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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2052년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2026년의 어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둘 사이에 이어진 다리의 사연이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주는데...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

 
더미(Dummy)
작성일 : 17-12-08 10:27     조회 : 39     추천 : 0     분량 : 1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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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찬은 휴고와 나란히 자갈 해변을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민지영이 제발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방금 큐브를 통해 그녀 근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도움을 줄 여지가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이고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Y23구역 서남기 사건 때처럼 그곳 직원이 도움을 준다고 나섰지만 그는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던가. 그가 3년 동안 본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손길을 뿌리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그때도 도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움이 있었지만 이미 스스로에게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더 간절했다.

 

 민지영의 마음이 선을 이미 넘어서지 않았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 바로 앞에서 걸어가는 크로우가 더 잡고 싶어 졌다. 어떻게든 잡아 크로우로 인하여 다시 시작된 죽음의 그림자를 자기 손으로 끝내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가 몰랐던 사실 하나가 있었다. 그가 이곳 B시에 와서 해변을 달리는 사이 S시에서도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H강을 지나는 다리 위에서 크로우와 대화를 했던 남자가 물로 뛰어 들었다. 주변에 사람들도 없었고 휴고들도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PSWC 직원에 의해 출동된 구조대는 강물 위만 맴돌며 뛰어내린 사람을 찾았다.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은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으로 온 몸에는 보행용 파워 슈트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는 건물 앞에서 크로우를 만나 이야기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세상을 살아온 경륜이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혼돈 시기의 고통에서는 노소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 아래를 지나가던 빈 자동차 위에 떨어졌는데 그는 행복하게 웃고 계셨다.

 

 집에서 자살을 하려고 목에 줄을 매달았던 여자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NDR-11이 휴고를 이용하여 그녀의 다리를 잡고 있어 다행히 구조할 수 있었다. 그녀가 퇴근을 할 때 집 앞에 크로우가 그 집의 NDR-11을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크로우는 사람도 설득하고 A.I도 설득하여 자살을 유도하였던 것이다.

 

 어느 도로에서는 자동차로 뛰어든 10대가 있었다. 10대 남자였는데 그는 시내에 물건을 구경하러 왔다가 크로우를 만나 단 10분을 대화하고는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자동차가 C4 시스템이 되면서, 그리고 혼돈 시기가 끝나면서 모든 자동차는 시내 주행이 40Km/h 이하였고 주거지 외곽 도로도 60Km/h 이하로 다녔다. 그가 자동차로 뛰어들었을 때 그 차의 속도는 30Km/h 미만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다. 집 근처 공원에서 크로우를 만나 이야기를 했던 중년의 남자는 인근에 있는 나무에 줄을 연결하여 자살을 했다. 어느 부인은 크로우와 같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달리는 차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곳이 시외곽 도로라 차는 빨리 달리고 있었고 그로인해 그녀는 죽었다.

 

 이날 크로우들의 공격은 그야말로 계획된 집중 공격이었다. 그간 드문드문 이어지던 크로우의 출현과는 전혀 양상이 달랐다. 가장 많은 피해를 남긴 날이 어제 하루 4명이었는데. 그때도 공격은 전체 6건에 불과 하였는데. 이번은 완전히 양상이 달라졌다. 15개 이상에서 크로우가 출현을 하였고 그중 9명이 자살에 성공을 하였다. S시 PSWC는 초비상이 걸렸다.

 

 

 B시 언덕 위에서도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한 사람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크로우와 이야기를 했던 민지영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조금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천천히 언덕 가장자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걸어가는 앞쪽은 바다로 향하는 절벽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민희가 순간적으로 소리치며 달려갔다.

 "안 되는데. 얘들아, 잡아."

 

 민희의 행동에 설민과 지현도 함께 민지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정신이 없는 민지영은 주변의 소리와 주변의 움직임을 깨닫지 못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단 하나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처럼 한 지점을 향해 걷기만 했다. 그녀가 절벽 바로 앞까지 다가갔을 때 민희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뒤이어 설민이 다른 손을 잡았고 지현은 등 뒤에서 허리를 잡았다. 팔이 잡히고 몸이 잡혔음에도 민지영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저 앞으로 가려고만 했다.

 

 설민이 손을 잡고 안간힘을 쓰며

 "아줌마, 정신 차리세요. 아줌마"

 

 지현도 허리를 깍지 낀 두 손으로 감싸고는

 "아, 힘들어. 아줌마 더 가면 죽어요. 그만 가세요."

