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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문 (門)
작가 : 이태희
작품등록일 : 2017.10.31

내가 강시라고! 그런데 그녀도 강시······. 차원의 틈을 통해 알 수 없는 무림의 세계로 떨어진다. 그곳에서 대법을 통해 강시(强尸)가 되어버린 나강현의 신묘한 이야기!



사뿐사뿐 달빛이 내려앉듯
사뿐사뿐 꽃잎이 내려앉듯
그의 한마디 손짓, 눈빛
그녀의 가슴에 수 놓인다.
눈에 머리에 영혼에 각인 한다
야속하게 눈 녹듯 사라질세라.

 
자혼 강시
작성일 : 17-11-07 09:40     조회 : 46     추천 : 1     분량 : 8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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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장무연은 오랜 노력 끝에 밀궁의 장로들과 중요 무력의 팔 할을 장악했다.

  그럼 뭐하는가! 빛 좋은 개살구인 것을. 대대로 내려오는 밀궁의 계율에 따라 이인자로 수석장로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태생부터 이인자라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살기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 궁주가 되려는 야심으로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터였기에 더 이상의 기다림은 그와 그를 따르는 수하들에게 있어 독약과 다를 게 없다.

 

  오랜 기간 뜻을 이루기 위한 계획이 지지부진하게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던 이때에 드디어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궁을 장악하는데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일을 진행토록 해라.

  -예, 분부 받들겠습니다.

  주변 경계가 철저함에도 장무연과 염총관의 대화는 전음을 사용하여 한 동안 더 이어진 후에 끝을 맺었다.

 

  밀궁의 뒤편 끝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튼튼하게 잘 지어진 별궁인 중천각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아담하게 잘 지어진 작은 정자가 뒤에 펼쳐진 절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한 여인이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한가로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정면으로 십장정도 떨어진 곳에는 농부처럼 보이고, 삼십대를 갓 넘긴 것 같은 젊은이가 구슬땀을 흘리며 텃밭을 갈고 있었다.

 

  -퍽, 퍽

  어딘지 서툴러 보이는 농사이지만 정성스럽게 밭고랑을 만들었고, 힘에 부치는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가끔 허리를 주무르기도 하면서 열심히 다시 밭을 갈기 시작한다.

  한동안 농부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아이는 일어나더니 밭을 갈고 있는 쪽으로 사뿐히 걸어갔다.

 

  “여린아!”

  여인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이내 바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바위 뒤쪽에 존재감 없이 서있던 몇 몇 중에서 나비가 수놓인 흰색 무복을 입고 있는 묘령의 여인이 소리 없이 아이의 뒤를 따랐다.

  여린이라 불린 아이는 열두 살 정도 되었을까? 앞으로 걸어가더니 주머니에서 무명천을 꺼내 중년인에게 건네주었다.

 

  “아빠. 많이 힘드시죠. 에휴 땀 좀 봐 .이걸로 땀 닦으세요.”

  “허허허, 그래 고맙다. 힘들기는, 우리 딸 때문에 하나도 힘든 줄 모르겠는데.”

  천으로 얼굴에 흐르는 굵은 땀을 닦은 뒤 아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어이구, 왜 이렇게 무거워 우리 딸이 벌써 다 컸네!”

  “헤헷, 그럼요 다 컸어요. 그러니 이제부터 제가 도와 드릴게요!”

  “하하, 그럴까!”

  얼굴에 볼을 비비자 까칠한 수염 때문에 간지러운지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얼굴을 뒤로 제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여인도 같이 가볍게 따라 웃었다.

 

  미인 축에는 들지 못한 평범한 얼굴 이었지만 강단이 있어 보이는 눈매에 칠흑같이 검고, 윤기 나는 머리가 복숭아 꽃 빛을 띤 얼굴과 잘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일순간 이었지만 여인의 잔잔한 미소 뒤에는 언뜻 알 수 없는 슬픔이 묻어 나왔다.

