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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상아탑 : 신의 인형
작가 : 린비
작품등록일 : 2020.8.28

현대 주술사가 변방 지대에 세운 초인력자 교육 기관 '상아탑'. 소속 간 경쟁이 치열한 상아탑에 초인류의 존재조차 모른 한 아이가 중도 입학을 하는데, 이 아이가 세계의 유일 능력자임이 밝혀지며 마주하는 세계의 비밀과 감춰진 역사, 그리고 그와 함께 등장하는 베일에 쌓인 도적. xlxl0103@naver.com 미계약작입니다.

 

작성일 : 20-09-09 21:51     조회 : 300     추천 : 3     분량 : 6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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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아탑』

 W.린비

 

 

 

 

 

 

 <8> 편

 

 

 

 

 

 

 

 

 

 

 소녀가 월교의 분주한 인파 사이를 걷고 있었을까, 스치는 대화 소리에 걸음이 멎었다.

 

 

 “ 야, 온조. 근데 전학생은 수업 안 들어오냐. ”

 

 “ 글쎄, 아직 시간표가 안 정해졌나 보지. ”

 

 “ 얼굴 한 번 보기 힘드네. 민이 누나가 좀만 빨리 찾았어도 우리 기숙사에 있을 텐데. ”

 

 

 수령이 백 년은 된 것 같은 나무 아래, 한 소년이 자주색 꽃들을 뽑고 있었다.

 

 그것이 예삿일인 것처럼 그 곁의 다른 소년을 포함한 누구도 녀석을 저지하려 들지 않았다.

 

 

 소녀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제 얘기였던 것 같았다.

 

 

 “ 근데 걔가 박열매 출입증을 훔쳤다는 게 진짤까? ”

 

 

 곱슬머리 소년이 책을 읽는 소년에게 물었다.

 

 동시에 녀석이 꽃의 줄기를 당기자 유기적으로 얽힌 뿌리가 우수수 뽑혀 올라왔다. 마치 녀석의 궁금증처럼.

 

 

 “ 글쎄. ”

 

 ” 아무도 안 찾아줘서 저 혼자 살 길 찾느라 그런 건가? 그게 사실이면 걔도 참 생존력 강하네. ”

 

 

 온조는 안경을 추켜올릴 뿐, 추측을 더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온조가 대거리를 않자 벤더는 하던 일로 골몰했다.

 

 근방으로부터 자주색이란 자주색은 모두 뽑았을 쯤 벤더가 다시 물었다.

 

 

 “ 근데 너 다음 수업은 뭐냐. ”

 

 “ 벤더 너랑 같겠지. ”

 

 

 온조가 책장을 넘기며 답하였다.

 

 소녀는 문득 그들의 이름과 꽃에 관한 난장을 들은 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 만날 붙어 다니는 거 지겹지 않냐? 좀 징그럽달까? ”

 

 “ 다 벤더 네 기면증 때문인데, 그게 지겹고 징그러운 병이었구나. ”

 

 “ 뭐, 임마? 다 기면증 때문? 우리 우정 값이 겨우 내 수면장애였냐? ”

 

 “ 여덟 살 때인가 너희 어머니가 그러셨어. "

 

 " 뭐. 내가 한눈 판 사이에 세상 끝으로 가다 못해 저 세상까지 갈 애라고? "

 

 " 어. 그때부터 내가 따라다녔잖아. 혼자 두면 멸종할 것 같아서. ”

 

 “ 멸종이라니 내가 공룡이냐. 레비아단이야? ”

 

 “ 공룡은 동족이라도 있지. ”

 

 “ 나도 나 닮은 겁나 예쁜 누나 있거든? ”

 

 

 벤더가 괘씸하다는 듯 온조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죄었다.

 

 온조는 안경을 벗어 책에 끼우더니 잠자코 벤더의 손길에 휘둘려주었다. 한쪽이 싸워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소녀는 인파의 경로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도 잊고 멀거니 두 녀석을 관찰했다.

 

 온조의 머리칼이 빛을 발광하고 있었다. 흔들림이 고조될수록 환한 빛을 띠던 머리가 어느 시점엔가 문득 제 색을 찾아 돌아왔다.

 

 

 “ 근데 벤더, 아까부터 쳐다봐. ”

 

 “ 뭐? 누가? ”

 

 “ 쟤. ”

 

 

 온조가 목이 졸린 채 소녀가 선 곳을 바라보았다.

 

 올곧은 시선과 엉켰을 때 소녀는 일시적으로 너무 뜨거운 물을 맞은 것처럼 놀라 피하였다.

 

 벤더가 산만한 동작을 멈추고 돌아보았으나 소녀가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

 

 

 소녀는 급히 배부받은 시간표를 살폈다. 다음 교시는 교양, 위치는 교정의 남쪽 어디쯤이었다.

