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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상아탑 : 신의 인형
작가 : 린비
작품등록일 : 2020.8.28

현대 주술사가 변방 지대에 세운 초인력자 교육 기관 '상아탑'. 소속 간 경쟁이 치열한 상아탑에 초인류의 존재조차 모른 한 아이가 중도 입학을 하는데, 이 아이가 세계의 유일 능력자임이 밝혀지며 마주하는 세계의 비밀과 감춰진 역사, 그리고 그와 함께 등장하는 베일에 쌓인 도적. xlxl0103@naver.com 미계약작입니다.

 
수렁
작성일 : 20-10-23 20:01     조회 : 414     추천 : 0     분량 : 6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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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기숙사. 오각 지붕 아래로 준이 애완 녹용을 안고 지났다.

 

 전갈을 안겨 보낼 때 손바닥 정도 크기였던 용은 이틀 새 그의 가슴팍을 덮는 몸집이 되어 돌아왔다. 다른 생물의 피를 한껏 뒤집어쓴 채.

 

 

 - 파란 피. 루프스는 파란 피를 흘려.

 

 - 늪지대에 그들이 산다는 게 정말이야?

 

 

 학도들은 방 문가와 복도 구석에서 쑤군거리면서도 쉬쉬하였다.

 

 관할자의 걸음이 흐트러짐 없는 탓이었고, 그를 뒤따라 걷는 소녀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준의 거동은 서재 입구에 설 때까지 단정하였다. 그가 쏟아진 이목 속에서 소녀를 돌아보았다.

 

 

 “ 고맙다. 곧 통금이니 이제 가봐야지. ”

 

 

 소녀는 의식을 잃은 녹용의 비늘로 꽂힌 것을 응시했다. 주삿바늘로 소염제가 투약되고 있었다.

 

 전향방어자인 자신은 경험한 적 없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것에 아이는 이질감과 우려를 동시에 느꼈다.

 

 

 “ 5일. 용이 자기 이름을 인식하는 데 걸리는 시간. ”

 

 

 도중 준의 음성이 들려 소녀는 숙인 낯을 들었다.

 

 

 “ 상처가 재생되는 데는 고작 이틀이 걸려. 용의 시간은 인간과 달라. 고통의 기간도. 그러니 용의 회복에 인간의 걱정을 들일 필요는 없어. ”

 

 

 준의 말은 자상했지만, 어딘가 단호히 다가오는 구석이 있었다.

 

 소녀를 개인 서재로 들여보내 줄 의사가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대리자의 권세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소녀로선 순응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소녀가 목례 후 눈덩어리처럼 모인 학도들을 지나쳐 나선형 계단을 디딜 때까지 준은 정적인 얼굴로 있었다.

 

 

 소녀가 층계 아래로 사라졌을쯤 그는 서재로 들어 더 깊은 안쪽 궁방을 향했다.

 

 그곳은 공간의 반절 이상이 어둠에 젖어 기숙사의 순백 빛과 크게 대조되었다.

 

 

 준이 안락의자로 용을 눕힌 뒤 왼 벽에 세로로 길게 난 장을 열어젖혔다.

 

 위급 상황에 대비한 것처럼 온갖 구급 용품이 그 안에 가득했다.

 

 게 중 두텁게 말린 무명베를 집어 용에게 들러붙다 못해 굳은 혈흔을 닦아내었다.

 

 청람색 표피가 드러날 때까지 준은 어떠한 말도 삼켰지만 방의 그림자 속에 미리 숨어있던 이는 달랐다.

 

 

 “ 그건 루푸스가 아니었다. ”

 

 

 검은 고양이가 어둠에 동화된 채 유유히 꼬리를 흔들었다.

 

 눈빛만은 단호히 멎어 늪에서 맞닥뜨린 짐승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 루푸스의 피를 뒤집어썼지만, 평범한 들짐승이었어. 네 용을 죽이려 한 건 그 늑대가 아니다. ”

 

 

 준은 계속해서 푸른 핏물을 훔치고 문질렀다.

