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이·· 심장을 정확히 가격했습니다. 즉사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도담은 그 말이 도저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분명히 금연 중이라고 간부들에게도 자신의 앞에서는 담배피지 말라는 둥 으르렁댔지만, 그는 이미 버릇이 된 습관을 쉬이 고칠 수 없다는 걸 지금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화려한 황금색의 입구 앞에서 계속 누군가를 기다렸고, 결국 지나가는 한 부하를 붙잡고 담배 한 가치를 뜯어내 입에 물었다.
“후우···.”
하얀 연기들이 도담의 주위에서 피어올랐다. 그는 건물의 외벽에 몸을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잘 다려져 각이 잡혀있는 그의 수트에 조금씩 구김이 져갔다.
자신들이 웨딩홀에서 떠난 후, 민환은 도착한 조직원들과 함께 결혼식장에서 모든 시체를 수거해 조직에 소속한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다.
자신이 민환에게 전화를 한 타이밍은 조직의 간부인 휘원을 가장 먼저 부검을 마쳤을 때였다.
부검의는 조금 떨리는 듯 한 목소리로 보고했고, 순간 멍해져서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이후로 민환에게서 몇 번 전화가 더 왔지만, 자신이 받지 않자 문자로 상황을 보고해왔다.
왼손의 시계를 보니, 회의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들어가 봐야 하는데,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는 말 그대로의 ‘학살’. 과연 살아남은 아이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되어갔다.
‘다휘가 회사에 모델 놈한테 대시 받는 것 같아! 며칠 전에 다휘 집에 갔었는데, 한 쪽에 선물 상자가 잔뜩 쌓여 있어서 뭐냐고 물으니까 전부 그 놈한테 선물 받은 거라더라! 정보부 녀석들 시켜서 알아보고, 순 양아치 같은 놈이면··· 내가 처리해야겠어!’
‘아~ 우리 다휘는 너무 순진해서 걱정이야. 어제 저녁에 애들 시켜서 경호 붙인 거 들켰거든. 내가 혹시 몰라서 애들한테 들키면 팬이라고 둘러대라고 했었는데, 그게 진짜 통했다는 거야! 이래서 맘 편히 시집이나 보내겠냐고~!’
지금도 휘원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도담은 벽을 지지한 채 스르르 아래로 내려앉았다. 소중한 존재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년간 함께해 온 동료였고 직책 상 같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얘기를 나눠왔다.
그는 쓰고 있는 중절모를 더욱 눌러 시야를 가렸다.
담배를 들고 있는 손이 조금씩 떨려왔고, 눈시울이 붉어오고 귀를 포함한 얼굴이 낯 뜨거워지는걸 느꼈다.
우는 법을 모를 것처럼 싸늘한 인상의 도담은 모자로 자신을 가린 채, 얼굴을 찌푸리고 눈물을 흘렸다.
익숙하지 않은 슬픔에 기분이 이상했고, 이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의 넓은 등과 어깨가 조금씩 떨려왔다.
조금씩 울음소리도 새어나왔다.
평소라면 누군가에게 이런 자신을 들키기 싫어 숨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조차 들지도 않았다.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휘원의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지만, 시뻘건 피가 그의 얼굴에 번져나가 도담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결국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린 도담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주체할 수 없는 기분, 슬픔, 어딘가 씁쓸한 마음.
쿵 하고 내려앉은 듯 이상한 감각이 몸을 휩쓸었다.
* * *
다휘가 머물기로 한 방에는 어느새 사람들로 점점 채워져 갔다. 창가의 티 테이블로는 모자라서 몇몇이 자신의 방에서 의자를 하나씩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는 한 사람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 이상하네요. 도담 님, 전화도 안 받고. 회의에 늦을 사람은 아닌데.”
은호가 모두를 조심스레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칙을 지키자는 마인드를 준수하는 도담이 회의에 늦을 리가 없는데, 연락도 되지 않으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모두에게 스쳐갔다.
“조금 더 기다려보면 알겠지. 진탁 형은 선우에게 전달 하셨어요?”
“응, 녀석·· 마침 오늘 복귀할 생각이었나 봐. 되게 귀찮아하던데.”
진탁이 가볍게 웃으며 연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들은 긴 머리의 성숙하고 우아한 겉모습이지만, 고집이 센 미청년을 다 같이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상황이 이해가 가는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줄곧 다휘가 누운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연호는 오지 않는 도담의 걱정도 됐지만, 정상 체온을 되찾았는데도 눈을 뜨지 않는 다휘의 쪽이 좀 더 걱정스러웠다.
