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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최종화 <As it has to be>
작성일 : 25-01-18 23:03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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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돼요!”

 

 비명 같은 울부짖음에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유진을 바라봤다. 유진은 차마 수연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수연의 팔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안 돼요... 진짜 안 돼요...”

 “뭐가?”

 

 복도 바닥에 투명한 무엇인가가 툭 떨어졌다. 눈물이었다. 수연이 아닌, 유진이 것임이 분명한.

 

 “갑자기 무슨 소리야. 뭐가 안 되는데.”

 “다... 그냥 다 안 돼요.”

 “뭐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런 말을 해.”

 “사라지지 말아요.”

 

 순간, 수연은 멈칫하고 말았다.

 

 유진에게 예지력이 있다는 것은 이제 수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다니. 뭔가 못쓸 짓을 한 기분이다.

 

 “유진아.”

 “안 돼요.”

 “유진아.”

 “뭐든 안 돼요.”

 “아가.”

 

 유진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수연을 바라봤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분노인지 원망인지 모를 감정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모든 감정을 감당하지 못한 눈동자는 이내 다시 눈물 방울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있지. 이미 죽은 사람이야. 22년 전에 이미 죽었고, 15년 전에 이미 모든 걸 끝냈어. 미련 때문에 지박령처럼 숨 쉬고 있었을 뿐, 이미 죽은 사람이야. 그러니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야지.”

 

 어차피 복수 외에는 의미조차 찾지 못했던 삶이었다. 그 복수마저 허무하게 사라졌다. 없는 의미를 긁어모아 부추기고, 이리저리 치대던 도현마저 죽었다. 자의를 죽인 채 타의로 이끌려 오던 삶을 이젠 정말 마무리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또 사라지려고요? 14년 전처럼?”

 “원래부터 난 네 인생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어.”

 “그렇지만 나타났잖아요.”

 “......”

 “15년 전에 내 앞에 나타났잖아요. 그리고 지금도 내 앞에 있잖아요.”

 “하지만 그건-”

 “그게 복수였든 뭐든, 어떤 마음이었든, 제 앞에 나타났잖아요. 그리고 전 이미 내 인생에 나타난 사람을 없는 척 하지 않을 거예요.”

 “......”

 “이젠 내 차례라면서요. 내가 복수할 차례라면서요. 그러니 나한테 넘겨요. 그 결정권. 누나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결정할 거예요. 난 자격 있어요.”

 

 유진이 복수를 들고 나온다면 수연이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무심코 던진 말이었는데 그걸 이렇게 받다니. 그래도 인경자와 인성혁, 두 거물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목숨을 부지해 온 유진인데, 너무 어리게만 봤던 게 패착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유진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유진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휘두른다면 그래도 달게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어디 말해 보렴.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네 속이 풀릴까? 내게 어떤 복수를 하고 싶니?”

 

 앙 다문 유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몇 번이나 열릴까 말까 망설이던 그 입술이 다시 열리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선고가 떨어졌다.

 

 “기다리세요.”

 “......”

 “난 아직도 다 몰라요. 내 아버지란 사람이 왜 그런 인생을 선택해 살았는지, 할머니와 아저씨가 자신들의 삶에서 나를 어떤 존재로 받아들였던 건지, 그리고 누나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찾았고 또 사라졌는지...”

 

 팩트는 맞춰졌다. 어떤 과정 속에서 그러한 일들이 나타났는지도 얼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명분으로, 어떤 핑계로 그러한 일을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마음이었다. 온전히 선하지만도, 그렇다고 온전히 악하지만도 않았던 사람들. 온전히 선의만을 베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온전희 악의만으로 유진을 대하지도 않았던 사람들. 복수를 위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그 모든 순간이 복수였던 것만은 아니었던 사람들...

 

 그렇기에 유진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은 무엇인지. 애정과 증오, 충족과 결핍, 공포와 경외, 경멸과 연민. 그 모든 게 자신의 안에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기다리세요. 내가 마침내 답을 찾게 될 때까지. 그래서 명확한 내 마음을 정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럼 그 때 말씀드릴게요. 내가 누나한테 뭘 바라는지.”

 “......”

 “그때까지 누난 그냥 살아서 기다리세요. 죄책감도 살아서 느끼고, 미안함도 살아서 미안해 하고, 괴로워도 살아서 괴로워 하세요. 혼자 맘 편히 사라지는 건 꿈도 꾸지 마세요.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간 말할게요. 내가 누나한테 원하는 복수...”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유진은 평생 수연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란 것을.

