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하시오.]
‘슬슬 비장의 무기를 꺼내볼까.’
카쟝은 주머니에서 손톱만한 USB를 꺼냈고, 단숨에 연결포트에 꽂았다. 곧이어 USB에 내장된 프로그램이 암호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화면으로 복잡한 문자와 숫자들이 무질서하게 나열되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화면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용자 인증 완료.]
‘됐다.’
배경화면이 뜨고 여러 폴더들이 보였다. 카쟝의 눈이 폴더들을 체크하는 동시에 USB도 컴퓨터의 모든 자료를 복사하기 시작했다.
[복사 예상시간 : 15분]
일반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데이터가 복사되는 데에는 3분 내외면 충분했다. 그 시간을 감안하면 이 컴퓨터에는 엄청난 데이터가 쌓여있는 것이었다.
‘빠듯한데.’
운이 나쁘면 백민관과 마주칠 수도 있었다. 카쟝은 화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바탕화면 한 켠에 위치한 폴더가 그의 직감을 자극했다. 폴더의 이름은 단 세 글자, [진행 중]이었다.
‘진행 중?’
카쟝은 서둘러 폴더를 열었다. 폴더에는 10개의 문서가 저장되어있었다. 그 중간엔 [DTS Project] 문서도 포함되어있었다.
'역시 진행 중인 연구들을 모아놓은 거군.'
카쟝은 천천히 시선을 내리다가 한 문서에서 눈이 멈췄다.
‘이건 뭔데 이렇게 용량이 커?’
다른 문서보다 5배나 용량이 큰 문서였다.
'RB project?'
손은 눈보다 먼저 반응했고, 문서는 이미 화면에 펼쳐져 있었다. 문서 내용은 200쪽이 넘어갔다.
‘엄청 길다. 책으로 내도 되겠어.’
문서를 쭉 내려 봤지만 역시나 모르는 내용뿐이었다. 중간 중간 보이는 뇌 그림만으로 간신히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음, 대충 뇌를 가지고 연구한다는 내용인가.’
그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원숭이 사진이 나타났다. 실험에 사용한 원숭이였다. 특징이라면, 원숭이의 두개골이 열려있었다. 그 틈새로는 원숭이의 뇌가 보였다. 선홍빛 뇌 표면에 새빨간 주름이 선명했다.
"으...."
카쟝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비웃듯 다음 사진은 더욱 적나라했다. 열려있는 부분이 두개골 뿐만이 아니었다. 뒤통수를 시작으로 등을 지나 골반까지 길게 절개되어있었다. 특이점은, 절개 틈새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명은 그 속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뇌를 제거한 거야?’
제거한 부위는 다 먹은 대게 등껍질처럼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다음 사진에선 다시 뇌와 척수가 들어가 있었다.
‘뇌를 넣다 뺐다 하고 있잖아? 무슨 건전지도 아니고 이런 짓을 하다니.’
그 사진을 시작으로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의 사진이 이어졌다. 동물원에서 볼 법한 동물들이 이곳에서 괴상한 연구에 이용되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 넘길수록 카쟝의 얼굴도 점점 일그러져갔다. 리브였다면 비위가 뒤집혀 구역질을 했을 법한 사진들이었다. 카쟝은 문득 예전에 시청했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사람한테 적용할 약을 만들기 전에 동물에게 먼저 써본다더니 이게 그 꼴이군. 실제로 보니까 상당히 잔인한데?’
그때 봤던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수 백 장의 사진을 넘기니 슬슬 연구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동물의 뇌를 다른 동물로 이동시키는 연구야.'
사진으로 본 케이스만 쳐도 수 십 마리의 동물 뇌가 조작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문서는 한참 남아있었다. 그 순간 카쟝의 머리로 스치는 불안한 예감.
'설마 사람한테도 실험한 거 아니야?'
카쟝의 추측대로였다. 몇 페이지를 더 넘기자, 동물 실험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사람 실험도 이행되었다. 그 증거는 명백했다. 모델이 유인원에서 사람으로 바뀐 실험사진이 줄줄이 펼쳐졌다.
'이, 이건... 너무 하잖아....'
사진에는 실험의 참여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정확히는 참여한 것이 아니라 사용 당한 것이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실험대 위로 올라있었다. 몇 장을 더 넘기던 카쟝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린 애도 있잖아!’
