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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상아탑 : 신의 인형
작가 : 린비
작품등록일 : 2020.8.28

현대 주술사가 변방 지대에 세운 초인력자 교육 기관 '상아탑'. 소속 간 경쟁이 치열한 상아탑에 초인류의 존재조차 모른 한 아이가 중도 입학을 하는데, 이 아이가 세계의 유일 능력자임이 밝혀지며 마주하는 세계의 비밀과 감춰진 역사, 그리고 그와 함께 등장하는 베일에 쌓인 도적. xlxl0103@naver.com 미계약작입니다.

 
도래
작성일 : 20-10-12 19:31     조회 : 402     추천 : 1     분량 : 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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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방 마을의 시장. 온갖 재화가 상인과 객인의 손에 넘나들었다.

 

 근래에는 수선스러운 말들이 더 그곳을 오갔는데, 쑥덕임을 만든 내막은 이랬다.

 

 

 - ‘죽은 자’들을 구한 게 어느 올디펜서라 하더군.

 

 

 ‘올디펜서’란 명칭이 마치 영웅전처럼 소모되고 있었다.

 

 

 한 청년이 두 가게 주인의 곁에서 풍문을 들었다.

 

 청년은 어깨로 걸친 망토가 얼굴까지 둘려 하관의 윤곽만 간신히 보였다.

 

 

 “ 타르데오를 대적한 이는 누구도 없었지. ”

 

 “ 앞으로도 없을 걸세. 죽은 위인의 그림자를 밟기가 어디 쉬운가. ”

 

 “ 내 한 학도에게 들었는데, 그 아이가 학교 편에서 도적의 추적을 돕고 있다 하네. ”

 

 “ 돕는 것이 생기면 맞설 것도 생기거늘, 대괴인이라지? ”

 

 “ 그렇네. 그 아이가 적 회장과 이곳을 지나는 걸 본 적 있는데, 정말 ‘이름 없는’ 검은 눈을 가졌더군. 반대 인류의 눈 말일세. ”

 

 

 그들은 천편일률적인 사실을 저희만 아는 비밀처럼 낮은 소리로 나누었다.

 

 허나 대화는 상점 갑판 대를 살피는 청년에게 공공연히 들렸다.

 

 

 청년이 날카롭게 갈린 단도를 매대로부터 집어 들자 그 중 한 상인이 돌아보았다.

 

 

 “ 거 살 형편 못 되면 계속 주무르지 말고 내려놓아. ”

 

 

 이내 청년이 흘린 것은 고대의 언어로, ‘얼마’, ‘어느 정도’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 뭐,뭐요? ”

 

 

 상인의 당황에 그와 조금 전까지 좌담하던 다른 중년이 끼어들었다.

 

 

 “ 손님이 가격을 묻는구만. ”

 

 

 우쭐댄 중년에 청년이 입꼬리를 올렸다.

 

 청년이 낯을 덮은 후드를 젖히자 고귀한 인상을 풍기는 면목이 드러났다.

 

 

 “ ‘얼마나인지’라고 물었습니다. ”

 

 

 그의 목으로 둘린 옷깃의 태가 족히 양반 자제의 것쯤은 되어 보였다.

 

 청년을 거북한 이방인 대하듯 하던 상인의 태도가 돌변했다.

 

 

 “ 무엇이 얼마나 이냐는 말씀이신지요. 허허, 제가 원체 이해가 짧은지라. ”

 

 “ 눈 말입니다. 얼마나 검덥니까. ”

 

 “ 아, 눈을 말씀하심이었군요! 이보게 자네, 얼른 말씀 올리게. ”

 

 

 상인이 옛말에 일가견이 있던 동료를 툭, 치자 그가 다가와 은밀하게 속삭였다.

 

 

 “ 그 어떤 어둠보다 가늠이 힘들 정도이덥니다. 사라진 베르제타들보다도 말입니다. ”

 

 

 청년이 그를 귀담아들으며 겁이 날 정도로 매서운 단검의 날을 매만졌다.

 

 청년의 행색과 심기를 살피던 상인이 손을 공손히 모으며 물었다.

 

 

 “ 헌데, 귀하께서도 대괴인이십니까? 눈이…. ”

 

 

 청년은 말없이 날에 비친 제 동공을 응시했다. 그가 품으로부터 금화를 꺼내 갑판으로 내려두었다.

 

 

 “ 거스름은 필요 없습니다. ”

 

 

 잔돈은 원금의 몇십 배로 상인이 족히 열흘은 놀고 먹어도 될 값이었다.

 

 

 “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

 

 

 상인이 인사를 올리는 동안, 청년이 칼을 능숙하게 놀리며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일무이한 올디펜서를 또 다른 올디펜서가 구했다, 라.

 

 

 풍문에는 거짓이 숨어있었고, 청년은 거짓보다 그 흐름에 관심 있었다.

 

 어느 대괴인이 타르데오의 이름을 우습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

 

 

 

 열매가 넋 나간 소녀 곁에 손뼉을 쳤다.