 

 유진이 수연에게 내리는 선고는 그렇게 평생 유예될 것이다. 그렇기에 수연은 유진이 내릴 판결로부터 평생 자유로워지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신에 죄에 대해 종결을 내릴 수 없는 벌이라니. 어찌보면 가장 자비로우면서도 가장 잔인한 복수였다.

 

 “그래. 그러자.”

 

 잔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할 안식처가 되주었던 두 사람의 감옥.

 56층에서의 생활은 이제 현실 속에서의 지리한 견딤을 예고하며 마침내 끝이 났다.

 

 

 

 * * *

 

 

 “또 한 건 했다며?”

 

 사무실로 들어온 지홍이 서류철로 유진을 툭 치며 속삭였다.

 

 “어떻게 알았어?”

 “뭘요.”

 “그 용의자 약점. 니가 쿡 찌르자마자 바로 반응 오던데.”

 “찍었어요.”

 “에이~ 실적 최고의 범죄교섭인이 감으로 찍었다는 게 말이 되나? 솔직히 말해봐. 너 알고 보면 무슨 신기 있는 거 아니야?”

 

 지홍의 말을 유진은 그냥 웃어 넘길 뿐이었다.

 

 “기념으로 한 잔 쏴야지?”

 “에이, 이런 걸로 맨날 쏘면 저 거덜나요. 그리고 오늘은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어딜?”

 “교도소요. 거기서 벌 받던 누가 오늘 출소하거든요.”

 

 그날, 유진과 대화를 끝낸 뒤 수연은 스스로 경찰에 자수를 했다. 어쨌거나 자신의 손으로 두 사람이나 죽였기에, 그냥 덮어두고 지나갈 수만은 없었던 탓이었다. 인병철을 죽인 것을 강경식에게 뒤집어 씌운 것은 가중처벌감이었지만, 호텔에서의 살인은 도현이 남겨둔 치료기록 덕분에 정당방위로 감경사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래저래 처벌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수연은 징역을 살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드디어 출소일이 되었다. 그 사이 유진은 범죄심리학을 전공해 범죄교섭인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가족이야? 출소하는 데 마중까지 나가는 걸 보면?”

 “원수요.”

 “뭐?”

 

 유진의 말에 깜짝 놀란 지홍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유진의 곁에 바싹 다가왔다.

 

 “야, 너 설마... 막 사적 복수하거나 그러려는 건 아니지?”

 “음... 글쎄요?”

 “글쎄요라니! 야, 너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그러면 안 돼!”

 “아, 좀 조용해요. 사람들 다 듣겠어요.”

 

 유진이 지홍의 입을 장난스럽게 막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딴 짓 안 해요. 그니까 맘 놓으세요.”

 “진짜지? 야, 난 너 신문 사회면에서 보고 싶지 않아.”

 “알았다고요. 그럼 저 이만 갈게요.”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유독 낮아 보였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내릴 거라더니, 벌써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철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가 노크라도 되는 양, 끼익-하며 철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드디어 나타났다. 바깥 세상을 둘러보던 감회 섞인 눈이 한 곳에 멈춰섰다. 그 곳에는 유진이 서있었다.

 

 끼익-. 서로를 마주 본 유진과 수연만을 남긴 채 철문이 다시 닫혔다. 긴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건 것은 수연이었다.

 

 “나 나왔어.”

 “네.”

 “답은 찾았어?”

 “음...”

 

 짐짓 고민이라도 하듯 유진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답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신 우산을 펴들었다.

 

 “일단, 비 오잖아요. 같이 우산부터 써요.”

 

 일기예보를 보고 미리 준비해 오길 잘 했다. 검은 골프 우산은 두 사람을 가릴 만큼 충분히 컸다.

 

 “갈 길이 멀어요. 그니까 천천히 가면서 얘기해 보자고요. 혹시 알아요? 비가 그칠 때 즈음 답이 나올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의 발걸음이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촉촉해진 땅은 두 사람의 발걸음으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들어있던 땅을 깨우는 봄비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말
 

 이런 저런 핑계로 내지 못했던 완결을 드디어 올리게 되었네요.

 혹시나 여기까지 와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족한 첫 장편의 완결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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