 

 

 “ 뭐야, 그냥 가잖아 백온조. ”

 

 “ 분명 우리 보고 있었는데. ”

 

 

 온조가 소녀가 간 쪽을 보며 갸웃거렸다. 우연히 부딪힌 시선과 얽힐만해서 얽힌 시선은 구분이 되는 법이었다.

 

 

 “ 그 눈으로 뭘 봤다고 그럼? 너 유리 눈알 없으면 까막눈이잖아? ”

 

 

 벤더의 핀잔을 들으며 온조는 도서에 끼워뒀던 안경을 콧대로 걸쳤다.

 

 그 사이 시계탑을 살핀 벤더가 학도복에 묻은 꽃가루를 털며 말하였다.

 

 

 “ 됐고, 수업이나 가. 다음 교시가 뭐라고? ”

 

 

 온조가 재채기를 했다. 와중에 답을 하는 걸 잊지 않았다.

 

 

 “ 교양. ”

 

 

 

 

 

 ***

 

 

 

 

 소녀가 두리번거렸다. 적의 관할자가 그려준 지도를 따라왔으나 건물 없는 들판 뿐이었다.

 

 휑뎅그레한 땅으로 희한한 조각상들이 듬성듬성 서있고 들꽃과 풀들이 그 밖의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광경이 수업실과는 거리가 멀어 몇 번이고 손에 쥔 약도를 살폈지만(사방으로 돌려봤다) 아무리 봐도 이곳이 맞았다.

 

 

 의문이 우려로 번질 적에 학도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책을 든 걸 보아 그들도 교양 수업을 향해 온 것 같았다.

 

 학도들이 삼삼오오 모여가는 동안, 소녀는 외딴 섬처럼 있었다.

 

 

 바깥 세계란 소녀에게 영 익숙치 않았다. 일전에 살던 행성도 그럴 일인데 이 세계는 더욱 그랬다.

 

 학도들이 각자의 초능력을 숨 쉬듯 부리는 것 하며, 능력의 영향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연 체계 하며.

 

 그 중 가장은, 학도들이 동물과 섞여 노는 모습이었다.

 

 

 그것들은 ‘소환’이라는 주문과 함께 어디선가 나타났는데, 저를 불러낸 학도와 묘하게 닮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또한 매우 지능적인 행동을 보였다.

 

 가령 한 학도의 어깨에 올라앉은 다람쥐가 그이의 귓속말을 듣고 다른 학도의 물건을 낚아채 오는가 하면, 화려한 털의 새가 학도가 가리킨 열매들을 따다 주었다.

 

 반달곰이 과제를 급히 하는 학도 곁에서 발굽으로 땅에 숫자를 그리기도 했다.

 

 

 그것들은 전날 본 고양이처럼 말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학도들의 사고를 정확히 이해하고 움직이는 듯 보였다.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짐승들이 대거 몰려 어우러진 광경은 소녀에게 전혀 친숙한 것이 아니었다.

 

 

 소녀는 낯설지 않은 유일한 것을 동아줄마냥 그러쥐고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전날 제 손으로 망가뜨린 사진을.

 

 

 - 오늘 ‘고뇌하는 여인’이래!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외침 뒤로 학도들이 어느 조각상 앞으로 몰려갔다(그들은 와중에 ‘귀성’이라는 주문으로 제 몫의 동물을 다시금 사라지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몰린 무리가 차츰 줄의 형태를 갖추더니 조금씩 앞을 향해 밀려갔다.

 

 소녀는 얼떨결에 줄 사이로 끼어 전방을 살피려 했다.

 

 

 마침내 줄의 앞장으로 다다랐을 때, 소녀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 시험과 장애물을 추구하는 백의 그대에게 묻는다. 세상에 절대 ‘예’라고 답하지 못할 질문은 무엇인가?

 

 

 여인의 모습을 한 동상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손끝 하나 미동하지 않았으나 음성의 근원지가 확실했다.

 

 동상의 발치로 핏빛 같은 장미 덩굴이 피어있고 그 주변 땅으로 검은 조약돌이 가득했다.

 

 

 하얀 명찰의 학도가 답을 하였다.

 

 

 - 저의 답은 ‘너는 죽었는가’입니다.

 

 

 학도들이 차례를 지켜 나아가 나름의 답안을 내놓았고, 동상은 흡족한 답이 나올 때면 움직여 길을 내어주었다.

 

 동상이 비킨 자리 뒤로 땅굴이 패진 걸 보니 수업실은 지하에 자리한 모양이었다.

 

 소녀는 그제야 약도가 가리킨 교실의 좌표가 이해되었다.

 

 

 문제를 푼 학도들이 땅굴로 사라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소녀의 차례였다.

