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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상아탑 : 신의 인형
작가 : 린비
작품등록일 : 2020.8.28

현대 주술사가 변방 지대에 세운 초인력자 교육 기관 '상아탑'. 소속 간 경쟁이 치열한 상아탑에 초인류의 존재조차 모른 한 아이가 중도 입학을 하는데, 이 아이가 세계의 유일 능력자임이 밝혀지며 마주하는 세계의 비밀과 감춰진 역사, 그리고 그와 함께 등장하는 베일에 쌓인 도적. xlxl0103@naver.com 미계약작입니다.

 
낯선 변수
작성일 : 20-08-31 21:33     조회 : 437     추천 : 4     분량 : 7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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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아탑』

 W.린비

 

 

 

 

 

 <3> 낯선 변수

 

 

 

 

 

 

 

 

 100년 전, 주술사가 지금의 학교 터에 느티나무 지팡이를 꽂고 말했다.

 

 

 ‘ 무질서 속으로 나아가라. 최초의 질서를 찾을 것이다. ’

 

 

 그녀의 외침 아래 설립된 상아탑은 평균 연령이 죽음과 맞먹던 변방에 젊은 세대를 불러들였다.

 

 학교가 잊히고 사라져가던 마을에 활기를 되찾아준 것이다.

 

 

 때문에 변방 지역의 주민들은 상아탑 학도들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오죽하면 ‘학도 복을 입고 마을을 돌면 평생 놀고먹을 재산이 생긴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으니.

 

 

 남들은 웃어넘길 법한 농담을 입학과 동시에 시험해 본 이가 있었으니, 학도 백온조였다.

 

 녀석은 대부분 육지 출신인 학도들과 달리 남쪽 바다의 섬에서 나고 자랐다.

 

 

 독특한 성장배경은 독특한 근성을 만드는 법.

 

 고립된 섬에서 얻지 못할 경험을 보충하기 위해 온조는 어려서부터 책을 수없이 읽었다.

 

 눈으로 가보지 않은 세계가 없었고, 머리를 담가 보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어느덧 키가 자라 상아탑에 입학했을 땐 행성을 두 바퀴쯤 돌고 남을 간접 경험치가 쌓여 있었다.

 

 그걸 써먹고 싶어서였는지, 혹은 순수한 호기심에서였는지, 녀석은 매번 별 것 아닌 궁금증을 기어이 실험해보고는 했다.

 

 

 학도 차림으로 마을을 돌면 정녕 먹거나 입을 것이 생길까? 생긴다면 얼마나?

 

 

 의문이 든 날, 온조는 마을에 수레를 끌고 나가 주민들로부터 집문서를 비롯한 금품을 받아 왔다.

 

 녀석이 온갖 재물이 가득한 수레를 보이며 했던 말이 아직까지도 학도들 사이에 회자 되었다.

 

 

 “ 졸업해서 변변한 직장을 갖는 거보다 만년 학도 하는 게 이득이겠어요. 많은 학도들이 수업을 낙제하는 이유가 졸업을 기피하기 위한 거 아닐까요? ”

 

 

 그 차분하고도 골 때리는 언사로 전교생의 말문을 틀어막은 게 벌써 두 해 전이었다.

 

 황 소속 회장 김민은 그때를 생각하면 언제고 얼굴에 피가 몰린다고 했다. 온조가 얻어 온 물품을 하나하나 고개 숙여 가며 제 주인에게 돌려준 것이 본인이었기에.

 

 

 당시 민은 일개 학생회 일원이었지만 현재는 한 소속의 회장이 되어 상당수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 대상에 백온조가 포함된 이상, 또한 녀석에게 같은 섬 출신인 라벤더가 붙어 다니는 이상, 민에게 평온한 일상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민은 보다 보면 마음과 내장이 다 뒤집힌다는 뜻에서 두 녀석을 ‘환장할 것들’이라 불렀다.

 

 

 벤더는 죽마고우의 발칙한 실험을 말리기는커녕 곁에서 태평하게 잠을 자고는 했다.

