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다휘 양. 그건··!”
모두가 혼란 속에서 다휘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 중일 때, 은호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휘는 은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럼·· 이곳은 어디고, 뭐하는 곳 인가요··? 아까 연호 오빠가 저희 오빠랑 동료분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여기가 M&P 무역회사 본부인가요? 그렇지만 무슨 회사 본사가 이렇게 성 같이 생기고, 다들 검은 정장을 입고 계시고··."
다휘가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모두를 천천히 훑었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다휘의 오빠인 현 휘원은 대외적으로 무역회사인 M&P라는 곳의 이사로 되어있다.
간부들 중 유일하게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에 대외적 활동이 필요하여, Bloody Ellipse와 연결된 회사의 간부로 위장을 했다.
이 일은 휘원이 자처한 일이었다.
휘원은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리고 보스인 연호와 2인자인 도담의 승인 하에, 그는 겉으로는 외국계 기업인 M&P의 이사로 속으로는 마피아 조직의 간부로 이중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방금 모든 가족을 잃은 여자에게 모두 밝힐 수는 없었다.
연호와 도담을 제외하고서는 간부들 중에서 큰 권력을 가진 은호는 거기에 판단이 미치자, 일단 모두의 반응을 살폈다.
물론 모든 간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호와 도담이 아무 말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자, 은호는 자신이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사실 우리는··”
“은호야!”
은호가 어렵사리 뗀 말을 민환이 다급하게 가로막았다. 그녀가 무엇에 대해 말하려 했는지 안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다휘의 질문에 섣불리 대답을 하지 말라는 뜻인 걸 눈치 챈 은호는 급히 입을 다물고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그리고 이어서 도담이 짧게 숨을 내뱉으며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모자를 벗자, 뒤로 깔끔하게 넘긴 그의 검은 머리가 드러났다. 어딘가 깊어 보이는 눈매는 다휘를 향했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에 다휘는 그, 도담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도담이 결심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네가 있는 이곳은 마피아의 소굴이다.” 그가 말했다.
모두가 그의 말에 놀라 다휘와 그를 번갈아보았다.
조직의 2인자인 도담의 결정에는 연호 이외에는 거스를 수 없으니, 지켜볼 뿐이었다.
다휘는 도담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직시했다.
도담은 자신의 사나운 눈을 피하지 않는 그녀를 보면, 휘원이 생각나면서도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싫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네 앞의 나를 포함한 모두는 마피아이고, 차연호가 보스다. 그리고 네 오빠, 현휘원은 우리 조직의 정보부 수장이었다.”
“도담 님!”
도담의 거침없는 말들의 연속에 은호가 당황해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휘원은 정보부 수장으로 우리 쪽에서는 꽤 거물이었지. 젊은 나이에 중요한 정보도 많이 들고 있었고, 실력도 나쁘지 않았어. 솔직히 이쪽에서 그를 잃어서 큰 손해를 본 거나 다름없어. 우리 조직의 소중한 재산이었으니까.”
도담의 말에 다휘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시 올라오는 울분을 참는 듯, 몸 전체가 작게 떨려왔다.
그녀의 반응에 연호가 안절부절 못하며 안타깝고도 슬픈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 사건을 일으킨 놈들은 우리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마피아 조직으로 추정된다.” 도담이 마지막으로 대답을 하며 다시 중절모를 머리에 눌러 썼다.
그는 중절모로 자신의 표정을 가리면서 은근한 틈으로 다휘의 반응을 살폈다.
“다휘야···.” 연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부들거리는 그녀의 작은 어깨에 연호의 손이 닿자, 다휘는 화들짝 놀라며 그를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도담의 말대로라면, 자신에게 계속 친절을 베풀었고 휘원의 동료이자 친구라던 연호는 마피아 조직의 보스였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소설 속에서만 보던 그런 ‘마피아’.
그럼 정말 살인, 테러, 협박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걸까? 이렇게 순하게 생긴 사람이?
다휘는 연호를 바라보다가는 이내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게다가 자신의 오빠와 가족들을 죽인 사람들도 마피아라니, 정말 터무니없는 일에 끼여 버린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들이었지만, 그 보다는 마피아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무서웠다.
그런 다휘의 시선을 받은 연호는 상처를 받은 듯,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만, 만지지 마세요··!”
“아, 다휘 양!”
“다휘야!”
연호의 손을 뿌리친 다휘는 그대로 은호와 우목의 외침을 뒤로하고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연호가 본 다휘의 마지막 모습은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으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 서글프고도 두려움에 찬 표정이었다.
활짝 열려있는 짙은 고동색의 문 밖에서는 점점 멀어져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런. 담이 형. 너무 성급했잖아.” 연호가 한숨을 내뱉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차피 알아야 했던·· 진실이야.”
도담은 연호의 말에 대답했다.
중절모에 가려진 그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매정하고 싸늘했던 말들과는 달리 어쩐지 속이 쓰렸다.
“아직 다휘 양 존재를 모르는 일원이 많아서, 자칫 위험에 처할 수도 있어요. 제가 따라가 볼 테니, 보스는 다휘 양이 저택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정문에 연락이나 해주세요. 그리고 도담 님, 다휘 양은··· 그 상황을 겪은 지 하루도 채 안된 아이에요. 저녁 식사는 먼저들 하세요. 다휘 양은 제가 챙길게요.”
