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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히어로 테일즈
작가 : 두번째준돌
작품등록일 : 2018.11.1

마법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헤쳐 나가며 성장하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 (누구나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장대한 시리즈물로 기획된 '히어로 테일즈'는 마법세계, 특히 블루마법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현실감 있게 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영웅(Hero)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무적의 존재도 완전무결한 신도 아닌 그들은, 그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일뿐입니다.

 
1 - 17화. 납치된 흑여우 소녀
작성일 : 18-11-05 22:08     조회 : 19     추천 : 0     분량 : 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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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납치된 흑여우 소녀

 

 

 

 파괴의 동굴을 무사히 빠져나온 일행은 은발의 키다리 제로와 꼬맹이 흑여우 소녀와 합류하기 위해 녹지대를 지나서 길게 이어진 호숫가로 향한다.

 

 춘회파의 날쌘돌이 정보원 클라이드가 동굴에서 나오자마자 제로에게 마법 메세지로 연락을 해놓은 덕분에, 그들은 호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기다랗고 낭만적인 디자인의 산책 다리에서 곧바로 만날 수 있었다.

 

 "여기야 여기!"

 

 다리 중간 부분에서 흑여우 소녀가 토끼처럼 폴짝거리며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든다.

 기다란 전봇대 같은 제로의 옆에 있어서 그런지 소녀는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한 꼬꼬마 여중생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녀를 본 촉호는 가슴에 작은 손난로를 품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따뜻하게 풀어진다.

 

 "던젼은 깼냐?"

 

 일행이 합류하자 은발의 제로가 조심스레 묻는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꾸만 힐끗거리며 촉호를 엿본다.

 

 물음에 붉은머리 미소년 춘회가 품 안에서 던젼 클리어 확인증을 꺼내 '달랑달랑' 흔들어 보인다.

 

 "짜잔! 네놈 없이도 가뿐하게 깼지."

 

 "쳇... 저 놈은 죽지도 않았네..."

 

 상대가 약을 올리자 제로가 심통 맞게 투덜거린다.

 붉은 머리 리더는 제로의 진심 어린 악담을 한 귀로 흘려듣고는 모두에게 이동을 지시한다.

 

 "3시 반이네. 어서 학교로 돌아갑시다."

 

 총 여덟 명의 일행은 왔던 길을 따라 학교로 돌아간다.

 

 한산한 열차 안에서 촉호는 흑여우 소녀의 옆자리에 앉는다.

 어둠 속에서 덜컹거리는 반대쪽 자리의 창문을 가만히 응시하며 촉호가 말을 건다.

 

 "별일 없었어?"

 

 "응!"

 

 흑여우 소녀가 양 뺨에 귀여운 보조개를 만들며 촉호를 올려본다.

 

 "넌 괜찮아? 던젼을 클리어했단 건 그 차원의 어쩌구 하는 어려운 순간이동 마법을 성공했단 거지?"

 

 "맞아. 성공했어."

 

 촉호는 '너 덕분에'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너무 오글거릴 것 같아서 가슴 속에만 담아 둔다.

 

 "와, 대단하네 촉호!"

 

 "대단하긴 뭘. 내가 한 건 그 마법 하나뿐인데..."

 

 "후훗. 다시 봤어 촉.호."

 

 "...(두근두근)"

 

 흑여우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스타카토로 끊어 부르며 야릇한 눈웃음을 지어 보이자 숙맥처럼 얼굴을 붉힌다.

 이건 여자들이 소위 잘나가는 남자에게 보여주는 행동이 아닌가?

 그는 마치 메이드 카페의 미녀 여종업원이 날리는 고객관리용 미소에 녹아 헤롱거리는 덕후처럼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다 좋은데 아까부터 거슬리는 한 가지가 있었다.

 

 "혹시 제로 선배가 왜 자꾸 날 흘겨보는지 알고 있니?"

 

 촉호가 수상공원에서부터 내내 자신을 옆눈으로 흘겨보는 제로 롱기누스의 존재를 참지 못하고, 흑여우 소녀에게 귓속말로 물어본다.

 호숫가에서 저 은발의 엘프남하고 시간을 보냈던 흑여우 소녀라면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흑여우 소녀가 손톱 끝을 날카롭게 다듬으며 말한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아까 한 말 때문일지도."

 

 <사각사각>

 

 "뭐라고 했는데?"

 

 <사각사각>

 

 흑여우 소녀는 잠시 말없이 손톱을 만지다가 별 얘기 아니라는 듯이 지루한 얼굴로 대답한다.

