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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60. 왕비의 한
작성일 : 22-01-27 13:33     조회 : 27     추천 : 0     분량 : 8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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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는 독을 이겨내고 일어났다. 페데르는 유아가 일어난 후, 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궐을 떠났다. 이후 유아는 어느 순간 주기적으로 자신의 귓가에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찾아 다녔다. 그리고 그녀가 도착한 곳은 궐내에 있는 유일한 폐가. 과거 자인왕후의 처소로 쓰였던 곳이었다. 연실은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어 팔을 감싸 안았다.

 

 “마마. 여기 귀신 나온다는 곳 아니에요?”

 “그래?”

 “자인왕후의 원혼이 있다잖아요.”

 “그런가?”

 “겁도 없어.”

 

 유아는 문을 끼익 열고 들어갔다. 처소 안은 정말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강심장인 유아마저도 긴장할 만큼.

 

 “여기가 자인왕후께서 계시던 곳이란 거지?”

 “예. 그렇대요. 허조대왕께서 지금의 왕대비마마에 새 장가 드신 후에, 귀신을 봤단 궁녀가 수두룩하대요.”

 “그래보이진 않는구나.”

 “예?”

 “그렇다고 하기엔... 안은 깨끗한 걸?”

 

 유아의 말에 방 안을 들여다보니, 군불만 때지 않았을 뿐. 방 안은 정말 깨끗했다. 거미줄 하나 없이.

 

 “자인왕후께선 깨끗하고 정갈한 분이라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귀, 귀신이 치웠다고요?”

 “설마. 그러려고.”

 “마마, 어서 나가요. 몸 성히 돌아온 지가 언젠데 또 이러세요.”

 “괜찮아. 계속 있으니 오히려 안정감 있고 좋은 걸.”

 “이러시면 정말 버리고 가요?”

 “여길 써야겠구나.”

 “뭐라 하셨습니까?”

 “종종 여길 써야겠다고.”

 “왜요?”

 “궐엔 눈이 많으니까.”

 “차라리 들키고 말지. 더는 못 참겠어요. 나가요.”

 

 유아는 연실의 힘에 이기지 못하고 폐가에서 나와야 했다. 유아는 왠지 이 전각이 마음에 들었다.

 

 ***

 

 성은 여전히 빈전을 지키고 있었다. 유아가 회복이 되었다는 소식도 이곳에서 들었다. 유아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가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성은 아주 잠깐 잠이 들었다.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됩니까!”

 

 성의 귓가에 내리꽂는 목소리. 눈을 감은 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운명이라 믿었습니다.”

 

 성은 눈을 떴다.

 

 “차내관...”

 

 성이 봉수를 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이곳은 대전 안이었다.

 

 “할마마마?”

 

 젊은 시절의 허조대왕과 뒷모습만 보여주는 여자. 복색을 보아하니, 성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인왕후 같았다.

 

 “중전.”

 

 허조대왕은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왕후를 보았다. 왕후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뒷모습만 보여주었다. 성은 손을 휘저어 보았다. 허조대왕에게도 곁에 서 있는 봉수의 아버지, 상선에게도 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꿈속인가?”

 

 성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허조대왕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제야 자인왕후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놀랐다. 유아와 너무도 닮은 얼굴. 그녀는 울고 있었다.

 

 “유아야...”

 “중전. 내가 그리해야 백성에게 쌀 한 톨이라도 더 줄 수 있소.”

 “비겁한 변명이신 줄 압니다. 허나, 뜻대로 하소서. 제가 언제 지아비의 뜻을 거스른 적이 있었나이까?”

 “미안하오. 내가... 힘이 없는 왕이라서.”

 “차라리, 제 손을 잡지 말지 그러셨습니까?”

 “어찌 그리도 서운한 말씀을 하시오.”

 “전하께 연모는 참 쉽습니다. 그것마저 가지는 것으로 여기시니. 제 장례는 오래 치르지 마소서. 잊으소서. 그리고... 전하의 옆자리에 갈 여인의 마음은 영원히 얻지 마소서. 또한 평생 제가 곁에 있음을 느끼며 사십시오.”

 

 자인왕후의 표정은 비장해보였다. 마치 저주를 내리듯 그녀의 붉게 물든 눈이 허조대왕을 얼어버리게 했다. 그건 성도 마찬가지였다. 유아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인왕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성은 허조대왕의 얼굴을 살피며 자인왕후를 따라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지금의 폐가. 왕후의 처소였다.

 

 “허면, 이곳이 정말, 자인왕후의 처소란 말인가?”