“··· 다휘 양은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깰 거니까, 걱정 마요, 보스.”
다휘를 보는 연호의 시선을 눈치 챈 은호가 눈썹을 치켜뜨고 안심하라는 듯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그의 마음은 안심하지 못하는 듯했다.
테이블에는 은호을 포함한 5명이 앉아있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인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각자의 겉옷에 총알 모양의 엠뷸럼 뱃지가 있다는 것이다.
은호의 하얀 가운에도, 다른 이들의 검은 수트 자켓의 포켓에도, 연호의 검은 자켓에도 있었다.
연호를 향한 보스라는 칭호, 모두가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각자의 총, 저택 안은 전부 수트를 입은 사람들···.
그들은 보스 차 연호, 2인자라 불리는 홍 도담, 그리고 8명의 간부인 8인의 안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마피아 조직이다.
이탈리아에서 결성된 마피아 조직 ‘Blood bones’에서 200여 년 전에 뿌리를 뻗은 하위 조직으로, 그 이름은 ‘Bloody Ellipse’. 이들은 자신들의 조직 이름을 줄여 ‘블립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성 당시 Blood bones의 주요 간부였던 한 남자는 당시 보스의 명령을 받아 스페어 조직을 만들게 되었고, 그는 자신의 연인인 여자의 이름을 따 짓게 되었다.
그리고 몇 십 년 전 11대 보스였던 남자가 한국 여자와 사랑에 빠져 거처를 한국으로 옮겨 왔고, 이후 보스들은 물론 조직원들도 점차 한국인으로 교체되어, 현재 차 연호가 17대 보스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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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어느새 6시 3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도담을 기다리다 지친 은호는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잠에 빠져있었다. 그녀의 하얀 가운 위로 누군가의 커다란 검은 수트 자켓이 덮여 있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창틀에 기대어 앉아 있는 우목과 의자에 몸을 편안하게 뉘이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 진탁.
하지만 은국의 모습은 방 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침대 위에 누운 다휘의 눈이 파르르 떨려왔다. 방안을 비추는 조명에 눈이 부신지 인상을 쓰더니, 천천히 눈을 떠 깜빡이기 시작했다.
처음 느끼는 분위기의 방, 전혀 본 적 없는 천막이 쳐진 침대,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던 드레스의 답답한 느낌도 없었고,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몸이 굳은 것처럼 딱딱하게 느껴졌고, 그녀는 손끝부터 움직이기 위해 있는 힘을 잔뜩 실었다.
침대에 상체를 엎드리고 있던 연호는 손 안의 다휘의 작은 손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그녀가 깨어났다는 것을 인지한 그는 상체를 벌떡 일으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다휘야!” 연호가 작게 외쳤다.
다휘는 화들짝 놀라 그를 향해 돌아보았다. 다휘의 당황한 진회색의 눈동자와 연호의 따뜻한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호의 얼굴에는 천천히 미소가 번졌고, 그는 다휘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행이다. 다휘야, 일어나줘서 고마워.”
연호의 작지 않은 목소리,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에 방 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침대로 향했다.
쪽잠을 자고 있던 은호는 서둘러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나자 검은 양복 자켓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 소리에 뒤를 돌아 자켓을 주운 은호는 방 안의 모두를 둘러봤다.
연호도 우목도 진탁도 양복 자켓을 입고 있었고, 은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은호는 그 자켓의 주인이 누군지 확신했다. 그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조심스럽게 자켓을 의자에 걸었다.
그리고는 하얀 가운의 주머니에서 작은 손전등과 체온계를 꺼내면서 침대로 총총 뛰어갔다.
“저, 저기·· 여긴 어디··?”
아직 상황파악을 다 하지 못한 다휘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연호를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
“다휘야. 네가 조금 아팠어. 검사만 받고 얘기하자.” 연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다휘는 손에서 사라진 온기에 주먹을 꽉 쥐었다. 온 몸에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을 내쫓고 싶었다. 따뜻한 손으로 자신을 다독여줬으면 했다. 그런 다휘의 바램과 반대로, 연호는 그녀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침대에서 물러난 연호는 우목과 진탁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사실은 차갑게 식어있던 다휘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다독이며, 혼자가 되었지만 혼자가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애정이라고 멋대로 생각하며, 그걸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