸다.
“오, 후안무치의 그늘 아래로 수십만을 끌어들이시겠다는 야망? 중걸, 참 대단한걸?”
지독한 모욕이었다. 낱말 끝, 글자 하나를 가지고.
모용중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너희들이 스스로를 개라고 한다더군. 개처럼 맞아야 꼬리를 말고 엎드리겠느냐?”
아무리 명성이 자자해졌다지만 이제 갓 소문이 났을 뿐이고, 아직은 모용중걸과 비교 대상 자체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처구니없는 발언이었다.
그래서 광검도 평소의 견자단처럼 어처구니없이 맞대응했다.
“개가 달리 개요? 집 안에서는 안 가르쳐도 서열을 알고 알아서 꼬리를 말지만, 다른 식구들에게는 싸워 이기면 그만이지. 우린 견자단이니까.”
너도 사뿐히 ‘즈려밟아’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우린 개니까!
언제 모용중걸이 이런 말을 들어 보았겠는가.
모용중걸은 하늘을 향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견자라, 견자! 과연!”
웃음을 뚝 그친 모용중걸은 기세를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네놈들이 견자라고 이름 붙인 것은…… 네놈들이 상대하는 적들을 모욕하기 위한 것이었구나? 네놈들 스스로를 욕하더라도 상대방을 같이 개로 만들겠다는, 그런 게냐?”
광검이 코웃음을 쳤다.
“머리 좋군. 맞아, 개랑 싸우면 그게 똑같이 개지!”
결국 ‘너도 개자식’이라는 말에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당에는 고수들도 있지만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도 한가득이었다. 살기는 그런 사람들을 괴롭힐 지경이었다.
탁명옥이 경고했다.
“서안의 중도를 나뿐만이 아니고 강북련이 존중하는 바이지만,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아마 강북련은 모용세가에 실망하게 될 겁니다.”
모용중걸은 한숨을 돌리며 다시 강조했다.
“말로 할 생각은 없느냐?”
그러자 광검이 아닌, 가장 동안이라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광겸의 입에서 분노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말? 죄 없는 두 모녀의 인생을 망가뜨린 말? 개는 사람 말 안 해! 짖든가, 아님 물든가!”
모용중걸의 얼굴이 굳어지며 하늘을 보며 장탄식을 했다.
“아, 형님이 어쩌다 그런 냄새 나는 계집의 암수에 걸려 쓰러지지만 않으셨어도 세가의 이런 치욕이 오지 않았을 것이거늘!”
그리고 다시 삼 형제를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끊어서 내뱉었다.
“내 오늘 세가의 영광을 다시 빛낼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너희의 말은 기필코 내가 들어야 한다.”
그 뻔뻔함은 광검을 누르고 있던 종남일기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모용중걸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영광? 놀고 있네. 운종룡풍종호,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는 법. 그러나 오직 똥은 개에게 꼬일 뿐이니, 너도 개 주변의 똥파리가 되는 게로구나! 서안의 용, 모용이 똥이 되었구나. 개를 스스로 찾아와 싸우다니.”
더할 수 없는 모욕에도 모용중걸은 꿈쩍하지 않았다.
말없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살기가 물결쳤다.
이미 대결은 막을 수 있는 선을 넘었기 때문에 탁명옥은 사람들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있었다.
모용중걸이 천천히 말했다.
“너희 셋 다 나오거라. 나희령을 합공했다고 했으니 나도 한 번 받아 보자꾸나.”
그러자 청현이 울상을 지었다.
“아이고, 아버님. 이런 데서 싸우시면 어떡하십니까? 더구나 셋이라니오?”
모용중걸은 이런 못난 모습을 보이는 조카의 모습에 더 살기가 뻗쳤다. 자신의 실수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하지만 자신의 의도는 맞아떨어졌다.
윤홍광은 딸인 홍춘과 손녀 아현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었다. 과연 이들을 거두려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십 년간 죽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물론 모용중걸은 윤홍광 본인이 직접 나타날 줄 알았고, 나희령에게 딸의 시댁 가주가 죽었음에도 나서 주지 않은 일에 대해 직접 따질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간 큰 생각이기도 했다.
이것은 무엇보다 윤홍광이 인정에 약한 자라는 사실을 이용한 극도의 이기심이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왔다.
견물생심이라, 모용중걸은 이참에 윤홍광의 심득까지 훔쳐 낼 생각이었다. 내공은 나이에 정비례하는 것이 당연했다. 윤홍광이 일찍 죽은 것은 마교와의 싸움으로 인한 상처 때문일 것이니 견자단이 받은 것은 별로 없다고 확신한 이후였다.
그러나 광검은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셋? 골고루 하시는데, 얘, 막내야!”
“오늘 개싸움 한 번 더 하지 뭐!”
광겸이 이를 갈아붙였다. 정말 혼자 나서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녹진자의 말이 이어졌다.
“선배,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오?”
이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오로지 모용중걸, 한 명뿐이었다. 알아들었다고 해도 그는 마지막 비장의 수가 하나 더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도를 뽑아 들었다.
스르릉.
모용세가의 오늘, 서안의 용이라는 칭호를 얻게 해 준 중도였다.
광겸은 씨익 웃었다.
“작은형, 개, 개, 개. 역시 견자단이라고 이름 짓기를 잘했어. 꼴리는 인간들한테 개싸움 걸기 좋잖아?”
광겸의 이빨이 번들거렸다.
방 안에서 흘리는 아현의 눈물이 반짝이는 만큼 광겸의 이빨도 움직였다.
“간다고! 멍멍!”
부우우우우―
단순히 떨리는 소리라 치기에는 괴상한 음높이.
도신이 떨렸다.
이른바 칼을 떨어 울게 만든다는 검명(劍鳴)의 경지였다.