 

 녀석은 자신이 온조를 말리려다 기면증으로 쓰러지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건을 밝혀가다 보면 벤더는 늘 둘도 없는 조력자였다(학도복-재산 사건 때도 라벤더가 빨간 지붕 집에서 황금 두꺼비를 얻어낸 사실이 밝혀졌다).

 

 

 두 녀석은 공개적인 벌을 받고도 자제하는 기색이 없어 한때 퇴학이 진지하게 고려되었다.

 

 반성과 퇴출 중 양자택일하라는 은사들에 둘은 항의의 뜻으로 교정 복도에 큼지막한 대자보를 붙였다.

 

 

 [ 설립자이자 주술사이신 분은 말했습니다. ‘무질서 속으로 나아가라. 최초의 질서를 찾을 것이다’. 늘 새롭고 신기한 의문을 탐험하라는 뜻이었죠. 오늘날 우리 학교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교훈에 충실했을 뿐인데, 차가운 대가가 날아왔습니다. 모순적인 상아탑 같으니. ]

 

 

 그 날 학도들은 나이 지긋한 은사들이 새까맣게 젊은 제자 둘을 맹렬히 추격하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가차 없이 퇴교 조치가 내렸겠지만 온조와 벤더는 각각 두뇌와 초능력으로 전교권 등수를 앞다투는 놈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온조는 성적이 전국 순위를 웃돌아 그런 인재를 잃는 건 상아탑 입장에서도 손해였다.

 

 결국 학교는 ‘말을 듣지 않으면 조기 졸업을 시켜 버리겠다’는 협박으로 두 사고뭉치를 옭아매었다. 우습게도 그 겁박이 먹혀들었고 말이다.

 

 

 - 졸업하기 싫어. 학교 도서관엔 읽을거리가 많아.

 

 - 나도 싫어. 여긴 뽑고 놀 라일락이 많아.

 

 

 기나긴 투전을 거쳐 교정은 평화를 찾았건만(물론 녀석들은 이후에도 마냥 조용히 지내진 않았지만 적어도 교칙을 거스르며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환장할 것들이 오늘 담 너머로 무언가를 목격하고 말았다.

 

 

 “ 누나, 누나! 민 누나! ”

 

 

 벤더가 환성을 지르며 수업 실이 늘어진 복도를 내달렸다.

 

 양팔을 풍차처럼 휘젓는 통에 학도들이 이따금 뒤통수를 맞고 소지품, 초능력 따위의 응징을 던져대었다.

 

 

 그러나 벤더는 웃음을 관장하는 뇌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처럼 낄낄대며 달음질쳤을 뿐이었다.

 

 그 뒤로 온조가 밤색 빛깔의 은륜(자전거)을 타고 쫓았다.

 

 

 천식 환자가 기면 발작증 환자를 따르는 광경은 기묘했다.

 

 어려서부터 함께 한 둘은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 서로의 폐활량을 감당할 방도로 은륜을 찾아내었다.

 

 

 그 결과 온조는 더 이상 생 발로 벤더를 뒤쫓으며 숨을 몰아쉬지 않아도 되었지만, 바퀴의 힘을 빌려도 뒤처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라벤더는 어려서부터 속력 능력자가 아닌가 싶게 발이 빠르곤 했다.

 

 

 황의 소속원들은 엎치락 뒤치락 하는 둘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 따라 들려오는 수업 종이 불안하더라니, 얼마 되도 않는 쉬는 시간을 두 골칫거리에 빼앗길 걸 예고한 종이었는가 싶었다.

 

 

 벤더가 복도 끝에 다다르도록 목청 높여 외친 이름에게선 답이 없었다.

 

 쏜살같이 다른 층을 향하려는 때에 어느 깔끔한 구두코가 앞을 막아섰다.

 

 

 끼이이익.

 

 

 벤더의 두 발이 급하게 제동 걸렸다.

 

 뒤따르던 온조 역시 제 3자의 출현을 예상 못 하고 벤더의 뒤꿈치에 바퀴를 부딪쳤다.

 

 

 그 충격에 코로 걸친 안경이 떨어졌지만, 온조는 가로막은 상대의 모습이 선명히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이 빙그레 웃는 것 또한.