 

 

 “ 와학, 네가 물어놓고 어디 봐 묘족! 멍 때리면 얼굴 더 커진다! ”

 

 

 녀석은 초연 검사지를 펄럭이고 있었다.

 

 긴 허우대가 호롱불 앞에서 수선을 떠는 통에 어둔 방안으로 그림자가 나부꼈다.

 

 

 “ 이건 일종의 진찰표야! ”

 

 

 녀석은 이틀 내리 함께 자자며 찾아왔는데, 권유보다는 쳐들어오는 수준에 가까웠다.

 

 위하는 마음에 그러리라 생각됐지만 보살핌이 고마운 것과 귀청이 힘든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 의사가 몇 가지 증상으로 병명을 추정하듯 연구원도 추측한 거라고! ”

 

 

 하여 오답일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 물론 틀릴 확률은 옥황상제가 똥침 맞을 확률보다 적지만! 와학! 안 그래, 우경? ”

 

 

 열매가 우렁찬 목청을 퍼뜨리며 돌아보면 밤낮없이 빼어난 외모가 ‘썩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낯으로 앉아있었다.

 

 녀석은 잠을 위해 통풍이 잘되는 옷을 걸쳤지만 기색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거인증 환자가 강제로 옷을 입혀 데려왔기 때문이고, 그 옷이 치마인 까닭이었다.

 

 

 적 기숙사는 혼성 취침을 엄격히 금하였다.

 

 통금 후에 이성의 구역에 얼씬거려서는 안 되는지라 경우를 변장시킨다고 한 짓거리였다.

 

 

 “ 와학, 우리 회장님 안 그렇게 생겨서 되게 보수적이야! 친구 사이에 엉켜서 자면 어때! 성별이 대수야? 우경 봐! 저렇게 잘 어울리잖아! ”

 

 

 순간 베게 하나가 날아와 열매의 면전을 세게 쳤다. 포물선도 없는 직구였다.

 

 

 열매는 윷놀이의 ‘낙’처럼 침상 밑으로 고꾸라졌다가도 몸을 벌떡, 일으켰다.

 

 

 “ 와학 베개 두 개! 하나는 발 올리고 자야지! ”

 

 

 경우가 창가 단에 요를 깔고 돌아누웠다.

 

 녀석은 온갖 거북한 티를 내면서도 제 방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도리어 주인 행세를 했으면 모를까(이곳은 어디까지나 녀석의 ‘옛’방이건만).

 

 

 열매 또한 비슷한 사고를 했는지 돌연 경우를 향해 닦달했다.

 

 

 “ 방 열쇠 넘겨, 우경! 여긴 이제 묘족 거니까! 안 그래, 적 소속의 올디펜서? ”

 

 

 회유기 다분한 언변에 소녀가 미약히 웃었다.

 

 열매는 이튿날이 소속 선택의 날이란 걸 알고 그러는 것이었다. 설득은 나란히 몸을 뉘인 후에도 계속되었다.

 

 

 “ 모든 질문에 답이 있진 않아. 반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 있지. 예를 들어 소속 같은 거! 와학! ”

 

 

 경우는 열쇠를 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등 진 녀석의 표정이 달의 뒷면처럼 묘연했다.

 

 

 소녀는 졸음 속으로 스며들며 생각했다.

 

 혹여나 적을 택하게 되더라도, 이 방의 온전한 주인은 될 수 없겠다고.

 

 

 

 

 ***

 

 

 

 짙은 밤이 변방 지역의 땅으로 몸을 뉘였다.

 

 그 밤조차 별을 이고 잠이 든 때, 마을의 가장 높은 지붕으로 한 인영이 솟아났다.

 

 

 그는 흑색 천으로 사지를 두른 채였으나 거짓의 탑을 딛고 서서 명확히도 존재를 드러내었다.

 

 수중엔 한 자루의 검이 쥐어있었는데, 양면에 아로새긴 이름자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검은 두건에 가린 눈이 무언가를 가늠하듯 안개 내린 분지를 휘둘러보았다.

 

 변방의 보초대가 마을 곳곳을 돌고 있었다.

 

 그들의 위력은 수도국경의 수색대에 한참 못 미쳤으나 방해가 되긴 마찬가지였다.

 

 청년의 손이 그들의 규모를 세듯 까닥거렸다.

 

 

 와중 한 대원이 탐색등을 비추다 도서관 옥개에 우두컨히 선 청년을 발견하였다.

 

 대원이 수상쩍음을 느끼고 외치었다.

 

 

 “ 신원을 밝혀라! ”

 

 

 그에 청년이 어떠한 손 모양을 하였을 때, 대원의 낯이 설마 싶은 오묘로 물들었다.

 

 상대의 사고가 교란된 사이 청년은 넌지시 손아귀를 펼쳤다. 장미 꽃잎이 도처로 떨어져 날렸다.

 

 

 핏빛 꽃비 속에서 보초대의 급박한 외침이 뻗어 나갔다.