 

 그 말에 민희가 다급히 지현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된데. 저번에 봤던 사람이 못 하게 했어. 하지 마."

 

 설민이

 "그게 맞아?"

 

 지현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희가

 "응, 그런 이야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했어. 그때 그 사람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다른 이야기하자.

  아줌마, 정신 좀 차리세요. 여기 인근에 맛있는 횟집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 거기 가서 회 먹어요. 점심때 바닷가에 왔는데 왜 회를 안 먹느냐고 했었잖아요. 우리 같이 회 먹어요."

 

 지현이 민지영의 허리를 잡느라 끙끙거렸다.

 "그래요. 우리 같이 회 먹으러 가요."

 

 설민이

 "우린 회 잘 모르는데. 무슨 고기가 맛있어요. 회에는 어떤 게 있어요?"

 

 그제야 민지영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날 좀 내버려 둬. 그냥 날 좀 보내줘. 날 잡지 마. 제발 날 놔줘."

 

 민희가 절벽 밖으로 안간힘을 써가며 당겼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아줌마가 아까 우리에게 말씀하셨잖아요. 참 좋은 세상에서 예쁘게 살고 있다고. 아줌마도 참 좋은 세상에서 예쁘게 사셔야죠."

 

 설민이 조금은 뒤로 물러나게 했음을 알고는 그제는 민지영의 앞으로 나서 그녀의 앞을 몸으로 막아서더니 배를 잡고 뒤로 밀며

 "맞아요. 왜 갑자기 이러세요. 좀 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요. 아줌마는 참 여유 있고 기품 있어 보였는데. 빨리 돌아오세요. 좀 전의 모습으로."

 

 지현이 허리를 잡은 채 뒷걸음질 치며

 "제 옷 입고는 이러면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나는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라고 만들어준 옷인데. 이런 날 입으라고 만들어 놓은 옷 아니에요. 절대로 안 돼요."

 

 민지영이 여전히 넋이 나간 모습을 하고

 "나는··· 나는 죽어야 해. 돌아갈 수 없어. 그들에게 가고 싶어. 나는··· 죽을 거야."

 

 민희가

 "아니요. 사셔야 해요. 다른 사람이 못 이루었던 시간까지 꼭 사셔야 해요. 그게 그 사람들 꿈일 거예요. 꼭 사셔야 해요."

 

 설민이 그제는 엉엉 울면서

 "이렇게 보내면 우리는 어떻게 해요. 방금 전까지 우리와 웃으며 이야기하신 분인데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해요.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해요."

 

 지현도 눈물이 글썽거리는 말투로

 "맞아. 그럴 수는 없어요. 남은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남게 되는 우리는 어떻게 해요. 절대 안 돼요. 남게 되는 우리는 어쩌라고요."

 

 그때 갑자기 힘이 풀리는 느낌이 왔다. 팔을 잡고 있는 민희에게도 느껴졌고, 앞을 막고 있는 설민의 가슴에도 느껴졌고, 뒤에서 허리를 감싸고 있는 지현의 팔에도 힘이 풀렸음이 느껴졌다. 아마도 마지막에 지현이 했던 말이 효과적이었던 모양이다. 남게 되는 우리는 어쩌라는 말이 민지영을 움직였다. 그제야 민지영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세 명의 힘에 이끌려 뒤로 물러났다.

 

 

 파워 슈트를 입은 찬과 로봇인 두 휴고의 발자국 소리가 자갈 해변이라 더욱 요란하게 들린다. 셋은 열심히 앞을 향해 맹열히 달리고 있었다.

 

 휴고 중 로이가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이 휴고에 있을 수 있는 시간도 몇 분 안 남았고. 찬님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몇 분이 남지 않았습니다."

 

 찬이 여전히 뛰면서

 "어쩌긴 어째 지금 잡아야지. 그냥 뒤를 밟아서는 절대 못 잡아. 마켓에서 한 번 당해 봤잖아."

 

 "예, 알겠습니다."

 

 뛰고 있는 찬의 앞에 천천히 걸어가는 크로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찬이 다급히 좌우를 보며

 "로이는 좌측, 레온은 우측, 난 뒤에서 덮칠 테니까. 무조건 도망 못 치게 잡아."