 

 드러난 용의 상처가 용린 가루로도 완전히 메워지지 않을 만큼 깊었다.

 

 녹용에게 이만한 치명상을 입히는 건 평범한 짐승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 저주받은 이들이 늑대나 이리 무리에 섞여 다니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 ”

 

 

 고양이의 말에 준의 손길이 잠시 그쳤다.

 

 

 “ 무언가가 네 용을 죽이려 했고, 그 늑대가 살린 걸 거다. ”

 

 “ 왜 아이들에게는 다르게 말했습니까. ”

 

 

 그 늑대가 루푸스인냥. 마침내 입을 떼었지만 준의 시선은 고양이를 향하지 않았다.

 

 

 영겁을 살아온 존재로서 당신은 충분히 상대를 파악하고 인지했을 텐데, 왜 상황에 뛰어들어서까지 그 무고한 늑대를 쫓아내고 아이들에게 겁을 주었습니까. 고대의 보호자는, 거짓을 말해선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준이 토할 뻔한 속엣말을 참았으나 스밀로돈이란 존재는 그를 읽고도 남았다.

 

 

 “ 늪은 가까이 해봐야 좋을 거 없어. 진흙탕뿐이니. 그런 삶은 ‘저주 받은 그 녀석’ 하나로 충분하잖아? 그리고 내가 한 건 거짓말이 아냐. 은폐지. ”

 

 “ …… ”

 

 “ 명월이 끝나간다. 하지만 방심하긴 일러. 다시는 학도들이나 애완 짐승이 금지된 늪에 접근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직권남용이라도 하란 소리야. ”

 

 

 조언한 고양이가 창가로 올라섰다.

 

 백 관할자의 서재는 꼭대기 층에 자리했으나 죽음의 두려움은 그들 종족에게 해당 사항이 아니라는 듯이, 검은 고양이가 뛰어내릴 태세를 취하였다.

 

 

 “ 아, 그리고. 가입증 일은 안타깝게 되었다. 그래도 오늘은 아이한테 전하지 마. 하루쯤은 발 뻗고 자게 둬야지. ”

 

 

 그리곤 까마득한 공중으로 발돋움을 해 사라졌다.

 

 

 고대의 보호자가 보호하려 하는 건 대체 무얼까. 그 아이일까. 무엇으로부터? 저주로부터? 운명으로부터?

 

 

 하지만 그러기엔 그는 모든 게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녀석’까지.

 

 

 

 

 ***

 

 

 

 소녀가 학도 가방에 옷가지를 개켜 넣었다. 내일이면 붉은 천장을 떠나 노란 벽지가 발린 공간에 있게 될 터였다.

 

 밤이면 창밖으로 물살이 일렁이고 아침이면 벽이 심연의 자아를 비추는 곳에서 소녀는 모든 처음을 함께했다.

 

 첫 대면, 첫 대화, 첫 표용, 그리고 첫 기대.

 

 완벽하다 할 순 없지만 그 순간들을 너머 다음을 대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발전을 이뤄낸 것 같았다.

 

 다만 첫 관할자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못 하고 가는 것에 아쉬움이 남았다.

 

 

 며칠 후 돌아오시면, 감사할 기회가 있겠지.

 

 

 열매의 앞으로 대리자의 뱃지를 잘 보관해달라는 쪽지를 남길 적에 가벼운 노크가 들렸다.

 

 시선이 문가보다 시계로 향한 건, 시각이 새벽을 가리키고 있는 탓이었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뚫고 온 이를 의아해하며 문을 열자 얼굴로 곧장 열기가 끼쳤다.

 

 뜨겁고 환한 것이 소녀의 눈앞에 타올랐다. 열매가 초 꼽은 케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 가출 축하합니다~ 가출 축하합니다~ 배신자 올디펜서의~ 가출 축하합니다~ ”

 

 “ …… ”

 

 “ 와학, 불어 묘족! 기회는 한 번이야! 단번에 못 끄면 이사 못 가는 걸로! ”

 

 

 녀석은 대뜸 으름장을 놓고는 언행이 불일치하게도 저가 먼저 초를 불어(푸우우우!) 불씨를 모조리 죽여버렸다.

