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호의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굳은 표정의 은호와 그 뒤를 따라 은국이 함께 들어왔다.
은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은국도 마찬가지였다.
민환은 시선을 돌려 은호를 바라봤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은호를 훑은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은호야··.”
그는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의 시선에 은호는 애써 미소를 짓는 듯, 입 꼬리가 약간의 경련을 일으켰다.
“난 괜찮아. 휘원 오빠는·· 아니, 다휘 양이 우리보다 더 힘들 거야.” 은호가 말했다.
은호는 민환의 생각보다는 조금 더 강했다.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은호는 다른 사람의 걱정을 할 만큼은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은호의 말에 민환은 대견하다는 듯,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어둡게 내려앉은 푸른빛의 눈동자는 어딘가 닮아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문이 열렸다. 문 사이로 등장한 사람은 연호와 다휘였다.
“아직 늦진 않았지? 다휘야, 이리로 와.”
“아. 네, 네··.”
연호는 다휘의 손을 잡은 채, 그녀를 집무실 안으로 이끌었다. 그의 손에 이끌린 다휘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보스의 자리인 1인 소파에 자리했다.
“아, 저, 오빠는··.”
“나는 의자 들고 오면 돼. 이게 더 편해.”
연호가 괜찮다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집무실 책상과 함께 있는 바퀴가 달린 편안한 의자를 드륵거리며 그녀의 옆자리로 끌고 왔다.
두 사람까지 자리에 앉자, 집무실이 조금 차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연호는 몸을 탁자에 가까이하고 자신의 무릎에 팔을 얹었다.
“그럼 회의 시작하자. 내가 시킨 일, 누구부터 보고할래?”
그의 물음에 은발의 진탁이 먼저 손을 들었다.
“아, 진탁 형.”
“아까도 얘기했지만, 선우에게 연락해봤다. 내일 오후에 출발하면 될 것 같더라.”
진탁이 대답했다. 그의 말에 도담에 고개를 들고 손을 들었다.
“잠깐만. 내일 오후에 국로빈이 온댔어.”
“로, 로빈 형이?!”
도담의 말에 연호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휘까지 데리고 암살 전문부에 다녀오려 했던 연호는 자신의 계획이 비틀리자, 뒤통수를 긁적였다.
“일단 로빈 형 이야기는 있다가 다시 하고··. 다른 사람들은?”
연호의 시선이 다시 모두를 훑었다. 이어 은국이 살짝 손을 들어 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네, 은국 형님.”
“지도하가 아직 그쪽은 상황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전멸로 이미··· 상부에 보고가 되어있고, 현다휘의 존재는 전혀 모르는 듯하다.”
아주 차갑게 식어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보라색 눈동자로 다휘를 살짝 쳐다본 은국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눈처럼 시린 겨울 같았다.
연호는 아주 미세하게 떨려오는 다휘의 손을 발견하고, 덥석 잡으며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민환아, 현장 정리는?”
“아, 네. 형님. 의료부가 시체 수거해서 인근 저희 쪽 병원에서 감식을 진행했습니다. 총기에 의한 사망은·· 두 사람의 일가족과 친척들···입니다. 이외에는 독극물 과다 섭취와 질식 등의 사인입니다.”
민환도 은국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휘의 눈치를 살피며 연호에게 보고를 계속했다.
“이후 정보부와 처리부를 통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사용된 총기는 For Luciano의 자체 개발한 리볼버 류 GX-260 시리즈이고, 탄환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 그리고 이외의 사인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아마도 은국 형께서 암살부에서 들은 신무기라고 추측은 하고 있습니다.”
그의 보고가 끝난 듯, 집무실은 정적을 되찾았다.
민환의 시선은 은국에게 향했지만, 은국은 미동도 하지 않고 턱에 손을 괴고 바닥의 카펫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무기? 나는 암살부에서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연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안절부절 하면서 자신이 나설 차례를 재고 있던 우목은 이제야 팔을 반쯤 들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형! 나, 나 알아. 형주 형에게 자료 받았어.”