 

 두 휴고가 알았다는 듯이 좌우로 흩어져 크로우를 둘러싸려고 했다. 그때 여유롭게 걷고 있던 크로우가 찬과 두 휴고를 발견했다. 순간 크로우가 뒤에서 달려드는 찬을 가장 약하게 보았는지 돌아서서는 반대로 찬에게 달려들었다. 찬이 그 모습을 보고는 파워 슈트를 입은 오른쪽 손으로 크로우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그때 레온을 통해 큐브가 소리쳤다.

 "휴고는 머리가 약점이 아니라 왼쪽 가슴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미 때늦은 뒤였다. 찬의 주먹은 크로우의 머리를 비스듬히 가격했다. 큐브의 말처럼 주먹을 맞은 크로우는 머리의 검은 유리 부분이 깨어졌을 뿐 별 이상은 없었다. 맞고도 아무 흔들림 없이 찬 옆으로 도망을 쳤다. 다행인 것은 크로우가 찬에게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에는 궁지에 몰리거나 공격을 받으면 대응을 할 것이라 생각을 하는데, 크로우도 휴고라 그런지 찬에게 공격하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당황한 레온과 로이가 다급히 돌아서 크로우를 잡으려 했다. 두 휴고의 정지하는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자갈과 만나 스키드 마크에서 불꽃이 났다. 주먹을 날린 찬도 몸을 날린 방향과 반대로 도망치는 크로우를 잡으려다 그만 자갈밭에 미끄러지며 뒹굴었다.

 

 찬이 바닥에 미끄러져 뒹굴며 소리쳤다.

 "난 괜찮으니까 크로우부터 잡아."

 

 두 휴고가 크로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제부터는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인 찬에게는 공격하지 않던 크로우가 같은 휴고인 로이와 레온이 달려들자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크로우는 도망을 치면서 자기를 잡으려는 두 휴고에게 공격을 가했다. 세 대의 휴고가 엉키어 싸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힘 있는 맹수가 싸우고 있는 모습 같았다. 무서우리 만큼 요란하고 과격했으며 파괴적이었다. 철이 서로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가 나고 때로는 자갈밭의 자갈이 사방으로 튀기도 했다.

 

 몸싸움이 치열하던 그 순간 크로우의 주먹이 레온의 좌측 가슴 부위를 강하게 타격하였다. 좀 전 큐브가 찬에게 가르쳐 주었던 휴고의 약점 부위였다. 레온의 좌측 가슴에서 연기가 나더니 자갈밭에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질 못 했다. 그로 인해 로이가 크로우에게서 뒤로 물러났다. 요란한 싸움에 개입을 할 수 없어 주변에 있던 찬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어를 통해 큐브가

 "레온의 중앙 처리 장치가 파괴되었습니다. 레온은 아웃입니다."

 

 그 말에 찬의 가슴이 찡했다. 마치 진짜 사람인 누군가를 잃은 것 같았다. 어떤 느낌이냐 하면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크로우가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로이, 도망친다. 놓치면 절대 안 돼."

 

 찬과 로이가 크로우 뒤를 다시 따라갔다. 앞쪽 그러니까 언덕 있는 곳에서 한 무리의 휴고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B시 PSWC 소속의 P-휴고들입니다. 우리를 도와주러 왔습니다."

 

 한 무리의 휴고들이 앞에서 달려오자 크로우가 도망을 가다가 멈춰 섰다. 덩달아 찬과 로이도 멈춰 섰다. 그리고는 경계를 하며 크로우 가까이 접근했다.

 

 "넌 누구냐. 넌 누구기에 휴고를 이런 일에 사용하는 거냐. 휴고 뒤에 숨어있지 말고 정체를 밝혀라. 사람이냐 A.I냐?"

 

 찬의 질문에 크로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질 않았다.

 

 찬이 재차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휴고 뒤에 숨어 있는 너의 정체는 대체 뭐야?

  무슨 목적으로 사람들을 죽게 하는 거야.

  왜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들고 있어. 왜?"

 

 그때쯤에는 다른 휴고들이 바로 앞까지 도착하였다. 크로우에게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제야 크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찬은 대답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기계음이었다.

 

 "자폭 단계입니다. 위험합니다.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주십시오. 자폭 모드입니다."

 

 이 말을 하고는 갑자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말에도 로이가 크로우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갔다. 그와는 달리 찬은 그 소리에 놀라 멈춰섰다. 그런데 다가가는 로이가 보였다.

 

 찬이 다급히 로이에게

 "큐브, 뭐 하는 거야. 로이를 어떻게 하려고."