 

  “이놈이 대체 누굴 닮아서 이리도 예쁜가?”

  아비의 말에 아이가 새침한 표정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으음······, 히힛 그거야 엄마를 닮았겠죠.”

  “아하하하, 그래 그렇지! 엄마를 닮았어.”

  둘은 마주보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이때, 그들과 좀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여인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복면을 한 자들은 아이를 안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부복을 한 채로 얼굴을 들고서 귀 뒤쪽을 만지자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이 한쪽으로 사라지며 우직하고 충직한 표정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들은 다름 아닌 궁주의 직속 수호전대 중의 하나인 흑면대의 대주 도수형과 창술이 뛰어난 진가철 부대주였다.

 

  “흑면대가 궁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인사를 받는 모습이 밀궁의 주인인 궁주라고 불리기엔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천변무검(闡變舞劍) 기세훈(基世訓) 궁주였다.

 

  “예. 수석장로가 중요한 일로 상의드릴 말씀이 있다고 뵙기를 청하는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궁주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수석장로가 중요한 일로 말인가?”

  “예. 궁주님.”

  주군의 주화입마가 고쳐질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 몸을 불살라 수석장로 일파에게 응징을 가할 것이다.

  도수형은 은둔 하다시피 생활하고 있는 궁주인 주군이 자신의 잘못인양 안타깝기도 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

  궁의 운명에 관계된 특별한 일만 아니라면, 장로회의를 거쳐 수석장로인 장무연이 궁의 대소사를 거의 책임지고 있었다.

 

  언뜻 이해가 안가는 일이라고 생각되겠지만 밀궁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비사(悲史)가 있었다. 그것은 역대 궁주들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무공이 화경을 넘어서 일정 수위에 오르면 일신에 내재되어 있던 내공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공을 쌓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단전에 자리 잡기 무섭게, 가지고 있던 내공이 사지백해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단전이 텅 비어 버리자 아예 공력을 일으킬 수 없었다.

 

  이건 완전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무공을 시전 하려면 초식에 내공을 실어 사용하는 게 무공의 기본 이치일진데 그러질 못하니 말이 좋아 밀궁의 궁주이지, 그저 튼튼한 신체 외에는 범인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런 괴사로 인해 역대 궁주들은 참으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부단한 노력을 하였으나 아직까지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이 괴질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끊은 궁주도 있었다.

  그래서 밀궁에서는 오래전부터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고심 끝에 무림에서 금기시한 강시를 연구하게 된 것이다.

 

  강시는 죽은 시체를 각종 독초와 약초들을 배합하여 만든 시연통(尸涎桶)에 담근 상태로 일정기간 술법을 통해서 제조한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삼일을 넘기지 않은 시체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강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배교출신의 술법사 마하수사(魔煆修捨)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시를 만드는 작업을 시험하기에 이른다.

  궁 안에서도 차마 생사람으로 강시를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무리도 있었으나, 궁주의 괴질을 치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대세여서 결국에는 살아있는 활강시를 만들어 시험하기에 이르렀다.

 

  끝에 가서 논란을 종식시킬 정도로 상상을 뛰어넘는 살아있는 강시가 탄생되자 주위에서 더 이상 반대만을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강시 몇 구를 더 만들면서 혹시나 이 일이 알려지면 시끄러워질까 조심하면서 만들었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결국엔 비밀이 새어나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무림을 진동 시켰다.

  이것을 계기로 정파에서는 더 이상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말과 함께 밀궁을 사파로 낙인찍어 배척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변명 아닌 변명을 해봤자 정, 사를 무 자르듯 가르는 정파의 편협한 결정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밀궁은 궁주의 주화입마 치료가 중요했기에 사파로 매도되어 불리어도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강시를 연구하였다.

  결국, 갖은 실험 끝에 훗날 마병기로 불리기 되는 자혼 강시(自魂强尸)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자혼 강시는 백치의 상태로 아무것도 몰랐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점차 학습을 통하여 말과 글을 깨우치며 발전을 하게 되었고, 중요한 건 무공 습득이 빠른 편이었다.

