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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56화 <땡큐>
작성일 : 21-04-09 00:32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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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택으로 돌아오는 경자는 더없이 후련한 표정이었다.

 

 “임 비서.”

 “네, 회장님.”

 “오늘 그 놈 서류 정리가 언제 될까?”

 “아무리 기다려도 사망진단서를 받아서 사망신고를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임 비서의 말을 들은 경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증발했던 안평 지분들, 그 놈한테 있었을 거야. 엉뚱한 데 넘어가기 전에 얼른 손 써 놔.”

 “네.”

 

 경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놓쳐버렸던 것을 드디어 되찾게 된다는 뿌듯함에, 경자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그도 잠시, 집 안에 들어간 경자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며 굳어버렸다. 모든 불이 꺼진 어두운 거실에 누군가 주저앉아 있었던 것이다.

 

 “유진?”

 

 임 비서가 황급히 불을 켰다. 그리고는 유진의 꼴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길지도 않은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산발이었고, 벌게진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어디서 다친 건지, 스스로 자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손이며 옷 군데군데에서 피가 베어나고 있었다.

 

 “아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경자가 유진에게 다가가 자세를 낮추고는 유진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유진의 표정이 드러났다. 그 표정을 본 경자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유진의 표정은 차라리 ‘처참’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경자가 알고 있던, 늘 맑게 반짝이던 아이의 눈동자는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모든 빛을 삼켜버릴 듯 까만 어둠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유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응?”

 “이번만큼은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제서야 경자는 유진의 말을 기억해냈다. 이번만큼은 피를 묻혀서는 안 된다는. 경자는 유진을 달래듯 다정하게 토닥였다.

 

 “그래, 그래. 그래서 할미가 안하겠다고 했잖니.”

 

 경자의 물음에 초점 없이 멍한 유진의 눈이 경자를 향했다.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것은 허무함과 좌절 뿐이었다.

 

 “정말요?”

 “그럼.”

 “정말...요?”

 “그렇고말고. 이 할미가 언제 우리 유진이 말을 안 들은 적 있더냐?”

 

 경자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유진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질 뿐이었다.

 

 “할머니.”

 “그래, 유진아.”

 

 가늘게 떨리는 유진의 부름에 경자는 정말 하나뿐인 손주를 다독이는 할머니라도 된 마냥 고개를 끄덕이며 다정한 미소를 보였다. 마치 전래동화에나 나올 법한 인자한 미소였다.

 

 그 모습을 보며, 유진의 입술이 달싹이다 다시 닫혔다. 또 다시 달싹이다 닫히고, 그리고 또 다시 달싹이다 닫히기를 여러 번. 결국 입술을 열지도 닫지도 못한 채 파르르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성혁을 도발하고 경자를 말릴 때까지만 해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잘만 튀어나오던 말들이 갑자기 꽉 막혀버렸다. 분명 목까지 차오르는 말이 있는데, 어쩐지 입 안에 갇혀 뱅뱅 맴돌고만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애써 말하려하지 않아도 누군가 목에서 억지로 끄집어내주듯 저절로 나오는 말들이었다.

 

 유진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를 본 경자가 화들짝 놀라며 유진을 일으키려 했다.

 

 “너 설마 어디 아픈 게냐?”

 

 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일어서려는 경자를 만류했다. 경자는 의아한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15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않으려 도심 꼭대기의 허공에서 눈 감고, 귀 막고 지냈던 시간이었다. 머릿속에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만 담아둔 채, 생각마저 멈춰 버렸던 시간들. 원래 그의 몫이었던 고민과 결정은 모두 경자와 성혁에게 맡겨졌다. 물론, 그들은 흔쾌히 그를 대신했다.

 바깥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그리고 그 세상에서 경자와 성혁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유진의 세상은 Bz호텔 꼭대기의 스위트룸뿐이었고, 최소한 그 안에서 그들은 다정하고 인자한 가족의 역할을 맡았었다. 그 외의 모습을 유진이 알 필요는 없었다.

 

 경자와 성혁은 종종 바깥세상의 물건을 유진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물건 주인에 대해 더욱 자세한 예언을 할수록, 경자와 성혁은 더욱 다정한 가족이 되어주었다. 자신이 내뱉은 예언이 바깥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아는 것은 진작에 포기해버렸다. 그것이 뭐가 되었든 유진의 세상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할 터였다.

 그렇게 굴러가면 되는 세상이었다. 딱 그렇게만 굴러간다면. 하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않으려했던 세상은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풀지 않고 쌓아버린 가슴 속의 화처럼 계속 응어리지고 쌓여, 갚아야 할 빚처럼 점점 불어날 뿐이었다. 그리고 유진이 자신의 머릿속에 남겨두었던 그리움과 엉켜버리며, 하루하루 거듭될수록 유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연자돌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오늘 일어난 일은, 유진이 회피해버린 그간의 것들에 대한 업보일지도 모른다.