 

 로이에서 큐브의 목소리가 아닌 B조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의 근무 시간이 끝이 났습니다. 이 시간부로 3구역 MPI 7이 통제하겠습니다."

 

 'B 조 관리자.'

 

 찬이 화가 난 듯이 소리쳤다.

 "자폭하려고 한다잖습니까. 가까이 가면 휴고가 파괴됩니다."

 

 로이가 여전히 크로우에게 다가가며

 "당신은 어서 피하십시오."

 

 그 말에 찬이 뒷걸음질 치며 뒤로 물러났다. 다른 휴고들도 다가오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로이가 크로우 바로 옆에 다가서는 순간 큰 폭발이 일어났다. 찬은 폭발 전에 다급히 자갈 바닥에 엎드렸다. 자폭이 일어나고 난 뒤에 그는 속으로 휴고에게 자폭 모드가 있었던가 생각했다. 그의 기억에는 휴고에게 자폭 장치가 되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폭발이 있고 난 다음에 찬이 고개를 들어 크로우가 있었던 곳을 봤다. 크로우는 폭발하여 형체가 엉망인 채 불이 나 있었고 그 옆에 다가가던 로이는 서 있는 채 불이 붙어 있었다. 단순하게 보이는 모습에서 로이도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찬은 너무 큰 충격이라 한동안 망연자실해서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다시금 레온 때처럼 가슴이 찡하게 아려왔다. 오랜 친구를 잃은 기분이었다.

 

 그때 그의 이어를 통해 큐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들이 민지영을 구했습니다. 이제 민지영은 무사합니다."

 

 

 업무 종료 시각을 알릴 때 S시 소속의 3구역 PSWC 안에서는 직원들의 다양한 모습이 나타났다. 어디선가는 선방을 했는지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디선가는 고함을 치며 괴로워하는 곳이 있었다.

 

 김동주는 업무 시간이 종료되었다는 HAL 9의 말에 그만 서있던 자리에서 힘이 풀린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크로우의 집중 공격이 시작되면서는 의자에 앉지를 못하고 일어서서 HAL 9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관리 대상자 중에서 2명이 크로우와 접촉을 하였고, 그중 1명이 안타깝게 희생되었다. 희생된 그 사람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을 했다.

 

 "아아아. 이럴 순 없어.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이건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다고."

 

 김동주가 자책하며 괴로워할 때 지골로 조도 사무실 안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자책하는 김동주의 행동과는 달리 엄청나게 화를 내고 있었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서는 팔을 허공에 되고 마구 휘두르기도 하고 욕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다 급기야는 화를 참지 못해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를 발로 차고 그래도 화가 덜 풀렸는지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복도 쪽 벽에 던졌다.

 

 "아아아. 아이 씨. 이런 미친 새끼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이 씨. 아이 씨. 어디서 나타나는 거야. 이 새끼들은."

 

 그렇게 욕을 하며 난리를 피우는 지골로 조의 HAL 9 모니터에는 검게 차단 표시가 된 특별 구역 지도와 그 주변 CCTV 영상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맨 아래 상황란에는 크로우 접촉자 0명, 사망자 0명이라 적혀 있었다. 자살을 한 사람도 없고 크로우와 접촉한 사람도 그의 관리 대상자 중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거야. 저기가 아니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분명히 저기여야 하는데. 저기가 분명한데. 왜 오늘은 없는 거야. 오늘 나타난 놈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거야. 어디서."

 

 그에게는 모니터 영상에서 보이는 지도의 지점이 이번 크로우 사태에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았다.

 

 

 찬은 금요일 B시에서의 사건 이후로 주말 내내 혼란에 빠져 있었다. 크로우는 어떤 알 수 없는 목적을 위해 사람을 죽음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 일을 겪으면서 그는 사람들의 자살이 무슨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는지 모른 채 맹목적으로 막으려고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핵심은 크로우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왜 크로우가 사람들의 자살을 유도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그 핵심의 실마리가 아이러니하게도 크로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 속에서 나왔다. 크로우와 함께 파괴된 로이를 통해 그는 알았다. 단순하게 보면 기계에 불과한 휴고다. 생명의 유한함이 없는 기계 로봇이다. 하지만 그동안 늘 붙어다닌 찬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동료와 같은 존재였다.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하며 이름을 부여한 휴고였다. 그랬던 그 휴고를 누군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주검.

  자살의 필요성."

