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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매일 크리스마스
작가 : 예서
작품등록일 : 2020.8.20

믿었던 전 남자친구에게 통수를 맞은 날 천애고아가 된 소원. 나만 빼고 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거리에 자살을 결심하는데…… "안 돼!" 누구세요? 어느새 집에 들어온 웬 남자가 자살을 막고 있다. 말하는 사슴까지 데려온 남자는 자기가 나만의 산타라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인간 한 명과 산타 한 명, 사슴 하나(?)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다음 크리스마스까지 이 동거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집착이 심하시네요. 안 그렇게 생기셔서
작성일 : 20-09-24 01:42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7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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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원을 집에 내려준 뒤, 별은 그대로 차를 백화점으로 몰았다.

 

 까탈스러운 바람에게 옷을 사주는 김에 대한의 것도 같이 사주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구매할 심산으로 향한 것이었다.

 

 소원을 같이 데리고 백화점을 갔다가 집에 바래다줄 수도 있겠지만 별은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레스토랑의 음식은 먹으면 사라지고 말지만 음식이 아닌 물건은 그렇지 않으니, 옷이나 가방 등을 사주는 건 직접적인 개입으로 루돌프 수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 쇼핑하는 걸 옆에서 구경만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름 소원을 위한 사려깊은 선택이었다.

 

 백화점 도착하자 별에게 퍼스널 쇼퍼가 따라붙었다.

 

 사슴세계에서 능력있는 루돌프인 덕에 인간세계에서 갓물주로 거듭난 별은 백화점 VIP 고객으로 분류돼 어디 매장을 가도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오랜만에 뵙네요. 신상 보러 오셨어요?”

 

 예의바르게 미소를 띠고 별에게 다가온 쇼퍼는 뒤늦게 바람과 대한을 발견하고 둘의 수려한 외모에 속으로 감탄했다.

 

 특히 바람의 낯을 흘끗거리는 쇼퍼에 언짢아진 별이 그녀를 냉대했다.

 

 “알아서 볼게요. 거리 좀 둬줬으면 좋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차가운 어투에 황급히 정신을 차린 쇼퍼가 멀리 떨어져 섰다.

 

 다른 쌀쌀맞고 거리감 느껴지는 VIP들과는 상반되게 온화하던 별의 냉랭한 모습은 처음본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걸려있었다.

 

 쇼퍼가 당혹스러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별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바람과는 반대로 인류애도 짱짱한 별이 취하기엔 이질적인 행동이었다.

 

 인간들의 백화점은 처음인지라 생소한 풍경에 여기저기를 끊임없이 뒤적거리는 중인 바람을 응시하는 별의 눈빛이 심란함으로 물들었다.

 

 ‘아무것도 모르지 넌.’

 

 소꿉친구를 향한 짝사랑은 한참동안 현재진행형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바람은 별의 감정을 몰랐다.

 

 티격태격 대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피어나는 별의 마음을 한 줄기도 모를 만큼 바람은 그런 쪽으로는 눈치가 꽝이었다. 씁쓸함에 입을 오므렸다 핀 별이 심란한 마음을 떨쳐냈다.

 

 저런 무심한 수사슴한테 바랄 걸 바라야지.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십년이 지났다. 친구라는 명목으로 곁에 있는 건 이제 담이 쌓였다.

 

 제 얼굴 만큼이나 화려한 옷들만 쏙쏙 몸에 대는 바람에 가볍게 웃은 별이 대한은 무슨 옷을 고르나 있나 확인하려 몸을 비틀었다.

 

 심란함에 빠진 건 비단 별 뿐만이 아니었다. 길게 뻗은 대한의 속눈썹이 상념에 눌려있었다.

 

 우두커니 서있는 대한을 별이 불렀다.

 

 “대한아.”

 

 상념에 빠진 대한은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계속해서 심각한 얼굴로 멈춰있었다.

 

 이윽고 별이 작게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대한은 눈을 두어번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

 

 “어. 왜.”