 

 자인왕후가 들어간 후, 성은 자신의 앞에서 쾅하고 닫힌 처소를 들어갈 수 없었다. 굳게 닫힌 문은 아무리 당겨도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열린 문. 복도 끝자락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자인왕후가 보였다. 어둠 속에 홀로 쓰러져 있었다.

 

 “마마! 아무도 없느냐?! 아무도 없느냔 말이다!”

 

 성이 아무리 외쳐도 자인왕후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성은 자인왕후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피를 토하고 있었다.

 

 “설마...”

 

 자인왕후는 자신의 목구멍으로 솟구쳐 오르는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힘겹게 말했다.

 

 “다시... 돌아오리라... 내 이곳에... 영원히...”

 

 성은 유아의 얼굴을 하고 죽어가는 자인왕후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피를 토해내는 모습을 보니 정신이 아득했다.

 

 “안 돼. 안 돼!”

 

 ***

 

 대비전. 성희는 청원의 처를 불러 앞에 앉혔다. 청원의 처는 아들 둘을 대동하고 잔뜩 긴장한 채 앉자 있었다. 성희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청원의 처와 아들 둘을 훑어보았다.

 

 “그래. 어찌 줄줄이 상중인지. 전하께서 승하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중전도 그렇고, 혜빈도 그렇고. 아비를 잃었으니. 쯧쯧쯧... 이래서 며느리 들이는 일에 더 신중해야하거늘.”

 

 청원의 처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고생이 많지요? 부부인?”

 “고, 고생은요. 마마께 누를 끼쳐드려 송구할 뿐이지요.”

 

 성희는 피식 웃었다.

 

 “뭘, 그런 것까지. 그래, 자네들은 제대로 된 관직하나 없으시다고?”

 

 청원의 처보다 아들들은 더 긴장했다. 대신 청원의 처가 답했다.

 

 “예! 생원시는 단박에 합격을 했사온데, 어찌 된 것이...”

 “중전의 오라비들이신데, 자리 하나 없어서 쓰나?”

 “그러게 말이옵니다. 아무리 일러드려도, 도통 들으려하질 않으시니...”

 “중전이 좀 꽉 막힌 인사지. 할미인 내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이렇게 엉망진창이니.”

 “송구하옵니다.”

 “뭐, 제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아닌데, 가르치는 것도 한계가 있지요. 내 대제학께 일러 적당한 자리를 알아두라 하겠습니다.”

 

 청원의 처는 바닥에 엎드려 연신 절을 했다.

 

 “황공하옵니다, 대비마마! 황공하옵니다!”

 “잘, 하세요.”

 “마마께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중전도 이렇게 말귀를 좀 알아먹었으면 좋겠건만.”

 “제가 잘 일러두겠습니다.”

 “일러둔다고 들은 척이나 하겠는가? 첩실 말을.”

 

 그 말에 청원의 처는 순간 얼굴을 들지 못했다.

 

 “됐네. 이만 가보시게.”

 “예. 마마.”

 

 청원의 처와 아들 둘이 밖으로 나갔다. 청원의 처는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씩씩 거렸다. 그리고는 한번 처소를 째려보았다.

 

 “지도 첩실인 주제에. 지가 나보다 더 하면 더했지. 쳇!”

 “어머니. 정말 자리를 하나씩 주는 거예요?”

 “모르지. 자리도 자리가 될 만한 걸, 주겠어? 시끄럽고 따라와! 중전한테 가서 따져야지.”

 

 그렇게 세 사람은 유아가 있는 중궁전으로 향했다.

 

 ***

 

 영목의 집. 이젠 이곳이 홍씨 일가의 주요 거점이었다. 영목은 굳은 표정으로 윤희와 마주앉아 있었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군요.”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어 찾은 겁니까?”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제 아우에게 무엇을 제안하셨습니까?”

 “제안이라니?”

 “솔직하게 말씀 해주십시오. 무엇이던, 이젠 저와 공유하지 않으시면 어려우십니다.”

 “난 최근엔 미령이와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정말이십니까?”

 “내가 그런 걸로 거짓을 말할 만큼, 하수는 아니지요.”

 “그럼, 됐습니다.”

 “그 아이, 요즘 무당과 어울린단 말은 들었습니다만.”

 “제가 이만 할 일이 급히 있어-”

 “무엇이라 했기에 이러는 겁니까? 영수야 말로, 이젠 내게 숨기는 것이 없어야지요.”

 

 영목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령이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누군가 전하의 곁에 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제안을 했다고.”

 “본인 입으로 직접?”