 

 크로우에게 명령을 한 그 누군가도 로이에게 폭발함을 알고도 계속 전진하게 했던 명령처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시했을 것이다. 목표의 도구가 인간의 자살이라는 행위다.

 

 절대로 강요해서도 안 되고,

 유도되어서도 안 되며,

 의도해서는 더욱 안 되는 일.

 누군가의 자살을 통해 목적을 이루려는 행위.

 

 그걸 크로우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에 목적까지 알았다.

 

 찬이 샤워를 끝내고 소파에 앉았을 때 모니터에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휴고가 사람들에게 자살을 유도하고 있다.]라는 특보였다. 뉴스의 내용은 이미 그가 알고 있는 크로우 사건의 전모다. 몇 주째 오롯이 매달린 일이라 모든 전모는 다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걸 몰랐다. 사람들의 반응. 크로우 사건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이 그가 미처 생각 못 한 목적을 알려주었다.

 

 '두려움과 공포와 혼돈.'

 

 그 자신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혼돈. 그 혼돈에 사람들이 다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 그는 그걸 뉴스를 통해 보았다.

 

 찬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래! 저거였어. 저거야. 사람들의 혼돈과 혼란. 누군가의 자살을 통해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저거야."

 

 

 일요일 저녁 민희네 거실.

 

 거실 모니터에 정체불명의 휴고가 사람들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거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민희가 샤워를 막 끝낸 모습으로 거실에 나왔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아주 밝아 보인다. 그야말로 콧노래를 흥얼거릴 것 같은 모습이다.

 

 그녀가 막 소파에 도착해 앉으려고 하다 모니터가 켜진 것을 보았다.

 "뭐야? 왜 지시도 없이 뉴스를 켜놓았어?"

 

 "잠시 뉴스를 좀 보셔야겠습니다. 지금 특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민희가 소파에 앉으며

 "무슨 일 있어···"

 

 그녀는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놀란 얼굴로 뉴스를 봤다. 무슨 뉴스기에 네가 직접 알려주는데라는 식으로 물어보려다 말고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머리는 단번에 민지영을 떠올렸다. 계속 이어지는 뉴스에 그녀는 금요일 자신의 눈앞에서 본 모습과 민지영의 얼굴이 함께 자동적으로 생생하게 기억났다. 뉴스의 내용은 그 사건의 전모를 알려주듯이 사람들의 자살에 대한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휴고들이 국민들과 NDR-11에 접근하여 이상한 신호로 현혹하여 자살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 일어나기 시작한 이 일들로 인하여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정부는 이 사실을 발견하고 지금 대응에 주력하고 있으며. 국민들께는 위험한 휴고의 말에 넘어가거나 위험한 휴고가 자신의 NDR-11에 접근하지 않도록 하시고, 가정용 A.I에게 위험을 숙지시켜 주시기를 당부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겠습니다. 위험한 휴고가···]

 

 뉴스는 계속 이어서 크로우의 위험성에 대하여 안내하고 있었다. 막 도착하였을 때의 표정과는 딴판으로 놀라움에 두려워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어머, 어떻게. 저럴 수가. 저럴 수 있지. 휴고가 어떻게··· A.I 아시모프 법은··· 로봇인 휴고가 왜?"

 

 다시 모니터를 보며 아무 말 없이 생각을 하다가 뭔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탄식을 내뱉었다.

 

 "아! 아니다. 뉴스가 잘못 말하고 있다. 휴고가 아니라 휴고에게 명령하는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그 사람을 찾아야 한다."

 

 사실 그녀는 주말 내내 가슴이 뿌듯한 기분으로 보냈다. 민지영을 위험에서 구할 때의 기분은 마치 서남기를 구할 때와 같았다. 뭔가 아주 크게 좋은 일을 했다는 느낌. 그것도 절박한 상황에서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그 일을 했다는 만족감. 그게 좋은 흥분감을 그 일 이후에 한참 동안 지속시켜 주었다. 그래서 그녀를 돕겠다고 친구들과 함께 B 시에 하루 더 머물렀다. 민지영의 H-휴고가 도착할 때까지 보호자 역할을 했던 일이 스스로에게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은 그녀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 했지만 가족애나 모성애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사실은 나쁜 의도를 가진 휴고의 말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특히 공포감이 드는 것은 자신이 본 민지영 사고와 같은 일이 그간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지난번 서남기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누군가가 휴고와 A.I를 이용하여 사람을 자살하게 만들고 있다니.'

