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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매일 크리스마스
작가 : 예서
작품등록일 : 2020.8.20

믿었던 전 남자친구에게 통수를 맞은 날 천애고아가 된 소원. 나만 빼고 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거리에 자살을 결심하는데…… "안 돼!" 누구세요? 어느새 집에 들어온 웬 남자가 자살을 막고 있다. 말하는 사슴까지 데려온 남자는 자기가 나만의 산타라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인간 한 명과 산타 한 명, 사슴 하나(?)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다음 크리스마스까지 이 동거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작성일 : 20-08-31 13:53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6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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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나이에 숫자 1이 더해지는 새해의 시작 1월 1일. 검은 구두약을 덧칠한 하늘의 야심한 새벽, 제야의 종은 울렸고 사람들은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모두가 한 해의 소망과 꿈을 떠올리며 들뜬 마음을 이끈다. 그리고 이 순간 가장 신난 이들이 있었으니.

 

 그게 누구냐면, 올해로써 막 성인의 자격을 부여받은, 아직은 애티가 나는 갓 스무 살들이었다.

 

 거기에 속하는 소원은 예외는 아니었기에 북적이는 편의점에서 대한과 함께 소주 세 병, 맥주 한 병에 과자 몇 가지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리해서 마시면 안 돼. 취할 것 같으면 스톱해야 해.”

 

 대한이 편의점에 가는 길에서도 하던 당부를 재차 반복했다. 처음 술을 배울 때 잘 배워놔야 평생 나쁜 술버릇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더 걱정이 됐다.

 

 걱정이 되는 건 소원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내가 어마무시한 술찌는 아닐지, 괴상한 주사가 있진 않을지, 토하진 않을지 등등.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것들을 모두 덮을 만큼 설렘이 더 컸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멋있게 입안에 술을 털어 넣는 배우들을 보며 술에 대한 로망을 키워왔던 소원이기에, 술을 마시는 게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거실에 술상을 차리고 소원과 대한, 바람이 둘러앉았다.

 

 소원은 바람이 자신을 싫어하는 걸 잘 알기에 스무 살 기념 술자리에 바람이 참석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땅에 남게 된 이후 한 번도 밖에 나간 적 없는 바람은 너무 심심했던 것이다.

 

 소원은 그 사실을 몰랐으나, 어쨌든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늘다 보면 언젠간 원만한 사이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본 소원이 물었다.

 

 “근데 둘 다 술 잘 마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한과 바람이 차례대로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별명이,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술을 그렇게 잘 마셔가지고 술아 일체. 술이 곧 나고 내가 곧 술이다. 다들 술 하면 기대한 세 글자부터 떠올렸지."

 “다른 사슴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내가 술잔을 비워내는 속도가 마치 바람 같아서 이름값을 한다고 했지.”

 “우와. 엄청 잘 마시나 보네.”

 

 저 정도로 술을 잘 마신다니 나를 감독해 줄 수 있을 듯해 든든하고 다행이었다. 적어도 두 명 이상이 인사불성 돼서 집이 난장판이 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대한이 병뚜껑을 따자 병뚜껑이 바닥을 통통 구르며 기분 좋은 청아한 소리가 났다.

 

 이윽고 소주까지 단숨에 딴 대한은 모두의 잔에 맥주를 따랐다.

 

 쪼르륵, 채워지는 술잔을 구경하는 소원에게 대한이 과자를 권했다.

 

 술을 마시기 전에 안주를 많이 먹어야 속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상식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과자 몇 개를 씹어 삼킨 소원이 잔을 들어 조심스레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처음 술을 마시면 엄청 쓰다던데, 쓰다기보단 목이 따가웠다.

 

 “으음……”

 “맛이 어때.”

 “잘 모르겠는데. 한 잔 더 마셔봐야겠어. 이번엔 소주로.”

 

 달라면 줘야지.

 

 대한이 비워진 소원의 잔에 적당히 소주를 따랐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잔 안의 소주를 털어놓은 소원은 곧 오만상을 찌푸리며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써!”

 

 써도 너무 썼다. 돈 주고 왜 소독약을 먹나 싶을 정도로.

