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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밤의 아이들
작가 : 어설트
작품등록일 : 2017.6.17

이곳은 죽은 자들의 세계, 사자(死者)의 세계다.
동화 같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

 
3. 흑색 그루터기 (1)
작성일 : 17-07-28 11:54     조회 : 51     추천 : 0     분량 : 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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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휴가 운영하는 ‘그루잠’은 언제나 왁자지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단골은 늘어갔고, 가게를 찾을 때마다 좌석은 아슬아슬했다. 가게는 겉보기와 달리 꽤 넓었고 자리마다 사람들이 모여앉아 떠들었다.

  그들은 이 세계의 낙을 그루잠에 맡겼다.

  그루잠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에 섞여 비밀도 새어나갔다.

  이야기 주머니를 몰래 빠져나온 비밀은 그루잠 주인장의 주머니로 살며시 흘러간다. 주인장은 그것의 값을 재보고 넘치면 그가 가진 것으로 거슬러준다.

  은밀한 공존과 공정이 오가는 곳, 그곳이 바로 그루잠이다.

  그리고 그루잠은 오늘 유난히 떠들썩했다. 한 인형의 등장 때문이었다.

  “엘리자몽! 내 머리지 멋지지 않냐?”

  “딱딱해진 응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엘리자몽! 우리 나가서 놀까?”

  “나가 뒤져주세요.”

  “엘리자몽! 엘리자몽!”

  “그만 부르십시오, 그 입들 찢어버리기 전에.”

  “엘리자몽!”

  “엘리자몽!”

  인형의 등 뒤로 검은 오오라가 넘실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솔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인 엘리자베스를 보며 이죽댔다.

  “아주 인기 폭발이다.”

  턱을 괴면서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희나리가 작게 웃었다.

  본모습을 숨기려했던 엘리자베스가 왜 저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됐을까. 그건 온전히 인형의 메마른 참을성 때문이었다.

  철저한 단골 위주의 그루잠은 새로운 얼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솔이 처음 그루잠에 왔을 때가 그러했다. 일전에 이난과 차일과 짧게 왔다갔던 희나리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거기다 두 사람 모두 탑의 사자이기까지 했으니 손님들은 더욱 열광했다.

  솔은 와글와글 모여드는 사람들에 당황하긴 했지만 대화를 이어나갔고, 반면 희나리는 겁을 먹고 입술 꼭 닫은 채 엘리자베스를 끌어안았다.

  그때 누군가 인형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기억해냈다.

  “어? 엘리자몬!”

  이윽고 그들의 관심은 누군가 한꺼번에 싸잡아 던지기라도 한 것처럼 엘리자베스에게 날아갔다. 주인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인형은, 그리고 주인 외에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는 인형은 누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을 때 기어이 폭발했다.

  인형은 그 손을 매섭게 쳐내며 싸늘한 눈동자를 굴렸다.

  “꺼져라, 머저리들.”

  아저씨들은 열광했다.

  엘리자몬은 부르기 맛깔난다는 주장 하에 엘리자몽으로 개명됐고 마침내 그녀를 위한 자리까지 마련되었다.

  “마셔라, 엘리자몽!”

  “당신을 갈아 마시라는 거라면 기꺼이.”

  “엘리자몽!”

  “엘리자몽!”

  “닥치라니까.”

  끌려간 인형은 여전히 적의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 까칠함이 도리어 치명적인 매력이 되어 말 안 듣는 아저씨들을 퐁당퐁당 빠뜨렸다.

  인형의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는 달리 정작 희나리는 엘리자베스에게 친구가 잔뜩 생긴 것 같아서 좋아하는 눈치다. 어쩌면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알고 꼭꼭 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자, 아가씨들을 위한 특제 과일주 대령이오!”

  방관자가 돼서 구경하고 있을 때, 마침 휴가 음료를 들고 다가왔다.

  음료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그는 이어 합석했다.

