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휘는 자신의 손을 잡은 연호를 보며 여전히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연호는 애써 화가 나는 감정을 숨겼다. 아직은 지킬 수 있는 것이 남았고, 필사적으로 지켜 보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무릎의 뒤쪽을 받치고 등을 감싸 안으며 자신의 품으로 안아들었다.
“아·· 그···!”
“팔을 내 목에 둘러.”
연호의 따뜻한 온기와 그가 건넨 말에 잠시 망설이던 다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직 떨림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다휘의 서늘한 몸을 느낀 연호는 그녀를 안아 올린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식장을 향해 들어온 길을 천천히 걸어 나갔다.
우목은 그런 연호의 뒤를 따라 함께 식장을 벗어났다.
식장의 입구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민환은 식장을 나온 연호와 그에게 안긴 다휘, 그리고 뒤를 따르는 우목을 보며 식장 안을 힐끔 바라봤다.
그는 우목과 시선이 마주쳤다. 우목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만의 신호인 듯 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식장 안에는 은국과 도담이 남아 있었다.
식장에 들어오자마자 내부 상황을 살펴보던 은국은 연호와 다휘가 나가자마자,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도담의 시선은 은국을 좇고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중절모를 머리에 올리고, 식장의 하객석에 몸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은국은 시체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함인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의 차분한 고동색의 눈동자는 바쁘게 굴러갔고, 스산한 피 냄새를 맡으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몸은 차갑고 딱딱하지 않았다. 그는 시체의 눈과 입 주변, 손 끝 등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은국은 남자의 입가에 묻은 피를 제외하고서는 그 어디에도 총의 흔적은 없었다는 걸 확인했다.
이어서 그는 차례차례로 다른 시체들을 살펴봤다. 도담은 그런 그의 행동을 아무 말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20 분 정도 지나고, 식장 내 대부분의 흔적을 모두 확인한 은국이 작은 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식장의 입구 근처로 걸어갔다.
그를 지긋이 보던 도담은 읏차, 하고 기대고 있던 몸을 움직여 은국의 옆에서 함께 걸으며 식장 밖으로 나왔다.
식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민환은 식장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보며 정장 자켓의 안주머니에서 담배 곽을 찾아들었다.
그러나 이내 도담의 미묘하게 노려보는 시선과 마주치고서는 다시 품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은국을 보며 물음을 던졌다.
“·· 어땠습니까?”
은국은 민환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로비에서 식장까지 걸어왔던 길을 다 같이 나가며 운을 떼었다.
“··· 피 냄새도 짙지만, 그에 비하면 화약 냄새가 얕아. 공 형주가 말했던 녀석들의 신무기인 것 같아. 실제 총을 맞고 죽은 사람도 전체의 27% 밖에 안 돼. 하지만·· 그 중에 결혼식의 주인공들이 포함되어 있는 걸 보면, 그 쪽 보스의··· 특별 지시가 있었겠지.”
은국의 차분하고도 예리한 분석에 따른 판단에 도담이 동의한다는 의미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웨딩홀의 출입구인 유리문을 밀며 은국과 민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 은국, 넌 본부에 도착하면 그 녀석들에게 연락 해 봐. 민환, 넌 본부에 지원 연락 했어?”
“아, 네! 일단 정보부, 처리부에 의료부도 같이 불렀습니다. 모두 헬기로 출발해서 10분 내로 도착한답니다. 그 때까지는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웨딩홀의 입구에 나와 선 민환은 도담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에 도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검은 중형 차량을 향했다.
* * *
“휴. 잠들었네··.”
연호는 자신에게 기대어 규칙적으로 숨을 색색하고 내뱉으며 잠에 빠져든 다휘의 어깨를 감싸고 토닥거렸다.
자신에게 안겨 차에 타서 출발하고 나서까지 다휘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출발하고 나서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그녀는 긴장이 풀렸는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연호가 입고 있던 검은 정장 자켓은 다휘의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그에게서 나는 달콤한 오렌지 향이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 것 같았다.
그녀가 잠에 들자, 차 안도 정적을 찾았다.
각자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침묵을 일관하고 있던 도중, 연호가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
“저기, 담이 형. 그·· 휘원이는···?”
연호의 망설임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도담이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매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서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짧은 한숨을 뱉었다.
“·· 죽었어.”
도담의 짤막한 대답에 연호는 창밖을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다휘를 일으킬 때 보았던 휘원의 탁한 눈동자와 출혈량을 봤을 때, 그의 죽음을 확신했다.
그렇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거부감이 들었다.
그저께도 전화를 하며 결혼식에 꼭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 가장 친한 친구였다.
누군가의 죽음에 익숙한 자신도 이렇게 슬픈데, 가족을 모두 잃은 그녀의 기분은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이 -간부- 이동할 때에 운전을 책임지는 은발의 남자, ‘최 진탁’은 출발 한 후로 운전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러나 휘원의 결혼식 참사 소식을 듣고 출동한 거기도 하고, 다휘라는 휘원의 여동생이 차에 타서 내내 울음을 흘렸던 것도 있어서, 이러저러 신경은 쓰이는 모양이었다.
“·· 연호야. ‘그들’의 짓이 맞지?”
진탁이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연호를 힐끔 바라봤다.
그의 물음에 연호는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도···.”
연호의 불투명한 대답에 그의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던 은국이 뒤에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에 연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까 대충 봤을 때, 그들의 행각인 걸 확신했다. 며칠 전에 견혜혁과 공형주가 찾아왔을 때 말해준 그들의 신무기의 흔적을 발견했거든.”
은국의 말에 아, 하고 탄성을 내뱉으며 슬픔으로 가라앉은 밝은 갈색의 눈동자를 깜빡였다.
그렇게 차 안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창밖을 내다보는 연호는 1 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을 예감하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하며 약간의 수신음이 흘렀고 얼마 있지 않아 곧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보스.]
“··· 1 시간 내로 도착할 거야. 휘원이의 동생을 데려가고 있으니까, 급한 대로 옷 좀 구해줘.”
여전히 다휘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연호가 전화기 너머의 자신의 부하에게 얘기했다.
통화 상대는 다른 누군가에게 지시를 하는 듯,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네, 보스. 다른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그의 물음에 연호는 잠들었는데도 떨려오는 다휘의 몸에 그녀를 살펴봤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창백한 피부, 붉은 립스틱을 발랐지만 메마른 입술과 아까보다 더 차가운 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간부 중 유일한 여자를 떠올렸다.
연구부와 의료부의 수장으로 모두의 건강과 훈련을 책임지고 있는 여자. 그러고 보니 다휘와 그녀의 나이도 같은 것 같다.
그녀가 지금 본부에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연호가 다음 지시를 내렸다.
“은호는 본부에 있지? 이 아이가 쓸 방에서 진찰 대기하라고 해줘.”
[알겠습니다. 그럼··.]
이어 연호는 통화 종료를 눌렀다. 그리고 참혹한 현실에 홀로 남게 된 다휘를 바라봤다.
자신이 할 일은 그녀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휘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간 수 없이 다휘의 얘기를 하던, 휘원의 애정이 가득했던 소녀 같던 아가씨는 지금 자신의 옆에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웃음이 많고 귀여운 아가씨는 없다.
단지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작은 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연호는 다휘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자켓을 더욱 여몄다. 자신의 온기로 그녀의 마음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그리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길 바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