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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히어로 테일즈
작가 : 두번째준돌
작품등록일 : 2018.11.1

마법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헤쳐 나가며 성장하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 (누구나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장대한 시리즈물로 기획된 '히어로 테일즈'는 마법세계, 특히 블루마법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현실감 있게 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영웅(Hero)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무적의 존재도 완전무결한 신도 아닌 그들은, 그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일뿐입니다.

 
1 - 5화. 둘만의 패션쇼
작성일 : 18-11-03 00:48     조회 : 26     추천 : 0     분량 : 5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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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둘만의 패션쇼

 

 

 

 "와구와구. 음~ 이거 진짜 맛있다!

 근데 너 얼굴은 어쩌다가 그 모양이 된 거야?

 혹시 밖에서 썬글라스 남자라도 만난거니?"

 

 런치세트로 사온 햄버거를 상상 이상으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는 흑여우 소녀.

 감자튀김엔 손도 안대고 벌써 촉호 몫의 버거까지 2개째 집어 먹는 중이다.

 

 소녀의 질문에 촉호는 시퍼렇게 멍든 광대뼈를 문지르며 대답한다.

 

 "아냐. 그 녀석하고 마주친 건 아냐. 엄청 난폭한 애랑 다툼이 좀 있었어."

 

 "우웅. 그러쿠낭. 우물우물."

 

 흑여우 소녀, 촉호를 걱정해 주는 건지 아님 신경도 안 쓰는 건지...

 암튼 그녀가 햄버거를 두 개나 먹어 치우는 바람에 촉호는 남은 감자들이나 집어 먹는다.

 

 "야, 근데 너 왜 내 햄버거까지 먹은 거냐? 생각해 보니까 어이없네."

 

 "이게(햄버거) 저것(감자) 보다 더 맛있으니까. 와구와구."

 

 소녀가 태평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참나, 대단한 공주님 납셨군. 그럼 미천한 저는 감자나 집어 먹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

 

 촉호가 비아냥거리는데도 불구하고 소녀가 평상적인 목소리로 대답한다.

 

 마치 높은 신분의 양반이 천민인 말뚝이의 풍자를 못 알아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 그런데 여기서는 천민 촉호가 더 손해를 본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햄버거 두개를 다 먹어치운 소녀는 유유히 콜라를 빨며 TV 앞에 가 앉는다.

 흑여우 소녀는 촉호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정말로 얌전히 TV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인간 세상의 TV를 보는데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이거 꽤 재밌더라. 너희 인간들이 끊임없이 나와서 신기해."

 

 흑여우 소녀가 TV화면을 가리키며 촉호에게 말한다.

 꾸역꾸역 감자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촉호가 대답한다.

 

 "그래. 시간 때우기엔 최고인 인류의 발명품이지. 근데 아침에는 재밌는걸 안하지 않나? 나 없는 동안 뭘 보고 있던 거야?"

 

 "그냥 여러가지. 너 나가고 좀이따 '마녀 재혼하다', '미스 연금술사'란 걸 봤는데 재밌었어."

 

 소녀가 말한 프로들은 요즘 아줌마들 사이에서 대인기인 아침 드라마였다.

 피식 웃는 촉호, 소녀가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그 다음에는 '정치와 세계흐름', '꾸러기 기초 마법교실', 지금은 '12시 뉴스'란 걸 보고 있지."

 

 "뉴스라... 그 썬글라스 남자에 대한 소식은 안 나왔어?"

 

 "응. 아직 별 소식 없어."

 

 "그렇구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감자를 내려놓는 촉호. 아직도 유니온에게 잡히지 않았단 것은 역시 썬글라스 남자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 소리다.

 

 게다가 사건이 있은 뒤 하루가 지났으니 이미 패거리와의 합류도 마쳤을 것이다.

 곧 녀석들이 이 일대를 대대적으로 수색하기 시작할 텐데...

 

 근데 촉호는 그 어떤 방어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에휴, 내 인생~"

 

 "?"

 

 촉호가 깊이 한숨을 또 한 번 내쉰다.

 흑여우 소녀는 '쟤 왜 저리 한숨 쉬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잠시 촉호를 바라 봤다가 다시 재미있고 신기한 TV화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렇게 놀고 먹는 것만 같은 흑여우 소녀였지만, 쓸만한 구석도 있었다.

 치료마법 힐(heal)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여깡 윗키에게 얻어 맞고 피떡이 된 촉호의 얼굴도 따스하고 안락한 소녀의 힐 마법에 금세 나아진다.

 

 “우헤헤. 따뜻하다.”

 

 흑여우 소녀의 무릎을 베고 누운 촉호는 세상 편한 것이 꼭 극락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수수>

 

 치료를 다 받은 촉호는 아침에 산 옷들을 거실 바닥에 쏟아 붓는다.