  무림인 출신의 강시는 몸이 기억을 하기에 무공을 익히는데 있어 좀 더 나은 진전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소림사의 전설의 신공인 금강불괴(金剛不壞)와도 같은 강인한 신체와 제조할 당시의 영약으로 인해 생긴 상당한 내공으로 화경의 절대고수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초절정 고수와 필적할 정도로 무력이 대단했다.

  자혼 강시는 이처럼 뛰어난 마병기로 가치가 상당했지만, 막대한 비용과 본인이 자원해야만 만들 수 있었기에 많은 수를 보유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이지를 상실하고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강시가 되길 원하는 자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혼 강시를 제조할 수 있는 술법사의 존재 유무였다.

 

  이렇게 많은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밀궁은 강시를 연구 제조하는데 많은 시간과 재력을 쏟아 부우며 몰두했다.

  이후에 궁주의 주화입마 치료와는 별도로 술법원을 두어 대대로 강시를 연구 제조하게 된 것이다.

 

  기세훈은 부복하고 있는 흑면대장에게 하명했다.

 

  “흑면대장.”

  “궁주님, 하명하십시오.”

  “수석장로에게 오시(午時)에 보자고 전해라.”

  “존명!”

  명령을 내린 궁주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한 일상으로 다시 밭을 갈기 시작했다.

 

  -퍽, 퍽

  흑면대장은 무언가 할 말이 더 있는 것처럼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다 말고 일어서서는 예를 갖추며 명을 받들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몇 걸음 못가서 누군가가 그를 부르며 옷소매를 잡았다.

 

  “흑면대장!”

  “속하, 흑면대장. 소궁주님을 뵙습니다.”

  그를 불러 세운 것은 작은 주군이었다. 흑면대장은 얼굴이 밝아지며 인사를 올렸다.

  어린 소궁주는 무릎을 굽힌 흑면대장에게 찡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웅, 오늘도 수련하러 가야되는 거야?”

  “예. 소궁주님. 한시도 수련을 거르시면 아니 됩니다.”

  흑진주 같이 까만 눈동자를 깜박이며 묻는 기여린(基璵璘) 소궁주. 말은 그렇게 하며 늘 투정을 부리면서도 여린은 무공수련을 좋아했다.

 

  신분상 궁주들이 익히는 무공을 수련해야 했고, 또 소궁주라는 신분 때문에 따로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또래가 없었다.

  여린은 수련동에 가면 무공수련을 하느라 힘들지만, 그래도 그곳엔 언제나 따듯하게 반겨주며 허물없이 대해주는 사람이 있어 좋았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한 얼굴로 이마를 찡그리며 묻는 소궁주를 보니 마음 한편이 따듯해져 왔다.

 

  “소궁주님! 제가 수련동까지 모시겠습니다.”

  “헤헤헤, 아빠. 이만 수련하러 가보겠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흑면대장의 어투에는 정감이 담겨 있었다. 앞서서 걸어가자 소궁주는 말과는 다르게 베시시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흑면대장을 뒤 따랐다.

 

  “허허, 참. 녀석하고는.”

  멀어져가는 딸아이와 예를 갖추고 물러나는 수하를 보며 기세훈은 마음속 스스로 반문해 본다.

 

  ‘진정으로 나는 지금의 나 자신에게 만족 하는가. 아니면 아직도 무(武)를 갈망하는가.’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가슴속 깊은 곳 저 너머에 아직도 무를 갈망하는 자신이 보인다.

 

  “궁주님. 오늘은 그만 하심이 어떠신지요?”

  “으음, 알았소이다. 부인.”

  부인의 말에 상념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아직 더 있어야겠지만 수석장로와의 면담도 있고 해서 이쯤에서 끝내고 돌아섰다.

  기세훈은 따듯하고 온화한 미소로 말하는 부인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화연(花姸).”

  “예. 궁주님. 말씀하세요.”