 

 찡그린 소원의 얼굴이 귀여웠던 대한은 소리 내어 웃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이미 술을 접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신선한 반응을 드러내는 소원에게서 순진함이 엿보인 탓이었다.

 

 소원이 건전한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게 훤히 보여서 기특했다.

 

 맞은편에서 인간이 만든 허접한 술이라 그런지 맛이 구리다고 툴툴대던 바람이 피식 소원을 비웃었다.

 

 “와~ 안 그래도 못난 얼굴인데 봐주기 힘든걸?”

 “소원이가 어디가 못났어. 눈, 코, 입 오밀조밀 안 예쁜 데가 없는데.”

 “맨날 저런 거만 보고 사니까 눈이 썩었냐?”

 “왜 시비야! 지는,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라는 뒷말을 소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재수 없는 사슴 놈이었지만 외모 하나만큼은 끝내줬기 때문이었다.

 

 진한 갈색 눈동자를 담은 옆으로 퍼진 눈이나, 잘 조각된 석상의 코처럼 높게 뻗은 콧대나, 그 아래 자리 잡은 균형 잡힌 입술 그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거기다 당장 런웨이에 나가도 손색없을 몸까지.

 

 대한과는 다른 느낌으로 잘생긴 얼굴. 예를 들자면 사람 같지 않은?

 

 아, 맞아. 얘 사람 아니지?

 

 뭐라고 말해야 바람이 발끈할까 머리를 굴리던 소원이 뒷말을 완성시켰다.

 

 “주정뱅이처럼 코는 빨개가지고 캥거루 같은 게!”

 “뭐?! 넌 상식도 없냐? 루돌프 사슴 코는 빨간 거 몰라?!”

 “어쩌라고~ 넌 루돌프 아니잖아. 루.덜.프 잖아.”

 “이게 진짜! 멍청한 인간 주제에!”

 

 흥분해서 눈을 부라리는 바람과 씩씩대는 소원까지.

 

 대한은 둘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꼭 초등학생 둘이서 싸우는 모양 같았다.

 

 민원신고가 들어오진 않을까 염려된 대한은 험악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손뼉을 쳤다.

 

 각 술잔에 맥주를 채워준 대한이 마시길 권했다.

 

 “그러지 말고 다들 짠해, 짠.”

 

 소원과 바람은 서로를 노려보다 분노의 원 샷을 때렸다.

 

 소원은 새삼 술이 달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따갑기만 하던 술이 끝내주게 시원했다. 바람 때문에 불이 난 속이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취기도 올라왔다.

 

 과자를 씹어먹던 소원은 갈증이 나 맥주병을 들었다. 이미 다 마셔서 텅 빈 맥주병이 가볍게 들렸다.

 

 살포시 맥주병을 내려놓은 소원이 순식간에 소주 병을 잡고 병나발을 불었다.

 

 “안 돼!”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에 뒤늦게 대한이 소원에게서 소주병을 뺏었지만 이미 최소 반은 마신 상황이었다.

 

 경악으로 물든 대한이 소원을 향해 물었다.

 

 “괜찮아?”

 

 소원은 대답 대신 술에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쓸어내렸다. 그러고선 휙 하고 대한을 올려봤다.

 

 반쯤 풀린 소원의 눈에 대한의 심장이 떨렸다.

 

 설마……

 

 “어라, 왜에 옵빠가 두 며이지?”

 

 설마가 기어코 사람을 잡았다.

 

 백 프로 취한 게 분명한 혀 꼬인 발음에 대한이 아연실색했다.

 

 바람이 그런 대한을 놀리듯 이죽댔다.

 

 “취했네, 취했어. 쯧쯧. 쟤는 잘하는 게 뭐냐? 나 먼저 들어간다.”

 

 파국을 예측하고 총총 방 안으로 피하는 바람의 뒷모습을 원망스레 바라보던 대한은 자신을 붙잡는 소원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소원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정말 큰일 났다는 걸 깨달았다.

 

 완전히 취해버린 소원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거리고 있었다.

