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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운종룡변종견
작가 : 담적산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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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이 나타났습니다. 시장 상인들을 괴롭히며 돈을 뜯는데,
체면상 우리가 직접 나서 줄 수도 없고 해서……."
"견자단을 쓰세요."
"혹시 한자가…개[犬]……."
"개자식들 맞아요."
"에…흠, 흠, 이름부터가…이런 일에 꼭 필요한 자들 같군요. 알겠습니다."

"꼴통이 또! 나타났습니다. 일류 고수를 서넛이나 맞이하고도 농담까지 하면서
칼 쓰는 걸 보니, 절정입니다.
그 경지까지 올라갔다면 정신 수양이 안 될 턱이 없는데,
어찌 그런 사도로 빠져들었는지 참……."
"견자단을 쓰세요."
"에엑! 대체…그놈들 뭡니까?"
"묻지 말아요. 다쳐."

 
16 화
작성일 : 16-07-19 15:06     조회 : 616     추천 : 0     분량 : 5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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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난리, 아주 개난장

 

 

 

 

 

 

 

 

 

 밥 먹는 분위기는 나름대로 좋은 편이었다.

 젓가락질도, 국 뜨는 작은 국자도 딸그락거리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잘 먹고 있있으니까.

 아현이도 구김살이 적어 사람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을 성격이었다. 그래서 화기애애했다, 처음에는.

 그러다가 도로 나빠진 게 둘째 광검의 이야기로 화제가 돌아가면서였다.

 “저놈은 왜 저렇게 몹쓸 방법을 익혔냐?”

 거기까지만 애기했어도 그렇게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늙은이라는 것의 장점은 감추면 안 될 일을 과감히 까발려 드러내는 연륜에 있었다. 해서 녹진자는 다음 말까지 덧붙이고 말았다.

 “얼마 살지도 못하게 생겼잖아. 쯧쯧.”

 딸그락.

 순간, 홍춘의 젓가락이 접시를 헛 찍었다. 아현의 눈이 겁으로 물드는 것을 본 탓이다. 평소에도 둘째 삼촌 제발 웃으라고 잔소리하는 아현이었다.

 광검이 시한부라…….

 홍춘이 남궁세가에서 쫓겨날 때만 해도 아버지를 원망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인, 하녀들이 다 떠나고 손에 물기가 마를 날 없이 일하게 되면서, 미래는커녕 밤을 새고 일해 두 끼 먹을 곡식조차 간신히 추스르는 나날이 봄부터 겨울까지 쉼 없이 이어지면서, 어머니의 병세가 깊어져도 몇 년 내 연락 한 번 없는 아버지가 어찌 섭섭지 않을 텐가.

 한 번 돌아서기 시작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를 땅에 묻던 날, 홍춘은 눈에서 피를 쏟고 말았다.

 피눈물이 아니었다. 피였다.

 자식까지 팔아 약을 샀는데도 어머니는 속절없이 세상을 떠 버렸다. 이제 기약 없이 화류계에 몸담을 아현은 어쩌란 말인가!

 죽지도 못했다. 아버지 윤홍광에 대한 원망으로 살았다.

 그게 홍춘이 살아가는 힘이었다.

 그럴 때 이 삼 형제가 나타난 것이다.

 

 -사부님의 유언을 받들어 당신을 도와주겠소.-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걸 받아들이면 지난 세월 힘들게 버텨 온 독기가 무너질 것 같아 삼 형제를 미워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현이 기루에 잡힌, 자신의 마음이 독기로 가득 찬 그 모든 일에 대해 아버지의 대리인인 삼 형제에게 퍼부었다. 아버지 윤홍광이 직접 나타났다면 그나마도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요상한 것이 사람이라, 미워한다는 것도 끝까지 변색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광검의 사연은 그런 홍춘의 아픔 못지않은 것이었다.

 홍춘의 손가락이 콱, 젓가락을 찍은 상태로 버텨야 할 만큼.

 “둘째는…… 우리 중에 근골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래서 만령충 시술을 가장 독하게 받았죠. 그 인정 많은, 천하제일의 눈물대협이신 사부님이 손 털고 포기하실 만큼.”

 광겸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입은 그렇질 못했다. 씹혀지는 닭다리가 아까부터 계속 맴돌기만 하지 않는가.

 광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포기하지를 못해서, 결국 둘째는 사부님에게 따졌습니다. 마지막 수단을 왜 내놓지 않느냐고 그랬지요.”

 종남일기의 육중한 저음이 방 안을 울렸다.

 “그래서 홍광이 내놓은 것이 바로 저거였군.”

 녹진자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런다고 음중극음의 기운이 뭐냐? 북해빙궁의 독한 여자애들도 익히기 전에 몇 년씩이나 준비를 하고 체질 변화를 시켜야 간신히 반쪽짜리 수업을 받을까 말까 한 걸…….”

 “나는 후회하지 않소.”

 광검은 입을 고집스럽게 씰룩였다.

 녹진자가 헛웃음을 치며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째 그렇게 편파적이냐? 젊은 날 복수로 다 허송세월하면 누가 네 인생 책임져 주냐?”

