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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밤의 아이들
작가 : 어설트
작품등록일 : 2017.6.17

이곳은 죽은 자들의 세계, 사자(死者)의 세계다.
동화 같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

 
1. 사자의 세계 (3)
작성일 : 17-06-20 01:26     조회 : 58     추천 : 0     분량 : 4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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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솔은 남자를 잡아주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절박한 마음만큼 손자국이 빨갛게 났다. 솔이 부어오른 손목을 매만지자 붉은 자국은 사라졌다.

 

  이곳에 온지 어언 한 달. 그러니까 그녀가 죽은 지 이제 꼭 한 달이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고 이젠 익숙해질 법한데, 일이 끝나면 늘 이렇게 복잡한 기분이 든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람의 마음 때문에, 동정하고 싶어도 동정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 때문에.

 

  그러다가 솔은 비웃었다.

 

  남 말 할 처지는 아닌가?

 

  오늘 일도 끝났겠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솔은 이제 그만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문득 옷자락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옷은 계속 당겨져 있었기에, 그제야 솔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탑은 언제나 열려있다.

 

  그리고 새 손님은 끊이질 않는다.

 

 

 

 

  바람이 들어와 반쯤 친 커튼을 밀고 들어왔다. 선반을 넘어 책장을 훑고 도달한 곳은 어느 청년의 머리카락이었다.

 

  머리를 쓸어 넘기던 도현은 문득 창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마지막 퍼즐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가 맞추고 있는 퍼즐은 백색이었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도화지 같은 새하얀 퍼즐이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바탕 위에 도현은 마지막 퍼즐을 두었다. 그 다음 그는 턱을 괴고 백색 퍼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이번엔 꽤 강한 바람이었는지 커튼이 소리를 내며 펄렸다. 그 순간 도현의 입가에 바람처럼 미소가 번졌다.

 

  독은 독을 잡는다고 했던가. 길었던 싸움이 비로소 끝이 났다.

 

  이제 작은 톱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할 차례였다. 그것은 아주 작지만 많은 것을 움직이게 할 퍼즐 조각이었다.

 

  잠잠히 퍼즐을 바라보고 있던 도현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솔이었다. 그는 다정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하였나요?”

 

  “네. 너무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법이다. 타인의 마음과 말이 다르다면 더욱더. 그렇기에 사람을 너그럽게 믿는 솔에겐 고역이리라.

 

  “괜찮습니다. 그게 탑의 역할이니까요.”

 

  도현은 싱긋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기억은 좀 어때요?”

 

  도현의 물음에 솔은 눈을 깜빡이다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이요. 이쯤 되니까 저도 답답하네요.”

 

  처음부터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름 하나 뿐이었다. 사고를 당한 모양인지 이 세계에 왔을 땐 생전의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에 대한 것, 관련 된 모든 것이 하얀 백짓장 같았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도현이었다. 그는 기억을 잃고 초원을 방황하는 솔을 탑으로 이끌었고, 그녀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말 돌아오는 거 맞아요?”

 

  사고 등의 이유로 충격을 겪고 죽었을 때 종종 있는 경우라고는 하지만, 벌써 한 달 째다. 알고 있는 건 아직도 이름 하나. 이쯤 되니 솔은 영영 기억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닌가 불안해졌다.

 

  그런 솔의 마음도 모르고 도현은 느긋했다.

 

  “사자의 세계에서 잃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기억이란 게 차근차근 흘러올 때도 있지만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릴 때도 있는 법이죠. 솔 양이 걱정해야 할 건 돌아오지 않는 기억이 아니라 그런 것들입니다. 갑작스러운 기억에 없던 미련이 생겨 갑자기 미쳐 날뛰면 탑에게 잡아먹히니까요. 그렇죠, 아가씨?”

 

  도현이 귀신처럼 알아차리자 솔은 흠칫 놀랐다. 그것이 신호가 되서 솔의 다리 뒤에 숨어있던 것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정말 귀엽고 앙증맞은 아가씨네요. 대체 뭔가요? 어디서 주웠어요?”

 

  모습을 드러낸 건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어여쁜 인형이었다. 도현을 올려다보면서 청초한 푸른 눈을 깜빡이는 인형을 보고 솔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이게 대체 뭐에요?”

 

  말하고 걷는 인형이라. 듣도 보도 못했다. 그건 도현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뚜벅뚜벅 걸어와 인형을 번쩍 들어올렸다.

 

  “정말 뭐지?”

 

  -짝!

 

  그 순간이었다.

 

  인형의 고사리 같은 손이 날아와 도현의 뺨을 후려쳤다. 생긴 것과 다르게 싸대기를 갈기는 힘은 여느 사람 못지않았다.

 

  “풉.”

