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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59. 피가 모자라
작성일 : 22-01-27 13:32     조회 : 29     추천 : 0     분량 : 8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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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궁전. 대전은 아직 재정비를 하지 못해 빈 방이었다. 쓰러진 유아는 동궁전에 누워있었다. 페데르가 유아의 상태를 살폈다. 성은 곁에 있었다. 아주 화난 얼굴이었다.

 

 “상태가 어떠한가?”

 “전하.”

 “말하라.”

 “아직 독이 몸속에 있습니다.”

 “뭐라? 허면, 그 몸으로...”

 

 성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독에 중독이 된 그 몸 상태로 오로지 자신을 위해 버텼던 것이었다. 유아의 입술은 이미 파랗게 질려있었다.

 

 “고칠 수 있는가? 아니, 고쳐라. 페데르.”

 “예.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 말끔히 낫게 한다면, 너를 어의로 등용할 것이다. 큰 상도 내리겠다. 고쳐라. 반드시.”

 

 성은 유아를 두고 밖으로 잠시 나왔다. 지금 그는 끊임없이 효심을 보여야 했다. 빈전으로 향한 성은 다시 위패 앞에 앉았다.

 

 ‘숙부님. 죄송합니다. 지금 제 머릿속이 유아뿐이어서... 유아가 많이 아파요. 저 때문에, 그 아이가 아파요. 얼마나 더 많이 아파질지 두렵습니다.’

 

 ***

 

 “운명이라 생각해야지.”

 

 대비전. 성희는 아주 불안해보였다. 편상궁은 성희의 심기를 살폈다.

 

 “헌데, 마마.”

 “뭐?”

 “왜 죽었다 하셨습니까?”

 “뭐라?”

 “빈궁을 찌른 아이는 궁녀가 아니질 않습니까?”

 “닥치지 못할까? 다신 입 밖에도 내지 말라지 않았느냐?”

 “멀쩡히 살아있으니, 훗날 후환이 될 것입니다.”

 “그럼. 그 아이도 죽이랴?”

 “허나, 평범하진 않으니...”

 “염려 마. 이미 쇠약해 얼마 가지 않아 죽을 거야. 그래서 둔 거고.”

 

 성희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했다.

 

 “그 노비는 어찌됐어?”

 “곧 해결할 수 있겠다고 전갈이 왔습니다.”

 “그래. 함께 없애버려.”

 

 ***

 

 운종가. 말순 아비는 급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주위의 눈치를 보며 그가 찾아간 곳은 구석진 폐가였다.

 

 “어이! 여기네!”

 

 건물 모퉁이에 서서 눈치를 보던 다른 사내가 말순 아비를 불렀다. 말순아비는 그 사내에게 가서 급히 물건을 건네받았다. 딱 보기에도 피가 물든 고기 덩어리였다.

 

 “상중인데, 이런 거 먹다가 걸리면 어쩌려고. 주상전하도 안 드신다는 고기를.”

 “어쩌겄어. 애초에 그로코롬 배워 쳐 먹은 것을. 고맙네잉.”

 “고생많네.”

 “가네.”

 

 말순 아비는 고기 덩이를 품에 숨기고는 또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청원의 집. 창고에 숨어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청원의 아들들. 곁에는 숯을 피우고 있는 노비들이 있었다.

 

 “왜 이렇게 굼떠?”

 “곧 올 겁니다.”

 “말순 아비도 나이가 꽤 많아. 어디 갔다 팔아버려야지. 영 쓸모가 없어. 느려 터져가지곤.”

 

 그 말에 눈치를 보면서도 노비들은 청원의 아들들을 째려보았다. 둘째는 어째 상중에도 덩치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몰래 숨어 먹을 것을 다 챙겨먹은 덕분이었다. 제사상에 올릴 술도 어느새 준비하고 있었다. 고기만 가져와 구우면 금상첨화였다. 말순 아비가 헐떡이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젊은 노비에게 고기 덩어리를 건넸다.

 

 “어여, 갔다드려.”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고생햐.”

 

 말순 아비는 소매를 탈탈 털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청원의 처가 말순 아비를 불렀다.