우목의 작은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꽂혔다. 그는 갑자기 몰린 시선에 당황해하지 않고 품에서 아이패드 단말기를 꺼내 탁자 위로 올렸다.
한편, 보스의 자리에 앉아있는 다휘는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피는 듯 눈을 굴리다가는 아이패드를 내려놓은 우목과 시선이 마주쳤다.
우목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움직여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고, 다휘는 그의 시선에 대응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에게서 외면이라도 당했다고 느낀 우목은 뒤통수를 멋쩍게 긁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식장에서 은국 형께서 확인하셨듯이, 이 무기는 신체에 특별한 흔적을 남기지 않아. 무기의 이름은 ‘안개의 습격’. 이 안개가·· 우리를 뜻하는 것 같아서 조금 그렇지?”
우목의 말에 은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굳어진 표정으로 가장 먼저 패드를 들고 자료를 간부의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고서, 핸드폰을 꺼냈다.
은호의 행동에 연호를 제외한 모두가 다 같이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연호는 우목의 아이패드 단말기를 들고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 그의 옆에 앉은 다휘는 고개를 조금 빼들고 연호와 함께 자료를 보고 있었다.
“설명 계속할게. 여기 이게 사진인데, 캡슐 형태로 생겼어. 바닥에 부딪혀 어느 정도 충격을 받으면 위아래에서 연기가 새어나와. 그리고 공간에 가득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져. 이 안개는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작용을 해. 또는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서, 아까 민환이 얘기한 대로 독극물 과다 섭취라는 부작용도 있어. 그들이 원하지 않았던 반응이란 거지··.”
다휘가 새하얗고 작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몇 시간 전, 결혼식장에서 충격을 받은 그녀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연호는 그녀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눈치 챌 수 없었다.
주먹을 꽉 쥔 오른손의 손등에는 굵은 핏줄이 튀어 올라와있었다. 그의 분노가 다휘를 제외한 모두에게 전해졌다.
“이 연기에 노출되면 길어봤자 3분을 고작 버티다가 사망에 이르고, 이 연기는 5분이 지나면 신체에 흡수돼. 그래서 아무런 냄새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거야···. 그리고 아직 개발 중이라서 민간인에게 쓴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연호의 표정은 점점 싸늘해졌다. 우목은 모두의 반응을 확인해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다휘를 쳐다봤고, 그는 처음으로 다휘의 변화를 확인하게 되었다.
우목은 자리에서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다휘를 제외한 모두가 그의 움직임에 눈을 돌렸다.
“다, 다휘가 이상한데··.” 우목이 조심스레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다 같이 다휘를 향했다.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작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연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고 있던 자신의 검은 양복 자켓을 벗어서 다휘의 어깨에 두르고 그녀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다휘의 머리를 어깨에 숙이게 하고 그녀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다휘야··. 미안. 신경 쓰지 못해서. 그치라고 하지 않을게. 네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울어도 돼.”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다휘의 눈물은 연호의 하얀 와이셔츠를 적셔갔다.
10분 후.
“이제 좀 괜찮아?” 연호가 물었다.
다휘는 그의 물음에 황급히 눈물 자국을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서···.”
“아니야. 네가 거기서 나온 이후로 의젓한 모습을 보여서, 괜찮을 거라고 내가 섣불리 판단했어. 저기, 괜찮다면 네가 본 상황을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연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고, 다휘는 결혼식장에서 연호를 봤을 때 느꼈던 편안한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느껴지는 안정되는 기분, 믿음.
다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지만, 휘원의 친구라고 하기도 했으니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계속 생각하고 있던 말을 주춤거리며 메마른 입술을 침으로 축였다.
결국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다 슬며시 연호의 눈을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네. 할게요. 그런데·· 저기, 그 버, 범인들은·· 누구에요?”
“··· 어?”
다휘의 물음에 모두의 표정이 시간이 멈춘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진실을 보여줄 것인가 그녀를 속일 것인가, 모두의 머릿속이 어지럽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