 

 

 벤더와 온조가 유한 미소를 마주한 채 머리 위로 물음표를 단 그 시각, 민은 소식 정령이 떨어뜨리고 간 비상 전보를 펼쳐보는 중이었다.

 

 

 그 속에는 환장할 것들보다도 골때리는, 기상천외한 소식이 실려 있었다.

 

 

 ***

 

 

 

 주술사가 변방 땅을 찾았을 당시 사람들은 상아탑의 설립에 회의적이었다.

 

 한때 번성했지만 땅의 임자가 사라진 뒤 오랜 기간 방치되었고, 삼면이 바다로 둘려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허나 그 부정들을 뒤엎고, 수많은 이들이 상아탑 운영 소식에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변방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에겐 예상보다 더 큰 교육의 열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열망을 성취하는 곳이 반드시 행성 최고의 대학 ‘로리아’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 또한.

 

 

 상아탑의 명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수도 국경의 로리아와 비등해졌고, 매년 수만에 달하는 이들이 입학시험을 치르러 왔다.

 

 

 그러나 극소수만이 입학의 영광을 거머쥘 수 있었다.

 

 어렵사리 학교의 일원이 되었다 해도, 학도들은 4년의 교육 기간 동안 무수한 시험과 소속 경쟁을 견뎌야 했다.

 

 

 배움을 게을리하거나 문제를 일삼는 이는 은사들의 평결 아래 퇴출이 되기도 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가 심히 고된 이곳에 편입이란 개념은 있을 수 없었다.

 

 

 헌데 그 관행을 뒤집어엎는 룰 브레이커가 나타난 것이었다.

 

 낯선 변수에 대한 소식은 삽시간에 교정을 휘감아 학도들을 동요시켰다.

 

 

 - 들었어? 전학생이 왔대.

 

 - 게다가 소속이 없대. 무소속. 적도, 흑도, 황도, 백도 아니래.

 

 

 학도들이 혼란하고 무질서하게 퍼져 삼삼오오 경악을 주고받았다.

 

 

 한 사내가 그 사이를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보폭은 거침없으나 결코 서두르는 기색이 아니었다. 다만 걷는 모양새가 어딘지 모르게 삐딱했다.

 

 학도들은 사내를 자각하는 동시에 알아서 길을 비켜났다.

 

 

 적, 흑, 황, 백의 네 소속 중 ‘적’을 맡고 있는 관할자. 가루안에 대한 소문은 전학생보다도 무성했다.

 

 

 두 학년을 꿇었다더라, 그래서 사실 나이가 많다더라, 목의 문신이 그가 성인이란 표식이라더라 등등.

 

 

 생김새 때문은 아니었다. 루안의 외관은 소녀팬 무리를 거느릴 만큼 고왔으니까.

 

 다만 지랄 맞은 성격 탓에 늘 이름 앞에 ‘망할’이란 두 글자가 따라다녔다.

 

 

 - 너네 백드롭킥 실제로 본 적 있어? 아니면 말을 말어. 그 회장님은 물리력으로 퇴마를 할 사람이야.

 

 

 루안은 소속 학도들의 일탈을 막는다며 주기적으로 발 기술을 선보였다.

 

 때문에 학도들은 그에 대한 경외와 함께 약간의 공포심을 품고 있었다.

 

 

 그토록 민심을 꽉 붙든 관할자이나 낮에는 여전히 학도 신분으로 은사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던 중 비상 전보가 날아온 것이었다. 회장들의 회장이자, 백 소속의 회장인 김준으로부터.

 

 전보엔 거짓말 같은 소식이 실려 있었다.

 

 

 루안은 인파를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백 기숙사로 당도했다.

 

 육중한 벽이 오각의 천장을 받친 백색의 건물이었다. 차갑고 장중한 기세를 뿜는 외부와 달리, 내부에는 안락한 분위기가 자리했다.

 

 거대한 나선 계단이 천장을 향해 뻗어있고, 모든 것이 완벽한 대칭으로 존재했다.

 

 백 기숙사는 그 균형을 해치는 요소가 들면 마치 인격을 가진 생물처럼 그를 뱉어내거나 제거한다고 전해졌다.