 “정확하겐 도와줄 이가 또 있다고 했죠.”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요? 누가?”

 “그것이 염려되는 겁니다. 누군가 그 아이에게 접근해 헛바람을 불었을까 봐요.”

 “미령이가 아직도 주상에게 집착합니까?”

 

 윤희의 말에 영목은 말을 잇지 못했다. 윤희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비실비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약을 달고 살았던 아이. 거의 약기운으로 생을 연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이였다. 모두가 내일이면 죽을 것이라고 입방아에 올렸지만, 그 내일은 매일 매일 늦춰졌다. 그렇게 16년. 홍미령은 16년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보지요.”

 “아닙니다. 아우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누군지만 알아내면 됩니다.”

 “그건, 나도 알아보죠.”

 “그럼.”

 “이제, 정계복귀 하셔야죠?”

 “예? 아직 상중입니다.”

 “그건, 내 아우가 하면 됩니다. 진짜 아비도 아닌데, 이제 그만 해도 됩니다.”

 “그래도 이목이...”

 “쯧쯧쯧... 상주가 되라 한 것은 상징적인 것이지, 진짜 상주가 되라는 게 아니죠. 똑똑하다가도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십니다. 차기 영수가 된 이상은 그러면 안 되지요.”

 “명심하겠습니다.”

 “주상의 벗으로 입궐부터 하세요. 곁에서 힘도 주시고, 어찌 지내시는지도 살펴보고.”

 “예. 그러지요.”

 

 영목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벗은 출궁하는 순간, 잠시 잊으세요.”

 “예?”

 “그 자리에 벗은 없어요. 연모도 곧 없어질 테죠. 난 알아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랜 시간 봐왔으니까. 그러니, 강해지세요.”

 

 영목은 윤희를 바라보았다. 저 냉정한 말투와 걸맞은 날카로운 눈빛. 저 여자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만약 제가 강해져서, 주상의 목에 칼이라도 겨눈다면. 마마께선 어느쪽을 택하실 겁니까? 우리 홍가입니까? 아니, 주상입니까?”

 “둘 다 핏줄, 이네요.”

 “그렇죠.”

 

 윤희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영목을 노려보았다.

 

 “착각하고 있군요. 난 핏줄 따위에 흔들리지 않아요. 핏줄을 위해 살지도 않아요. 내 삶은 오로지 날 위한 것.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값지게 되는 것. 그게 중요하죠. 어느 쪽을 택할 거냐고? 그야, 더 강한 놈. 내 삶을 더 강하고, 빛나게 만들어줄 쪽. 난 거길 택할 거예요.”

 

 ***

 

 늦은 밤. 말순 아비는 또 다시 고기심부름에 나섰다. 밤길인데다 이번엔 운종가가 아닌 반촌 백정에게 직접 가야하는 길이여서 더 으스스했다. 반촌은 밤이 되면 무슨 무리가 나타날지 모르는 곳이었다. 성균관과 연결된 별도의 동네라, 군관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순 아비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길을 걸어갔다.

 

 “어이.”

 

 말순 아비의 뒤에서 들려오는 젊은 사내의 목소리. 말로만 듣던 반촌 패거리인가? 말순 아비는 헤헤헤 웃으며 뒤를 돌았다.

 

 “지가 갈 길이 바빠서. 지송한데, 갔다 와서야 값을 치를 수 있을 건디요?”

 “그래?”

 “그렇지라. 지가 지금 고기 심부름을 가니께유.”

 “온 나라가 상중인데, 고기를 먹어?”

 “지 주인마님이 그딴 건 모르는 인간이지요.”

 “개차반이군.”

 “그렇지라. 한낱 노비가 뭔 힘이 있겄어유.”

 “그래. 가 봐. 몇 덩이 더 사서 가는 길에 좀 나누고.”

 “그라지라. 암만유. 그럼. 수고하셔유~.”

 

 말순 아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말이야.”

 

 말순 아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너, 말순 아비 맞냐?”

 

 말순 아비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온 몸이 굳어 뒤를 돌아보지도 못했다.

 

 “맞구나?”

 

 말순 아비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지를 어찌 알고.”

 “누가 시켜서. 여기로 올 거라고.”

 “주인마님 인가유?”

 “아니. 아닌데?”

 “그럼...”

 “알아서 뭐해. 어차피 죽는데.”

 “그게 무슨-!!!!!”

 

 퍽! 소리와 함께 젊은 사내들은 말순 아비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공중으로 말순 아비의 피가 튀어 올랐다.

