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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문 여는 자'의 2권입니다. 글의 흐름 안에서 조금 더 박진감 있게 그려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30
작성일 : 21-05-10 07:56     조회 : 460     추천 : 0     분량 : 4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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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은지는 현재 자신이 있는 층 주위를 둘러본다. 그 여기자가 흥분한 떡 아줌마를 피해 도망가기 급급했을 텐데 굳이 다른 층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가진 않았을 거였다. 민호가 건네준 검은 구슬들이 손에서 미끌거린다. 고리가 단단히 걸린 세 개의 구슬. 바둑알처럼 오드득, 거리는 소리를 내며 손 안에서 부딪혔다 미끄러진다. 혹시라도 놓칠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기자를 도와야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찾는 중이지만 떡 아줌마를 직접 맞닥뜨리게 되면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쫓길 수도 있겠다 싶다. ‘일단 안정을 시키고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이 구슬을 손에 놓아준다면 어떨까? 내 말을 듣기나 할까?’ 무섭게 흥분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온통 사방으로 휘날리던 떡 무더기들. 갑자기 속이 메스껍다.

  ‘여긴 어디지?’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안을 들여다봤다. ‘아, 신생아실.’ 작은 바구니 같은 아기용 침대 안에서 갓 태어난 아기들이 꾸물거린다. 다들 눈도 뜨지 못했다. 꼼지락거리는 손과 발. 뒤틀리는 허리. 신기한 모습에 눈이 팔려 그만 은지는 지금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잊는다. 간호사가 아기들을 둘러보며 차트를 확인하는 중이다. 아기를 들어 올려 몸 전체를 훑어보기도 한다. 사람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움직이는 인형 같다.

  ‘어쩜 저럴 수 있지?’ 자신도 저런 때가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저런 조그만 몸뚱이가 이렇게 커지게 되는 걸까. 하품을 하는 아기 모습에 커다랗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사랑스럽다. 저 끝에 있는 아기는 뒤로 벌러덩 넘어가더니 고개를 다시 들어 올리지 못한다. 누군가 도와줘야 할 듯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뭔가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제야 그 자리에 누군가 서 있는 걸 발견한다. 아기들 모습에 너무 눈이 팔렸었다. 우뚝, 멈춰선 채로 시선만 이동시킨다.

  산발한 머리에 환자복을 입었다. 은지와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아기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생각 없이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 ‘뒤로 물러서야 할까? 가만 구슬을 어디에 뒀더라?’ 은지는 얼굴을 들어 확인하기가 겁이 난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쩌지?’ 이제 더 이상 아기들의 모습은 안중에 없다. ‘날 알아챘을까?’

  은지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이대로 뒤로 돌아서 도망갈까? 나보다 빠를까? 잡히려나? 아, 어떻게 한다. 고개를 못 들겠어.’ 상황을 확인해야 하는데 도무지 고개를 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렵게 눈만 치켜뜨고 조심스레 시선을 옮기니 환자복이 덮은 발끝이 보인다. 맨발이 가지런히 앞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쪽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에 안도한다. 어쩌면 바로 구슬을 꺼내서 몸에 댈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구슬 하나를 집는다. 고리를 풀면서 살짝 옆모습이라도 보려고 고개를 비스듬히 움직였다.

  사방으로 뻗친 머리가 보이고 목을 따라 턱이 편평하게 솟아있다. ‘어, 턱이?’ 앞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 은지는 턱을 정면으로 보게 되자 의아해하다 정확히 눈을 마주친다. 몸은 앞으로 향했지만 고개를 돌려 은지를 보고 있었다. 흥분해서 떡을 던질 때와 달리 표정이 한층 차분해졌다. 동네 어귀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눌 동네 아주머니 모습이다. 지금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눈만 끔뻑이던 그 때, 누군가 은지의 팔을 잡더니 거칠게 끌어당긴다. 놀란 은지가 비명을 질러대지만 괘념치 않고 더 당긴다. 거의 넘어질 뻔하며 끌려가던 은지는 자신의 팔을 잡은 사람이 그 여기자인 것을 알아챈다.

  “저, 저기요.”

  “빨리! 따라오는 거 안 보여?”

  말을 듣고 뒤를 보자 어느새 두 사람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수지의 발걸음이 빨라지자 덩달아 은지도 거의 뛰듯이 뒤따른다. 급한 발소리가 복도를 울리자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간호사실에서 나와 보던 간호사가 두 사람을 향해 일러댄다.

  “병원에서 그렇게 뛰어다니시면 안 되거든요.”

  수지와 은지에게 그 말이 닿지 않는지 그들은 더욱 걸음을 빨리 한다. 간호사는 그들을 따라가서 말려야 하나 고민하다 뒤따라오던 은숙과 마주한다.

  “어머, 환자분. 여기서 뭐하세요? 산모에요?”

  “비켜!”