 

 “예. 마님.”

 “자네, 마마께 허튼 소리 한 것 아니겠지?”

 “무슨 소리를... 아무 말도 못했지라.”

 “그래? 허튼 소리 마. 혹여라도.”

 “예. 암만유.”

 

 청원의 처는 그러고는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담장 너머 그를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청원의 처가 방 안으로 들어갔음에도, 눈은 떠나지 않았다. 눈이 노리는 것은 말순 아비였다.

 

 “말순 아부지. 어여 와 봐유. 어여!”

 

 말순 어미가 말순 아비에게 손짓했다. 말순 아비는 아내의 부름에 부엌으로 들어갔다.

 

 “왜 그려?”

 “말순이가 이상한 걸 봤대유.”

 “뭘?”

 “아니, 웬 시커먼 남자들이 당신 뒤를 졸졸 따라 댕기다가 말순이가 보니께, 휙 사라졌다는 디.”

 “참내! 다 늙은 노비를 누가.”

 “말순이가 몇 번이고 봤다는디?”

 “헛소리 말고. 자! 이거나 챙겨.”

 

 말순 아비는 품에서 다른 고기 덩이를 꺼내 건넸다.

 

 “으미! 이게 뭐다요?”

 “쬐끔 더 챙겼어. 있다 뒷산에 나무 하러 갈 때 먹자고.”

 “그러다 들키면 경을 칠라고.”

 “주인들도 저러고 쳐 먹는데, 천것들이 먹는다고 뭐라 하겄어? 다 위에 것들 보고 배웠다 하겄제. 먹자고. 챙겨.”

 “요즘 이상하다니께? 당신 요즘 이상해유.”

 “내가 뭘?”

 “아니. 주인마님 돌아가신 후로 당신 이상해졌당께요.”

 “헛소리 할 거면 이리 줘! 태워버릴랑께.”

 

 말순 어미는 필사적으로 고기 덩이를 자신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

 

 “아까운 걸. 알겠슈.”

 

 ***

 

 저녁. 홍영목의 집. 영목은 상중에 잠시 짬을 내어 집으로 왔다. 이제 짐을 챙겨 보함의 집으로 옮겨가야 했다. 영목은 조심스레 동생, 미령의 방으로 갔다.

 

 “미령이 안에 있느냐?”

 

 미령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방구석에 박혀 쭈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라비 들어가도 되겠니?”

 “아니요.”

 “또 어디가 아픈 것이냐?”

 “아니요.”

 

 염려가 된 영목은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미령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비쩍 말라 가여운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어 미안하기도 했다. 영목은 조심스레 미령에게 다가갔다.

 

 “방이 어둡구나. 불을 밝히라 해야겠다.”

 “미안해요. 오라버니.”

 “그런 말, 마라.”

 “내가, 너무 멍청해서.”

 “미령아!”

 “하지만, 곧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꿈을 꿨어요. 아주 귀한 꿈을.”

 “꿈?”

 

 미령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영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미령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안 된다. 우리 집안이 또 다시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미 죄를 지었다.”

 “마음을, 마음이 가는 것이라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예요. 다들 날 이해할 거라고요.”

 “미령아!”

 “이뤄 질 거예요.”

 “전하의 곁엔 중전이 계신다. 전하께선 아주 마음 깊이 그분만을 연모하셔.”

 “하지만...”

 “미령아. 사람의 연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란다. 내가 너에게 세상을 너무 보여주지 못했구나. 이제 더 많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집안의 영수가 되었으니, 널 행복하게 해 줄 사람도 곧 나타날 거야.”

 

 미령은 영목의 손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보다 잘난 사내가 세상에 있다고요? 내가 연모하는 분은 왕이라고요! 더 잘난 사내는 세상에 없다고요!”

 “홍미령! 오라비의 말을 듣지 않을 셈이냐?”

 “죽어도, 포기할 수 없어요. 오라버니가 아니어도, 날 도울 사람은 많아요.”

 “뭐?”

 

 미령은 자리를 떠나버렸다.

 

 “도울 사람이라니... 네가 누굴?”

 

 순간 영목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윤희였다. 권력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위인.