 “왜 얼빠져서 그러고 있어. 옷 안 둘러보고.”

 “미안.”

 “소원이 생각해?”

 

 대한의 어색한 웃음이 긍정임을 알렸다.

 

 대한과 바람이 복귀하지 못한 이유를 아직 못 전해들은 탓인지 별은 어엿한 성인인데 지나치게 소원을 걱정하는 대한이 이해가 안 됐다.

 

 “네가 처음 맡은 아이라 너한테 특별한 건 알겠는데, 왜 그렇게 그 애한테 연연해? 인간들과 사적으로 깊게 엮여서 좋을 게 없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러게.”

 “네 그 착한 심성이 한없이 좋아보이다가도 이럴 땐 아니더라.”

 

 별이의 말에도 대한은 사람좋게 눈을 휘었다. 와중에도 소원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소원이 마음이 걸렸다. 꼭 혼자 두면 안 되는 미취학아동을 집에 남겨두고 온 기분이었다. 소원을 두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발목을 짓누르던 찜찜함이 아직도 여전했다.

 

 혹여나 괜찮은 척, 했던 거라면? 혼자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게 싫었는데 티를 내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여리고 착한 애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늘로 복귀하지 못한 자신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더욱 더 그럴 만 했다.

 

 아니, 그런 거 다 제쳐두고 사실은 그냥 제 맘이 소원에게 돌아가길 원하는거란 걸 알았다.

 

 이 복잡한 심경이, 소원을 맞닥뜨려야 멈출 거 같았다.

 

 “리별. 미안한데, 가봐야겠다.”

 

 바람한테 잘 말해달라는 말을 끝으로 대한은 왔던 길을 찾아 돌아가기 시작했다. 잡을 새도 없이 달려나가는 대한에 한마디도 못한 별이 입을 벌린 채 눈으로 대한의 뒷모습을 좇았다.

 

 로비를 가로질러 뛰는 대한의 앞쪽에서 휴대폰을 보며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알이 큰 선글라스가 무표정한 여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대한이 여인을 지나치자, 여인의 팔에 대한이 달리면서 발생한 바람이 닿았다. 누가 백화점에서 저렇게 달리나 의문을 가진 여인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순식간에 여인의 안면에 놀람이 번졌다.

 

 “대한이?”

 

 못박힌 듯 멈춰선 그녀에게 어느덧 백화점 고위 관계자가 다가와있었다.

 

 “연락 주셨으면 대기하고 있었을 텐데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

 “아가씨?”

 

 그럴 리가 없지. 네가 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수가 없지.

 

 ‘너는 살아있지 않으니까.’

 

 여인의 눈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잘못 본 거라고, 유난히 더 어두운 선글라스 탓을 하며.

 

 “가죠.”

 

 앞장 서 걷는 여인의 눈밑에 그늘이 내려왔다. 어수선해진 마음이 굵은 하이힐 굽소리에 묻혀 눌려나갔다.

 

 집으로 이어지는 문앞에 도착한 대한은 기분 좋은 떨림으로 입가가 가늘어졌다. 원래 가야만 했던 길에 당도한 착각이 일었다.

 

 자신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소원이 보일 반응에 벌써부터 흥분됐다. 두번째 환영 취급을 받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른 대한이 지체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자나?

 

 썰렁한 집안 기류에 들떠있던 마음이 훅 가라앉았다. 소원의 방문이 열려있었다. 미어캣처럼 빼꼼 고개를 기울여 방안을 들여다봤지만 소원은 없었다. 그 후 집안 곳곳을 살폈지만 모두 덩그러니 비어있었다.

 

 거실 한복판에 발을 붙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수신음만 갈 뿐, 연결되지 않았다.

 

 서서히 불안감이 엄습했다. 날이 저물었는데 위험하게 어디에 있는건지.

 

 엄연히 따지자면 야심한 시각은 아니었지만 소원 한정 과보호병이 도진 대한에게 그런 건 안중에 없었다.

 

 혹시 옥상에 있나?