  “어허, 궁주님이라니.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지 않소.”

  “아이, 궁주님. 몰라요!”

  궁주가 짐짓 화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여인의 양 볼이 홍조를 띠며 보일 듯 말듯 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아시나요? 그래도 연랑은······, 저의 영원한 궁주님 이십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이 메아리 되어 울렸다.

 

  궁주들만의 고질적인 병이 현 궁주의 아버지인 전대 궁주와 술법사의 피나는 각고의 노력 끝에 내공이 소멸하는 것까지는 막아 봤으나 그게 전부였다. 단전에 머문 채 내공이 꼼작도 하지 않았다.

  쓰지도 못하는 내공은 필요 없는 법, 결국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자신만은 이 천형 같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랐지만 현 궁주도 운명을 피해갈수는 없었다.

 

  그도 평생을 수련하여 체득한 일신의 무공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화했을 때, 그 고통과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아 미칠 것 같았다. 아니 미치지 않고 멀쩡한 게 오히려 이상하리라.

 

  무인에게 있어서 무공은 생명 그 자체다. 그 누가 이런 일을 겪고 나서 태연할 수 있을까? 무공을 다시 회복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 수련동인 천사동(天死洞)에 들어가 선대의 기록을 찾아 봤으나 모두 허사였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영약을 찾아 중원 각지를 돌아다녔으나, 이름난 영약으로도 소용이 없었다. 삶의 목적을 잃고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을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부인과 딸이다.

  그의 부인 즉, 지금의 궁모는 소궁주인 기여린의 생모가 아니었다. 기여린을 낳은 후에 원인모를 지병으로 죽고 나서 새로 얻은 궁모였다.

 

  그녀는 궁모의 호위무사로 있었던 게 인연이 되어 궁주가 궁모를 잃고 힘이 들 때 많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기세훈 궁주는 그녀의 진심어린 걱정과 위로에 차츰 안정을 찾아 갔고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서있는 부인을 한번 돌아보고는 말을 꺼냈다.

 

  “화연, 저 아이를 위해 지금의 내 행동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예정된 것이 아닌 다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나은지. 대체 어떤 것이 옳은지 나는 도통 모르겠소.”

  궁주의 말에 화연은 소궁주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중요한 건 여린이가 좀 더 크면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린 그저 여린이가 아무 탈 없이 성장하는 것을 옆에서 도와주는 게 최선 이라고 생각해요.”

  둘은 소궁주가 멀어져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말을 주고받았다.

 

  “그건 그거고 자, 내 등에 업히시오.”

  “네에! 궁주님, 누가 보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어허, 누가 본다고. 보면 또 어떻고.”

  “호호호, 그럼······.”

  무안한 표정을 짓는 자신을 보고 짓궂게 궁주가 웃자 화연도 마주 웃으며 궁주의 등에 업혔다.

 

  “어후, 무겁군.”

  “아이참 놀리시면 싫어요.”

  한편, 여린은 흑면대장을 앞세우고 수련동인 천사동으로 향했다. 수련동이 멀지 않았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천사동은 궁주의 연공실과는 별개로, 대대로 궁주의 가족들이 무공수련을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다.

 

  밀궁이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있던 천연동굴을 기반으로 뛰어난 석공이 만든 수련동으로 동굴 안은 시원하면서도 통풍이 잘되어 매우 쾌적했다.

 

  “여기까지 호위해 줘서 고마웠어. 흑면대장.”

  “예. 소궁주님. 보중하십시요.”

  여린은 수고했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흑면대장에게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천사동 안으로 호위무사들과 들어갔다.

 

  이때쯤이면 항상 먼저 연무장 중앙에 몸을 풀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두 노인네가 보이지 않자, 여린은 이상하다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이상하네. 어디 갔지 음, 음······, 죽었나?”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던 일이 생기자 죽었다고 단순히 생각해보는 여린이었다.