아이는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카쟝은 떨리는 손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그의 입술도 바짝 말라있었다.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다른 실험체처럼 두개골이 절개된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카쟝은 다시 앞쪽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있었다. 수면제를 먹고 숙면에 빠져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카쟝은 그 아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별안간 기시감을 느꼈다.
'낯이 익은데?'
카쟝은 그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분명히 봤던 얼굴인데 가물가물했다.
'누구였더라?'
카쟝의 머릿속에 얼굴이 기억나려는 찰나였다. 고요하던 바깥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30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것이었다. 카쟝은 문서를 닫고 남은 복사 시간을 체크했다.
‘3분 남았다.’
지금이라도 소리 없이 이곳에서 탈출해야 했다. 밖에선 대화가 진행 중이었다.
“그래. 누가 찾아오진 않았고?”
민관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의 비서였다.
‘백민관은 안 왔나?’
“15분 전에 강일호 과장님이 잠깐 들르셨습니다.”
“강 과장님이? 무슨 용무로 오셨지? 현재 휴가 중이지 않나?”
의외의 인물에 당황한 말투였다.
“호출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호출을? 15분 전에? 확실해?”
“네. 정확히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사장님이 외출 중이시라서 나중에 다시 오라고 전했습니다.”
“알았어.”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도 복사는 끝을 맺지 못했다.
‘앞으로 2분만 더.’
띡. 띡. 띡. 띡.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카쟝은 고개를 돌려 창문을 확인했다. 몸을 넣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창문으로 나가야 하나?’
혹시 몰라 간이형 낙하산을 챙기긴 했으나 탈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첫째로, 복사가 끝나려면 2분이 남아있었다. USB가 모든 파일을 복사한다는 점은 알았지만 어떤 순서로 복사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직 복사하지 못한 2/15(13%)의 데이터 중 중요한 문서가 포함되어있을 수도 있었다. 특히 RB project의 내용은 반드시 가져가고 싶었다.
둘째로, 명장제약회사 앞에서 낙하산을 사용하면 경비원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게 뻔했다. 따라서 사장실에 불청객이 왔었다는 사실을 광고하는 셈이었다. 백민관이 침입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조용히 사라지려는 카쟝의 목표가 물거품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되면 강일호까지 곤란해졌다.
'우선 숨자.'
카쟝은 모니터를 끄고 미꾸라지처럼 침대 밑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기척을 숨긴 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의 손은 재빨리 알람을 맞췄다.
철컥.
손잡이 돌리는 소리와 함께 사장실이 열렸다. 침대 밑에 있던 카쟝에겐 비서의 다리만 보였다.
뚜벅. 뚜벅.
비서의 발이 들어오고 문은 자연스럽게 닫혀갔다. 문은 가만히 놔두면 닫히고, 닫히는 순간 잠기는 방식이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카쟝은 자신의 휴대폰을 사장실 밖으로 밀었다.
‘제발.’
휴대폰은 카쟝의 손을 떠나 사장실 문틈 사이로 빠져나갔다. 휴대폰이 로비로 탈출함과 동시에 문이 닫혔다. 비서는 카쟝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창가로 걸어갔다. 카쟝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곧 사장님이 돌아오시니까."
드르륵.
비서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하나둘 내렸다. 블라인드는 차례차례 창문을 덮어갔고 샛노란 햇빛은 하나둘 자취를 감춰갔다. 그렇게 그는 사장실을 한 바퀴 돌며 모든 블라인드를 내렸다. 블라인드가 워낙 두터워서인지 햇빛은 전부 차단되었다. 실오라기의 햇빛도 블라인드를 뚫지 못했다. 천장의 형광등만 아니었다면 사장실은 이미 암흑 그 자체였다.
‘복사는 완료됐겠어.’
이제 USB를 들고 흔적 없이 나가기만 하면 성공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불가능했다. 그 순간이었다.
삐요오오옹-
사이렌 소리였다. 사장실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비서의 몸이 움찔거렸다.
“뭐야?”
비서는 성큼성큼 걸어 사장실을 열었다. 사장실 밖에는 경호원이 서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휴대폰 벨소리인 것 같습니다."
휴대폰은 사장실 밖에 있던 경호원이 쥐고 있었다. 장 비서는 경호원에게 다가갔다.
