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의 집무실에서 뛰쳐나온 다휘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길이 보이는 대로 마구 뛰었다.

　그렇게 본관에서 나와 이곳을 나가기 위해 정말 끝도 없이 뛰었다.

　이놈의 저택은 얼마나 큰 건지! 아까 연호와 함께 집무실로 가면서 이곳에는 출입구가 단 한 곳이라고 들었지만,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거대한 숲의 시작으로 보이는 입구였다.

　저택 내에서 수도 없이 마주쳤던 정장을 입은 사람이 이곳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휘는 또 다른 두려움에 휩싸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소, 자신에게 친절했던 마피아들, 휘원의 진짜 직업···.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그녀를 덮쳐 왔다. 그녀는 바지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냈다.

　결혼식장에서 연호들과 바로 와버려서 소지품을 챙기지 못했으나, 연호가 시킨 조직의 일원들이 결혼식장을 정리하면서 다휘의 물건들을 챙겨와 주었다.

　목욕 후, 연호에게서 건네받아 회의 내내 주머니 속에 있어서 꺼내보지 못했었다.

　시간은 어느덧 8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이들은 마피아니까 누군가의 죽음에 익숙한 걸까?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이성적으로 보였다.

　“오빠··. 엄마, 아빠···.”

　휘원과 엄마인 백연과 아빠인 주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족이 될 참이었던 은편도,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하객들도.

　채팅 앱에는 몇몇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NEU 호윤 씨 매니저 : 다휘 씨. 미안해. 결혼식 잘 끝났어?」

　「NEU 호윤 씨 매니저 : 다휘 씨?? 바빠?」

　「NEU 호윤 씨 매니저 : 무슨 일 있어..?」

　「NEU 호윤 씨 매니저 : 호윤이는 한 달 반 정도 입원해야 해. 대표님께도 말씀 드렸어.」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기로 해서, 결혼식장으로 오다가 사고를 당한 같은 소속사인 가수 호윤의 매니저에게서 온 메시지들.

　「NEU 황우진 대표님 : 결혼식 잘 했어요?」

　「NEU 황우진 대표님 : 얘기 들었어. 호윤이는 걱정하지 말아요. 기사도 다 막았고, 심한 부상도 아니래.」

　「NEU 황우진 대표님 : 내일 시간 있어요? 저녁 같이 먹을까요?」

　「NEU 황우진 대표님 : 다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전화도 안 받네.」

　소속사 대표의 걱정 어린 메시지들. 그리고 부재중 전화의 대부분은 그의 작품이었다.

　「시현이(GPJ, 그레이시-4인조) : 나 그룹 앨범 작업 들어가는데, 솔로로 노래 한 개 하게 해준대. 너한테 맡겨도 돼?」

　「시현이(GPJ, 그레이시-4인조) : 헐ㅋ 오늘 무슨 날인가 했더니 휘원오빠 결혼식이었네.」

　「시현이(GPJ, 그레이시-4인조) : 잊어서 미안. 얘기하지. 지금쯤이면 끝났겠다. 어땠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대학 동기인 시현에게서 온 메시지들도 있었다.

　다휘는 시현의 메시지를 보자 이제야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남은 다른 메시지들은 보지도 않은 채, 핸드폰을 품에 안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다휘는 거대한 숲의 입구를 앞에, 화려한 빛이 반짝이는 건물을 뒤로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

　.

　그렇게 울고 있는 다휘의 뒷모습을 발견한 은호는 조용히 짤막한 풀밭 위를 걸어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은호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나이부터 마피아 조직에 몸을 담갔던 자신들과는 달리, 연호와 대학에서 만나 그를 돕게 된 휘원은 자신들 중에서 가장 순수함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휘원에게는 부끄러운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이해할 수 없었다. 정보에 관련된 일만 해왔고, 일을 할 때는 코드 네임을 사용해서 그의 신상은 비밀에 부쳤다.

　그에 따라 적대 관계인 For Luciano는커녕, 다른 큰 마피아 조직에서도 그의 본명이나 거주지는 모르도록 했는데··.

　‘어떻게 휘원 오빠의 결혼식을 알았지?’

　은호이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자,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그 연결고리를 접었다.

　다휘의 등 뒤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전투에는 능하지 않지만, 기본적인 스킬들을 배운 은호는 다휘가 모를 정도의 기척은 숨길 수 있었다.

　“다휘·· 다휘야.” 은호가 조심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혼자인 줄 알았던 다휘는 은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잔디밭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둘려 은호를 올려다보았다.

　건물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역광으로 은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은호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은호··씨.”

　“응. 내 이름 기억하고 있네··.”

　다휘는 기억을 되짚어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다.

　더불어 이곳의 의료부 책임자라는 말도 함께 생각해냈다.

　“자.”

　은호는 그녀를 향해 허리를 굽히며 손을 내밀었다. 넘어진 그녀를 일으켜 줄 생각이었다.

　다휘는 선뜻 그녀의 손을 잡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며 망설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금방 읽어낸 은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그녀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런 은호의 행동에 다휘는 놀란 듯 주춤거렸다.

　은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휘를 바라봤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다휘의 차가운 손 위로 겹쳤다.

　“휘원 님은, 휘원 오빠는 좋은 사람이었어. 네가 생각하는 그런 나쁜 일은 하지도 않았고. 도담 님, 그러니까 네게 그런·· 말을 했던 사람 말이야. 도담 님도 좋지 않은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닐 거야. 다들 휘원 오빠를 좋아했거든. 그에 대한 슬픔을 풀어낼 방법을 몰라서 네게 괜히 모진 말을 한 거야. 우리들 중 몇몇 사람은·· 어떤 감정들이 결여되어 있어서, 익숙하지 않아해.”