 

 

 중앙 층의 서재 앞에서 루안은 긴 백발의 곱슬머리를 마주쳤다.

 

 

 순백의 빛은 고대부터 신의 선물로 간주되는 반면, 곱슬머리는 저주로 여겨졌다.

 

 모순의 요소를 함께 갖춘 그이야말로 훌륭한 균형의 상징인데, 왜 백이 아닌 황 소속의 회장이 되었는지.

 

 루안이 그이를 향해 입을 떼었다.

 

 

 “ 무소속이라니. 민이 한 때 그랬던 것처럼. ”

 

 

 민이 굳이 끝말을 붙일 이유가 있냐는 듯 돌아보며 대꾸했다.

 

 

 “ 게다가 중도 입학자. 우리 바로 아래 학년이래. ”

 

 “ 교장 영감이 드디어 맛이 간 거지. 물러날 때 된 거야. ”

 

 “ 교장 은사님한테 뭐 들은 거 있어? ”

 

 “ 똑같은 학도 신분에 내가 뭘 더 알겠어. ”

 

 “ 아들이시잖아. ”

 

 “ 우리 부자는 교류가 적어. 평생 나눈 대화가 너가 김준한테 차이고 나서 나눈 말보다 적을 걸? ”

 

 

 그러자 민의 미간이 마른 협곡처럼 좁혀졌다.

 

 

 “ 다시 말하지만 나는 김준한테 차인 적이 없어. 왜? 고백한 적이 없으니까. ”

 

 “ 그치만 좋아한 적은 있잖아? ”

 

 

 민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루안이 승리의 브이를 들어 보이곤 피보나치수열을 본 딴 서재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뜻밖에도 온조와 벤더를 마주했다.

 

 녀석들은 과학실의 표본병마냥 물의 결계에 갇힌 채였는데, 뒤따라 든 민이 녀석들을 발견하고 휘둥그레졌다.

 

 

 “ 니들이 왜 여기 있어? ”

 

 

 벤더가 반갑게 입을 놀렸으나 가로막은 수표면 탓에 웅웅거리는 소리로 전해질 뿐이었다.

 

 

 - 누나, 대박! 대박 사건! 이거 들으면 밤에 잠 못 자요. 으히히, 일기 쓰고 잘 걸요?

 

 

 …왜 저렇게 똥 마려운 개처럼 구는 거지.

 

 

 민이 벤더의 행위 예술에서 시선을 빗겨 온조를 보았지만, 온조는 소득 없는 짓이란 걸 아는지 잠자코 책의 표지를 매만졌다.

 

 

 회의 권한이 없는 두 녀석이 이곳에 있는 경위에는 설명이 필요했다.

 

 때마침 누군가가 안쪽 공간으로부터 나오며 답했다.

 

 

 “ 누설 방지 차원. 두 녀석이 본 게 좀 있거든. ”

 

 

 백 소속의 관할자, 김준.

 

 그는 환장할 것들의 질주를 막아 세운 장본인이었다.

 

 

 준의 외모는 구두코처럼 빛났는데, 그는 모인 인원 중에서 학도 복을 가장 바르게 갖추고 있었다.

 

 또한 낯빛은 벌여놓은 짓과 상반되도록 온화하였다.

 

 

 민은 두 녀석이 사고를 몰고 다니긴 해도 고의적인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 뭘 얼마나 봤다고 감금을 해. 애들 풀지 못해? ”

 

 “ 회의부터 하고. ”

 

 “ 전교 회장직을 심판자쯤으로 혼동하나본데, 웃기지마. 저 둘은 내 관할이야. 당장 풀어. ”

 

 

 준은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듯 뒷짐을 지고서 서재 중앙의 책상을 눈짓했다.

 

 

 “ 회의부터. ”

 

 

 민은 이를 물었다.

 

 

 그 사이 루안은 유유히 자리를 잡았다.

 

 책상 위엔 아마도 준이 놓아둔 듯한 서류철들이 소속별 문양을 달고 늘어져 있었다. 단단히 밀봉된 것이 기밀지라도 되어 보였다.