"휴대폰 벨소리?"
“강일호 과장님이 떨어뜨리신 것 같습니다.”
“이걸 왜 떨어뜨렸지?”
비서는 경호원을 노려봤다. 경호팀장은 조심스레 대답했다.
“사실은 아까 강일호 과장님이 승강기 앞에서 쓰러지셨습니다.”
“쓰러졌다고?”
경호팀장은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뜸을 들였다.
“그, 심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리는 잘 했어?”
“아스피린을 드리려고 했는데 그 사이 연구소로 내려가셨습니다.”
비서는 한숨을 푹 쉬더니 휴대폰을 쳐다봤다.
“어서 돌려드리고 와.”
“네. 알겠습니다.”
경호원은 승강기 버튼을 눌렀고 곧이어 승강기가 도착했다. 경호팀장이 승강기에 탄 것을 확인한 장 비서는 다시 사장실로 들어왔다.
"블라인드는 아까 다 내리지 않았나?"
책상 뒤에 있던 블라인드가 살짝 올라가있었다. 그 밑으로 햇빛이 가느다랗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비서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블라인드에 다가갔다. 그는 블라인드를 올리고 고개를 내밀어 창밖을 쭉 훑었다. 하지만 창문 너머는 여느때와 같은 광경이었다.
"흠."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은 비서의 광대를 노랗게 물들였다. 잠시 후 들어올 백민관이 봤다면 노발대발했을 상황이었다. 비서는 얼른 블라인드를 내렸다.
철컥.
“어?”
사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비서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닫힌 감이 들었다. 비서는 수상한 느낌이 들어 다시 문으로 걸어갔다. 재빨리 문을 열었고 로비를 훑어봤지만 밖은 텅 비어있었다.
***
“연회에 참석해주신 마루시의 언론인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금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모두들 남은 해 즐겁게 보내시고 다가오는 새해에 더욱 힘찬 도약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언론인의 밤’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마루시 신문사 협회의 망년회였다. 오효인 편집장도 3년 만에 참석하는 자리였다.
"일단 오긴 왔는데."
효인은 오기 싫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강상일보는 마루 언론사들 사이에서 미운털이 깊게 박힌 신문사였다. 심지어 강상일보 직원들도 다른 언론사 직원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신세였다.
"얼굴 도장만 찍고 돌아가야겠군."
효인은 이 자리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쥐 꼬리털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어제 오후에 마루언론협회에서 [이번 년도 모임까지 참석하지 않으면 강상일보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편지까지 받은 그였다. 모임에 안 나온다고 이런 협박에 가까운 편지를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그냥 무시하려 했다가 마음을 바꿔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도 역시 오는 게 아니었어."
이곳에 입장해 다른 이들과 마주보며 인사할 때도 다들 입으로는 웃었지만 눈으로는 효인에게 총을 겨눴다. 그 이후에도 효인의 존재를 무시하듯 다른 이들은 효인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른 참석자들끼리 안부를 묻고 웃고 떠들 때도 그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이런.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따로 없네."
효인은 물만 홀짝홀짝 마시며 내일 발행될 강상일보 기사들을 복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효인은 복기를 멈추고 귀를 따라 움직였다. 그의 앞으로 웬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하늘일보 엄도휘 기자입니다.”
‘하늘일보? 일전에 새로 생겼다고 했던 신문사인가?’
갑작스런 기자의 출현에 효인은 사래가 들릴 뻔했다. 수습기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젊은 기자였다. 쭉 뻗은 코가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빳빳한 와이셔츠와 새까만 배낭의 조합은 엄도휘의 풋풋함을 나타냈다. 카메라가 손에 들려있는 것으로 보아 ‘언론인의 밤’에 대한 취재를 하러온 모양이었다. 효인은 목을 가다듬고 인사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강상일보 오효인입니다.”
엄도휘는 강상일보라는 말에 멈칫거렸으나 다시 입을 열었다.
“잠시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효인은 감을 잡았다. 엄 기자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럼 그렇지. 기사에 내 의견을 넣으려고 왔구나.’
효인은 엄도휘의 존재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효인에게 접근하기 전부터 연회장을 이리저리 쏘다니던 기자였다. 연회가 진행되면서 참석자들의 심도 있는 대화가 시작되었고, 도휘는 어느 무리에도 끼어들지 못하고 혼자 있던 효인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어쩌면 다른 언론사 직원이 나한테 가보라고 억지로 시킨 걸 수도 있겠어.'