 

  솔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고 도현은 홱 돌아간 고개를 바로 했다.

 

  “어라?”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런 도현을 매섭게 노려보며 인형이 냉랭하게 말했다.

 

  “놓아라, 인간.”

 

 

 

 

  “엘리자베스입니다.”

 

  라고 인형이 자기소개를 한다.

 

  엘리자베스는 소파에 두 다리를 뻗고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다.

 

  주인 외에 누가 자기를 만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엘리자베스라는 인형은 도로 바닥에 내려놓자 얌전해졌다.

 

  솔은 엘리자베스를 한 번, 도현의 조그만 손자국이 난 뺨을 한 번 흘금 보며 물었다.

 

  “인형도 죽나요?”

 

  도현은 언제 맞았냐는 듯 평소처럼 돌아와 싱긋 웃었다.

 

  “그럴 리가요.”

 

  “그럼 인형의 탈을 쓴 사람인가요?”

 

  “모호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인형의 탈을 쓴 미련... 인가?”

 

  “주인님의 미련이 강해 제가 태어난 것이죠.”

 

  도현의 말을 받아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미련이 살아있는 것도 만들 수도 있다구요?”

 

  솔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비슷한 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고작해야 주인의 명령을 입력받고 범위 안에서 움직일 뿐입니다. 의지나 생각은 고사하고 말도 거의 하지 못하죠. 도대체 어떤 미련이기에 한낱 인형이 감정을 가지게 된 건지 저도 궁금하군요.”

 

  도현은 불쾌하다고 뺨을 후려친 부분을 지적했다. 평범하게 만들어진 존재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 주인님께 특별한 존재이니까요.”

 

  엘리자베스는 딱 잘라 말했다.

 

  “전 주인님의 선물입니다.”

 

  말투는 차가우리만치 담담했지만 반박하기 어려울만큼 확신에 차있었다.

 

  “주인님께서 가장 외롭고 고독할 때 찾아온 유일한 친구가 저입니다. 주인님께는 저밖에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아무런 감정도 담지은 채 엘리자베스는 주인이라는 자에게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세계에 왔을 때, 전 주인님께서 비로소 외로움에서 벗어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 자의 삶은 죽은 자에게도 강한 영향이 작용한다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사람을 그다지 만나 본 적이 없는 주인님께서는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시고 혼자 있으려 하십니다. 제가 탑에 오게 된 건 그 때문입니다.”

 

  고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주인은 점점 무너졌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인형은 주인을 구하기 위해 탑을 찾았다.

 

 유리 눈동자가 솔과 도현을 한 번씩 비추었다.

 

  “저희 주인님을 탑으로 인도해주십시오.”

 

  엘리자베스는 자기 주인을 구제해 주기를 바랐다. 주인을 구원하는 것은 쓸쓸한 고독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탑에 온지 한 달 된 솔도 탑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도현뿐이었다. 탑에 머무는 사자들이 결코 적다곤 할 수 없지만 만나기가 어렵고 접점도 그다지 없다. 친분을 쌓는다한들 관계를 지속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들은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존재이므로.

 

  “엘리자베스 아가씨도 보셨겠지만, 친구를 만들고 싶은 거라면 탑보다 도시가 나을 텐데요?”

 

  “그들은 대가를 요구하더군요.”

 

  “저도 대가를 요구할 겁니다.”

 

  “이곳이라면 치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탑이 아가씨의 주인님을 거부했을 경우 그 분을 오랫동안 뵙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각오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아가씨의 길이라면 그 분이 깨어나실 때까지 저는 기다릴 겁니다.”

 

  엘리자베스의 여지없는 대답에 도현이 돌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충성스럽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인형이군요. 좋습니다.”

 

  그는 한 손을 들어 작은 손자국이 난 뺨에 손을 대었다. 그의 손이 닿았다 떨어지자 붉은 자국은 금세 지워졌다.

 

  시종 여유로운 도현이 솔을 돌아보았다. 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솔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갔다 올까요?”

 

  “아하하, 솔 양은 눈치가 빨라서 좋아합니다.”

 

  “그대신 당분간 부르지 마세요.”

 

  곱게 받아들일 솔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솔은 바삐 움직였고 그녀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것도 있었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도현은 곤란한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잠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눈을 뜬 도현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도현을 오랜 시간 안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마냥 상냥한 사람이 아니란 건 솔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모습은 어딘가 불길하다.

 

  “알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꺼림칙했지만 원인까지 알 순 없었다. 다만 도현은 가끔 시간 너머를 본다.

 

  “아참,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안을 떨치며 도현의 집무실을 나가려는데 도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뚜벅뚜벅 좁은 보폭으로 문을 향하던 인형도 걸음을 멈추었다. 도현은 막 돌아선 인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될 겁니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동시에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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