 

 소녀가 긴장한 목울대를 넘기며 동상의 앞으로 섰다.

 

 동상이 물었다.

 

 

 - 소속과 성명은?

 

 “ 소,소속은 없고…. ”

 

 

 가까스로 뱉은 답에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일순간 멈칫하였다.

 

 

 - 소속이 없다라, 고대하던 소문의 주인공이 그대로군.

 

 " …… "

 

 - 재치있는 답을 생각해내는 이에게 문은 열릴 것이다. 그대를 시험할 문제는 다음과 같다. 그대의 시간은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가.

 

 

 질문을 이해할 수 없는데, 답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답을 보내야 할 이가 묵묵하자 정적이 들판을 채웠다.

 

 

 소녀는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호흡이 가빠지는 것 같기도 했다. 눈빛들이 딱히 날 서지 않았음에도 매섭게 다가왔다.

 

 온조는 줄의 뒤편에서 아이가 숨을 몰아쉬는 것을 응시했다. 언뜻 자신과 동일한 병을 가진 듯 보이나 아니었다.

 

 

 “ 공황 장애. ”

 

 

 온조가 중얼거렸다. 언젠가 책에서 본 구절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불안장애의 하나로 특별히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갑작스러운 감정 발작과 신체 오작동을 일으키는 병이었다.

 

 

 정신분석가들에 따르면 분리 불안이나 상실 등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은 이후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쁜 호흡, 맥박 증가, 사지의 떨림, 오한과 땀. 증상들은 매우 발작적이고 부자연스러워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지금도 그 중 하나였다. 소녀가 긴 시간 이상 반응을 보이자 동상의 음성이 싸늘해졌다.

 

 

 - 그대의 시간은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가 물었다.

 

 

 소녀가 주머니 속 시계를 꺼내려다 품에 있는 것들을 모두 놓치고 말았을 때, 안타까운 탄성이 등 뒤로 맴돌았다.

 

 

 ‘고뇌하는 여인’은 입구 중에서도 엄격하기로 정평이 난 이였다.

 

 그녀는 상아탑의 학도 사상 가장 냉철했던 이를 본 따 만들어졌는데, 무식을 죄악으로 여기며 학교 규율을 잘 모르는 이방인에게도 면죄부를 주지 않았다.

 

 

 학도들이 추정하건데, 여인의 심기를 가장 거스른 것은 아마도 소녀가 예를 갖추는 동작을 하지 않은 점이었다. 이곳 학도들이 소위 ‘위를 향한 인사’라고 부르는.

 

 

 고뇌하는 여인의 성격은 그를 친절히 일러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과서를 비롯한 소녀의 물품이 땅의 굴곡을 따라 미끄러졌고 그 중 구겨진 사진이 동상의 발치에 가까이 닿았다.

 

 

 - 그대의 과거인가?

 

 

 동상의 낯은 무념하나 목소리에서 멸시 같은 것이 느껴졌다.

 

 

 - 그대는 시간이 과거를 가리킨다는 것조차 못 뱉는 무능아인가?

 

 

 소녀의 자세가 더 뻣뻣해졌다.

 

 

 - 과거에 머문다는 건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지. 유년의 한 시점이 상당히 공포스러웠나 보군. 공포가 길어지면 불안으로 변질되는 법. 그것이 그대의 병을 만들었겠지.

 

 “ …… ”

 

 - 그러나 고통은 상대적이야. 자네만이 겪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자네의 병은 구원받지 못한 탓이 아니라,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부해서 생긴 것이네.

 

 

 여인은 소녀의 정신 장애를 꾸짖었다. 소녀가 의지로써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 내 그대 같은 이들을 잘 알아. 당면한 현실을 두려웠던 과거로 잘못 읽어내는 이들. 세상의 시간은 이미 움직였다는 것을 모르고 저 홀로 과거에 갇혀 엇나간 반응을 보이지. 그 과정을 번복하고 또 번복하여 평생을 괴로움 속에, 자기연민에 빠져 살겠지.

 

 

 여인의 말 중 어디에도 소녀의 과거에 대한 정보가 없었지만, 소녀의 장애가 지난 시간들의 결과라는 사실은 모두에게 확연히 다가왔다.

 

 소녀는 낯이 달아올랐다. 그렁해진 눈이 사진을 향해 있었다.

 

 

 - 정신 차리고 안주할 수 있는 세상으로 돌아오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그쯤이었을까, 소녀의 곁으로 다가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머지않아 희고 고운 손이 사진을 주워 올렸다.

 

 온조였다. 벤더가 그 옆으로 서있었다.

 

 

 녀석들은 웅성거림 속에서 동상을 올려보았다.