 

  -화르르륵

  그때, 이장 정도 떨어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두 개의 작은 불덩어리가 생겨났다. 그 불덩어리 같은 모양이 어째 사람의 눈처럼 생긴 것이 빤히 자신을 노려보듯이 천천히 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으응, 저 불덩이는 뭐지?”

  그 불덩어리는 보란 듯이 느릿하게 좌우로 움직이다 갑자기 순식간에 눈앞으로 날아들었다.

 

  “꺄악! 뭐, 뭐야!”

  반사적으로 눈앞을 가리며 뒤로 몸을 뺏고, 그사이 누군가 빠르게 여린의 앞을 막아섰다.

 

  -퍼엉!

  그 짧은 순간 여린의 뒤에 묵묵히 서있던 둘 중에서 건장한 사내가 몸으로 앞을 막아섰고, 옆에 있던 또 다른 수하가 여린을 몸으로 완전히 감싸 안았다.

 

  “오호호호홋, 요런 맹랑한 소궁주가 있나.”

  타오르던 불덩어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곳에는 요염한 여인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굴곡진 몸매에 홍의를 입어 더욱 관능적으로 보였다.

 

  “이익, 이팔 좀 치워봐!”

  여린은 자신을 감싸 안은 여인의 팔을 풀어 헤치고 앞을 막고 있는 사내 옆으로 섰다.

  자신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두 명의 노부부는 보이지 않고, 웬 낯선 여인이 그 자리를 대신 한다는 것은 어린 자신도 알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신변에 변고가 생겼음을 의미 했다.

 

  정말 두 분이 잘 못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울컥한 여린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적개심을 드러낸 여린은 작은 입으로 당차면서도, 앙칼진 목소리를 뱉어냈다.

 

  “넌, 누군데 허락도 없이 이곳에 있는 것이냐!”

  “호호호호호.”

  그 말에 홍의를 입은 여인은 가소롭다고 웃기만 할뿐 대답이 없었다.

 

  “흥, 만약 노부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는······.”

  “무슨 일이 생기면?”

  여인은 조롱하듯이 되물었다.

 

  어렸지만 쉬이 경시하지 못하고 도발하며 살피는 홍의 여인. 그건 아마도 옆에 있는 여린의 수하들을 껄끄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너를 절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흐응, 무슨 재주로, 오호라 가만 보니 옆에 있는 것들을 믿고 그러나 본데 어디 한번 소궁주의 무공 실력을 볼까!”

  눈앞의 여인이 자신의 신분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업신여기며 조롱하자 어린 마음에 잠시 울컥했다.

  분을 참기 어려운지 얼굴이 붉어지고, 주먹 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이, 내 너를, 너를······.”

  차고 있던 목검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두 손으로 꽉 잡은 기세가 금방이라도 초식을 전개할 것처럼 보였으며, 어려도 오랜 수련의 덕분인지 검을 잡자 점차 호흡이 진정되고 빠르게 안정된 자세를 잡아갔다.

 

  -스으으으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청의를 입은 양 옆의 남녀는 처음 무표정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원수를 대하듯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 둘은 소궁주의 호위인 자혼 강시였다.

 

  내력이 부족한 여린은 강시들의 강한 살기에 내공의 흐름이 고르지를 못하고 주변의 기 싸움에 방해를 받았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뛰는 가슴을 더욱 진정 시키기 어려웠다.

 

  “후우, 후우······.”

  여린은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자신이 어려서 무공을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분했지만 그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힘들지만 옆에 자혼 강시인 수하들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되어 명령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저어, 못된 것을 어서 잡아라!”

 

  -휘이익

  기다렸다는 듯이 여린의 명령에 양 옆의 강시가 화살처럼 빠르게 양손을 내뻗으며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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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학은 길고, 인생은 짧구나! 2017 / 11 / 2 59 0 7753   
3 운명은 시작되었다 2017 / 11 / 1 68 1 9554   
2 마병기(魔兵機) 2017 / 10 / 31 112 1 7077   
1 시작 (2) 2017 / 10 / 31 453 1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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