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반가워, 개 떼 안에 어서 와
기백 명.
그것도 새끼 거지는 거의 다 다리 밑으로 들어가고 남은 것은 어디 나가서 제법 행세깨나 할 수 있는 삼결, 사결 거지뿐이었다.
그런 사람들 기백 명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는 둘을 향해 광수가 빽! 고함을 질렀다.
“돈 다 압수한다!”
뚝!
둘의 행동과 입은 그 순간에 얼어붙었다. 더불어 광수의 무게감 있는 행동을 기대하던 기백 명 개방 거지들의 눈도 같이 얼었다!
대체 저 삼 형제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이야기는 그 수준에서 마무리 지어졌다.
물론 도현호는 불만을 표현했지만, 광수는 더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해 주지 않았다.
도현호는 불만이라는 심정을 비꼬듯이 표현했다.
“남편 정력이 토끼 같은 아내들의 불만이 이제 감이 오는구려. 이야기를 듣다가 이제 초입에서 끊으니 심기가 오히려 불편하오. 강호 전체가 피바람으로 범벅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일인데…….”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거요.”
도현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픽, 웃었다.
“수많은 강호 대협들이 그런 말을 하지. 그 대사, 지겨울 때 안 됐소?”
광수는 희미하게 웃었다.
“원래 오래 듣던 말이 좋은 거요. 옛날의 향수라는 게 있잖소.”
그 말을 끝으로 셋은 정말 일어서 객점으로 가 버렸다.
도현호는 한숨을 쉬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말했다.
“방주님께 연락을 넣었느냐?”
“방금 출발했습니다.”
“지금 사부님은 어디 계시느냐?”
“종남에는 잠깐만 들르시고, 벌써 여산을 넘으셔서 화산에 도착하셨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다시 한숨이 깊어질 도리밖에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에 종남은 또 별 반응 안 보인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노구를 이끌고, 그것도 밤에 화산으로 내쳐 부리나케 길을 갔다는 것이 증명했다. 서안에서 종남산은 한 시진이 채 못 되면 닿는다. 그러나 서안에서 화산까지는 여산도 가로막을뿐더러, 제아무리 고수도 반나절 만에는 힘들었다.
물론 황안걸개가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점도 있기야 했지만, 종남에서 황안걸개를 만류하지도 않은 셈이다.
‘뭉쳐도 모자랄 판에…….’
도현호는 속이 쓰렸다.
‘아까 시신을 괜히 태웠다.’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던져 줄걸!
그리고 그것보다 더 종남에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광겸의 쌍도술이었다.
수백의 일류 고수가 두 호흡 들이마시는 사이로 한꺼번에 합격하는 것을 버티고, 틈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는…… 정말 글자 그대로 한 세대를 무적으로 주름 잡을 수 있는 도법.
종남은 그 도법을 버틸 수 있는 자가 셋이나 있을까?
아니, 종남‘만’ 그럴까?
‘후우, 구대문파라고…… 너무 고여 있었구나.’
걱정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입으로 떨어져 나왔다.
“종남으로 간다.”
사결 제자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저, 분타주님…… 차라리 화산으로 가서 같이 논의하시는 게…… 황안 장로님조차 박대를 당하신 듯한데…….”
도현호는 이를 갈아붙였다.
“남들이 태산이라고 추켜세워 주니 정말 태산인 줄 아는 게지! 사부님이 흘리셨으면 제자인 내가 당연히 챙겨야 할 것 아니냐! 일단 종남과 화산이 공동 대응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내친김이라고, 당장 뛰어가던 도현호의 입에서 한마디 새어 나왔다.
“이런 일을 꼭 거지가 일일이 챙겨야 하냐? 돈 많은 문파엔 젊은 놈들 다 얼어 죽었대? 젠장!”
그러나 누굴 탓하겠는가.
개방의 발과 눈이 넓고, 더불어 오지랖도 넓은 전통이 있는 게 탈이 아닌가. 도현호는 다짐했다.
‘나도 제자 키워 일찍 은퇴해 버린다!’
한숨은 객점에서도 나왔다.
연미도 함께 돌아서긴 했다. 그러나 까마득한 절벽을 마주한 듯한 기분은 도현호와 마찬가지. 잠이 올 턱이 없었다.
‘마교라니!’
저 서쪽에서 온 배화교도 아니고, 그냥 악마를 섬기는 무리라니!
‘영생불사?’
너무 황당한 이야기들이었다. 자신같이 평범한 여자들, 그렇게 평범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는 여자들이 감당할 수 있을 성질의 절벽이 아니었다.