 

 

 “ 부인, 황 소속의 백온조, ”

 

 “ 라벤더입니다. ”

 

 “ 부인, 아직 경험이 없는 이를 위해 본보기를 보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

 

 “ 양해해 주시겠습니까? ”

 

 

 두 녀석은 예를 표하듯,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가슴에 손을 대었다. ‘위를 향한 인사’였다.

 

 여인은 발밑의 존재들을 보며 긴 시간 침묵을 흘렸다. 소녀는 그 순간 마주친 두 녀석의 시선이 낯익다 생각했다.

 

 

 - 그러도록 하라.

 

 

 여인에게서 긍정의 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의 고개가 올라왔다.

 

 녀석들은 소녀 곁에 저희의 짐을 내리고 어떠한 자세를 취했다. 마치 본때를 보여줄 것처럼.

 

 

 - 협동과 평화를 추구하는 황의 그대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의 시간은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가.

 

 

 씨익.

 

 벤더의 입꼬리가 길게 말려 올려갔다. 미소가 상황에 맞지 않게 개구졌다.

 

 

 “ 혹'시' 이 동상 소시오패스인 '분'? ”

 

 “ 모르겠는데 딱 봐도 마음씨 몹'시' 지저'분'. ”

 

 

 녀석들은 학도들의 놀란 간투사를 아랑곳않고 자갈돌을 밟으며 동상의 둘레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 언변이 아주 편협한 가‘시’. ”

 

 “ 문짝 주제에 힘을 과‘시’? ”

 

 

 문제에 임하기보단 동상을 농락하는 것 같았다. 시, 분. 시각을 나타내는 낱말로 말장난을 하고 있었다. 뒤편의 무리에서 작은 소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 지금 고작 3 교‘시’. 근데 굳이 시켜야겠어 격‘분’? 다'시' 생각해도 더럽네, 기'분'. ”

 

 “ 잠'시' 가라앉혀, 흥'분'. ”

 

 “ 반드'시' 은사님께 이르고 말 거, 이 '분'. 우리가 고발'시' 강등되리 신'분'. ”

 

 ” 나도 그 생각. 역'시' 우린 천생연'분'. 그럼 당하겠지, 감‘시’, ”

 

 “ 여러‘분’, 여기 은사들에게 감찰 되는 최‘초’의 동상이 있음! ”

 

 

 학도들이 깔깔대기 시작하였다. 고뇌하는 여인은 우르락푸르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녀석은 공전하는 걸음을 끝내고 소녀의 곁으로 회귀했다. 그리곤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 웃음은 병든자도 낫게 하는 법. ”

 

 “ 유머가 곧 재치이고, 교양의 미덕 아닐까요? ”

 

 

 온조가 소녀에게 사진을 건네었고, 벤더가 너도 한마디 하라는 듯이 소녀를 보았다.

 

 그 순간 소녀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평소처럼 수그러들지, 나서준 이들에게 동조할지를.

 

 

 - 그대도 같은 생각인가?

 

 

 여인의 심문에 수긍하는 즉시 녀석들과 한 통속이 되어 출입을 거부당하리란 직감이 들었다.

 

 소녀는 문득이나 고양이의 말이 떠올랐다.

 

 

 ‘ 어차피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순 없어. 그러니 어느 쪽의 사랑을 받을지 택해야지. ’

 

 

 등 뒤로 박히는 수많은 시선을 느끼며,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요. ”

 

 

 그러자 곁에 선 두 녀석이 약간의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 제 시간은 다릅니다 부인. ”

 

 

 소녀가 수그러든 고개로 어설프게 예를 올리자 여인의 음성이 흡족해졌다.

 

 

 - 그럼 다시 묻겠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의 시간은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가.

 

 

 여인은 소녀에게 현재를 살라 꾸짖었다. 고통은 상대적일 뿐 누구에게나 있으므로 억울해하며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라고.

 

 그러나 여인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고통이 상대적이라면 그 유효기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사건은 과거일지 모르나 그날의 감정은 늘 지독하게 소녀의 현재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것을 억지로 떼어내면, 정말 내일로 나아간다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럼 떼어낸 고통은 어디로 가는가? 타인이 사는 외부의 세계로?

 

 

 고통을 죄 없는 대상에게 던지지 않도록 품고 있는 것이, 그리 큰 죄인 줄을 몰랐다.

 

 

 왜 움직이고 나아갈 때를 내가 아닌 당신이 정하는가. 그런 참견자들에게 밀려 이 세계로 떠나왔는데, 이곳에도 그들은 있었다.

 

 

 소녀가 주먹을 세게 쥐었다.

 

 

 “ 저,저의 시간은, ”

 

 

 더듬대지만 명확한 자기 목소리로 답하였다.

 

 

 “ …그대를 즉‘시’ 처‘분’. ”

 

 

 고양이의 말이 맞았다. 맞선 순간, 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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