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실 필욘 없습니다. 가족은 그 단어 자체로도 효력이 발생하는 단어. 결국 무엇이든 가족은 가족인 셈입니다.
마더의 말이 느닷없이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에 소유가 자그마하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더가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서로가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상대방을 가족이라 생각한다면 그 정신적인 다짐으로 인해 상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남녀가 서로 만나 정을 쌓고, 그로 인해 가족이 되는 이치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모 자체만으로도 가족이 성립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정신적인 교류를 가짐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가족이라 인정하는 것입니다.
소유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더의 말대로라면 실프가 말하는 가족은 정신적인 교류를 주고 받는 가족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혈연관계는 아닐지라도, 그와 비슷한 '친구보다 좀 더 높은 단계인 친밀한 관계의 무언가'라는 것이었다.
소유가 이해한 듯 하자 마더는 다시금 정령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령의 등급부터 시작해 정령마법, 소환 의식, 그리고 그에 걸맞는 각자의 친화력까지.
듣고 있는 실프가 다 놀랄 정도로 마더의 설명은 무척이나 정확했고, 또 그걸 단번에 전부 이해해 버린 소유도 마더 못지 않게 대단했다.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실프의 경외심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테론의 시대적 상황은 지구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과학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기에 현재의 테론은 수천 년이 답보 상태이며, 그런 만큼 계급사회가 더욱더 뚜렷한 편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마친 마더가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가만히 서 있던 뮈제런이 실프가 든 새장을 들고 방을 나갔다.
실프는 어차피 정령을 설명할 때 필요한 표본의 역할이었기에, 설명이 끝난 지금은 더이상 필요치 않았다.
문이 닫히자, 마더가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소유 님은 그런 귀족 사회에서도 최상위에 해당하는 공주로서 생활하시면 됩니다. 그에 맞는 예의는 모두 소유 님에게 프로그램해 드렸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실 것입니다.
소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조신하고, 언제나 기품있게. 나아가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 것이며, 공주에 걸맞는 지식과 기예를 철저히 쌓는다.
'공주'라는 직책에 어울리는 자세와 마음가짐은 확실히 프로그램돼 있었다.
소유가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준 마더가 곧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으로...
마더의 설명이 이어지자, 소유는 다시 그것을 가만히 경청했다.
-테론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위험이란 것은 시공간적인 개념이 없기 때문에, 항시 대비하셔야 합니다. 그렇기에 조만간 소유 님이 테론으로 가시게 되면 소유 님의 안전을 위해 테론에 맞춰 개발한 기사형 휴머노이드인 '가디언Guardian'을 호위로 붙이겠습니다. 오로지 소유 님의 명령에만 움직일 것이며, 기본적으로 소유 님의 안전을 위한 명령어가 입력되어 있어 소유 님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답 없이 그저 머리만 끄덕여 보인 소유가 이내 물었다.
"테론엔 언제쯤 갈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해."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소유는 아직 조금 남아있는 유자차를 한모금 목 뒤로 넘긴 뒤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
칠흑의 빛이 창을 통해 넘어오는 게 보였다.
마치 멍한 듯, 그것을 바라보던 소유가 문득 입을 열었다.
"실프는?"
제법 준비할 게 많아서 그런지 마더는 재깍 대답하지 못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딱딱하기 그지없는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소유 님이 테론으로 가실 때 같이 보낼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테론이 더 편할 테니까요.
"응."
-혹시 원하신다면 하녀 정도로 쓰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아이가 원하지 않을 거야."
-그것도 그렇겠군요.
마더가 순순히 긍정을 표했다.
마더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원하신다면 인위적으로 세뇌를 시킬 수 있습니다.
"아니야. 그냥 원래 살았던 곳에 보내줘. 그 아이도 돌아가길 원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짧은 마더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