 광검은 입을 씰룩이다가 목까지 치고 올라온 말을 그냥 삼켰다.

 복수가 젊은 날의 전부라는 것을.

 홍춘처럼 독기가 끝나면 자신도 끝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현의 눈은 그런 광검에게로 쏠려 있다가 다시 화산의 도사에게로 향하며 불안해했다.

 그것을 보면서 홍춘은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가족이…….’

 가족.

 아현은 자기를 낳은 친아빠의 얼굴도 몇 번 못 봤다.

 너무 어릴 때였고, 그나마 말을 갓 시작할 때 할아버지의 압력에 못 이겨 발걸음을 끊은 것이 여태 이어진 상태였으니 당연했다.

 언젠가 홍춘이 기방에서 맞을 뻔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타나 구해 준 것이 삼 형제였다.

 아현은 삼 형제와 그때부터 가까워졌다.

 생각해 보면, 아현이 먼저 가까워졌기 때문에 홍춘도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셈이었다.

 으리으리한 저택, 영광의 가문, 남편…… 모두 다 자신을 버린 시점에 새로 나타나 자신을 쳐다봐 준 삼 형제.

 다른 남자와 애까지 낳고 쫓겨난 여편네라는 꼬리를 알고도 기꺼이 맞이해 살겠다는 광수.

 무엇보다…… 하나뿐인 딸이 이제 이들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를 기루에 팔다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미친 짓 같고 정말 자기 자신을 확 어떻게 해 버리고 싶을 만큼 후회스런 일이었다. 그래서 아현에게 뭐든 해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아현이 광검을 걱정한다.

 어리다고 해도 이제 열셋. 눈치로 보기에 까마득한 어른들 앞이라 말은 못하지만, 광검이 곧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곧바로 알아들은 눈치였다.

 눈 속에 파묻힌 자잘한 떨림, 그리고 느려진 젓가락이 증명했다.

 홍춘의 마음도 같이 떨려 왔다.

 ‘가족이야, 이제…….’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이렇게 모여 서로 사랑하면 그것이 가족이다.

 홍춘도 이미 삼 형제에게 기대고 있었다. 자신은 그걸 인정치 않았다지만, 어린 아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슴이 울컥했다. 코가 싸하니 눈물이 돌 것 같았지만, 홍춘은 눈물 참는 건 무인으로 치면 절정고수였다.

 홍춘은 내색 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또 내색 없이 녹진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미 너무 기울어 쓰러지기 직전인 걸 어떻게 고쳐? 나참, 뭐 건질 거 있나 하고 왔더니…….”

 투덜거릴 뿐이잖은가!

 한숨이 나올 만한 사안이었다. 방법이 없다니! 연미의 반응으로 보아서는 정말 그 고명하다는 화산하고도 본산에서 직접 내려온 사람임에 틀림없었고, 말로만 듣던 종남일기와 스스럼없는 정도라면 보통 고수는 아닐 터라고 짐작은 했다.

 그런 고수가 곧 죽겠다고 재차 확인을 하다니.

 홍춘은 그제야 삼 형제에게 따뜻하게 대해 준 것이 아주 드물었던 것을 후회했다.

 결국 더는 견디지 못하고 홍춘은 직접 물어보고 말았다.

 “방법이…… 없으시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녹진자는 인상을 팍, 아주 팍 썼고, 대답은 옆의 종남일기가 대신 했다.

 “아니다. 방법이 있긴 하지. 대신 저놈이 아끼는 게 하나 사라져야 하지.”

 “헉! 선배!”

 녹진자가 비명을 질렀다.

 시선은 모두 녹진자에게로 쏠렸다.

 아끼는 거? 이게 웬 반전이야?!

 아현의 커다란 눈망울이 녹진자를 간절히 쳐다보자 종남일기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네놈이 아끼는 걸 주려던 생각이 아니었으면 왜 이리 기어왔냐? 저, 피도 안 섞인 둘째 삼촌을 살릴 수 있을까 하고 열심히 쳐다보는 이 소녀를 봐라.”

 녹진자는 울상을 지었다.

 “선배, 이놈이 이렇게 망가진 놈이란 걸 개방 거지가 애길 안 했소! 난 홍광이 소식 물으러 여기 온 거요! 그건 본산 살림에 커다란 도움을 주는 속가 표국의 아들놈에게 주기로 한 건데 느닷없이…….”

 그러자 종남일기는 코웃음을 쳤다.

 “우린 내가 무시를 당할 정도라 만령충 피해를 봤고, 화산이야 네놈이 있어 만령충을 안 뿌렸다만…….”

 종남일기가 무시를 당하다니!

 그걸 스스로 저렇게 이야기하다니, 아무리 해학이라도 지나쳤다. 자기를 못 깎아 먹어 안달이 난 사람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행태인데, 어쨌든 그만큼 자존심 상했다는 표현이었다.

 연미는 그것 때문에, 녹진자는 난데없는 대재앙이 떨어졌다는 의미로 입이 떡 벌어진 가운데 종남일기는 말을 이었다.