 

 거센 입김이 지나간 후, 소녀에겐 단 먹거리가 불쑥 안겼다.

 

 

 “ 와학, 너 다 먹어. 원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잖아? 자고 있었어? ”

 

 “ …아니. ”

 

 “ 근데 그렇게 부어? ”

 

 

 녀석은 오늘따라 웃는 얼굴로 공격을 해왔다. 괘씸함에서 비롯된 질타가 아닐까 싶었다.

 

 

 “ 와학, 나도 아침이면 얼굴 3배로 부어! 비염이라. 보름달이 따로 없어. 근데 넌 보름달을 넘어선 슈퍼문이다! 아주 대단한 얼큰이야! ”

 

 

 이로써 동쪽 기숙사를 떠나기 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도 박열매는 선천적인 체질로 인해 감기를 달고 산다는 점, 그리고 서운할 때면 인신공격을 한다는 점.

 

 

 소녀가 마땅한 대꾸를 찾지 못해 대화는 복도의 한기처럼 잠시간 식었다.

 

 열매가 소녀의 어깨너머로 정리된 방과 짐 따위를 둘러보았다. 이로써 이 방이 주인을 잃는 것도 두 번째였다.

 

 

 “ 킁, 아무튼 황으로 가게 되도, 우리 친구야 알지? 거기 간다고 너랑 나, 너랑 우경, 너랑 루안 오빠 사이 변하는 거 없어. ”

 

 

 녀석은 새벽 공기에 움츠리면서도 들어오겠단 말이 없었다.

 

 앞선 말들이 소소한 장난질이었을 뿐, 소녀의 선택을 인정한다는 의사처럼 보였다.

 

 

 “ 거기 가서도 잘 되길 응원해. 그리고 모두가 아쉬워하는 건, 네 초능력을 놓쳐서가 아니라 정든 애를 보내게 된 게 섭섭해서 그런 거야! ”

 

 

 소녀는 벙쪘다.

 

 

 ‘ 능력이 없었으면 아무도 날 데리고 가지 않았겠지? ’

 

 

 “ 어우, 이만 가봐야겠다. 겁나 추워, 와학! 간다! 잘 자라, 얼큰이! ”

 

 

 멋쩍음에 쫓겼는지 서운함에 돌아섰는지, 열매는 솥뚜껑만 한 손을 정신 사납게 흔들곤 엇박자로 스텝을 밟으며 멀어졌다.

 

 어둠 속에서도 방정은 덮이질 않는구나 싶던 그 때, 열매가 돌아보았다.

 

 

 “ 뭐해, 우경? 가자니까 뭘 멀뚱히 있어! ”

 

 

 소녀는 무심코 더 바깥을 살폈다가 벽으로 기대선 무표정을 보고 간이 떨어지는 체험을 하였다.

 

 상대가 질겁하건 말건 경우는 냉소적인 조각상처럼 두 팔을 꼬고 있었다.

 

 

 “ 진지하게 나 발 얼을 것 같아 우경. 인사하러 온 거니까 빨리해! ”

 

 

 열매의 재촉에 녀석이 소리가 날 듯 인상을 쓰더니 금세 소녀를 등져버렸다.

 

 

 “ 와학, 뭐야 우경. 그냥 가? ”

 

 “ 어. ”

 

 “ 할 말 없어? 얼큰이 오늘이 마지막인데? ”

 

 “ 어. ”

 

 “ 진짜 진짜? ”

 

 

 박열매가 저러다 또 응징을 당하리란 예감에 소녀가 측은히 보노라면, 경우는 흠씻 손을 올려 제 친구의 뒷통수를 치는 대신 무언가를 목께로부터 끊어 던졌다. 소녀를 향해.

 

 소녀가 반사적으로 받지 않았다면, 그는 같은 강도로 녀석에게 되돌아갔을 터였다.

