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휘는 옷장 안에서 베이지 색의 블라우스와 검은 색의 치마를 찾아 입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숙소의 앞에 서있었다.
양복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자신을 보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바람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새벽에 은호에게서 들었던 말을 상기하며 같이 고개를 숙였다.
‘어? 단체 채팅방에 너 공지 떴다. 네 사진이랑 같이 밑에 있는 애들한테 너 보면 인사하라고 하네. 아침부터 인사 받아도 그냥 그러려니 해. 곧 익숙해질 거야··.’
은호의 말 대로였다.
은호를 기다리는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몇 번이나 인사를 받았던지, 자신의 입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니 함께 인사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 본관이 있는 방향에서 은호가 손을 흔들며 빠르게 걸어왔다.
“다휘야!”
두 사람은 밤사이 얼마나 친해진 건지, 은호의 부름에 다휘가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예쁘게 입었네. 거기 있는 옷은 다 네 거야. 배고프지? 아침부터 먹으러 가자.” 은호가 말했다.
다휘는 은호의 손에 이끌려 본관 건물로 함께 걸었다.
그녀들이 어제 밤을 함께 한 곳은 동쪽에 넓게 펼쳐진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이었다.
다휘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그런 다휘의 모습에 은호는 미소를 지었고, 다휘는 그녀의 웃음에 괜히 민망해져서 수줍은 웃음을 띠었다.
“본관엔 뭐가 있어?” 다휘가 물었다.
“음···. 어제 간부들 있었던 방 있지? 거긴 보스의 집무실이야. 이외에도 우리 개인 집무실 다 있고, 식당은 2층에 있어. 어제 조직이 총 9개 부서로 나뉘어져 있다고 했지? 그 중에 암살 전문부랑 연구부, 의료부를 제외하고 전부 여기에 있어.”
은호의 설명에 다휘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두 사람은 본부의 입구를 지나고 있었다.
“그 셋은 어디에 있는데?”
“연구부랑 의료부는 둘 다 내가 관리하고 있거든. 그래서 이곳 본관 뒤쪽 건물에 따로 배치했어. 암살 전문부는 여기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따로 부지에 저택을 세웠어. 줄여서 암살부라고 그러는데·· 거기 수장이랑 보스랑 사이가 별로 안 좋거든.”
다휘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동안 이 조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간부인 8인의 안개가 누군지 등등의 장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은 이 사람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은호 님, 다휘 님.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너는 인사 안 해도 돼. 설마 지금껏 받은 인사를 다 그렇게 받아줬어?”
그리고도 많은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2층의 식당, 그 중에서도 간부들이 사용하는 식당으로 두 사람은 들어갔다.
은호는 사람들의 인사에 함께 고개를 숙이는 다휘를 보며 황급히 그녀의 행동을 저지했다.
다휘는 자신의 행동을 막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곳의 관습이라고 하니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
은호는 덜컹 하고 문을 힘차게 열었다.
문 너머로는 20명은 족히 둘러앉을 수 있는 기다란 식탁이 있었고, 이미 6명이 자리에 착석해있었다.
가장 상석에는 연호가 앉아있었고, 그의 왼쪽으로는 도담과 진탁이, 오른쪽으로는 민환과 우목, 그리고 은국이 앉아있었다.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식당인데도 덩치 좋은 남자들이 앉아있자, 어쩐지 조금 차 보이는 식당이었다.
다휘는 이곳을 보면 볼수록 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등장에 아직 식사를 시작하지 않은 모두가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은호야. 어서 와.” 야채로 가득한 보울을 앞에 둔 우목이 그녀들을 향해 밝게 미소를 지었다.
“다휘 식사도 준비했지?”
은호는 우목의 인사를 받으며 다휘의 손을 잡고 진탁의 옆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반대편으로 돌아가 은국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응. 이제 곧 가져올 거야. 다휘야, 안녕. 잘 잤어?”