 

 그때 갑자기 소파 옆 테이블에 있는 월에서 소리가 났다.

 

 "지금 설민님과 지현님이 동시에 연락하셨습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민희는 갑작스러운 말에 깜짝 놀랐다가 친구들 연락이라는 말에 그제야 안심을 하였다.

 

 "그래! 그럼 모니터 뉴스 끄고 화상 통화 연결해줘."

 

 큰 모니터에 뉴스 화면이 사라지고 두 사람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났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설민이다.

 "뉴스 봤어. 지금 뉴스 하는 거 봤느냐고."

 

 민희와 모니터의 지현이 동시에 대답했다.

 

 "보고 있어."

 

 "봤어."

 

 설민이 흥분한 얼굴로

 "언덕 아래서 휴고들이 싸우고 있었다는 내 말이 맞지. 내가 분명히 봤다니까."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금요일 언덕 위해서 민지영을 막 설득하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때. 설민만이 언덕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보고서 못 본 두 명에게 그림을 설명했다. 그런데 휴고끼리 싸우고 있었다는 말을 두 사람은 믿지 않았다. 특히 로봇과 A.I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민희는 더 어처구니없는 말이라며 면박까지 주었다. 뒤에 휴고의 폭발까지 이어졌지만. 그래도 그녀의 목격담을 둘은 믿으려 하질 않았다.

 

 지현이 미안한 얼굴을 하고

 "그러게 그때는 안 믿었는데 지금 뉴스 보니까 사실인 것 같다."

 

 민희도 긍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민이 여전히 흥분한 음성으로

 "그럼 그 싸우던 다른 휴고는 정부 P-휴고였던 모양이야. 우리가 뉴스의 생생한 현장에 있었어."

 

 민희는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휴고는 안 싸우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데. 싸울 수가 없는데."

 

 지현이 궁금했는지 민희를 보며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 휴고들과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거야?"

 

 설민이 당황해 하며

 "참 그렇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민희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를 똑바로 봤다.

 "꼭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냥 모르는 휴고의 말에 넘어가지 말라는 의미일 거야."

 

 지현이 겁먹은 모습을 보이며

 "겁난다. 무슨 말에 넘어가지 말라는 말인데?"

 

 민희가 둘과는 달리 담담하게

 "아마도 그 아줌마가 말씀하셨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그 말이겠지."

 

 설민이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 거기 정신병원에 이송되어 심리 치료받을 때 했던 말. 가족 이야기나 옛날이야기를 들었다는 그 이야기 말하는 거지."

 

 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 맞아. 아마도 휴고가 그 이야기를 할 때 조심하라는 의미일 거야."

 

 모니터로 지현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인다.

 "아! 그렇구나. 이젠 조심해야겠다."

 

 그 말소리에 설민이 자기도 모르게 대뜸 소리쳤다.

 "넌 걱정할 필요 없을 걸. 옛날이야기만 나오면 싸우는 애가 뭐 걱정이냐."

 

 지현이 뭔가 알았다는 듯이 설민이 말을 되뇌었다.

 "옛날이야기만 하면 싸워. 내가? 정말 그 말에 싸웠다고!"

 

 민희도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지현을 봤다. 그때부터 세 사람의 수다떨이 주제가 뉴스의 내용이 아니라 지현의 애인과의 싸움 이야기로 바뀌었다. 지현은 처음에는 아니라는 듯이 극구 부인을 했다. 설민은 그런 지현을 설득이라도 시키려는 듯이 며칠 전에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들추어가며 설명했다.

 

 설민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맞잖아. 너도 처음에 그랬잖아. 옛날 이야기를 한 것 같다고. 맞아. 둘이 혼... 그때 이야기를 하다 그렇게 된 거야."

 

 민희는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지켜보다가 간간이 두 사람 다 편을 들어주었다.

 

 "설민이 말도 맞는 것 같다. 내가 그날 듣기에도 그랬어. 왜 그날 그렇게 불편했는지 이제 알겠다. 혼... 그때의 이야기를 둘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그거였어.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지현이가 그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지. 그 남자친구도 자주 꺼내던데. 마치 자기 기억이 아주 좋다는 걸 과시하듯이."

 

 그렇게 하여 세 사람은 지현의 이별 공식에 대하여 새로운 법칙을 하나 만들고 있었다. 혼돈 시기 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싸우게 되고 얼마 후에는 이별하게 된다는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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