 

 

 수려한 곡률의 뒤통수가 침묵을 자랑하며 나아갔고, 멀대 뒤통수가 그 곁에서 웃어 재치며 함께 멀어졌다.

 

 소녀는 나란한 두 형체가 사라진 복도를 한참 보고 섰다 문을 닫았다.

 

 

 이곳은 일전에 학도 우경우가 홀로 쓰던 방이라 했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였던 녀석이 타인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쭉 비어있었고, 이후 난데없이 등장한 편입자의 차지가 된 것이라고.

 

 

 그런 곳의 열쇠를 소녀에게 건넨 건, 녀석 나름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필요하면 이곳을 다시 찾아도 된다는, 자신들을 찾아도 된다는 조금은 서툰 표현.

 

 

 다시 보지 못할 건 아니었지만, 오늘이 지나고 나면 소녀는 이곳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았다.

 

 

 

 

 ***

 

 

 

 같은 시각 서쪽 산지에서도 대담이 이뤄지고 있었다.

 

 학도 위훈과 관할자 오수이. 두 인영이 통금을 소홀히 한 채 어둔 서재에 마주 앉았다.

 

 

 은밀하지도 조심스럽지도 않은 대면 속에서 훈은 천장을 배회하는 혼령을 응시하였다. 금일 따라 곤두 선 은의 한 손이 시퍼렇게 멍이 든 채였다.

 

 

 듣건데 그건 편입자의 짓이라 했다.

 

 훈의 잿빛 삼백안이 회장의 손 또한 살피면, 그녀의 살결은 조그마한 흔적도 없이 멀쩡하였다. 하기사 영혼과 관련된 것을 숨기는 데 도가 튼 위인이 아닌가.

 

 

 “ 재밌어, 안 그래? 가보를 찾으려다 다른 게 굴러들어오다니. ”

 

 

 수이는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미소를 머금었다. 굴러들기보단 하나를 더 빼앗긴 데에 가깝건만.

 

 훈이 백색에 가까운 은발을 날리며 입을 떼었다.

 

 

 “ 거슬리는 게 있으면 말해라. ”

 

 

 심히 시리고 직선적인 말투였다. 훈은 수이를 따르나 윗사람처럼 대하지 않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법이 없고 사람 같은 면모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것이 위씨 삼대독자의 공공연한 인상이었고, 훈에겐 그를 변화시킬 까닭도, 필요도, 의지도 없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본다는 점에서 상당히 전략가다운 이였지만, 실은 수이의 계획대로 발을 딛는 심부름꾼에 불과하였다.

 

 

 그는 순수한 피에서 먼 이일수록 무심을 보였는데, 관대를 베푼다기보단 선택적 무시에 가까웠다.

 

 위훈은 도리어 순혈에 근접한 이들에게 처연하지 못했다.

 

 

 가령 순수 가문의 피를 반절 이어받은 박열매. 녀석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순수하길 거부한 피가 아무것도 아닌 피보다 불결했다.

 

 계급 질서를 어지럽히는 주동과 다름 없었다. 동일한 사고를 가졌을 수이가 답하였다.

 

 

 “ 거슬리긴. 이제 막 재밌어졌는걸. ”

 

 

 그녀가 손 끝으로 탁상을 딱딱, 짚었다.

 

 

 “ 가입증에 찍힌 베르제타의 이름을 봤을 때, 대체 무얼 위한 인장일까 했어. 회장들도 못 누린 대우라니 비꼬였지. 그 불쾌가 뜻밖에 선물이 될 줄이야. ”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제 관할자를 보며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훈은 수이가 뜻모를 서론을 거두고 본색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 아이의 친필이 서명되기 전까진 어떠한 가입증도 소멸하지 않아. 한 소속과 계약을 맺는 동시에 나머지는 비로소 무효가 되어 사라지지. ”

 

 

 모든 게 불멸의 인장 덕이라는 걸 훈도 모르지 않았다.