광겸이 순진하고 귀엽게 보이던 시간은 까마득한 옛날로 느껴졌다.
연미는 날렵한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게 성격은 우직한 편이었다. 그나마 광겸과 연애하고 사귈 시간이라도 조금 있었다면 이런 갈등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놈의 말 한마디가 웬수였다.
―결혼해 주실래요?―
―며칠만 기다려 주시면 그렇게 할게요.―
그런 급한 결정을 하도록 만든 자신의 식구들은 그 보람도 없이 다 죽어 버렸다.
‘휴우…….’
물론 살부지한의 한을 갚아 준 것만으로도 광겸을 평생 받들고 살 만한 이유는 되었다. 게다가 장원 식구들이 죽은 것은 연미 자신이 순진한 탓이었지, 견자단이 실수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지극정성의 효심으로 인해 감사함으로 한 남자를 주종처럼 떠받들고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나라에서 효자, 효녀비를 세워 주겠는가!
“어휴!”
연미는 벼룩이 있지도 않은 이불만 엎치락뒤치락 구박하며 날을 새고 말았다!
견자단 삼 형제의 집은 서안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불과 두어 시진 만에 당도했고, 그래서 연미는 셋이 그렇게 두려워한다는 홍춘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홍춘.
연미가 홍춘을 본 첫인상?
말도 없었다.
인사도 없었다.
그냥 어,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홍춘이 몸을 돌려 셋을 보자마자 접시 하나가 날려진 것이다.
기가 막히고 황당한 일이라 연미는 입만 뻐끔했다.
그 접시를 광수가 받아 들자 홍춘은 소리부터 질러 댔다.
“내가 늦어도 어제까지 오라고 했어, 안 했어!”
“……?”
셋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홍춘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로 쏘아붙였다.
“아버지 제사였잖아!”
그제야 셋의 얼굴에 한꺼번에 붉은 기운이 올라왔다.
연미로서는 누구의 아버지를 칭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여하튼 제사일이 어제였다?
‘그런…… 혹시 나 때문에 하루 더 묵은 것을 말해 볼까?’
그러나 홍춘의 노기등등한 얼굴, 그리고 이어진 다음 행동은 연미의 이런 순진한 생각을 저만치 날려 버렸다.
홍춘은 등을 홱 돌려 매몰차게 대문을 나가 버렸다.
“오늘 밥 굶어!”
삼 형제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고, 광겸이 기어이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형수, 오늘은 좀 상태가 좋네.”
연미의 입은 손으로 막혔다. 연미 스스로 틀어막은 것이었다.
‘이게…… 기분이 좋은 거라고?’
기가 막혔다. 저런 윗동서 형님을 모셔야 하는 거냐!
이건 화가 나면 말인지 막걸리인지 구별이 안 가는 지경이 아닌가.
“후우…….”
연미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광겸이 그런 홍춘의 뒷꼭지에 대고 소리쳤다.
“형수, 어디 가요?”
그러자 연미의 머릿속에서 사발 깨지는 소리가 들릴 만한, 그런 황당함이 대답으로 나왔다.
“며칠 전까지 이름 척척 잘 불러 젖히더니, 밥 굶으라니까 무섭냐! 내가 왜 니네 형수야, 미친놈아! 나, 니네 형이랑 같이 잔 적도 없어!”
그래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상태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홍춘에게서 투덜거림이 새어 나왔다.
“배은망덕한 새끼들! 남자 새끼들은 이래서 다 필요 없어!”
이건 같은 여자 입장에서 듣고 있던 연미의 볼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광검은 머쓱하게 광수만 쳐다봤고, 광수는 깊숙한 눈빛만 홍춘의 뒷발에 던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광겸의 말에 일행들이 눈을 돌렸다.
“어, 어, 형수 또 만월루 가는 모양인데…….”
연미는 그 말에 뜨끔했다.
이름 듣자하니 기루로 간다는 말이 아닌가.
대체 뭐가 어찌 돌아가는 분위기인가. 이번 궁금함은 도저히 참고 어쩌고 할 사안도 아니어서 연미는 드디어 물어봤다.
“기, 기루에 무슨 일로 가신다는……?”
셋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광수가 천천히 홍춘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하자 광검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현이 데리러 가는 거야?”
연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아현? 아이가?’
그것도 기루에 놀러 다니는 아이?
종잡을 수 없는 사연. 그래서 연미는 더 지켜보기로 했다.