 

 바람을 쐐고 싶으면 집앞에 마실을 나가기보다 옥상에 출석도장을 찍던 소원을 기억해 낸 대한이 발걸음을 옮겼다.

 

 옥상에 가까워질수록 열린 문을 타고 새어나오는 말소리가 커졌다.

 

 “그럼 뭐, 주량이 맥주 한 캔이야?”

 “아니.”

 “그럼 됐네. 뭐가 문제야. 머리 복잡할 땐 술이 특효약이다.”

 

 탄산을 병째로 부은 듯한 쏘는 어투에 한 번, 그 어투로 술을 권유하는 거에 두 번 자극받은 대한의 미간이 좁아졌다.

 

 마지막으로 옥상에 도착했을 때 맥주캔을 잡으려는 소원까지 총 세 번. 당장이라도 뻗은 손을 잡아채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저걸 왜 받아.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 층 낮아진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받아먹지 말랬지.”

 

 당부한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산타 말 안 듣고.

 

 “너 안 되겠다. 나랑 같이 살아야겠다.”

 

 불안해서 혼자 못 두겠다.

 

 “오빠!”

 

 방금까지 부글부글 끓던 속이, 꽃이 만개하듯 피는 소원의 낯에 평화를 되찾았다.

 

 “너 전화는 왜 안 받아. 걱정했잖아.”

 “전화했었어? 몰랐어.”

 

 소원이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는 사이 온해의 얼굴 확인한 대한은 그가 소원이 욕했던 새로 이사 온 주민이라는 걸 떠올렸다. 워낙 흔치 않은 인상이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분명 반말하던 사이는 아닌 걸로 아는데, 급속도로 친해졌는지 서로 말을 놓은 둘에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가자.”

 

 느긋하게 걸어간 대한이 소원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온해의 두 눈이 맞잡아진 두 손을 훑고 올라가 대한에게 꽂혔다.

 

 의자에 놓인 꽃을 들어올리는 대한에 꽃다발을 준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 온해가 속으로 조소했다.

 

 얼굴에 다정다감이 붙어있다더니 진짜였다. 친오빠인가 했더니 남자친구였나.

 

 울기에 안 좋은 일이 있었겠다 짐작했는데 헤실헤실 웃는 걸 보니 싸운 것 같지도 않다. 그럼 왜 운거지 얜.

 

 행복하단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로 드러내는 소원을 보며 대한에게 묘한 질투심이 솟았다.

 

 저한테는 옅은 미소 조차 보인 적 없는데, 저 남자는 뭐길래 애정을 다 차지하는거지. 울게나 만드는 주제에.

 

 서로의 시선이 오가고 몇 초 간 묘한 신경전이 지나갔다. 먼저 입을 연 건 온해였다.

 

 “모르는 사람, 아닌데요.”

 “소원이 말고, 제가 모르는 사람이요.”

 “집착이 심하시네요. 안 그렇게 생기셔서.”

 “보통은 이런 걸 두고 집착이라 안 하고 보살핀다고 하죠. 칭찬은 감사해요.”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속에 가시가 박혀있는 대화가 오고갔다.

 

 누구 하나 언성을 높힌 이가 없는데 싸우는 것 같은 묘한 느낌에 소원이 대화를 끊었다.

 

 “집에 가자며. 얼른 가자. 안녕, 나중에 봐.”

 

 대한의 손을 잡아끄는 소원을 온해가 가라앉은 눈동자로 응시했다. 왠지 모를 패배감에 몹시 기분이 더러워 입술을 꾹 닫고서.

 

 

 소원의 눈이 주인과 재회한 강아지처럼 반짝였다. 꼬리가 달렸으면 좌우로 와이퍼처럼 흔들렸을 게 분명한 표정에 대한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 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사왔다던 주민이랑은 언제 친해진거야? 그 사람이 같이 술마시재?”

 “아. 옥상에 있다가 우연히 만났어. 통성명도 했다? 나랑 동갑이래. 아까 꽃다발 올려놨던 의자있잖아. 그거 걔가 갖다놓은거래. 그리고 나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나더러 귀엽대.”