 

 같은 시각, 유아는 성의 허락을 받고 늦은 밤에 궐 밖을 나섰다. 며칠 바람을 쐬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신씨의 집. 연실과 앞으로 지낼 곳을 처음 공개하기로 한 것이었다. 연실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그렇게 좋아?”

 “그럼요.”

 “이해는 된다.”

 “이제 좀 웃으시네, 우리 아가씨.”

 “아직도 아가씨래.”

 “예, 중전마마. 됐어요?”

 

 유아는 연실의 모습에 행복해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행복했던 자신과 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말순이도 온 댔는데?”

 “정말?”

 “팔불출이야. 온 동네방네 죄다 소문내놓고.”

 “잔치라도 해야겠네. 기분이다. 내가 다 내마.”

 “정말요?”

 “당연하지.”

 

 청원의 집. 말순이는 어머니와 함께 쪽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늦어?”

 “그러게. 느이 아부지 요즘 발이 자꾸 느려지나벼.”

 “아버지도 이제 외거 할 수 있지 않아?”

 “그러게 말이여. 곧 얘기 한다니께, 염려 말어.”

 

 반촌. 어느 골목 길. 유난히 밝게 뜬 보름달 아래 들리는 소리.

 

 “살... 살려주소... 지발... 살려.... 주소...”

 

 어둠 속에 묻혀버린 말순 아비의 외침. 말순 아비는 기운이 다 할 때까지 그렇게 외쳤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안 되겄다. 너 먼저 가.”

 “아니야.”

 

 두 모녀가 실랑이 하는 모습을 지나가던 집안 다른 노비, 만수가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아재는 아직 이죠?”

 “그러게나 말이여.”

 

 만수는 왠지 불안한 기색이었다.

 

 “만수야. 뭔 일이여?”

 “아니, 저 양반들 반응이 좀 이상해서요.”

 “뭐가?”

 “이쯤 되면, 왜 고기 안 가져 오냐고 찢어 죽이겠다 난린데, 잠잠하잖아요.”

 “궐에 갔다 와선 기운이 쪽 빨렸나?”

 “아무래도 불안해요. 제가 반촌 갔다 올게요.”

 “아니여. 곧 오겠제.”

 “갔다 올게요.”

 

 만수는 급히 집을 나섰다. 그리고 점점 식어가는 반촌의 길목에 그가 나타났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아재! 아재!!”

 

 만수의 손에 느껴지는 걸쭉하고 기분 나쁜 액체. 어둠 속에서 더 검붉게 보였다.

 

 “아재!!”

 

 ***

 

 ‘휘~잉~’

 

 이상하리만큼 봄바람이 세찬 저녁이었다. 대비전의 창문이 바람에 덜그럭거렸다. 빈전으로도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자인왕후의 옛 처소. 그 근처를 지나가던 궁녀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으아악!!!”

 

 ‘휘~~~이~~이~~~~잉~’

 

 빈전. 성은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 곁에 있던 봉수가 성에게 다가왔다.

 

 “전하. 용안이 어두우십니다.”

 “꿈을 꾸었다.”

 “좋지 않은 꿈이었습니까?”

 “그래. 아주 께름칙했다.”

 “잊으소서. 꿈이란 본디, 허황된 것이 아닙니까?”

 “궐에 있는 그 폐가가, 자인왕후의 처소라 했던가?”

 “예. 어찌 그러시옵니까?”

 “혹시, 중전이 그곳을 본 적이 있던가?”

 “그것은 저도 잘... 알아볼까요?”

 “아니다. 그곳의 접근을 더 금해야겠다. 중전도.”

 

 ***

 

 신씨의 집. 책방 백씨는 물론이고, 청씨, 만영의 상단 식구들하며 페데르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 유아와 연실이 합류했다.

 

 “중전마마.”

 “다들 왜 그러세요? 생전 모르는 사람 보듯이.”

 “이젠 아주 높은 분 아닙니까?”

 “그러지 마세요. 어울리지 않아요.”

 “그럼. 편히.”

 

 청씨가 아주 즐거워 보였다. 아무래도 신씨를 놀릴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신씨는 불안한 듯 청씨를 붙잡았지만, 청씨는 신씨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하지 마. 좋은 날이야. 오늘은 하지 마.”

 “어허~ 오늘 같은 날이 아주, 놀려먹기 좋은 날이지~! 안 그렇습니까? 마마?”

 “그럼요. 동의합니다, 아재.”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누군가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말순이었다.

 

 “말순아.”

 

 유아는 잔뜩 운 얼굴의 말순을 보고 놀랐다. 놀라기는 모두가 마찬가지.