연호가 다휘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다휘는 적응할 수 없는 화려한 분위기의 식당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을 향한 예쁜 미소와 다정한 인사에 놀라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네, 네··.”
“그래. 불편하지는 않았어? 햇빛 들어오는 방향을 바꾸고 싶다거나, 방 가구 위치라던가?”
“아·· 네. 괜찮아요.”
다휘는 그의 친절에 부담을 느꼈는지, 어색한 미소를 띠고 그의 시선을 피했다.
거대한 마피아 조직의 ‘보스’라는 직책 때문인지, 그런 직책과는 멀어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만 알고 있었다.
“보스, 다휘가 보스를 불편해하는 거 같은데요?” 그런 심정을 겨우 숨기고 있는 다휘를 살려주기 위해 은호가 가벼운 웃음과 함께 정곡을 찔렀다.
은호의 말에 몇몇이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에 맞게 식당의 안쪽에서 하얀 제복을 입은 남자가 요리가 올려 진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
남자는 은호의 앞에 잡곡밥과 된장국을 포함하여 여러 반찬을 내주었다. 그리고 다휘에게 가서 스프와 한 덩이의 스테이크를 내려놓았다.
“아··?”
다휘는 자신의 앞에 놓인 ‘고기’를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쁘기도 하고 속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아침은 늘 토스트나 시리얼을 먹어 왔었던 그녀는 눈앞의 커다란 단백질 덩어리에 시선을 뺏겼다.
“자, 그럼 잘 먹겠습니다. 다휘야, 많이 먹어.” 연호가 수저를 들며 말했다.
다휘는 빠르게 눈을 돌려 식탁 위의 모두의 식사를 훑어봤다.
연호와 진탁은 자신과 같은 스테이크 한 덩이었고, 은호는 잡곡밥이 있는 한정식, 우목은 샐러드, 은국은 소량의 밥과 구운 생선, 도담은 닭 가슴살인지 하얀 살코기가 있었다.
모두의 음식이 나오고 나면 다 같이 식사를 하자고 의견을 밀어붙인 연호의 덕에,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미덕을 모두가 키우고 있었다.
다휘는 연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가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는 모습이 정겹기도 하고, 어쩐지 부럽기도 했다.
덜그럭거리며 다휘는 뒤늦게 수저를 들고 수프를 한 입 떠먹었다.
.
.
연호는 대부분이 식사를 끝내가는 것을 보며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체중 조절 때문에 가뜩이나 샐러드의 양이 적은 우목은 진즉에 식사를 끝내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다들, 식사 덜 끝난 사람들은 먹으면서 듣도록 하자. 어제 밤에 로빈 형과 혜혁 형이랑 시간 맞춰봤어. 로빈 형이 시간 조정을 해서 오전 중으로 여기에 올 거야. 만나고 나서 오후에 다 같이 암살부 본부로 가기로 했어. 못 가는 사람 있어?”
그는 모두를 둘러보며 물었다. 연호의 물음에 은국이 살짝 손을 들었다.
“난 오늘부터 3 일간 중국으로 출장이다.”
은국의 말에 연호가 아! 하고 탄성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님. 동맹 협약이었죠? 아참, 우목이 너도 임무 있었지?” 연호가 은국의 일을 생각하며 함께 떠오른 듯, 우목을 바라봤다. 우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blood bones 이탈리아 본부 무기 연구소에서 새로운 리볼버 시리즈 연구 완료된 거랑 내가 쓰는 검 수리 다 됐다 길래. 겸사겸사 5 일정도?”
우목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대답했다. 연호는 알겠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보부랑 경리부에 계획서 제출했지?”
“어제 밤에 처리했어.”
“그래. 조심히 다녀오고. 그럼 두 사람 빼고는 오후에 다 같이 가는 거다? 다휘는 식사 끝나면 은호랑 같이 집무실로 와줘.”
은호를 향해 시선을 보내며 연호가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그녀는 연호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연호는 이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갔다.
하지만 그의 뒤로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우목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흠흠.”