  “그쪽은 어떤가? 할만 해?”

  휴는 후배를 만나 안부를 묻는 기분으로 물었다. 참 오래간만에 보는 새로운 사자였다.

  그가 탑에 있을 적, 탑에 머무는 사자들은 대게 조용히 머물다가 떠나곤 했기 때문에 교류가 많지 않았다. 있어봐야 전투를 위해 집결할 때. 그리고 그건 썩 달가운 일이 아니다.

  “네, 뭐, 그럭저럭.......”

  모호하게 답변하는 솔의 얼굴이 씁쓸한 웃음을 띠었다.

  “사람의 내면을 알아버리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

  휴 역시 오랜 시간 탑에서 지낸 몸. 그녀가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다.

  “처음엔 많이 답답할 거야. 그들이 이해 안 가고 자꾸 괴롭히니까 밉겠지. 그러다가 익숙해지면서 환멸을 느끼고, 결국에는 무뎌져.”

  “그래서 탑을 나오신 거예요?”

  어찌 보면 당돌한 그 질문에 휴는 그저 웃었다. 다만 그다운 호탕한 웃음은 아니었다.

  “나는 살았을 적 장사꾼이었어. 술을 팔았지.”

  이 가게처럼. 솔은 문득 고개를 들어 가게를 둘러보았다.

  주황빛 전등아래 세계 각지의 풍경이 액자 속에 담겨 있었다. 불그스름한 빛은 그 땅을 덮는 노을 같았다.

  어스름한 저녁, 그루잠을 찾으면 노을이 지는 세상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마치 그 가게의 이름처럼, 잠깐 꾼 꿈처럼.

  “매일매일 흑자를 가늠하는 것이 내 낙이었는데, 여기 와서 무의미해졌어. 그래서 업종을 바꾼 거지. 도현이란 놈이 마음에 들어서 겸사겸사.”

  이 세계에도 돈은 있다. 그러나 지폐는 있지만 부호는 없다. 그리고 경제도 없다. 그들이 지닌 사념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으므로.

  산 자들의 세계에서 돈은 욕망의 수단이다. 그러나 여기선 집이 갖고 싶으면 만들었고, 옷이 필요하면 그 역시 만들어 입는다.

  돈의 가치는 사라졌지만 의미는 있었다.

  그건 한 때 살았던 자들의 습관 같은 것이다.

  이곳에 열리는 가게들이 모두 그러했다.

  돈을 벌 필요가 없으니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랬더니 무료해졌다. 시간을 보낼 무언가가 필요했고 곧 그들은 자신이 살았던 삶을 활용하기로 했다.

  배가 고프면 사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이 먹고 싶을 땐 만든 돈을 들고 가게로 향한다. 주인은 돈을 받지만 가치는 맛있게 먹는 손님에게서 얻는다.

  세상을 휘어잡았던 돈이 이곳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돈 대신 사람을 사로잡은 건 검은 힘, 사념이었다.

  그리고 그 힘의 크기에 따라 질서가 잡힌다. 도시의 지배자들 대부분이 강한 사념을 가진 자인 것은 그 까닭이다.

  힘은 어쩌면 돈과 같다. 다른 게 있다면 역전의 기회가 없다는 것.

  참 아이러니하다. 뭐든 할 수 있는 세계임에도 그럴 수 없는 게 있다.

  죽은 자들의 세계는 현실과 이상, 그 경계에 자리 잡은 모호한 세계다.

  “하다하다 넌더리가 나서 하고 싶은 일로 돌아왔지.”

  “탑의 사자였을 땐 뭐하셨는데요?”

  “알지 않나. 거기서 하는 일이 다 그게 그거지. 다만 나는 아가씨보다, 이난이 하는 일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군.”

  “아....”

  탑을 공격하는 도시와의 싸움. 솔이 듣기로 이난과 차일은 그곳에 참여한다고 들었다. 그들의 목표는 도시의 지배자들은 처분하는 것. 즉, 지하로 떨어트리는 일이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은밀하게, 때로는 과격하게 이루어진다.