 소녀가 호기심 가득한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이게 다 뭐야? 엄청나게 많네."

 

 "다 너 입을 옷이야."

 

 상냥하게 대답하는 촉호. 그리고는 G-9에서 마지막으로 산 속옷들이 담긴 쇼핑백을 소녀에게 건네주며 말을 잇는다.

 

 "언제까지 몸에도 안 맞는걸 입을 순 없잖아? 이건 화장실에서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속에 입어."

 

 "인간들이 입는 옷이구나. 고마워 촉호."

 

 "아니 뭘. 썬글라스 놈한테 안 걸리려면 최대한 평범한 여자애처럼 입고 있어야 하잖아?"

 

 촉호가 건네준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며 소녀가 궁금해 한다.

 

 "이 안에 있는 건 속에 입는 거야? 되게 작네."

 

 촉호가 얼굴을 붉힌다.

 

 "그래. 속옷도 몰라?"

 

 "응. 우리들 거랑 좀 다르네. 우린 속옷으로 붕대를 쓰거든. 그럼 한 번 입어볼게."

 

 이렇게 말하고는 흑여우 소녀가 탈의실 대용인 화장실로 들어간다.

 소녀가 문을 닫는걸 확인한 뒤 촉호가 멍하니 중얼거린다.

 

 "붕대라..."

 

 딱히 소녀가 붕대 속옷을 입은 모습을 그려보려는 게 아닌데도 저절로 상상이 됐다.

 은근히 특이한 게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기도...

 

 "안돼! 그만! 그만둬 촉호. 이러면 진짜 변태가 되어 버린다구!"

 

 정신을 차리는 촉호.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며 한순간 그런 생각에 빠졌던 자신을 혼낸다.

 

 그는 묘하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써 TV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지금쯤 흑여우 소녀는 자기가 사준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부스럭거리며 갈아입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큐: 관찰 위습(정령) 다섯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군요. 드래곤의 브래스는 자그마치 그 위력이 일반적인 화염계열 마법사가 시전한 파이어볼 200개 분량에 달합니다.>

 

 어쩌면 촉호가 무작위로 사온 속옷을 입어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촉호. 자신이 그냥 무난한 디자인을 골랐길 바랄 뿐이다.

 

 <적을 물리친 드래곤이 하늘 높이 날아오릅니다. 그 큰 덩치가 순식간에 치솟아 오를 정도로 힘찬 날갯짓입니다.>

 

 잠시 후 화장실 문이 열리며 소녀가 타박타박 걸어 나온다.

 커다란 녹색 후드티에 핫팬츠를 조합한 '하의실종' 패션이다. 푸근한 느낌의 상의와 하얗고 가는 소녀의 맨다리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어때? 나 괜찮아 보여?"

 

 흑여우 소녀가 양팔을 수평으로 들어 올려 보이며 묻는다.

 소녀의 맨다리를 흘깃흘깃 훔쳐보며 촉호가 대답한다.

 

 "제법 잘 어울리네."

 

 "다행이다. 근데 바지가 짧은 것 같아. 어색해 좀..."

 

 소녀가 고개를 숙여 훤히 드러난 자신의 흰 허벅지를 보며 말한다.

 촉호가 다급히 변명 한다.

 

 "오, 옷가게 직원이 그랬는데 요샌 그렇게 짧은 게 유행이래. 너도 곧 익숙해 질 거야."

 

 "그래? 알았어."

 

 "그럼 이번엔 다른 옷도 입어봐."

 

 오후시간 내내 흑여우 소녀가 모델인 둘만의 작은 패션쇼가 시작된다.

 

 촉호가 사온 옷들을 하나씩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나오는 소녀. 처음에는 인간 옷들을 입는 게 낯설고 어색했던 소녀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스타일의 옷을 입는 걸 즐기기 시작한다.

 

 "쨔잔! 이번 건 어때?"

 

 소녀가 흰색 원피스를 입고 화장실에서 튀어 나온다.

 

 청순하고 깔끔한 이미지. 그런데 원피스가 좀 얇은 편이라서 속이 살짝 비쳐 보인다.

 소녀가 입고 있는 속옷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촉호.

 

 "뭐. 뭐, 뭐, 뭐야? 그 티팬티는?!"

 

 "뭐긴 뭐야. 니가 사준 속옷이지. 안에다 입으라며."

 

 흑여우 소녀가 단아한 원피스 안에 입고 있던 건 정렬의 붉은색 티팬티다.

 아무래도 촉호가 무작위로 고른 속옷 중에서 저런 대담한 것들이 섞여 있었던 모양이다.

 

 소녀가 촉호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내가 뭐 잘못 입은 거야?"