이유는 도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목을 가다듬자, 다휘를 제외한 모두가 그의 시선을 신경 썼다. 그런 분위기에 먹는 속도가 느린 다휘가 수저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당분간 현다휘를 보지 못하는 둘은 먼저 소개 해. 나머지는 국로빈이 도착하고 나서 한다.” 도담이 말했다.
그러자 우목이 먼저 다휘를 바라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다휘야. 이제야 소개하게 되네. 나는 강 우목이라고 해. 27살이고, 무기부를 담당하고 있어. 나는 운동선수 출신이었고, 지금도 가끔 국내 엑스트라 경기에서 뛰곤 해. 잘 지내보자.”
이들 중에서 가장 키가 큰 우목이 고동색의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게 웃었다.
다휘는 그의 길이가 짧은 머리카락을 보면서 어쩐지 운동선수라는 직업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네··. 우목 오빠·· 라고 부르면 될까요?” 다휘가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듯, 붉어진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우목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래.” 라고 대답했다.
“현다휘.”
“네, 네?”
그리고 은국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어쩐지 바닥으로 가라앉은 서늘한 목소리에, 은호가 그의 허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은호의 행동에 은국의 얼굴에는 약간 난감하다는 표정이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를 되찾았다.
“난 여 은국이다. 나이는 스물아홉. 의뢰 본부 담당이다.”
은국의 짧은 소개에 은호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그의 뒤를 이어 소개를 계속했다.
“내가 어제 얘기했던 S급 일원이야. 거기 진탁 님이랑 해서 두 사람만 S급이야. 좀 조용한 사람이긴 해도 정은 많으니까, 편하게 생각해. 그리고 의뢰 본부는 제일 바쁜 곳이라서 출장이 잦은 편이야.” 은호가 말했다.
그녀의 설명에 은국의 귀가 심하게 달아올랐다.
다휘는 그의 눈이 차갑게 식었지만 감정 변화가 일어나자 그의 고동색 눈동자가 따스하게 느껴졌다.
은국의 보랏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다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국·· 씨 라고 불러도 될까요···?”
“··· 그러던지.”
은국은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다휘는 퍼지려는 미소를 억지로 참으며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도담은 두 사람의 소개가 마무리된 듯하자, 쉴 틈도 없이 업무적인 어투로 이야기했다.
“로빈은 9시에 도착 예정이다. 은국과 우목을 제외하고 모두 중앙 회의실로 모이고, 민환. 암살부에 도착 일정 알려줘. 그리고 진탁은 식사 끝나고 내 방으로 와. 두 사람은 출발하기 전에 내 방으로 어제 일 관련으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각자 들려. 민환은 사망자 명단 처리부에 전달했어?”
“네. 오늘 중으로 유가족들에게 연락이 갈 겁니다.”
“알았어. 그럼 해산.”
민환의 빠른 대답과 도담의 해산 지시에 은호와 다휘를 제외한 모두가 식당을 떠났다. 그들의 식사는 모두 끝난 건지, 접시가 깨끗했다.
“아··.”
다휘는 무언가 말과 지시가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서 적응할 수 없었던 건지 당황한 시선으로 먹다 만 스테이크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반응에 은호가 가볍게 웃었다.
“괜찮아. 원래 다들 그래. 너는 당분간 내가 챙길 테니까, 도담 님 말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돼. 애초에 우리에게 내린 지시잖아.”
“으응··. 그래도 뭔가 정신없는 식사 시간이었어.”
다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은호는 그녀가 식사를 끝내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그녀의 물 잔에 물을 따랐다.
“그럼 이제 보스에게 가자. 어제 일 때문에 그런 걸 거야.” 은호가 말했다. 다휘는 물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자리를 비운 이들이 식당에 보이지 않자, 다휘는 식당이 굉장히 커다랗게 느껴졌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햇빛을 받고 싶어졌다.
이렇게 커다랗고 아름다운 곳에서 휘원이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살았다는 게 신기했다.
그녀는 휘원의 자취를 좇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