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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히어로 테일즈
작가 : 두번째준돌
작품등록일 : 2018.11.1

마법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헤쳐 나가며 성장하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 (누구나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장대한 시리즈물로 기획된 '히어로 테일즈'는 마법세계, 특히 블루마법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현실감 있게 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영웅(Hero)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무적의 존재도 완전무결한 신도 아닌 그들은, 그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일뿐입니다.

 
1 - 21화. 결전 (하)
작성일 : 18-11-06 20:06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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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결전 (하)

 

 

 

 제 5산과 제 6산을 최단거리로 이어주는 지름길 중간에 위치한 공터.

 

 거대한 불길이 천사의 날갯짓 마냥 높이 솟아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잠시 후 화염의 맹렬한 열기가 모두 걷히고 공터에는 네 사람의 형체가 드러난다.

 

 서 있는 이가 2명, 그리고 쓰러져 있는 이도 역시 2명이다.

 서있는 사람 중 눈부신 붉은머리의 소년이 한숨 돌렸다는 듯 말을 꺼낸다.

 

 "휴우... 힘든 싸움이었어. '그 기술'까지 사용하게 될 줄이야."

 

 "리미트 해제 말씀이시군요."

 

 단정한 갈색머리의 메이드 사야다.

 하녀복 여기저기가 찢기고 뜯어져 나가는 등 사투를 펼친 흔적이 역력한 그녀였지만, 짧은 단발머리만큼은 평소와 다름없이 정갈한 모습이었다.

 

 "맞아. 내제된 화력의 잠재력을 모조리 끌어내는 기술이지. 그치만..."

 

 춘회가 왼쪽 가슴팍을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자 사야가 그를 대신해 말을 끝내준다.

 

 "그 증가한 화력만큼 몸에 따르는 부담도 크겠군요."

 

 "응."

 

 춘회가 공터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본다.

 리미트 해제의 부작용이 생기게 한 장본인들인 적흑집의 암살조 두 명이다.

 

 "으으..."

 

 긴머리의 여자 암살조 루나가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신음한다.

 완전히 전소해 버린 카인과는 달리 루나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다.

 그러나 화염 공격에 당해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진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춘회가 눈썹을 치켜뜨며 놀라워한다.

 

 "살아 있었네? 그 화력을 버틴 거야? 정말 대단한걸."

 

 "어떻게 할까요, 주인님? 처리해 버릴까요?"

 

 "하하, 됐어 됐어. 어차피 이정도 상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냥 결박해서 데려가자. 나중에 심문이나 해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사야는 기관단총을 블라우스 소매에 집어넣은 뒤, 앞치마 주머니에서 굵은 로프를 꺼내 기절한 루나를 꽁꽁 묶어 놓는다.

 

 "그나저나 촉호가 흑여우 공주를 데리고 빠져나간 거 맞지?"

 

 "네, 저와의 협동작전을 통해서 흑여우 공주 탈환에 성공한 뒤, 곧바로 이곳을 빠져나갔습니다."

 

 "으음..."

 

 춘회는 잠시 팔짱을 낀 자세로 생각에 잠긴다.

 

 그레이백이란 자의 야망에 가득찬 노란색 두 눈동자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과연 촉호가 그의 추적을 물리치고 흑여우 공주를 제 6산 정상까지 무사히 데려다 줄 수 있을까?

 

 "우리도 어서 따라가 봐야겠어!"

 

 춘회가 결박당한 루나를 번쩍 들며 사야에게 소리친다.

 

 그런데 이것은 불길한 징조일까?

 저 멀리 6산의 뒷쪽에서 시커먼 먹구름들이 몰려온다.

 

 '어이 촉호,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절대로 죽지마라. 세계최강 춘회파의 일원이라면 끝까지 버텨서 소중한 걸 지켜내야 되는 거니까!'

 

 

 

 

 <슈웅 슈웅>

 

 흑여우 소녀를 데리고 공터에서 빠져 나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슈웅 슈웅 턱>

 

 "으앗!"

 

 거의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하고 가파른 산길을 쉬지 않고 블링크로 내달리던 촉호는 그만 바닥에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크으으..."

 

 "괜찮아, 촉호?"

 

 넘어지면서 손과 팔꿈치 피부가 까진 촉호에게 흑여우 소녀가 다가와 걱정스레 묻는다.

 

 "괜찮아 별거 아냐. 그런데 정상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거지? 꽤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이제 거의 다왔어. 저기 튀어나온 암봉이 보이지?"

 

 흑여우 소녀가 손가락을 들어 달빛에 비친 높이 20m 정도의 커다란 회색 암석 봉우리를 가리킨다.

 

 "저기만 넘으면 우리 부족이 사는 바위 평원이 나와."

 

 "그래? 진짜 얼마 안 남았네."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의지하며 어두운 밤 산길을 헤치고 나아가 결국 암봉에 도달하고야 만다.

 촉호가 수영선수가 마지막 터치를 하듯 굵직한 회색 암벽을 짚으며 말한다.

 

 "헉... 헉... 드디어 암봉이야."