  “거긴 실력 좋은 사람들만 들어간다던데요.”

  “툭 쳤는데 지하로 굴러 떨어져버리면 곤란하니까. 아가씨가 아는 이난도 차일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놈이야. 성질은 글러먹었지만.”

  솔은 그들의 힘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엘리자베스가 폭주할 때 솔을 포박하고 있던 인형을 둥둥 띄운 것과, 엘리자베스를 부숴버린 것 정도.

  얼마 전 인신매매단의 아지트를 그 두 사람이 순식간에 털어버렸다는 것까지는 희나리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어느 정도 길래요?”

  “나도 가늠이 잘 안되지만, 만약 그 두 사람이 적이라면.......”

  휴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윽고 피식 웃었다.

  “그까짓 탑 뛰쳐나갈 거다. 특히 이난 그놈. 아주 고약한 녀석이거든.”

  세 사람이 앉은 테이블에 침묵이 돌았고, 솔의 표정을 살피던 휴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전혀 믿지 않는 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머리 뜯고 싸우던 사람들이요?”

  그리고 그 대꾸에 휴는 웃겨서 다시 웃었다.

  “둘에 한해서는 그렇지. 그래도 알아둬. 차일 그 양반이 냉정해서 그렇지 그래도 조용한 사람이야. 그렇게 된 건 이난 때문이라고. 이난이 무조건 나쁜 놈이야.

  평소 깐족대는 그를 떠올리며 솔을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자그맣게 덧붙인 말에도 말없이 동의했다.

  “뭐, 가장 위험한 건 도현이지만 말이야.”

  솔은 이난과 차일이 활동하는 모습을 본 적 없지만, 희나리는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휴가 솔이 믿지도 않는 말을 꺼냈을 때, 그녀는 조용히 그 의견에 동의했다.

  희나리는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싸움이 시작된 그 순간 두 사람은 마치 어디든 겨눌 수 있는 두 자루의 검이 된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희나리마저 찌를 것 같았다.

  “아가씨는 어떤가?”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희나리는 휴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설마 아가씨도 싸우나?”

  “네, 네?”

  “그럴 배짱은 없어 보이는데. 저 인형이 대신 싸워주나? 지금도 검은 연기 폴폴 풍기고 있는 걸.”

  엘리자베스는 한계에 다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희나리는 작은 친구를 돌아보며 작게 웃었다.

  “저는 그냥 놀고 있어요. 탑에 온지 얼마 안돼서.”

  “활동할 생각은 없고?”

  휴의 물음에 희나리는 아지트 앞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아찔했다.

  “저는 그런 것들, 못할 것 같아요.”

  “안 해도 좋지.”

  희나리의 기죽은 대답을 다독이듯 휴는 명쾌하게 받아쳤다.

  “아무렴 좋지만 탑에서 할 건 딱 세 개 밖에 없어.”

  두터운 손바닥을 펼친 그가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싸우거나.”

  또 하나를 접으며,

  “놀거나.”

  그리고 남은 하나.

  “탑을 떠나거나.”

  손을 치우며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그리고 노는 녀석들은 대개 탑을 떠나.”

  “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희나리는 얼굴이 붉어진 채 결연하게 말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달라지는 법이야, 아가씨.”

  그것은 탑을 제 발로 떠난 자의 충고였다. 하지만 희나리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이 생활이 여기서 더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으니까.

  희나리는 무어라 반박하려했지만 그때 다급하게 열린 문이 그 말을 막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세 사람도, 엘리자몽을 추앙하던 손님들도 요란스러운 소리에 일제히 문을 돌아보았다.

  왁자지껄한 가게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청년은 문을 붙잡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혹시 탑의 사자님 계십니까?”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침묵을 향해 외쳤다.

  “숲이 사람을 잡아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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