 

 

 “ 타르데오다! 타르데오가 나타났다! ”

 

 

 

 

 ***

 

 

 

 소녀가 땀에 절어 눈을 떴다. 목을 조르던 악몽이 물러갔지만 볼이 흥건하고 호흡이 가빴다.

 

 커다란 눈이 몇 뼘 위에서 저의 발작을 응시하고 있었다. 녀석이 든 필첩과 연필이 여태 자지 않은 사실을 보였다.

 

 

 경우는 아이를 악몽으로부터 구했으나 무엇도 보지 못했다는 듯 어색히 시선을 돌렸다.

 

 

 소녀가 차마 무슨 말을 내뱉기 전에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두 학도가 동시다발적으로 돌아본 창, 그 너머로 정령들이 평소와 다른 울음을 내며 물속을 유영하였다.

 

 

 그들은 ‘사활을 건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물과 허공을 거세게 가로지르며 학교의 모든 건물로 방어막을 둘렀다.

 

 그것은 위험 신호였다.

 

 

 각 소속 지대로는 이미 거대한 소동이 일고 있었다.

 

 학도들은 너도나도 남쪽의 창으로 붙어 산밑을 살폈고, 마을에 나부끼는 붉은 꽃잎을 보곤 두려움을 지르거나 탄성을 흘렸다.

 

 

 회장들이 진정시키려 하나, 그들의 흥분은 외침이나 지시 따위로 가라앉는 것이 아니었다.

 

 

 백의 관할자는 비상 전보를 받았고, 그곳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준은 교장 은사의 거처를 방문하려 했으나 이동 수단인 용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블랙홀마저 먹통이자 준은 흑 소속 지대를 바라보았다.

 

 비상 출입증이 작동하지 않는 건 오직 그 소속의 우두머리가 막아설 때뿐이었다.

 

 

 서쪽산의 흑 기숙사는 교정 제일의 보안을 자랑하나, 오늘은 안전치 못한 지대 중 하나였다. 도적의 ‘예상 표적’인 순수 혈족이 대거 존재하기에.

 

 

 수이는 한 필의 초만 밝힌 공간에서 태연히도 은의 머리를 쓸고 있었다.

 

 

 “ 가보를 돌려받을 때가 온 것 같아. ”

 

 

 그녀의 말 몇 자에 유난히도 힘이 실렸고, 은이 그 의미를 알아들은 듯 사라졌다.

 

 괴기한 은은 이내 무수한 심령들을 대동해왔다. 오 가문의 선조들을.

 

 그들은 기숙사의 지붕으로 신랄하게 피어나 관할자의 명을 기다리듯 일제히 곡을 흘렸다.

 

 

 흑의 학도들이 각자의 방에서 경외의 눈빛을 하였고, 소음에 깨난 훈 역시도 그 광경을 무념하게 바라보았다.

 

 

 황 기숙사도 한편 질서가 어지러웠다.

 

 학도들이 방구석을 벗어나 건물 구조보다도 무작위적으로 마을의 소식을 전하고 다녔다.

 

 

 벤더가 그 틈을 수면 상태로 배회하였다.

 

 녀석의 질환은 법석 난 새벽에도 예외가 없는 것이어서, 평소라면 앞장섰을 소란을 꿈에도 모른 채 아수라장을 누비고 다녔다.

 

 

 녀석이 조금 뒤 어느 고운 손에 붙들린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방 짝을 찾아낸 온조의 반대 손엔 『스밀로돈의 서』가 들려있었다.

 

 

 학도들의 아우성이 돌연 더 커지기에 온조가 덩달아 바깥을 보았다.

 

 검고 작은 짐승들이 마을로 이르는 언덕을 그림자처럼 몰려 내리고 있었다. 고대의 보호자들이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어?

 

 

 스밀로돈은 거대한 일을 알리는 징조라 했고, 우려하던 그 일이 코앞으로 닥친 것만 같았다.

 

 그들이 맴돈 건 누구의 곁일까.

 

 북새통 가운데에 소녀가 있었다. 관할자가 없는 적 소속은 통제가 더욱 불능했다.

 

 

 - 타르데오가 나타났대.

 

 - 맙소사!

 

 

 도적의 이름이 들렸을 때, 소녀의 자각이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 그 자는 돌아올 것이네. ’

 

 

 여인은 말했다. 분명 가해자를 일컫는 얼굴이었다.

 

 

 ‘ 알아, 네가 그 증거잖냐. 저 애도. ’

 

 

 소녀가 돌연 입구를 향해 달음질쳤다. 놀란 경우와 열매의 외침을 뒤로하고.

 

 진실의 자아가 일렁이는 통로를 함께 내달렸지만 그것은 가지 말라 울부짖으며 떨 뿐이었다.

 

 

 소녀가 절벽 지대를 벗어나 질주하였다. 막아서는 정령들에게 대리자의 뱃지를 들이밀며.

 
작가의 말
 

 오늘도 린비의 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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