  허연 가래떡이 공중을 가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간호사는 아무런 저항도 못해보고 어깨와 가슴을 맞는다.

  “아악!”

  간호사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자 그 위를 타고 넘는다. 그 사이 약간 틈이 생기자 은지가 수지의 어깨를 붙잡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디 안 다치셨어요?”

  “다친 데는 없는데 무슨 원한이 있다고 나만 따라와. 저 아줌마 내가 무슨 철천지원수로 보이나. 저 간호사 어째?”

  아주 잠깐, 숨을 고르던 두 사람은 누워있는 간호사를 넘어오는 은숙을 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일단 피하자고. 저 손에 든 가래떡 보이지?”

  은지는 수지가 말한 가래떡을 발견한다. 손에 든 게 아니라 팔뚝 아래 매달려 흔들린다.

  “언제 날아올지 몰라. 아, 원래 떡 엄청 좋아하는데 이젠 보기도 싫어.”

  이제 수지는 은지의 팔을 놓고 앞장을 선다. 은지는 수지에게 말을 건네려다 그녀가 저만치 앞서 나가자 그 뒤를 따르기 급급하다. 점점 더 민호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몸을 숨길만 한 데를 찾아보던 수지는 둘 씩 짝을 이뤄 네 개가 양쪽에서 마주보는 승강기를 발견한다. 그 앞으로 뛰어가더니 버튼을 눌러댄다. 급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쉼 없이 찍어댄다.

  “빨리, 빨리, 빨리.”

  겨우 수지의 뒤편에 닿은 은지는 걱정스레 뒤를 돌아본다. 아직 은숙이 보이진 않는다. 버튼을 계속해서 눌러대는 수지의 모습에 더욱 불안해진다.

  “엘리베이터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데 기다리지 말고…….”

  은지가 말을 끝내기 전에 승강기 도착음이 울린다. 수지의 얼굴 위로 반가운 기색이 번지고 ‘빨리, 빨리, 빨리’ 라는 말이 연달아 이어진다. 아직 열리지 않는 문 위에 손을 올리고 두드려대기까지 한다.

  “열린다.”

  문이 천천히 좌우로 벌어진다. 수지가 얼른 안으로 들어서자 은지가 그 뒤에서 따르며 옆을 보는데 은숙이 절반쯤 모습을 드러낸다. 팔에 매달린 가래떡이 더욱 길게 늘어져 흐늘거린다. 흡사 자라고 있는 것처럼.

  “바로 뒤에, 뒤에!”

  은지가 제대로 말하지 않아도 수지가 무슨 뜻인지 알아채는 데 어려움이 없다. 조금 전과 같은 빠른 동작으로 문 닫힘 버튼을 쉴 새 없이 눌러댄다. 문이 닫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왜 그렇게 긴지 마치 영원히 닫히지 않을 듯했다. 은숙이 고함을 질러댄다. 수지와 은지는 승강기 안쪽 끝에 바짝 붙어 어떻게든 은숙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기를 바란다. 문이 닫히기 시작하고 거의 절반쯤 다다랐을 때 허연 가래떡이 가운데를 지나 쑤욱, 들어온다. 수지와 은지가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그들에게 닿을 거리는 아니었지만 공중에서 흔들거리는 모습 자체가 두려움을 자아냈다.

  문이 거의 닫히려 할 때 은숙이 바로 앞까지 도달했지만 닫힌 문을 밀어내고 들어설 여유는 없었다. 안에 들어선 가래떡을 잘라내며 문이 완전히 닫히고 두 사람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등을 벽에 붙인다. 가팔라진 숨을 고르느라 애를 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수지의 등 뒤에서 은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두려움에 흔들리는 목소리를 낸다.

  “왜, 왜 엘리베이터가 가만히 있죠?”

  은지의 말에 한순간 멈칫하던 수지가 격하게 반응한다.

  “층 버튼을 안 눌렀어!”

  손가락에 닿는 대로 어떤 층 버튼이든 누르려던 수지보다 아주 간발의 차이로 앞서서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은지가 크게 벌어진 눈으로 문 사이를 주시한다. 팔과 다리를 양쪽으로 벌리고 선 은숙의 모습이 전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건 흡사 공포영화를 보는 듯하다. 산발한 머리는 꼭 인형의 저주라는 영화에 나오는 귀신인형 같다. 허연 가래떡이 길게 늘어져 바닥 위에서 둥글게 말렸다. 반대쪽 손에는 누워있던 남자를 뒤덮었던 팥떡이 들려있다. ‘이제 어떻게 한다지?’ 민호가 보고 싶어졌다. 휴대폰을 찾아내서 번호를 누를 여유는 당연히 없다. 비명이라도 지르면 달려와줄까? 하지만 은지가 시도해보기도 전에 수지가 먼저 비명을 질러댔다. 심한 악몽을 꾸듯이.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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