아니, 검이 아니고 도이니 도명이다.
지금 모용중걸이 든 것은 길이 네 척, 너비만 한 뼘을 훌쩍 넘어가는 중도였다. 두께도 칼등 부분은 손가락 한마디에 달했다.
그렇게 육중한 쇠가 통째로 떨리는 광경?
아주 세게 부딪쳤을 때나 간신히 손이 울릴 만큼 떠는 경우를 누구든 경험해 봤고, 그 느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건 그냥 생으로 진동이 이는 것이고, 그게 꽤 높은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저렇게 떨리는 것은 얍실한 두께의 검이 우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어디로 뛰쳐나올지 감을 잡기도 힘든 것이다.
육중한 중병의 힘을 그대로 발휘하면서도 표홀한 가벼움은 꽃잎을 톡톡거리며 희롱하는 벌 같다고 해서 모용세가의 도법 이름이 ‘화봉밀(花蜂蜜)’이었다.
애초에 만나기조차 불가능한 두 가지 특성이 봄날 눈 녹듯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도법이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종남과 화산의 전초기지이자 앞마당인 서안에서도 절대로 군림했다. 나희령에게 깨지기 전까지 말이다.
물론 아직 서안제일인 모용중걸은 깨진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광겸의 손에 들린 얄팍한 칼이 애처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두 개라지만 길이도 두 척이 될까 말까 했고, 너비도 손가락 길이 하나, 두께는 칼등 부분이 반의반 치도 채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얇은 두 개의 칼을 뒤로 돌려 세운 채 몸통박치기를 할 듯 머리부터 밀고 들어가는 광겸이었다.
“간다고! 멍멍!”
어리숙하게 보이던 모용청현의 눈에 언뜻 놀람의 빛이 스쳤다.
모용의 중도는 그 진동만으로도 근접 박투를 하려는 자의 짧은 병기쯤은 언제든 산산조각 낼 수 있다. 진동이 자유자재로 정교한 찌르기 같은 궤적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병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피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화봉밀이란 이름이 붙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대방이 정면에서 보면, 떨리는 시점부터 이미 도의 끝머리가 수십, 수백 개로 보인다. 그러면 수백 개 중 어느 것이 튀어나올지 몰라 일단 수비적인 태도를 취한다. 결국, 저 육중한 중도를 자신의 병기에 그냥 속절없이 부딪쳐야 하는 것이다.
중병. 글자 그대로 무거운 병기의 이점은 상대방이 자신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내공만 아니라면 부딪치는 순간 무조건 유리하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광겸처럼 저렇게 무식하게 돌진하면 결말이 빤했다.
그러나 개방의 황안걸개는 강직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젊은 사람의 호기를 부추기도록 ‘하늘의 발톱 같은 쌍칼’이라는 극찬을 괜히 했을 것인가.
홍춘의 옆에서 지켜보던 모용청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간…….”
광겸의 두 칼이 등 뒤로 돌았다. 가슴이 훤히 비었다.
부우우우우우―
모용중걸의 칼이 그 큰 몸체를 간댕거릴 만큼 세게 떨어 댔다.
“다…….”
한 발이 튀어나오는 순간에 광겸의 몸이 죽 늘어났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고…….”
모용중걸의 칼은 제 주인의 손까지 잡고 멋대로 떨어 댔다. 이젠 손잡이를 쥔 손도 여러 개로 보일 지경이었다.
“멍!”
광겸의 신형이 모용중걸의 도신 바로 앞으로 쑤욱 들어와 내밀어졌다. 동시에 뒤로 감춰졌던 두 개의 칼이 앞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바로 모용청현에게 싸움을 말려야 한다는 감각이 강하게 닥쳐온 시점이었다.
“멍!”
그러나 광겸의 말이 맺어짐과 동시에 한 가닥 소음이 같이 일었다.
짝―!
요란하던 도명이 사라졌다.
모용중걸의 얼굴은 홰까닥 돌아가 있었다.
광겸은 이미 모용충헌의 옆을 살짝 지나쳐 있는 상태였다.
드쿵!
파사삭―
광겸을 스친 모용중걸의 도기가 뒤편의 안채 처마를 부수고 기와 몇 장을 떨어뜨렸다.
방금 그 장면을 마당에 같은 높이로 내려와 있던 사람 중 제대로 본 사람은 모용청현뿐이었다.
천하의 모용중걸이 뺨을 맞았다!
“헉!”
제대로 본 모용청현의 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중도의 극한까지 올랐다는 모용중걸이 새파란 애송이의 도신에 뺨을 맞았다!
뺨이 드디어 붉은 자국을 내보이기 시작했을 때, 모용중걸은 마침내 그 상황을 이해했다.
자신은 광겸보다 한 수는커녕 한참이나 아래이고, 게다가 광겸은 예의고 나발이고를 떠나 자신의 자존심을 개 패듯 뭉갰다는 사실을!
“크으으흐!”
괴상한 신음이 모용중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고개는 아직도 돌려지지 않은 채였다.
그때, 녹진자의 한마디가 던져졌다.
“그래서 내 말려야 한다고 했잖소.”
그 말이 그제야 모용중걸의 가슴에 아프게 찔러 들었다.
이건 아예 경멸하는 정도니 말이다.
옆의 종남일기가 맞장구치는 말은 모용중걸의 염치조차 날려 버리는 것이었다.
“아, 그놈의 자식. 모용세가가 저리됐으니 서안 전체가 빠져들 충격은 어쩌라고. 어른이고 서안의 기둥이고 나발이고 눈에 두질 않는구만. 확실히 견자 맞네.”
그러나 애석하게도 광겸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왜 안 봐줬냐는 핀잔이니, 모용중걸을 광겸이 봐줘야 했다는 말이었다. 천하의 모용중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