은호가 연호와 도담을 번갈아봤다. 특히 도담에게는 날카로운 시선을 날렸다.
그리고는 하얀 가운을 휘날리며 미들 힐을 신은 다리로 뛰어나가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하아···.” 도담의 한탄 섞인 한숨이 조용한 집무실을 울렸다.
* * *
한편, Bloody Ellipse 본부에서 멀지 않은 어느 저택.
이곳은 본부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화려하지 않은 건물들은 저택의 주인이 아주 우아하고 고상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저택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본부처럼 단 하나의 길이 나있었고, 그곳에는 무장을 한 남자가 두 명 서있었다.
입구를 지나면, 양옆으로는 단조로운 관목들이 즐비해있다.
작은 관목들 사이로 붉은 색의 작은 꽃들이 있었고, 정원의 중앙에는 티 테이블과 의자 4개가 있었다.
그곳에 앉아있는 한 남자는 한 줄기 백색의 가로등의 빛줄기에 의지하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티 테이블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그의 수행원인 듯 험악한 얼굴의 덩치가 좋은 남자가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는 꽤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백색의 빛줄기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금빛의 브라운색의 긴 머리를 등 뒤로 묶고, 꽤 성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별들로 반짝이는 어두운 밤하늘을 고개를 젖혀 감상하고 있었다.
아주 여유로운 분위기였고, 그는 들고 있는 찻잔을 기울여 홀짝였다.
“음··. 식었군.”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중저음의 톤은 그를 더욱 고상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백색의 찻잔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점점 싸늘해져갔다. 그리고 그는 정원의 바닥을 향해 찻잔을 던졌다.
쨍그랑 하고 깨진 찻잔,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던 홍차가 잔디를 적셨다.
차의 향기가 이내 주위에 퍼졌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테이블에 올렸던 어두운 적색의 가죽장갑을 끼면서, 수행원을 향했다.
“치우세요.”
“예!”
그의 막무가내인 부탁에도 수행원은 고개를 숙이며 짧고 묵직한 대답을 했다.
수행원이 바쁘게 움직이자, 그는 그를 지나쳐서 저택을 향했다.
가죽으로 된 긴 코트를 입은 그는 가장 큰 저택을 지나 연보랏빛의 지붕이 인상적인 건물로 향했다.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환한 조명이 그를 반겼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익숙한 듯 다크 브라운의 카펫 위를 걸었다. 한 층을 오른 그는 자신의 방인 듯,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은 성숙한 그의 분위기를 반영한 듯, 채도가 낮은 벽지와 가구들이 있었다.
가구도 침대와 행거, 책상, 티 테이블과 의자가 끝이었다.
가죽 코트를 행거에 걸고 그는 자신이 책상에 두고 나간 핸드폰을 들었다.
잠시 외출을 한 사이, ‘처리부’라는 이름의 채팅방에 수많은 알림이 떠있었다.
그는 몇 시간 전에 진탁과의 통화를 떠올리며 채팅을 쭉 읽었다.
「처리부 김용호 : 사진을 보냈습니다.」
「처리부 김용호 : 사진을 보냈습니다.」
「처리부 김용호 : S 웨딩홀 시체들 전부 병원으로 이송 완료했습니다.」
「처리부 김용호 : 사진을 보냈습니다.」
「처리부 박정혁 : 정보부로 혈액 샘플 넘겼어요?」
「처리부 윤기수 : 넵. 그리고 생존자 현 다휘는 간부들께서 보호하고 있다고 연락 받았습니다.」
「처리부 이성근 : 그 사람이 휘원 님의 동생이라던데..」
잠깐만. 누구의 동생···? 누가?
그는 스크롤을 내리고 있던 손가락을 멈췄다.
오늘 오후, 휘원과 은편의 결혼식이 있었다는 것과 결혼식 도중 모조리 살해당했다는 것은 진탁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가 있다는 것도.
그러나 그게 휘원이 매우 아끼는 그의 동생이란 것은 몰랐다. 휘원이 지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흔적 같았다.
“현다휘··라고?”
그는 작게 중얼거리더니, 자신의 턱을 쓸며 채팅을 마저 읽었다.
핸드폰에 뜬 채팅 알림을 모두 읽은 그는 어두운 잿빛의 침구 위로 천천히 앉았다.
그리고 채팅 앱의 친구 목록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찾았다. 그러나 한참을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망설였다.
이내 핸드폰을 침대 위로 가볍게 던졌다.
“무슨 상관이야.” 그가 침대로 풀썩 하고 상체를 맡기며 천장을 바라봤다.
오늘 복귀 예정이라 출발하기 직전이었는데, 진탁에게서 연락이 와 ‘암살부에서 대기.’의 명령을 받아 하릴없이 기다리게 되었다.
동갑이기도 하고 가장 친했던 휘원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죽음이 와 닿지 않았다.
본부에 복귀하면 함께 술을 나눴던 ‘친구’였는데.
오늘 밤은 술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는 Bloody Ellipse 8인의 안개 중 한 명, 도 선우다. 선우는 수행원에게 술과 잔을 가져오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술에 취해있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