광수는 홍춘에게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주었다.
홍춘이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건? 집에서 반성이나 하고 있으라니까!”
“은 오십 냥이다. 아현이 데려와.”
“……!”
뜻밖의 사태였다.
연미는 그제야 아현이 홍춘의 아이라는 것을 눈치챘고,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이 삼 형제의 실력이라면 그깟 은 오십 냥이 별 문제될 리가……?’
절정고수. 하다못해 마교에서 유별난 대법을 시술받은 무시무시한 괴물.
‘그게 괴물이야, 사람이야?’
연미의 눈에는 그게 그거였다.
하여간 그런 것도 간단히 잡는 무적의 견자단이 애를 왜 기루에 잡힌단 말인가!
게다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홍춘은 분명히 말했다. 광수랑 같이 잔 적이 없다고.
‘그런 대체 아현이란 아이는……!’
광수, 큰아주버님의 아이가 아니잖은가.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야? 과거가 있는 여인?’
그때, 홍춘의 눈은 붉어져 있었다.
“이, 이걸…… 이 큰돈을 어디서 났어?”
입술도 바르르 떨렸다.
아이 때문에 그런다는 것은 금방 짐작할 일이었지마는, 홍춘의 손은 금방 그 돈을 받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광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걱정 마라, 누구 등치고 뺏은 돈 아니니까.”
그러자 홍춘이 소리를 다시 질렀다.
“거짓말하지 마! 칼 들고 건들거리는 것들이 그런 짓 말고 어떻게 이 큰돈을 구해! 너, 정말 막 나가자는 거야?”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황당했다.
“이런 식으로 살면 나 콱 죽어 버린다고 했지!”
견자단이란 이름 때문에 지금 서안이 아니라 강북 전체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고수들, 특히 신진 고수의 소식이란 하루 만에 천 리도 가기 때문이었다. 연미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같이 사는 사람들의 실력도 모를 수가 있지? 이제 강호의 대협이신데…… 완전 삼류 건달 취급을 하니, 이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광수는 홍춘을 달래기에만 급급하는 모습이었다.
“너, 아현이는 어쩌라고 죽긴 왜 죽니. 일단 애를 먼저 데려와. 사연은 천천히 들어도 이상한 게 아니니까.”
“무슨 돈인지 빨리 밝히라니까!”
결국 앙칼진 고함이 대로를 크게 울렸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이 쏠리자 연미가 나서고 말았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이거, 그런 돈 아닙니다. 제가 증인입니다.”
그리고 홍춘의 눈은 그제야 비로소 연미에게로 향했다.
“소저는 뉘신지……?”
그나마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예의를 갖추는 정도가 제법 교육을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연미는 홍춘이 더 헷갈렸다.
“저는…… 곽 씨 성을 가진 연미라고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홍춘의 대꾸에 연미는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화가 나서 연미를 보고도 신경을 안 썼다는 뜻 아닌가.
한숨을 참았다.
“아버님과…… 식구들을 흉적에게 잃고 저도 죽을 뻔했던 목숨입니다. 이 세 분 협객께서 구해 주시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지요.”
그 말에 대해 홍춘이 보인 반응은 단순했다.
일단 입이 왕창 벌어졌다. 한 손으로 그 입을 막으며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개뼈다귀 같은 인생들이!”
오히려 연미가 더 황당해할 차례였다.
개뼈다귀?
“아니, 장강에서 사람을 잡아 고기를 파는 자들을 처리한 것이 이미 한 달 전인데, 견자단의 이름이 천하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 이미 오래전인데 그걸 아직까지 모르셨단 말씀입니까?”
그러자 홍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거침없이 말을 흘려냈다.
“한 달 전에 확실히 장강에 다녀온 일은 있는데…… 놀러 갔다 온 거 아니었나? 그리고 그 견자단은 다른 글자겠지. 설마 이 개자식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것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헷갈려 하다가 손가락을 들더니, 광수와 광검, 광겸을 몰아 찍고, 연미에게로 돌리면서 말했다.
“설마 이 아가씨까지 구슬려 사기 치는 건 아니겠지?”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홍춘. 연미는 정말 너무 꽉 막혔다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순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저기, 외람되지만…… 원래 무인을 싫어하시나요?”
넘겨 짚어본 사안에 홍춘은 아니나 다를까, 크게 흥분했다.
“세상에 칼 들고 건들거리는 것들은 다 죽어야 해요! 그것들은 사람도 아니야! 이 눈앞의 개뼈다귀 삼 형제도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