 “귀엽대? 너한테 걔가?”

 

 한순간에 그 사람에서 걔로 격하된 온해였다.

 

 확실히 귀엽긴 하다. 작은 키에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 박혀있는 동그란 눈이나, 코나, 입이나. 그래도 그 씨꺼먼 놈이 소원이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 이상하게 여겨졌다.

 

 울다 걸렸다는 건 쏙 빼놓고 전달한 소원이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재수 없다고 그랬잖아. 말도 기분 나쁘게 하고 비웃고 그랬다며. 너무 가까이 안 지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런가. 오늘보니까 나쁜 애 같지는 않던데.”

 “겨우 두 번 만났는데 그건 모르는거지.”

 “음……”

 

 온해가 특별히 나쁘게 군 적이 있었나, 되짚던 소원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란 걸 자각했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였다. 심경의 변화가 온 이유가 중요했지. 호사스러운 생활을 포기하고 우리 집에 돌아온 이유가. 걱정 돼서가 가장 유력하지만 단지 그것 뿐?

 

 혹시 오빠도 나를 좋아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지금 이 말도, 아까 그 쎄한 대화도 설마 질투?

 

 기대감에 한껏 부푼 소원이 물었다.

 

 “근데 오빠 왜 돌아왔어?”

 “너 집에 혼자 두기 걱정 돼서.”

 “왜 걱정 되는데?”

 “그럼 오빠가 동생 걱정되지 안 걱정 돼?”

 

 동생. 동생…… 그럼 그렇지 뭘 기대한거야.

 

 몸 안에서 산소가 다 빠져나가는 허무함이 들었다. 뽀로통하게 쳐다보자 순진무구한 얼굴로 뭐 할말 있냐는 듯 쳐다보는 얼굴이 얄미웠다.

 

 할말은 있지.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차이면?

 

 차이는 순간 지금과 같은 사이로는 못지내겠지. 최악의 경우 오빠가 나한테 선을 긋고 거리를 둘 수도 있었다. 그때는 예비산타가 선물 줘야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거다.

 

 불확실한 고백의 끝에 오빠를 걸고 싶진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간절한 인연이니까.

 

 

 *

 

 

 별이 머무는 집의 거실은 엄청 화려하고 넓어서, 무도회장 홀 같았다. 루돌프의 집 답게 집안 곳곳에 사슴 석조물이 있었고, 유리로 된 장식장 안에도 사슴 장식들이 깔끔하게 전시돼있었다.

 

 뿔이 달린 크리스탈 사슴 머리 벽장식 아래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을 들으며 별은 따뜻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얘는 몇 신데 아직까지 방에서 안 나와?”

 

 대한이랑 부대끼며 인간 모습으로 잘 필요가 없어졌다고 그렇게 좋아하더니. 그동안 불편해서 못잔 잠을 몰아 자나.

 바람에게 배정해준 이 층 방으로 곧장 올라간 별이 문을 두어번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코를 가진 사슴이 화려한 금장식으로 꾸며진 침대에 반쯤 돌아누워 늦잠을 자고 있었다. 옆에 뒤구는 빈 와인병들이 늦잠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언뜻 보면 숨을 안 쉰다고 착각할 정도로 얌전히 자는 바람을 별이 불렀다.

 

 "신바람, 일어나봐."

 

 소꿉친구라 자는 걸 방해받는 걸 무척 싫어한다 걸 알지만 상관 없었다. 지금은 자신이 철저한 갑이었으니.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단잠에 깊게 빠진 듯 묵묵히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결국 별이 바람의 털을 양손에 쥐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처음 자세 그대로 잠을 자는 바람에 별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람의 코에 손을 대보았다.

 

 "죽었나? 아닌데…… 숨은 쉬는데. 신바람, 일어나. 신바람!"