 

 "그냥 촉호 너랑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란 거랑, 같은 방 쓰면서 이런저런 짓들 했다는 거 정도? 그러니까 나한테 말 걸지 말아 달라고 했지."

 

 "뭐?!"

 

 촉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낸다.

 제로가 자신을 향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자, 촉호는 목소리를 낮춰 작지만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흑여우 소녀에게 따진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린 (아직) 그렇고 그런 사이도 아니고, (아직) 이런저런 짓들을 하지도 않았잖아!

 대체 그런 오해 살 소릴 제로 선배한테 왜 한 거야?"

 

 "저 사람 입 좀 다물게 하려고 그랬어."

 

 <틱>

 

 흑여우 소녀가 엄지손톱 조각을 신경질적으로 날려 버린다. 그 바람에 그녀의 손가락에 긁힌 상처가 난다.

 

 "입을 다물게 하려고?"

 

 "그래. 호숫가 주위를 돌면서 1시간 동안이나 이상한 소리를 해대잖아.

 쿠앤크를 쿠크앤이라고 하질 않나, 자업자득을 자급자족이라 말하고, 네모는 미음이라느니, 그리고 소리에 졌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아무튼 그따위 헛소리들을 제 딴에는 웃겨 보겠다고 지껄여 대는데 도저히 들어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 그랬구나..."

 

 촉호는 흑여우 소녀의 벌레 터져 죽은 사체를 보는 듯한 표정과 질투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흘겨보는 제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잘생겨도 지독하게 재미없으면 끝이구나.'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만약 개그를 수련하면 잘생긴 춘회파들보다 인기 있을 수 있다는 건가?!'

 

 라는 헛된 망상에 빠지는 촉호였다.

 그렇게 지하철은 젊은 청춘남녀 여덟 명을 싣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학교로 달려간다.

 

 

 

 

 Savior. 2007년 9월 15일. 오후 3시 52분.

 

 마침내 춘회파와 흑여우 소녀를 태운 지하철이 학교 이름을 딴 '블루 마법고등학교 역'에 도착한다.

 수상공원에서 돌아온 그들은 깔끔한 대리석 플랫폼을 지나 개찰구를 통과한다.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군."

 

 윌리엄이 시간을 확인하자 옆에 있던 춘회가 말한다.

 

 "오히려 생각보다 일찍 왔어. 난 화장실 갔다 올래."

 

 "아, 나도."

 

 "넌 꺼져, 제로."

 

 "화장실이 니 것도 아니잖아 빨강머리 놈아."

 

 제로가 춘회와 투닥거리며 남자 화장실로 걸어가고, 흑여우 소녀는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혼자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다.

 

 "난 먼저 가지."

 

 네파리안이 차갑게 중얼거리고는 학교 쪽 출구로 걸어간다.

 케이타와 윌리엄도 그의 뒤를 성큼성큼 따라 걷는다.

 

 촉호는 텅 빈 썰렁한 역사에 남아 흑여우 소녀를 기다린다.

 동급생 클라이드만이 함께 남아서 기다려 준다.

 둘은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잡담을 나눈다.

 

 "아까 동굴에서 차원이동한 거 멋졌어."

 

 "고마워.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해 버렸지만 말이야."

 

 "그게 더 대단한 거야. 기술이 몸에 완전히 배었을 때 그런 느낌을 받는다 하더라고. 춘회파 선배들도 그냥 어쩌다 보니 이기게 됐다는 말을 자주 해. 이기는 게 몸에 밴 거지."

 

 "휴... 대체 어떻게 하면 사람이 그렇게 세질 수 있는 거야?"

 

 촉호가 한숨을 내쉰다.

 그러자 클라이드가 촉호의 오른손에 낀 갈색 장갑을 가리킨다

 

 "너도 꽤나 강해질 계기를 얻었잖아? 오우거 왕 벌트로드의 오른손 힘이라니...

 그건 소형 빌딩쯤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거라구!"

 

 "그래?"

 

 촉호의 표정이 희망으로 반짝인다.

 

 "응. 게다가 여기저기 번쩍번쩍 나타나는 네 블링크와 결합시켜 사용한다면 굉장히 좋은 전술이 되겠어.

 아, 물론 그런다고 춘회파 선배들을 이기진 못하겠지만...

 또 블링크와 장갑에 마법부여를 동시에 하는 멀티 캐스팅을 한다거나, 장갑의 파워 반동을 견디는 강한 신체를 만들려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릴 거야."

 

 "그래..."

 

 촉호의 표정에 다시 근심의 안개가 드리운다.