 

 "응. 촉호! 곧 우리 부족이야. 다 너 덕분이야 촉호. 정말 고마워!"

 

 "고맙긴. 자, 어서 여길 넘어서 너네 부족한테 가자. 나 지금 배고파 죽겠어. 부족 안에 먹을 건 많지?"

 

 그러나 흑여우 소녀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쉰 목소리가 끼어든다.

 

 "물론 많지. 네 녀석들의 시체 같은 거 말이야."

 

 "?!"

 

 촉호와 흑여우 소녀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돌아본다.

 겁에 질린 그들의 눈에 귀신같이 기다란 회색머리 사내의 모습이 들어온다.

 

 녹슨 톱날 같은 누런 송곳니를 전부 드러내고 광기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사내는 적흑집의 수장 그레이백이었다.

 

 "저, 저리 꺼져!"

 

 촉호가 왼팔을 크게 휘저으며 소리쳐 본다.

 하지만 그레이백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촉호의 손에 흑여우 소녀의 떨림이 느껴진다.

 

 "어떡해 촉호...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돼."

 

 "걱정 마. 내가 어떻게든 저자를 쓰러뜨릴게.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 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그레이백이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린다.

 

 "크하하핫! 네가 날 쓰러뜨린다고? 고작 할 줄 아는 거라곤 순간이동밖에 없는 피라미 놈이 감히 적흑집의 수장인 나를?"

 

 "그렇다!"

 

 촉호가 발끈해서 소리치며 그레이백을 향해 덤벼든다.

 그는 파괴의 동굴에서 얻은 벌트로드의 건틀릿을 낀 오른손을 꽉 쥐고는 그레이백의 얼굴을 겨냥해 날린다.

 

 <부웅>

 

 그러나 촉호의 주먹은 오징어 다리인 양 흐느적거리며 허공을 가를 뿐이다.

 손쉽게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해낸 그레이백은 얼굴 가득 조소를 띄우며 촉호를 놀려댄다.

 

 "이게 뭐야? 완전히 애송이 주먹이잖아?"

 

 "이 자식이!"

 

 <후웅>

 

 촉호가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리지만 이번에도 역시 빗나간다.

 

 "하하핫! 아까 전에 호랑이도 잡을 것 같던 기세는 어디 갔나? 그저 기세뿐이었나?"

 

 그레이백은 마치 어린애 재롱 받아 주듯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공격을 피하다가, 갑자기 흐름을 바꿔 무릎으로 복부를 걷어 차버린다.

 

 "커헉!"

 

 "장난은 여기까지다."

 

 "안돼, 촉호!"

 

 흑여우 소녀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안타깝게 부르짖는다.

 그러자 그레이백이 잊고 있던 중요한 일이 생각나기라도 한 듯 그녀를 향해 몸을 돌린다.

 

 "그래. 어서 네 애비를 만나러 가야지. 그리고 오늘 모든 걸 끝내는 거야..."

 

 "시, 싫어. 가까이 오지 마!"

 

 그레이백이 맛 좋은 고깃덩어리를 발견한 늑대처럼 비열하게 웃으며 소녀에게 다가간다.

 

 "보름달이 뜬 오늘, 나는 드디어 친화집단의 수장을 죽이고 모든 흑여우들의 왕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저 오만한 인간들에게 당해왔던 굴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옛 선조들의 땅이었던 파랑도시를 탈환할 것이다.

 오늘부로 나 그레이백에 의해 흑여우들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는 거다!"

 

 어느새 그레이백의 시커먼 손아귀가 흑여우 소녀에게 뻗어와 가느다란 목을 움켜쥐기 일보직전까지 다가와 있다.

 

 눈을 질끈 감아 버리는 소녀.

 '곧 마수가 덮쳐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때,

 

 "헛소리 작작 하시지."

 

 누군가 그레이백의 어깨를 붙잡는다.

 갈색 장갑을 낀 오른손 주먹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투퍼억>

 

 촉호의 펀치에 맞은 그레이백이 뒤로 날아가 버린다.

 그와 동시에 흑여우 소녀가 감았던 눈을 뜬다.

 

 "촉호! 기절한 거 아니었어?"

 

 "내가 말했지..."

 

 촉호가 오른쪽 손등을 문지르며 힘겹게 대답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 주겠다고... 으윽!"

 

 "너 손이!"

 

 흑여우 소녀가 촉호의 오른손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장갑의 힘을 쓴 대가로 촉호의 손에 붉은 잉크병을 통째로 엎지르기라도 한 듯 많은 양의 피가 콸콸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우선 치료부터 하자. 손 내밀어봐, 힐 해줄게."

 

 흑여우 소녀는 울상이 된 얼굴로 촉호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한다.

 소녀가 손바닥으로 내보내는 노란색 빛의 기운은 담요처럼 따스하고 포근하게 상처부위를 감싸준다.

 

 훈훈한 분위기.

 그러나 다음순간 촉호는 어떤 모습을 보고 머리털이 쭈뼛하고 서버린다.

 쓰러뜨린 줄만 알았던 그레이백이 그들을 향해 오른손을 뻗어 무언가를 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플."