 

 진전이 없는 상황에 별이 무언가를 결단한 듯 결연한 표정을 하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내 뒤돌아선 채로 점프했다. 바람에게 몸을 들이받는 장면은 가히 프로 레슬링 선수의 기술과 흡사했다.

 

 몸의 반을 돌려 자고 있었기에 허리에 별의 몸무게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바람의 눈이 드디어 떠졌다. 고통스러운 듯 허리를 부여잡은 바람이 신음을 흘렸다.

 

 "암……암살. 암살이야……!"

 "암살 같은 소리 하네."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그녀가 비소를 지었다. 연갈색 눈동자가 훤히 드러나도록 눈이 완전히 다 떠지고 별과 눈이 마주치자 바람의 표정이 썩어갔다.

 

 “뭐하냐 너 지금.”

 “대한이랑 소원이 보러가자.”

 “싫어. 귀찮아.”

 “어제 산 옷들 전해주러 가야될 거 아냐.”

 

 어제 대한이 그렇게 가버리고 바람 몫만 사기는 매정하다 생각된 별은 대한의 옷까지 골라 샀다. 별의 명령으로 양손가득 쇼핑백을 들고 다녔던 바람은 왜 모양빠지게 내가 이런걸 들고 다녀야 하냐며 연신 투덜댔었다.

 

 별의 부하 같았던 어제의 일에 바람이 발굽으로 배를 긁더니 묻은 갈색 털을 후, 불었다. 하루종일 들고다녀 줬으면 됐지, 무슨 전달까지 해.

 

 “너 혼자 가서 전하면 되지. 무슨 옷 갖다 주겠다고 둘이 가냐. 그거 녹력낭비야.”

 

 심드렁하게 대꾸하고 다시 몸을 돌리는 바람에 음산한 음성이 따라붙었다.

 

 “이 집 처분하고 하늘로 올라간다?”

 

 반쯤 누우려던 몸이 바닥에 닿지 못하고 일으켜졌다.

 

 “스트레스를 주는 게 인간만이 아니네. 루돌프도 포함이다.”

 

 중얼거리며 바람이 번개 같은 속도로 인간으로 변했다. 을로 사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들뜬 별이 흥얼거렸다. 그 옆 조수석에서 바람은 오줌 마신 얼굴로 좌석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좌우로 급격히 달라지는 표정변화가 가파른 산맥 같았다.

 

 핸들을 잡고 있자 문득 잊고 있던 게 반짝 생각난 별이 입을 열었다.

 

 “내 정신 좀 봐. 이거 물어본다는 게. 왜 제 시간에 복귀 못한거야? 다른 루덜프면 모를까 네가 그런 실수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썰매 고장? 아니면 그냥 지각?”

 

 바람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래도 말은 해야했다. 언젠가는 다 알게 될 게 뻔하니까.

 

 “대한이가 안 가겠다고 버텼어.”

 

 깜짝 놀란 나머지 별이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난데없는 급정거에 뒤에서 일제히 클락션이 울리는 와중에도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갓길에 차를 정차시킨 별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바람을 노려봤다.

 

 “말렸어야지! 무조건 말렸어야지!”

 “나라고 안 말렸겠어? 도착했는데, 그 인간 애가 깨있었어. 밧줄에 목 매달고 죽기 직전이었다고.”

 “말도 안 돼. 선물 받는 모든 인간들은 잠에 빠져있어야 하잖아. 설마, 자살하려고 해서? 그래서 예외가 된건가?”

 “나도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어. 걔는 죽으려고 하지, 기대한은 살리겠다고 난입하지. 겨우 살아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못하는 와중에 가지 말라니, 기대한 성격에 가겠냐고.”

 “죽음에도 개입하고 자의로 남기까지 한거야? 살려준 것까진 그렇다 쳐. 마음씨 착한 애니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가지 말란다고 정말 안 가?”

 

 바싹 타들어가는 목에 별이 마른침을 삼켰다. 손 끝이 덜덜 떨려왔다.

 

 “예비 산타가 자의로 인세에 남으면…… 소멸당한다는 거 누구보다 자기가 더 잘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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