 “니네 본산이야 그렇다 쳐도 속가는 무사하겠냐? 만령충 이번 판은 아주 색다르던데. 아무리 화산의 푸른 먼지라도 혼자선 어림없을걸? 그리고 여기 이 개들은 솜씨가 좋더만. 충분히 거래할 만하지.”

 “배은망덕한 구대문파 도움 따윈 필요 없어!”

 광검이 벌컥 화를 냈다.

 광수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지만 광검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 우린 스스로…….”

 말은 이럴 때 잘라야 한다. 늙은 생강은 역시 매웠다.

 종남일기가 빠르게 쏴붙였다.

 “마교에 복수하기엔 네 남은 명줄이 터무니없이 짧아, 이놈아! 마교가 무슨 여기 서안에 널린 개집인 줄 알아! 현실을 직시해라, 좀!”

 광검이 벌떡 일어서려 했다.

 “이런 제기! 얌전히 밥 한 끼 먹여 주려고 했더니…….”

 그때였다.

 작은 손 하나가 식탁을 짚은 광검의 손등을 지그시 눌렀다.

 아현이었다.

 “삼촌…….”

 광검은 무의식적으로 뿌리치려다가 흠칫했다. 아현의 손등 위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기방에서 받는 수업은 혹독하다.

 광검은 기루의 호위무사에게서 그렇게 들었다. 어린 나이의 수련생 중 유일하게 눈물 없이 밝고, 모자라 보일 만큼 잘 웃는 아이가 아현이라고.

 그러나 이어지는 아현의 말도 떨리는 소리였고, 광검의 굳은 가슴도 같이 떨리게 하는 소리였다.

 “난…… 그냥 좋기만 했어. 삼촌이 그런 줄도 몰랐어. 자존심이 제일 세니까…… 난, 삼촌이, 그냥…… 오래오래, 나랑 엄마랑, 삼촌 색시랑……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고는 끝내 일어서 눈을 훔치며 방을 나가는 아현이었다.

 드르륵, 탁.

 문이 닫혔다.

 광검도, 종남일기도, 녹진자도 말문이 닫혔다.

 홍춘의 눈에 눈물이 홱 돌았다.

 아이로서 겪어야 했던 험난한 세월이 이제야 눈물로 나오는 것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게 엄마냐!’

 그리고 광수의 말이 방 안을 울렸다.

 “사부님의 유언은 최종적으로 홍춘과 아현을 잘 보살펴 주라는 것이었다. 마교는 거기에 걸림돌일 뿐이지. 우선순위 착각하지 마라. 네가 아현에게 배우고 다닐 테냐?”

 녹진자가 주목한 것은 그 말 중 ‘유언’이라는 부분이었다.

 “홍광이, 그 아이가 결국 세상을 떴구나…….”

 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쩌다 보니 이번 해엔 제사도 걸렀군요. 감히 배은망덕을 논할 처지가 저희도 못 됩니다.”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세상 이치 참으로 모질다. 모질고 모질어……. 우리 본산의 아이들도…….”

 그러나 말은 뚝 끊겼다. 변명을 대신 해 줘 뭣 하겠는가.

 저리 앞뒤 구분 없이 증오로 세상 살 만한 일을 당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녹진자는 헐렁한 소매 춤에 손을 넣었다.

 그 손에 잡혀져 나온 것이 하나의 환단이었다.

 대번에 잔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거, 종이로라도 싸서 다니든가 하지, 그게 뭐냐!”

 “뭐긴 뭐요, 내 심후한 내공이 실린 살에 접촉하면 약효가 더 늘어나는 거지.”

 “……!”

 어처구니없어 하는 것은 연미뿐이었다. 돌아보니 아무도 표정의 변화가 없어서 연미는 순간적으로 헷갈렸다.

 ‘진짜로…… 녹진자 어른만 한 고수는 살에 비비기만 해도 그런 효과가 있나?’

 설마…….

 “어르신, 그것은……?”

 거무스름한 환단의 모양새가 기막혀 물어본 질문이었다.

 “이거…… 영험한 거지, 그럼.”

 녹진자의 말이 장황해지려는 기미가 보이자 종남일기가 중간에 자르려 들었다.

 “약장수냐? 영험?”

 그래서 녹진자의 표정이 약간 뚱하게 변했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것을 도로 주워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녹진자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화산의 체통이 한 방에 무너질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약간 궁시렁거리다가 녹진자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물이란 건 세상에 알려진 듯이 말 그대로 영험한 거야. 영물은 세상의 기운이 흐르는 것을 보거나 혹은 느끼지. 그리고 거기 맞춰 반응해서 살아가는 거야. 이 환단의 재료가 된 놈도 그랬다.”

 “영물이군요.”

 광겸이 신기하다는 듯 자세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광검은 고개를 돌리고 반응하지 않아서 광수의 울퉁불퉁한 손이 억지로 돌려놓았다.

 “험, 험. 일단, 모든 생명체는 열이 있다. 열이 있어야 하지. 북해의 차가운 바닷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도 열이 있다. 열이 없는 것은 시체뿐이야. 음중극음을 남자가 익히면 그래서 시한부 인생이 되는 거다. 아무리 극음이라도 생명인 이상 열은 미세하게 남아 있거든.”

 어째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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