 

 ***

 

 윤희의 사가. 윤희는 책상에 앉아 수를 놓고 있었다. 윤희를 보필할 새로운 지밀상궁이 방으로 들어왔다.

 

 “마마. 궐에서 온 소식입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고?”

 “중전께서 즉위식 직후 피를 토하고 쓰러지셨다 합니다.”

 “저런, 쯧쯧쯧... 해서 주상은?”

 “주상전하께오선 빈전에 계시다 하옵니다.”

 “곁을 지키지 않으시고?”

 “예.”

 “잘하고 계시는구나.”

 “예?”

 “대비는?”

 “김구준 대감이 홍문관 대제학이 되신 후로 자주 만나고 계시다 합니다.”

 “선왕은 어쩌자고 그 자를 홍문관 대제학씩이나 만드셨는지. 끝까지 답답하구나.”

 “영의정 대감 말인데요.”

 “채우겸?”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인답니다. 계속 주상전하와 중전마마를 뵈러 왔다가 갔다 그러신다고요.”

 “그 영감은 그러고도 남아. 별 거 없을 거야. 그나저나, 대비가 조용하다 이거지?”

 “아직 별 말은 없습니다.”

 “수고했다.”

 

 윤희는 다시 수를 놓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지밀상궁이 물었다.

 

 “손수건입니까?”

 “우리 주상이 쓰실 것이라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

 “아, 아주 예쁩니다.”

 “고상하고.”

 “아, 예.”

 “그보다, 중전의 친정. 거기를 지켜볼 눈이 필요한데. 믿을 만한 아이가 있겠느냐?”

 “찾아보겠습니다. 헌데, 무엇을 봐야 합니까?”

 “꼬리?”

 “꼬리, 요?”

 “입이 무거운 아이로.”

 “예, 마마.”

 

 윤희는 청원의 죽음에 대비인 성희가 분명 연관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지켜볼 참이었다. 분명, 남은 가족들은 죽음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

 

 운종가. 백씨네 책방. 책방은 성과 유아의 사랑을 이뤄준 곳이라는 소문이 조선 팔도에 퍼지는 바람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덕분에 백씨는 하루에도 주머니가 찢어질 만큼 돈을 벌어들였다. 옆에 있던 비단가게도 덩달아 장사가 잘 되었다. 무엇보다 돈벼락을 맞은 이는 청씨와 신씨였다. 청씨는 유아에게 반지를 주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나무 가락지도 웃돈을 주고 사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신씨는 유아의 몸종인 연실과 연인관계임이 알려지면서, 줄을 대려는 사람들로 가득이었다. 덕분에 세 사람은 집도 새로 장만했다.

 

 “아이고, 허리야.”

 

 백씨는 제대로 앉을 시간도 없어 온 몸이 쑤셔왔다.

 

 “장사 잘 되면 뭐해. 내가 죽겠네, 죽겠어.”

 

 신씨는 한층 말라 보였고, 안색도 좋지 않았다.

 

 “백씨... 나 물 좀...”

 

 청탁하려는 자들을 피해 다니느라 느는 것은 달리기 실력과 엄폐 기술이요, 주는 것은 몸무게였다. 오늘도 헉헉거리며 피하느라 물 한 모금 먹을 시간도 없었다.

 

 “자네, 그러다 말라 죽겠어.”

 “그러게. 억울해서 안 되겠네. 빨리 연실이를 궐에서 빼내던가 해야지.”

 “그래. 빨리 장가를 가야 끝날 것 같으이.”

 “거, 이런 물건은! 나도 양심이 있지, 이 사람아!”

 

 청씨는 자신의 물건을 대려는 상인과 실랑이 중이었다. 딱 보기에도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들을 들이밀고 있었다.

 

 “이 사람아! 내 명성에 똥칠 할 셈이야? 내가 아무리 뭐든 팔아치우는 방물장수라 해도. 나, 청나라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이야. 이딴 물건은 금 몇 냥을 가져와도 못 파네. 썩 꺼지게!”