 

 "음... 이번엔 좀 미스매치였어. 밖에 입은 원피스는 괜찮았는데, 안에 입은 속옷이 문제야. 색깔도 너무 강렬하고 또 너무··· 야해."

 

 "색깔이 강렬한 건 알겠는데 야한 건 이해 못하겠어. 다른 속옷들도 야한 건 마찬가지잖아?"

 

 "뭐? 다른 속옷들도 '마찬가지로' 야하다구?"

 

 촉호가 소리를 꽥 지르며 화장실로 뛰어간다. 무작위로 사온 속옷 쇼핑백을 뒤적이며 자신이 산 물품들을 확인해본다.

 

 혹시 무작위로 전부 그런류의 속옷을 산 것이 아닌가 걱정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섹시 속옷류는 그 붉은 티팬티 외에 검은색 속옷 하나와 스타킹과 연결하는 이상한 벨트 하나뿐.

 나머지는 평범한 스타일이거나 그 주황머리 깡패녀가 입는 아동틱한 디자인의 속옷들이었다.

 

 그가 안도의 숨을 몰아쉰다.

 

 "휴우~ 딱히 내가 야한 것만 사지는 않았구나. 그저 쟤가 인간 세계의 속옷 수위를 이해 못하는 것뿐이로군."

 

 아직 인간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흑여우 소녀에게 속옷 수위를 비롯한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촉호. 천천히 화장실 밖으로 걸어 나와 거실에 멍하니 서있는 소녀에게 말한다.

 

 "대충 옷들은 다 잘 맞는 것 같으니까 더 이상 입어볼 필요 없을 것 같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내가 인간세계에 대해 조금 설명해 줄게."

 

 흑여우 소녀는 패션쇼가 중지되자 약간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소녀에게 촉호가 황급히 덧붙인다.

 

 "아참, 속옷은 뭐냐 그... 끈처럼 생긴 거 입지 말고 좀 엉덩이 부분을 감싸줄 수 있는 그런걸로 아무거나 갈아입어. 알겠지? 끈처럼 된 건 안 된다."

 

 "알겠다고."

 

 소녀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대답한 뒤 화장실 문을 세게 닫고 들어간다.

 

 촉호는 그녀가 들어간 화장실 문을 멍하니 응시하며 생각한다. 의사소통은 되지만 어린 아이 수준의 개념을 가진 애완동물을 데리고 사는 기분이라고.

 묘하게 좋으면서도 약간 귀찮다.

 

 

 

 

 조금 이따 적당한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소녀가 거실로 나온다. 식탁에 앉힌 뒤 촉호가 강의를 시작한다.

 

 "자... 일단은 아까 네가 입었던 속옷 있잖아. 그 뭐냐 끈처럼 생긴 거. 그건 티팬티라고 하는데 너 같이 어린 여자애가 입기에는 좀... 어... 부적합하다고 해야 하나? 특히 아까처럼 속이 비치는 옷 입을 땐 입지 않는 게 좋아. 왜냐하면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거든. 알겠어?"

 

 "뭐 대충 알겠어."

 

 "그래. 그럼 다음으로 인간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기본 상식에 대해서 설명해 줄게."

 

 "응."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촉호는 대략 한 시간 동안 인간세계에 대해 설명해 줬는데 흑여우 소녀는 의외로 알고 있는 지식이 많았다.

 그 이유에 대해 소녀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인간 친화적인 흑여우 집단에선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인간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거든."

 

 "그렇구나, 그럼 인간 적대적인 집단은?"

 

 "걔들도 배우긴 하지. 지피지기란 말이 있잖아."

 

 "응..."

 

 촉호는 적대적인 흑여우 집단이 좀 더 무서워진다. 소녀의 말대로라면 놈들은 교묘하게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틈을 노릴 것이다.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밤, 촉호는 소녀가 자기 집에 온지 하루 밖에 안됐는데도 마치 여동생이나 애완동물 같은 자연스런 느낌을 그녀에게서 받는다.

 

 흑여우 소녀가 검은색 귀와 두툼한 꼬리를 드러낸다. 졸려서 인화 상태가 풀린 것이다.

 

 “졸린가 보네. 이불 깔아 줄게.”

 

 “하암~ 그러도록 해.”

 

 둘이 이부자리에 든다. 자리가 좁아서 웅크리고 누운 촉호. 불이 꺼져 컴컴한 방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꽤나 길고도 힘든 하루였다.

 천장 벽지 무늬가 아른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에게도 졸음이 밀려온다.

 

 옆에 부드러운 감촉은 흑여우 소녀인가? 옆으로 소녀가 뒤척이자 두툼한 꼬리가 그의 배에 올라온다. 쓰다듬어 보니 기분 좋다.

 

 촉호, 웃으면서 잠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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