 

 

 “ 그런데 그 가입증이란 것들의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되었어. 서명 안 된 문서들은 소멸도 못 한 채 미지를 떠돌고 있겠지? ”

 

 

 이처럼 농담 같은 상황이 또 있냐는 듯, 수이가 깔깔거렸다.

 

 

 “ 이번만큼은 좀도둑이 우리와 같은 편일지도 모르겠어, 훈. 그 아이를 데려올 기회를 줬잖아? ”

 

 

 상아탑에는 금기가 있었다. 한 번 택한 소속을 이적하거나 이적시킬 수 없다는 절대의 금기.

 

 허나 그는 정식으로 소속된 자들에 한한 규율이었다.

 

 

 금쪽같은 문서가 어리석은 은사들의 휘하에서 사라진 이상, 무소속의 소녀를 쫓아낼지 말지는 이제 이사회에게 달렸다.

 

 아이의 안위가 흑 관할자의 심기에 좌우된다는 말이었다.

 

 

 “ 물에 빠진 자는 칼끝이라도 잡으려 하지. 그 아이는 우리 쪽으로 올 거야. 제게 필요한 게 뭔지 깨닫는다면. ”

 

 

 수이가 서슬 퍼런 눈매로 웃었다.

 

 

 그 아이를 잡고 있으면, 좀도둑도 머지않아 우리 손에 굴러들 테지.

 

 

 수이의 궁극적인 표적은 아이도 도적도 아닌 그자가 훔쳐간 가보란 것을, 훈은 알았다. 수이의 가보에 대한 집착은 어느 오씨들보다 유별났기에.

 

 수이는 본인이 세상에 나기도 전에 사라진 것을, 자신의 힘으로 되찾아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쥐고 있으려 했다.

 

 

 

 

 ***

 

 

 

 ‘ 양지가 있는 곳엔 음지도 있다. 편이 있으면 적이 있고,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듯이. ’

 

 

 상아탑 설립자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왜 굳이 교정에 금지된 늪을 조성하였는지 아랫 세대들은 의문스럽고는 했다

 

 (누군가는 그녀가 본래 위험천만했던 무법지에 상아탑이라는 안전지대를 만든 것으로 추측했다. 늪이 먼저였고, 학교가 나중이었다는 게다).

 

 

 늪지는 온갖 미물들의 서식지였고 늑대도 그곳에 도사리는 생명 중 하나였다.

 

 그늘 진 환경에 의해 털이 검게 변한 늑대. 그것은 오늘 고대의 보호자를 맞닥뜨렸으나 하늘이 도와 해를 입지 않았다.

 

 

 늑대가 귀소 본능을 따라 더 깊은 지대로 향하자 자욱한 안개 너머로 거짓말처럼 조성된 언덕이 드러났다.

 

 그 위로 다 쓰러져가는 폐가 한 채가 자리하였다.

 

 무너진 벽과 뚫린 천장. 그 사이로 장미 넝쿨이 얽히고설켜 마치 비밀을 가리듯 덮은 채였다.

 

 

 늑대는 폐허가 된 건물이 제 둥지인냥 들어섰다.

 

 군데군데 패인 바닥을 지나 싱크홀처럼 주저앉은 자리에 멈추었을 때, 바닥 밑으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푸른 피를 토하는 괴수였다. 혈흔이 흩뿌려진 곳에는 같은 빛깔의 장미가 돋아 구역질이 진행되어 온 시간을 보였다.

 

 괴수는 누가 매어 놓은 지도 모를 사슬에 묶여 달빛이 닿을 때마다 괴롭게 몸부림쳤다.

 

 

 늑대가 그를 달래듯 킹킹거렸으나 괴수는 낯을 이지러뜨리며 거대하게 울부짖었다.

 

 그 울림을 들은 늪지의 짐승들은 겁에 질려 달아나고 새들은 날아올랐다.

 

 포효한 루푸스의 발치로 녹용의 비늘이 흩어져있었다.

 
작가의 말
 

 오늘도 린비의 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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