 

 유진은 자신의 목에 콱 막혀버린 말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그동안 애쓰지 않아도 절로 나왔던 그 말들은 유진의 의자와 상관없이 유진이 내뱉게 되는 예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진이 내뱉으려하는 말은 달랐다. 그것은 미래를 맞히는 말이 아니라, 미래를 결정하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도무지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말 한 마디로 결정하게 될 미래가 너무 무서워서.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멈춰버린 시계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유진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다시 입을 열고는 맺혀 있던 말을 뱉어냈다.

 

 “절... 믿으세요?”

 

 지난 15년 간 지속되어왔던 유진과 경자의 관계는,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일 터였다.

 

 

 

 

 “그쪽도 참 독해.”

 

 영안실로 옮겨진 도현의 시신을 보며 원장이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복수를 해야 한다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히스토리를 아는 나나 되니까 이해해주는 거지, 어디 가서 말하면 천인공노할 짓이라며 잡혀갈 수도 있어.”

 

 수연은 하얀 천에 덮인 도현의 시신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굳이 부정하거나 발끈할 필요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괜찮아요. 본인은 좋아할 테니.”

 

 일말의 안타까움이나 연민도 느껴지지 않는 수연의 말에 원장이 쯧쯧 혀를 차며 영안실 밖으로 나갔다.

 

 그날, 유진을 돌려보낸 뒤 수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장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미 차가워진 도현의 시신을 응급실로 데려갔다.

 VIP라는 핑계로 당직 의사들을 물리치고 직접 내려온 병원장은 도현이 살아있는 척 연극에 동참해달라는 수연의 요청에 기함했다. 그동안 수많은 진상 VIP를 겪으며 공문서 조작 등 다양한 범법행위에 가담해 온 원장조차 시신에 손댄다는 것은 여간 꺼림칙한 것이 아니었기에 원장은 사망진단서를 늦게 발급하는 정도로 조율하려 했지만, 수연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30년 전, 자신이 도현의 복수를 도와주며 수연에게 저지른 죄가 있었던 터라 그 복수를 마무리 짓겠다는 데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죽은 시신에 심폐소생술에 주사를 투약해가며 병원장은 이 쇼에 가담했고, 응급실과 입원 기록에서부터 CCTV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도현의 알리바이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억울할 거 없잖아. 당신이 이미 했던 짓들이니까.”

 

 산 자가 죽은 자가 되고, 죽은 자가 산 자가 되는 전복은 수연이 안나가 되고, 안나가 수연이 되었던 그 날 시작되었다. 수연의 모든 것은 도현을 통해 안나의 것을 빌린 것이 되었다. 수연의 삶, 수연의 직업, 수연의 미래...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던 상황에서 수연에게 남은 유일한 자산은 도현이라는 인간 존재 뿐이었다. 복수를 마무리하기 위해 자신이 쓸 수 있는 자산을 모조리 꺼내 쓰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수연이 가진 도현이라는 자산을 모조리 활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여기 있었군.”

 

 안 변호사였다.

 

 “추모의 시간을 갖는 건 같지는 않은데?”

 “잘 아네요. 그냥 멍 때리고 있었어요.”

 

 수연의 말에 안 변호사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적여 편지 하나를 수연에게 건넸다.

 

 “뭐예요?”

 “도현이 서랍 정리하다 나온 거야. 너한테 주려던 거 같은데.”

 “무슨 내용인데요?”

 “난 봐도 모르겠더라고. 직접 봐.”

 

 편지를 건네받은 수연은 봉투를 열어 주섬주섬 펴 보았다. 그 안에는 적혀있는 것은 단 두 단어였다.

 

 [Thank you.]

 

 그리고 수연은 이내 편지지를 사정없이 구겨버렸다. 그 모습을 본 안 변호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뜻인데 그래?”

 “땡큐가 땡큐지 뭐겠어요.”

 “진짜 그 뜻이야?”

 

 의구심 섞인 안 변호사의 질문에 결국 수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예전에 이야기해줬던 건데... 그만 두자는 뜻이에요. 탱고에서 쓰는 인사라나.”

 

 웃기는 일이었다. 이 모든 복수를 시작한 사람이 그만 두자는 메시지를 책상 서랍에 지니고 있었다니.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수연의 말에 비로소 그 뜻을 알아챈 안 변호사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이제 서류 정리를 슬슬 해야 할 것 같은데.”

 

 안 변호사의 말에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시간을 더 끌 수 있을까요?”

 “... 무슨 꿍꿍이야?”

 

 안 변호사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수연을 바라봤다. 도현의 이름으로 걸려있는 것이 워낙 많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 중에 제가 탐내는 건 하나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요. 그냥... 보험이에요.”

 “이미 다 끝난 거 아니었어? 무슨 보험?”

 

 순간, 다시 밀려오는 무거운 감정에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버렸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었다. 도현이 시작한 복수를 도현으로 마무리 했듯, 이것은 자신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찾아와주길 기다리는 애가 한 명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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