 

 잠시 후 붉은머리 춘회와 은발의 제로가 또 티격태격하면서 화장실에서 나온다.

 

 "넌 무슨 오줌발에 그렇게 힘이 없냐? 시냇물 흐르는 것도 아니고. 자고로 남자라면 나처럼 폭포수 같은 힘이 있어야지!"

 

 "시끄러 춘회."

 

 제로가 엘프 특유의 뽀얗게 광채 나는 얼굴 피부를 찌푸리며 짜증을 낸다.

 

 "사방에 오줌 방울 다 튀는 게 남자다운 거냐?"

 

 "계집애 같은 네놈이 남자다움에 대해 알 리가 없지."

 

 춘회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제로를 도발한다.

 촉호는 지칠 줄도 모르고 틈만 나면 서로를 까대는 저 둘에겐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흑여우 소녀가 화장실에서 나오질 않는다.

 촉호가 역 전광판의 시계를 확인한다.

 

 "3시 59분... 왜 이렇게 안 나오지?"

 

 "큰 거 아닐까? 뭘 그렇게 정색하냐?"

 

 춘회가 실없는 농담을 던졌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헉. 벌써 59분이야? 이러다 또 늦어서 담임한테 혼나겠어."

 

  제로가 당황해한다. 그러더니 맹수에게 쫓기는 한 마리의 기린처럼 휘적대며 학교를 향해 달려간다.

 

 그의 뒷모습에다 대고 춘회가 혀를 내민다.

 

 "저런 멍청이! 나랑 클라이드는 종례 따윈 신경 안 쓰니까 같이 기다려 줄게."

 

 "네."

 

 4시 3분... 5분... 그리고 10분이 되자 다들 뭔가가 잘못되었단 걸 깨닫는다.

 촉호가 불길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여자 화장실 앞으로 달려간다.

 

  "야! 안에 있어? 안에 있냐구!"

 

 그는 입구에서 큰소리로 흑여우 소녀를 불러본다. 그러나 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 오지 않는다.

 

 촉호의 심장박동이 요동치며 올라간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

 

 그의 눈에 믿기 힘든 광경이 들어온다.

 

 화장실 바닥 여기저기에 흑여우 소녀의 것으로 보이는 금방 흘린 새빨간 혈흔과 찢어진 교복 쪼가리들이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고, 천장의 통풍구는 블랙홀처럼 시커멓게 뻥 뚫려 있다.

 활짝 열린 채 흔들거리고 있는 칸막이 안쪽 그 어느 곳에서도 흑여우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촉호는 정신이 아득해져서는 그만 털썩 무릎을 꿇고 만다.

 뒤이어 춘회와 클라이드도 화장실에 들어온다.

 

 "이봐 촉호, 무슨 일... 뭐, 뭐야 이거?"

 

 클라이드가 난장판이 된 여자 화장실 안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춘회는 바닥의 핏자국과 천장의 뻥 뚫린 통풍구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입술을 꽉 깨문다.

 

 "클라이드. 당장 애들한테 연락해. 파랑도시 내부의 도주 및 은닉 가능한 구역을 샅샅이 뒤지도록."

 

 "넷!"

 

 리더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클라이드가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나간다.

 

 춘회가 무릎을 꿇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촉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러자 흑여우 소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촉호의 두려운 마음이 울컥하고 터져 나온다.

 

 "어떡하면 좋죠? 그 애가 없어졌어요. 다시는 그 아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구요! 난 대체 뭘 해야 하는 건지...

 으흑... 난 그 애가 없으면 안 돼. 무서워... 으아아아! 도대체 어떡하면 좋은 거야!"

 

 멘탈이 붕괴되어 갈피를 못 잡는 촉호.

 붉은머리 리더가 그런 촉호에게 냉정하게 말한다.

 

 "일어나 촉호. 흑여우 공주는 적흑집에게 납치됐다."

 

 그러나 단호한 말투와는 달리 그 안에는 촉호를 진정시키고, 다시금 의지를 되찾아 주는 따뜻한 불꽃 같은 무언가가 있다.

 

 촉호는 떨림과 흐느낌이 멈추자 자리에서 일어나 춘회의 진홍빛 눈동자를 주시한다.

 춘회가 그런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시 입을 연다.

 

 "우리는 흑여우 공주를 되찾으러 저들의 본거지로 간다."

 

 "네."

 

 촉호가 굳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적흑집의 본거지인 도시 외곽 제 5산으로 향한다는 춘회의 말에 촉호는 비장한 각오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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