 

 거칠게 쉰 목소리와 함께 초록색 에너지가 날아온다.

 촉호는 필사적으로 흑여우 소녀를 옆으로 밀쳐낸다.

 

 <파앗>

 

 초록색 에너지 덩어리는 촉호의 옆구리에 그대로 부딪힌다.

 그레이백의 기술에 당한 촉호는 초록색 공기막 같은 것에 갇혀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

 

 "내가 너무 방심했던 것 같군. 별 볼일 없는 꼬마인 줄만 알았는데 꽤나 매서운 주먹을 갖고 있더구나."

 

 그레이백이 피로 얼룩진 입가를 훔치며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한다.

 휘황찬란한 보름달에 비친 그의 손톱이 날카롭게 번뜩인다.

 

 "정말이지 보름달 덕분에 겨우 버텼다니까.

 그런데 웬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거지? 구름이 달을 가리기 전에 어서 일을 끝내 버려야겠군..."

 

 그는 손톱을 세우고 걸어와서 넘어져 있는 흑여우 소녀의 머리채를 낚아챈다.

 

 "꺄악!"

 

 "방금 전에 사용한 기술은 '크리플'. 행동저지 저주 중에서도 거의 최상위급에 속하는 것이지. 고레벨 저주술사인 내가 보름달 아래서 사용했으니, 보통 인간이라면 거의 이틀은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할거다."

 

 그레이백이 귀띔해준다.

 촉호는 당장에라도 저 가증스런 놈의 머리통을 박살내버리고 싶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그럼 거기서 편안히 쉬고 있거라. 잠시 후에 내가 왕이 된 다음 자유롭게 해줄테니까. 크흐흐, 저주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도 말이다."

 

 이 말을 마친 그레이백은 기분 나쁜 웃음소리만을 남긴 채 흑여우 소녀를 끌고 암봉을 넘기 시작한다.

 

 녹색 저주에 둘러싸여 있는 촉호의 두 귀에 흑여우 소녀의 비명이 들려온다.

 그 소리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촉호의 고막과 심장을 무자비하게 후벼 파놓는다.

 

 '이런 젠장. 움직여라 좀! 제발 움직이란 말이다!'

 

 촉호가 팔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헛수고다.

 그사이 흑여우 소녀의 비명소리는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소녀와 그녀의 부족이 위험에 쳐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촉호를 비참하게 만든다.

 

 '나는...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 거야? 언제나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용사이고 싶어. 그녀의 용사이고 싶다고...'

 

 문득 그는 만난 지 3일째 되던 날, 소녀가 자신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린다.

 왜 자기를 도와주느냐는 질문.

 친구, 돈, 집, 심지어 촉호 자신의 안위조차 잃어 가면서까지 생판 모르는 작은 흑여우 여자애 하나를 위해 왜 그토록 목숨 걸고 애쓰느냐는 그 질문 말이다.

 

 '그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가 없었지. 나도 왜 그랬는지 몰랐으니까...'

 

 촉호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도 빗방울이 하나 떨어진다.

 

 '하지만 이젠 알아, 내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이젠 대답할 수 있어, 그 이유를...'

 

 한 방물, 두 방울 간헐적으로 떨어지던 빗물은 어느새 굵은 빗줄기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한다.

 

 촉호를 둘러싸고 있던 초록빛 저주도 비의 서슬에 씻겨 조금씩 흐려진다.

 건틀릿을 낀 오른쪽 손가락이 부화 직전의 번데기처럼 크게 한 번 꿈틀거린다.

 

 '좋아해, 너를...'

 

 촉호가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러자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저주의 막이 마치 알 껍질 깨지듯 부숴져 버린다.

 

 '좋아해!'

 

 그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흑여우 소녀의 얼굴을 그린다.

 그리고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강한 사랑이라는 마법의 이름으로 기술을 시전한다.

 

 "블링크!"

 

 <슈왁>

 

 지금의 순간이동은 기존의 블링크와는 전혀 달랐다.

 촉호가 간절히 원하는 소녀가 있는 곳이라면, 거리의 멀고 가까움과는 상관없이 어디라도 갈 수 있게 둘 사이를 이어주는 그런 순간이동이었다.

 

 비를 맞으며 암봉 꼭대기에 도착한 그레이백과 흑여우 소녀의 눈앞에 갑자기 촉호의 모습이 나타난다.

 

 "뭐, 뭐야 이자식?! 어, 어떻게..."

 

 그레이백이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그러나 미처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온몸을 던져 내지른 용사의 오른손이 공주를 사로잡은 적의 얼굴에 작렬한다.

 

 <콰아앙>

 

 승리의 비가 축복하는 가운데, 촉호는 새빨간 보석 같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걸 감상한다.

 

 그 사이에서 그는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미소 짓는다.

 기다란 생머리,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의 흑여우 소녀.

 

 촉호가 간신히 입을 열어 자신이 전하고픈 세 글자를 발음한다.

 

 "좋... 아... 해..."

 

 다음 순간, 짙은 어둠이 그의 눈을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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