 

 

 루안이 책상에 두 다리를 걸치곤 느긋한 손길로 제 몫의 봉투를 뜯었다.

 

 그것을 손바닥 위로 뒤집자 자그마한 것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웬 여자 아이의 사진이었다.

 

 

 뭔 사진을 이리 우울한 얼굴로 찍었냐. 고립무원마냥.

 

 

 그러나 표정보다도 시선을 끈 건 아이의 눈이었다. 반대 세계의 인류만이 가졌다는 검은 눈.

 

 은사들에 따르면 그 눈은 완전한 흑이 아니라 모든 색이 섞여 만들어진 오묘한 어둠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이름을 부를 수가 없는 색이라고.

 

 그를 뚫어져라 응시하는데 준의 손길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 설명이나 듣고 보지 성격 급하긴. ”

 

 “ 그래, 준. 사랑싸움은 다 했고? ”

 

 

 준이 루안의 도발을 가볍게 무시하고 남은 서류철 하나를 민에게 전달했다.

 

 

 “ 이건 황 소속 몫. 흑 소속 건 안 올 줄 알고 따로 기숙사에 보내뒀지. 마지막으로 이건 우리 백 소속 몫. ”

 

 

 서류가 차례대로 돌아가는 동안, 벤더는 종이의 모양새라도 보려 결계 안에서 연신 겅충 대었다.

 

 그래봤자 상황을 알 수도 없건만. 온조는 매사에 열성인 제 친구를 딱한 눈길로 보았다.

 

 

 루안이 봉투를 뒤적이자 사진 말고도 내용물이 하나 더 나왔다.

 

 색 바란 종이였다. 글씨가 채 마르지 않은 걸 보니 작성된 지 얼마 안 된 것이었다.

 

 용지의 질하며, 찍힌 인장이며, 은사들로부터 내려진 문서가 분명했다.

 

 

 루안이 종이의 표제를 읽어 내렸다.

 

 

 “ ‘가입증.’ ”

 

 

 민 역시 본문에 눈길을 고정했다. 허나 곧 굳은 얼굴이 되어 준에게 시선을 되돌렸다.

 

 

 “ 계속 읽어. ”

 

 

 준이 단호히 말했다. 돌연한 적막 속에서 그는 홀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답지 않게 얌전들 떨고 그래. 못 읽겠음 내가 읽지.

 

 

 <가입증>

 나, 소속의 관할자는 본 재학생의 가입에 승인한다.

 타 소속원들과의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며 정당한 사유가 없을 시, 탈퇴는 불가하다.

 가입으로 인해 주어지는 여러 이익 또는 불이익은 재학생과 그 소속원들의 부담이며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준의 목소리가 실로 오랜만에 들뜬 듯이 느껴졌다.

 

 

 “ 명시된 ‘관할자’가 본인들이란 건 다들 알 테고, ‘재학생’은 새로운 전학생을 지칭한다고 해. 함께 든 건 그 아이의 사진이고. ”

 

 

 루안이 어이없는 듯 대꾸했다.

 

 

 “ 그래서 이걸 주는 이유가? ”

 

 “ 뭐겠어. 애를 찾아서 소속에 가입시키라는 거지. 마치 학교 측에서 소속 간의 쟁탈전을 고대한다고나 할까. ”

 

 “ 쟁탈전? ”

 

 “ 그래, 쟁탈전. ”

 

 

 준의 어투로 보건데 농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민은 뇌의 용량이 과포화된 사람처럼 손바닥을 펼치고 ‘잠시만’의 의사표시를 했다.

 

 

 그러니까 그 쟁탈전으로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소속 부원으로 들이라고? 그것도 우리가 부탁을 해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상아탑의 학도들은 고유의 기질에 따라 자동적으로 소속을 배치 받아야 했다.

 

 그런 전통과 세월이 얼마인데 가입이라니. 애초에 그게 가능은 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한동안 관할자들 사이엔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았다.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떼지 않았지만 시선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생각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거 대체…어디서 굴러온 돌이야?

 

 

 
작가의 말
 

 린비의 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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