효인은 불청객의 입장이었기에 망년회에 대해 물어보면 나쁜 대답을 뱉을 수 없었다. 그건 마치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행동이었다. 효인은 인터뷰에 응할 지 잠시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시간도 많고, 안 좋은 말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즉, 이 '언론인의 밤'에 대한 소감을 말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물이었다. 효인은 조용히 잔을 내려놨다.
“네. 어차피 시간도 남는데 좋습니다.”
그 이후엔 역시나 이 모임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신입 기자답게 이 모임의 목적부터 시작해서 소감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히 질문했다. 효인은 오래간만에 역할이 생기자 하나하나 차근차근 대답했다. 두 사람 사이엔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갔고 그 모습은 나름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갔다. 하지만 따분하긴 마찬가지였다.
‘너무 기본적인 것만 물어보네. 신입 기자라서 그런가?’
기자치고는 질문기술이 영 어설펐다. 반면에 엄 기자의 얼굴은 만족스런 표정을 띠었다. 그는 10분 동안 이어진 대화 속에서 진주라도 캐낸 것 마냥 뿌듯한 얼굴이었다.
“모임에 대한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부턴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혹시 제가 보낸 USB를 확인해보셨습니까?”
"USB요?"
그 한 마디에 효인은 얼려진 동태처럼 정지했다. 현재 그에게 USB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효인은 엄 기자를 아래위로 훑었다.
“당신이... 이덤?”
“직접 대면하는 건 처음이네요. 생각보다 멋지고 훤칠하십니다.”
효인은 일순간 그 젊은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는 이내 관심을 잃은 듯 앞에 놓인 와인 잔만 쳐다봤다.
"그런 거였군."
“죄송합니다. 급하게 의논해야 할 것들이 있다 보니 편지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럼 강상일보로 오셔도 됐습니다. 굳이 이런 자리까지 오실 생각을 하다니. 수고가 많으시네요.”
“아뇨. 지금 강상일보는 사방이 24시간 경찰의 감시 하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나자니 눈에 띄기 쉬웠고, 게다가 선생님이 외부 활동을 원체 하질 않으셔서요. 그래서 선생님을 이곳으로 부른 겁니다.”
“부르다니? 나는 그냥....”
그 순간, 효인의 뇌리로 한 통의 편지가 스쳤다. 그가 여기로 오게 된 동기였다.
“설마 그, 불이익이 올 거라는 편지, 당신이 쓴 거였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마주 앉아 당당하게 대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거 헛걸음한 거구만. 어쩐지 별로 반기지들 않더라니.”
“헛걸음은 아닙니다. 연회장을 돌아다니며 다른 분들과 대화해보니 다들 오 선생님이 여기 오신 데에 놀라움을 표하시더라고요.”
효인은 눈을 내리깔고 왼쪽 입 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러겠지.”
“나쁜 쪽이 아니라, 오 선생님이 여기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생님이 달라지셨다고 얘기했던 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호의적으로요.”
“그런 말로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 하는가본데. 나는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신경 안 써요. 그렇게 포장할 필요 없습니다.”
효인은 신속하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나를 여기로 부른 목적은 뭡니까? 이렇게 직접 만난 걸 보니 꽤나 중요한 사안일 텐데요.”
엄 기자도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까도 여쭤봤지만, 제가 보냈던 USB 내용을 확인해보셨습니까?”
어제 아침, 이덤으로부터 효인에게 택배가 도착했다. 그 택배에 들어있던 내용물은 고작 USB 하나. 하지만 그 속엔 백민관이 관여한 모든 연구들이 담겨있었다.
“당연합니다.”
“[진행 중] 폴더 읽어보셨습니까?”
USB를 열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폴더였다. 다른 문서들과 따로 떼어놓은 것으로 봐서 이덤이 중요 표시를 해뒀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문서는 10개뿐이었지만, 속독을 하는 효인도 끝까지 읽는데 하루가 빠듯할 정도의 양이었다. 효인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렸다.
“네. 양이 많아 겨우 읽었습니다. '그 사람'이 냉혹한 일들을 하고 있더군요.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그 중 ‘RB project’ 문서도 읽어보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