 

 그렁그렁하던 소원의 눈망울에서 기어코 토끼똥 같은 눈물이 터졌다.

 

 “흐, 흐어어엉.”

 “왜 울어. 왜.”

 “압빠 보고십어. 흐어엉.”

 

 아빠를 찾으며 서럽게 우는 소원에 대한의 가슴이 아려왔다. 어린 나이부터 부모님 없이 자란 소원이 그동안 얼마나 애달프고 서러웠을지 짐작 갔기 때문이었다.

 

 코를 훌쩍이며 우는 소원을 달래려고 대한이 손을 뻗었다. 20cm 접근 금지령을 받긴 했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는 예외 상황이었다.

 

 소원의 등을 토닥이며 대한이 달래듯이 목소리를 부드럽게 냈다.

 

 “뚝하자, 뚝. 산타는 우는 아이한테는 선물을 안 주는데.”

 

 대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으로 눈물을 훔치던 소원이 대한을 쏘아봤다.

 

 “사기꾼! 원래 안 줘쓰면서.”

 “……?”

 “짠도리, 반칙왕, 늘그니, 갠찬무새!”

 

 어안이 벙벙해진 대한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저게 다 나라고? 사기꾼에 짠돌이에 반칙왕에 늙은이까지는 알겠는데, 갠찬무새는 뭐야?

 

 당혹감에 대한이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별안간 소원이 히죽 웃더니 대한의 두 뺨을 잡았다.

 

 지척으로 가까워진 소원의 얼굴에 대한의 숨이 멎었다.

 

 자칫하면 코가 닿을 거리에 소원의 붉어진 눈시울과 물기 젖은 얼굴이 다가와 있었다.

 

 엉망이 된 얼굴과 대비되는 화사한 웃음을 지은 소원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만의 산타.”

 

 순간 대한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뭐지 방금?

 

 석조상처럼 굳어버린 대한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느새 바닥에 널브러진 소원은 다시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이번에는 허공에 발까지 차가면서.

 

 “왜에 내 마른 안 미더주냐고 엉엉. 나 넘 힘드러. 나 좀 그만 개롭혀. 흐어엉. 야 임성준! 무순 낯짜그로 편이점을 차자와! 개가튼 노옴!”

 

 만취한 소원의 한풀이에 대한의 정신이 돌아왔다.

 

 혼란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소원의 주사는 아마도 오열인 듯했다. 땅을 기었다가 하늘을 나는 극심한 기분 변화는 덤으로.

 

 이 고주망태를 어쩌지.

 

 소원은 한참 동안 난리를 쳐서 피곤했는지, 이제는 쥐 죽은 듯 눈을 감고 웅크려있었다.

 

 슬며시 대한이 소원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일어나 소원아.”

 “아이쒸 머야.”

 

 대한이 손길이 자신이 꿈나라로 가는 길을 방해한다고 느꼈는지 소원은 잠결에도 매섭게 대한의 손을 쳐냈다.

 이렇게 된 이상, 선택지는 하나였다.

 

 무릎을 구부린 대한이 공주님 안아올리듯 소원을 들었다.

 

 소원의 키가 평균이 안 되는 데다 몸도 가늘었던 덕분에 대한은 수월하게 소원을 침대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잠들었는지 소원에게서 색, 색 규칙적인 숨소리가 났다. 눈물에 젖었던 옆머리카락이 소원의 볼에 말라붙어 있었다.

 

 대한은 가벼운 손길로 달라붙은 머리카락들을 떼어주고 이불을 덮어줬다.

 

 눈물자국이 남아있는 소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동시에 소원의 말 중 거슬리던 부분이 귓가를 울렸다.

 

 ‘왜 내 말은 안 믿어주냐고. 나 너무 힘들어. 나 좀 그만 괴롭혀. 야 임성준! 무슨 낯짝으로 편의점을 찾아와! 개 같은 놈!’

 

 알코올로 뭉개진 발음이긴 했지만 저렇게 말하는 것임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대한의 머릿속에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던 성준이 떠올랐다. 펌을 한 새까만 검정 머리에 눈이 가늘던 외모까지.