 “어르신~”

 “내가 왜 그쪽 어르신이야? 저리 안 가? 조선 팔도에서 영영 장사 못 하게 해 줘? 이딴 물건 어디서든 팔기만 해 봐, 그냥! 확! 안 가?!”

 

 세 남자는 유아 덕분에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마음 한편에는 성과 유아에게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자네, 연실이에게 들은 소식 없나?”

 “마마께선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네.”

 “전하도 참 독하시네. 어찌 한 번을 들여다보질 않으시는지.”

 “앞으로 더 하지 않겠나? 보는 눈도 많고.”

 “마마께서 더 위험해 질 것일세. 부원군 그렇게 된 것 보시게. 에이!”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다 같은 생각일세.”

 “얼마 전에 말순이가 와서 하던 말 기억하나?”

 “말순 아비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순 아비가 뭘 아는 것 같아. 우리가 알아보고 보고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운검은 우리가 볼 수 있잖나. 영화관엔 온다며?”

 “우리가 알아보세.”

 

 부원군 김청원의 의문스런 죽음. 그와 연관된 사람들. 말순 아비는 분명 무언가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

 

 늦은 밤. 달도 뜨지 않은 그믐날이었다. 어둠 속에 사람들의 걸음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는 곳. 산 속 외딴 곳에 덩그러니 있는 건물 안이었다. 건물 안은 남자들이 열을 맞춰 줄줄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가장 상석이 비어있었다. 그리고 건물 앞으로 가마가 멈췄다.

 

 “다들 그분께 직접?”

 “참찬께서도?”

 “헌데, 어찌 대제학이 보이질 않습니다.”

 “화해를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가마에서 내리는 발. 여인의 가죽신이었다. 치맛자락이 바닥을 스윽 쓸며 여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다.”

 

 상석에 앉을 인물이 도착했다는 소리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타난 이는 성희였다.

 

 “다들 일찍 도착하셨습니다.”

 “대비마마.”

 “앉으세요.”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성희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하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사람들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정적이 흐르던 그때, 성희가 입을 열었다.

 

 “다들 중전의 아비 그러니까, 부원군의 부고는 들으셨겠지요?”

 “예.”

 “궁금하시겠죠.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서. 부원군은 내가 죽였습니다.”

 

 그 말에 모두들 놀랐다. 성희가 차분해보여 모두들 갸우뚱할 뿐이었다.

 

 “내가 죽였다고. 허튼 짓거리를 해서 말이지.”

 

 성희가 고갯짓을 하자, 성희를 따른 무사들이 나타나 모두에게 칼을 겨누었다.

 

 “누가 다음 묏자리를 쓰시겠어요?”

 “마, 마마...”

 “여기서 혹, 부원군과 내통한 사람이 있다면. 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없어?”

 “어, 없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저는 부원군과 친분도 없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마마!”

 

 부원군은 정말 성희의 손에 죽은 것일까? 이 와중에도 그들은 의문이었다.

 

 “다들 잊고 있는 게 있어. 20년 전, 내가 그대들에게 준 목숨. 분명히 맹세 했잖아. 그대들에게 준 목숨이니 거두는 건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언제든 그 목숨 값! 내가 받을 수 있다고 했잖아. 그치?”

 “예! 예!”

 “그러니 억울하지 않겠지? 지금 입은 비단옷, 관직, 비싼 쌀밥. 그걸 누가 줬는데.”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대비마마뿐입니다!”

 “그래. 내 온 몸을 바쳐서! 그대들에게 준 권력이다. 다 늙어빠진 왕의 품에 대신 안겨, 내가 그대들에게 준 부와 명예다! 헌데, 감히! 날 기만해?”

 

 모두들 바닥에 엎드렸다. 이마가 땅으로 파고들만큼 그들은 숙이고 숙였다.

 

 “충성의 맹세를 다 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마마!”

 

 성희의 손짓에 무사들의 칼이 거둬졌다.

 

 “그래. 언제든 그대들의 뒤엔 내 칼이 있음을 잊지 말고. 잘 하자고요.”