 

 “우리 아부지... 아부지가...”

 “아저씨가 왜?”

 “마마... 우리 아부지 죽어요... 우리 아부지 좀 살려주세요.”

 “페데르!”

 

 유아의 부름에 페데르는 급히 자신의 짐을 챙겨 들었다.

 

 ***

 

 대비전. 성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미 교대를 할 시간이었지만, 편상궁이 성희를 찾았다.

 

 “마마.”

 “소식은?”

 “깔끔하게 해결 됐다합니다.”

 “그래. 두둑이 챙겨 줘.”

 “예. 이미 그리 했습니다.”

 “잘했다.”

 

 ***

 

 “갔다 버려!”

 

 청원의 집. 청원의 처는 마당에 쓰러진 말순 아비 모습을 보지도 않고 외쳤다.

 

 “내 집 마당에 그 더러운 피 한 방울이라도 남아있으면, 죄다 경을 칠 줄 알아!”

 “그래도, 마님!”

 

 말순 어미가 바닥에 엎드려 애원했다.

 

 “시끄럽고, 갔다 묻어.”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요. 의원만 부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네 이년! 너도 함께 죽고 싶은 게냐?”

 “마님! 말순 아부지는 이 집안 씨종입니다! 주인마님께서 살아 계셨으면 이렇게는 외면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당께요! 치료만 하게 해 주십시오!”

 “뭘 하고들 섰어?! 저 년도 같이 때려 죽여!”

 “누굴 죽이란 말입니까?!”

 

 호통과 함께 유아가 나타났다.

 

 “중전마마?”

 “아이고, 마마!...”

 “누굴 죽여요?”

 “상관 마십시오. 집안일입니다.”

 

 유아는 멍석에 누워있는 말순 아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청원의 처를 보았다.

 

 “감히. 중전을 앞에 두고 날 내려다 봐?”

 

 그 말에 청원의 처는 버선발로 후다닥 내려와 고개를 숙였다.

 

 “마마를 뵙습니다.”

 “페데르는 어서 시료해.”

 “예, 마마.”

 “하오나, 마마-”

 “법도에 첩은 이 집안의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당장이라도 네 아들들과 함께 그리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해줄까요?”

 “아닙니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것이니, 잠자코 들어가 계세요.”

 “죽을 놈을 어찌. 그것도 노비를. 마마, 혹여 누가 알기라도 하면-”

 “백성의 목숨 하나도 귀이 여긴다 칭찬하겠지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마마 마음대로 하신 일입니다.”

 “그러세요. 그게 도움이 되겠네요. 그리고 이 늦은 시간에 말순 아비가 반촌으로 가야했던 이유는 따로 죄를 묻죠. 들어 가보세요.”

 

 청원의 처는 달리 반박할 수 없어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

 

 다음날 아침. 대전. 성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있었다. 잠을 거의 이루지 않았다고 봐야 했다.

 

 “전하. 세숫물을 대령하였나이다.”

 “들라.”

 

 세숫물을 들고 등장한 이는 나인 성씨였다.

 

 “네가 어찌?”

 “제가 하고 싶어서요. 전하를 뵙고 싶기도 하고요.”

 

 성은 나인 성씨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리 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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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7. 새 왕 2022 / 1 / 27 30 0 6842   
56 56. 범인은 누구인가 2022 / 1 / 27 31 0 7060   
55 55. 걱정 2022 / 1 / 27 33 0 5912   
54 54. 태양을 삼켜라 2022 / 1 / 27 29 0 5370   
53 53.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2022 / 1 / 27 27 0 6099   
52 52. 금등의 존재 2022 / 1 / 27 27 0 5319   
51 51. 떡밥 2022 / 1 / 27 27 0 6124   
50 50. 왕의 유언(2) 2022 / 1 / 27 32 0 6343   
49 49. 왕의 유언(1) 2022 / 1 / 27 28 0 6031   
48 48. WANT 2022 / 1 / 27 31 0 6919   
47 47. 피의 명부 2022 / 1 / 27 29 0 7949   
46 46. 가면을 벗다 2022 / 1 / 27 27 0 5448   
45 45. 제발 내버려 둬 2022 / 1 / 27 27 0 7325   
44 44. 일장춘몽 2022 / 1 / 27 30 0 7467   
43 43. 온 몸이 부서지는 2022 / 1 / 27 34 0 4986   
42 41. 미치도록 2022 / 1 / 27 31 0 7834   
41 41. 내 아내의 남친 2022 / 1 / 27 36 0 6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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