　은호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우리 조직 이름은 bloody ellipse라고 해. 초대 보스의 연인 이름이었대··. 보스인 연호 오빠는 17대 보스고, 도담 님은 보스의 훈련 스승이었어. 지금은 보스랑 같이 조직을 이끌어나가고 있지. 네가 휘원 오빠의 동생이라는 건 우리 조직 안에서만 이야기가 퍼지고 있어. 하지만 우리랑 적대 관계에 있는 그 조직에서 아는 건 시간문제야. 그런 문제도 있고···. 사실 이번 일도 그렇고,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거든. 그래서 다들 유서를 1주일 마다 갱신하는 버릇이 있어. 휘원 오빠도 마찬가지야. 여기, 가져왔어. 네가 제일 먼저 봤으면 좋겠어서.”

　그녀는 하얀 가운의 속에서 하얗고 얇은 봉투를 꺼내서 다휘에게 건넸다.

　그것이 은호의 진짜 볼 일 이었던 걸까, 다휘는 그녀에게서 받은 봉투를 손에 쥐었지만 쉬이 열어보지는 못했다.

　“나 여기 주위에 있다가 다시 올게. 읽어보고 있어. 사람들 못 오게 했으니까, 여기에만 있어.”

　은호는 그런 다휘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휘는 복잡한 심정으로 봉투에서 꺼낸 한 장의 종이를 빛에 비추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 * *

　푸른 하늘, 넓고 청량한 대지, 좋은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매주 이런 글을 쓰자니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현 휘원이다. 다음 주면 인생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 이 은편과 결혼을 한다. 그래도 나는 유언을 남긴다.

　나는 이기적이다. 내가 편한 것만 생각했고, 잊고 싶은 일은 잊었다. 그래서 내가 만약 죽어서 이 글을 읽게 되는 게 부모님이든, 다휘든, 은편이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 이기심으로 판단해서 결정한 일이었고, 검은 손의 일이기 때문에 속여 왔다는 걸.

　은편아. 함께 밝은 미래를 생각했었는데 먼저 가서 미안해. 나 같은걸 떠안고 살지 말고, 너도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얘기했던 장소의 집에서 새 삶을 시작하도록 해. 집을 네 명의로 샀던 거라 선물이라고 생각해줘. 항상 사랑해.

　다휘야. 좋은 오빠가 되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했다. 만약 다휘가 혼자 남게 되는 상황이면, 이 글을 전해준 사람을 따라가도록 해. 오빠가 돼서 널 지켜줄 방법은 이것뿐이야. 네 방도 준비했으니까 마음 편히 살도록 해. 네가 하고 싶은 작곡 하면서. 좋은 사람들이니까 함께 잘 지내고.. 사랑한다, 내 동생.

　그리고 나 자신에게. 고생했어. 다음 생도 은편이와 만나고 다휘의 오빠로 태어나고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연호야, 선우, 그리고 다들 고마워.

　* * *

　다휘는 겨우 그쳤던 눈물이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코끝이 찡해오는 느낌과 눈앞이 흐릿해졌다.

　몇 번이고 울었는데,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옷의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크게 소리를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휘원의 유서까지 읽어버렸으니, 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 그녀에게 타격을 날렸다.

　다휘는 결혼식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몸을 잔디밭에 엎드리고, 크게, 더욱더 크게,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손으로 만졌던 피의 촉각이 다시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붉은 색의 피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끔찍했던, 두려웠던, 하지만 기억해야하는 결혼식장의 모습이었다.

　그 사람들의 마지막을 본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휘원의, 은편의, 어머니의, 아버지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녀, 나, 현 다휘 뿐.

　다휘의 울음소리가 저택 전체에 울리는 듯 했다.

　멀리 떨어졌지만 그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은호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그녀에게 향했다.

　은호는 다휘의 곁에 다다르자,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다휘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다휘야. 휘원 오빠가 자주 네 얘기를 했어··. 네가 있던 방도 나랑 보스가 직접 준비한 거야. 너는 우리가 지켜줄게. 휘원 오빠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은호의 말에 다휘는 울부짖는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너랑 동갑이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 여긴 여자가 별로 없거든. 솔직히 말하면, 남자가 아니라 몸만 크지, 정신은 완전 어린 애들이야. 나는·· 드디어 너를 만나게 되어서 기뻐.”

　은호가 이어 말했다. 다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다휘는 울음 속에서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풀밭에서 울음과 웃음을 반복하며 달이 반대편으로 넘어갈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 * *

　다음 날.

　미처 다 치지 못한 커튼의 틈 사이로 햇빛이 강하게 들어와 침대를 비춰왔다.

　다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고급스런 침대의 모습과 방의 분위기에 어색함을 느끼며 상체를 일으켰다.

　새벽에 은호와 함께 숙소로 들어오면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내일은 아침부터 바쁠 거야. 일찍 일어나! 늦게 재워서 미안하지만···. 이따 아침에 건물 입구에 서있어. 내가 데리러 올게! 그럼 잘 자!’

　“맞다! 얼른 씻어야지··.”

　다휘는 평소에 일어나는 것처럼 7시에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서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퉁퉁 부은 그녀의 두 눈이 지난밤의 일을 예상케 했다.

　몇 시간을 울다가 웃었다가 반복을 하니, 머릿속에 텅 빈 것 같았다. 신경 쓰고 있던 일들, 겪은 일들이 별 것 아니게 느껴졌다.

　은호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이곳이 마피아의 소굴인 것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본질은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녀는 피로 물든 과거를 안고 새로 펼쳐질 나날들을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