 

 그날 목격했던 장면들을 되짚던 대한은 조롱하듯 커피를 흔들며 나가던 성준의 모습까지 회상을 마치자 머리가 차게 식었다.

 

 소원의 말에 의하면 성준이란 놈이 소원이를 못살게 괴롭혔다는 건데. 그렇다면 소원이 크리스마스 날 밧줄을 목에 두른 이유도 놈일 확률이 높았다.

 

 죽으려던 소원을 발견했을 때 받은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이 아직까지 생생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자세히 알고 싶었다.

 

 들을 준비는 됐는데, 말할 사람이 준비가 안 된듯하니……

 

 “언제쯤이면 마음을 터주려나.”

 

 소원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대한이 중얼거렸다.

 

 조급해하지 말자.

 

 성급하게 굴면 오히려 잘 될 것도 망치는 게 인생의 이치였다.

 

 마음을 다잡은 대한이 낮게 속삭였다.

 

 “네가 확신이 없다면, 내가 확신이 될게.”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소원의 낯이 더없이 평온했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마신 이유에서인지, 소원은 늦잠을 잤다.

 

 눈을 뜬 소원이 주위를 둘러봤다. 익숙한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일으켜 사지가 멀쩡한지 확인을 마치자 속이 쓰리는 통증이 찾아왔다. 이게 말로만 듣던 숙취구나, 몸소 실감이 됐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니 폐인처럼 눈 밑이 퀭한 파리한 안색의 여자가 보였다.

 

 다시 침대에 철퍼덕 누운 소원은 곰곰이 새벽을 기억해냈다.

 

 오빠랑 술을 사 와서 마시는 도중 바람과 말다툼이 있었고, 알딸딸한 상태에서 홧김에 소주병을 통째로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그리고 오빠가 다급하게 술병을 빼앗았고, 오빠가 두 명으로 보였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가몰가몰한데……

 

 검지로 머리를 두드리던 소원은 어렴풋이 생각나는 뒷장면에 사색이 됐다.

 

 추하게 목놓아 울던 자신과, 달래주던 대한, 그리고 그런 대한을 불분명한 발음으로 사기꾼, 짠돌이, 반칙왕, 늙은이, 괜찮무새라고 연이어 부르던 것까지.

 

 “끄아아아……!”

 

 쪽팔려 죽을 거 같았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잇새로 비명을 지른 소원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지만 기억은 거기에서 멈췄다.

 

 혹시 더 심한 짓을 한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도둑고양이처럼 나가 부엌을 보자, 후드티를 머리까지 입고 앞치마를 맨 채로 도마 위 무언가를 썰고 있는 대한이 보였다.

 

 대한은 집에 살게 된 이후부터 거의 매일 아침 겸 점심을 차렸다. 그 덕에 소원은 혼자 살던 예전보다 건강하게 밥을 챙겨 먹었다.

 

 어김없이 대한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 소원은 계속 숨죽이고 있는 것과, 인기척을 내는 것 둘 사이에서 심히 갈등했다.

 

 어제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 오빠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대면하면 말문이 막힌 채 얼굴만 붉힐 거 같았다.

 

 고민하던 소원은 최대한 다리에 힘을 주고 발이 바닥에 가라앉는다는 느낌으로 대한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20cm 이내로 접근 금지를 요구한 건 자신이지, 오빠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또 하나, 오빠는 나를 몇 번 안았었으니 내가 안아도 괜찮다는 생각과 함께.

 

 마침내 눈 바로 앞에 등이 나타나자 망설임 없이 눈을 감고 두 팔을 뻗어 확 대한을 안으며 속삭포처럼 말을 뱉었다.

 

 “내가 너무 창피해서 그런데, 뒤돌아보지 말고……”

 “뭐야!”

 

 대한과 대조되는 거친 음성에 물음표 덩어리들이 둥둥 소원의 머리 주위를 둘러쌌다.

 

 “뭐야! 뭐냐고!”

 “오빠가 아니라 너였어?”

 

 서로의 낯이 찌그러지듯 구겨졌다. 소원이 안은 건 대한이 아닌,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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