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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문 여는 자'의 2권입니다. 글의 흐름 안에서 조금 더 박진감 있게 그려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44
작성일 : 21-08-16 08:05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2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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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은하가 공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스텝을 밟아가며 동네 주변을 훑는다. 안정수가 어느 방향으로 사라졌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주위를 샅샅이 둘러보려니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그렇게 한참을 보낸 후 멀리서 뛰어가는 정수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 방향을 알려주자 병국이 달음박질을 시작한다. 은하는 건물 사이를 타고 넘어가며 그와 페이스를 맞춘다. 수사는 그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차를 몰아 뒤따른다.

  은하는 병국이 따라잡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정수를 최대한 괴롭히려 애쓴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장풍을 날리는 것뿐이었다. 공중에서 축지법을 써가며 장풍을 조준하려니 그것마저 녹록치 않다.

  슈욱.

  퍼어엉.

  정수가 지나치는 골목 어귀에 쌓인 쓰레기봉투 더미가 은하가 쏘아댄 장풍에 맞고 튀어 오른다. 주변에 퍼지는 각종 오물에 정수가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그가 주시하는 시선 끝에 은하의 모습이 걸친다. 그의 얼굴 근육이 더욱 경직되고 뛰어가는 다리에 속력이 붙는다.

  펑. 펑. 펑.

  연달아 날아오는 장풍이 건물 벽 여기저기를 두드려 사정없이 벽돌이 튀어 오른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확인하려 골목에 자리한 가게에서 문을 열고 나와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여럿이다. 정수는 전속력을 내려다가도 근처에서 휘몰아치는 바람 소용돌이를 피하려 멈칫, 하기를 반복하니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한다. 은하가 바라는 대로 그가 발걸음을 주저하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결국 병국의 시선에 그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렇게 얼마간 더 추격전을 벌인 후 병국은 정수와의 거리를 가까이 좁힌다. 병국은 둘렀던 망토를 어깨에서 떼어내더니 정수를 향해 던진다. 휘릭,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휘돌아가던 망토는 정수 머리 꼭대기부터 덮치더니 이어서 전신을 감는다.

  “으윽.”

  완전히 감겨버린 정수가 망토 안에서 발버둥을 친다. 손을 뻗어대더니 북, 북, 거리며 망토를 찢어발긴다. 손에는 날이 선 메스가 쥐어졌다.

  “하여튼, 저 메스 때문에 일을 다 망쳐요.”

  은하가 아래를 향해 내려오며 기합을 지른다.

  “일! 취! 월! 장!”

  첫 번째 동작,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두 번째 동작, 어깨를 차서 상체를 땅 위로 누이며, 세 번째 동작, 메스가 든 손을 당수로 쳐서 손에서 떨어뜨린 후, 네 번째 동작, 양손을 교차시켜 목을 꽉 죈다. 숨쉬기가 곤란한지 정수가 목을 비틀어대며 신음을 흘린다.

  “커, 커컥.”

  “적당히 해요. 은하 씨.”

  “자꾸 사람 성가시게 하잖아요. 아예 버릇을 고쳐놓겠어.”

  얼굴색이 변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가 되자 은하가 손에 준 힘을 푼다. 병국은 찢어진 망토를 집어 들더니 애석하게 내려다본다.

  “내 망토는 제대로 성한 날이 없네.”

  겨우 숨을 고른 정수를 향해 은하가 위협하는 팔 동작을 취한다. 실제로 때리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그저 위협을 가하려고 하는 것일 뿐. 정수는 이제 완전히 힘이 빠져서 움찔, 거리며 몸을 둥글게 만다. 그 앞으로 수사가 도착한다.

  “아니, 왜 그러셨습니까? 이러면 우리도 힘들고 정수 씨도 힘들잖아요. 서로 좋게 좋게 해결해도 될 일을 가지고, 쯧쯧.”

  정수가 숨을 편하게 고르고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있게 기다린다. 수사는 정수로부터 이제 더 이상 도망치려 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는다. 다음 번에는 어떠한 결과가 생기더라도 자신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압박과 함께. 은하는 한 번만 더 자기를 향해 메스를 휘두르면 손가락을 모두 부러뜨리겠다고 앙칼지게 겁을 준다. 병국은 수사와 은하의 위협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하고 말없이 차로 향하더니 찢어진 망토를 차 트렁크 안에 던져 넣는다.

  “수사님, 이제 애들 데리러 가야죠.”

  “그럴까?”

  수사가 말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은하와 병국의 등 위로 희멀건 빛뭉치가 전해져 들어온다. 그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수사는 차로 향하다 아무도 따르는 낌새가 없어 뒤돌아본다. 한순간 멍한 얼굴로 멈춰있던 은하와 병국은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기 위해 허리에 힘을 준다.

  “어? 왜들 그래?”

  은하와 병국이 눈에 초점을 제대로 맺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 은하가 답한다.

  “애들을, ……, 애들을 찾지 말래요.”

  “무슨 소리야?”

  이번엔 병국이 대답한다.

  “애들을 두고 우리끼리 그냥 가랍니다.”

  “애들을 두고 가라고?”

  은하와 병국, 두 사람 다 얼굴 위로 그늘이 진다.

  “이런 식으로 의사를 전할 줄 몰랐어요. 기분이 그리 좋진 않은데요.”

  “어쩌겠어요. 은하 씨나 나나 모두, ……, 대장이 살려놓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수사도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들을 정수가 힐끗거린다. 아직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정수 씨. 어서 일어나시죠.”

  수사가 차량 운전석을 향해 성큼 내딛는다.

  “수사님. 그냥 출발하시게요?”

  병국이 의뭉스런 표정으로 수사의 안색을 살핀다. 발을 살짝 끌어댄다.

  “두고 가라면 가야지, 다른 수가 있나? 여기까지 온 것도 다 지시를 받아서 왔잖아. 우리 의사는 어차피 상관없는 거지.”

  “그래도 기분 나쁘네. 일방적으로 이게 뭐야. 제대로 설명이나 해주던가. 아님 아예 시작부터 애들을 포함시키지 말지. 아무리 대장 지시라도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앉은 채로 있는 정수를 은하가 매섭게 쏘아보자 벌떡, 정수가 일어난다. 이번에는 주의 깊게 그를 살피려는지 뒷좌석 가운데 앉히고, 그 양옆으로 은하와 병국이 자리한다. 수사가 시동을 걸며 핸드브레이크를 내린다. 누군가에게 묻는 말이 아닌 그저 자신의 바람이 담긴 물음을 내뱉으며 차를 출발시킨다.

  “우금치에 도착하면 모든 게 다 끝나려나?”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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