 

 ***

 

 빈전. 성은 멍하니 위패만 바라볼 뿐이었다. 성의 머릿속엔 온통 유아뿐이었다. 고통스러워하던 얼굴, 숨소리, 순간의 고통에 옷을 움켜잡던 손. 싸늘한 얼굴색. 당장이라도 달려가 어떻게든 품에 안고 싶었다. 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했다.

 

 “전하.”

 

 우겸이 성을 찾아왔다. 아주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 어찌 늦은 시간에 퇴궐도 않으시고.”

 “입궐이옵니다, 전하.”

 “이 시간에?”

 “예. 할 일이 많아서요.”

 “그렇게 많았던가?”

 “인사도 새로 꾸려야하고, 전하께서 조세법을 고치라하시어 그것도 살펴야하고요.”

 “그건 내가 차차 할 것이니 애쓸 것 없습니다.”

 “그보다, 언제까지 빈소만 지키실 요량이십니까?”

 “무슨 말입니까?”

 “이제 왕이십니다. 위, 아래. 아무도 없으십니다. 하실 일이 많으시잖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우선, 차내관 통해 그 동안 모은 자료 보내겠습니다. 검토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혜빈은 계속 궐 밖에 두실 생각이십니까?”

 “우선은.”

 “어째서요? 당장 오늘 날이 밝는 대로 세상이 변할 텐데요.”

 “뭐, 알고 있는 거라도 있습니까?”

 “대비전이요.”

 

 우겸은 청의 위패를 보고는 말했다.

 

 “무슨 생각이셨는지, 김구준 그자를 홍문관 대제학에 복귀시키셨잖습니까?”

 “영상이 계시잖습니까?”

 “전 세력이랄 게 없지요. 그래봤자 젊은 유생들과 젊은 관리들인데. 본디 젊은이들은 진보적이라 명분보다는 논리에 더 잘 움직이지요.”

 “해서?”

 “우선은 즉위 후 첫 번째 인사가 엉망이 되겠지요.”

 “갈아 치우려면 명분이 필요하겠고.”

 “그러면 피를 봐야겠지요.”

 “사화(*역사서에 관련한 옥사, 변고)라도 일으키란 말입니까?”

 “전하의 치세에 그런 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전하께선 폐군이 될 명문을 평생 안고 계셔야하니까요.”

 “내가 일을 벌이긴 크게 벌였지요.”

 “신중하셨어야지요. 초장에 정훈세자의 아들이라 공표하시면, 저들이 평생 가질 명분을 냅다 던져주는 꼴입니다.”

 “그래도 경고는 해야 했습니다.”

 “굳이 그런 방법이 아니여도- 아, 하긴. 패가 이미 있으시지요?”

 “그건, 밝히지 말라는 유언입니다.”

 “예?! 그 좋은 패를요?”

 “허조대왕께서 밝히지 말아 달라 하셨다합니다.”

 “거, 참!”

 

 성은 숨을 깊이 몰아쉬고는 청의 위패를 바라보았다.

 

 “한 번은 성공하시겠지요. 마무리는 하셔야하니.”

 “예?”

 

 성은 미소를 지었다. 우겸은 성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무슨 수가 있으니 저리 웃겠지 싶었다. 무슨 말을 하던,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 위인이 그의 제자였으니까.

 

 ***

 

 “피가 필요해. 네 피가 필요해.”

 

 유아의 방. 어둠 속에서 유아는 악몽을 꾸는 듯 괴로워했다. 괴로웠으나 악몽은 그녀를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다.

 

 “죽은 너의 피가 인연을 만들 것이다.”

 

 하필, 연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유아에게 급히 궁녀 하나가 다가왔다.

 

 “마마.”

 

 귀엽고 앳된 모습의 나인, 성씨였다. 성씨는 유아보다 한 살 어린 스무 살이었다. 성씨는 다섯 살에 궁녀가 되어 어린 시절부터 성과는 알고 지낸 사이였다. 유아의 곁에 믿을 사람이 얼마 없다고 생각한 성은 성씨에게 곁을 지켜 달라 부탁한 것이었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유아의 귓가에만 계속해서 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가, 너의 피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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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 일장춘몽 2022 / 1 / 27 30 0 7467   
43 43. 온 몸이 부서지는 2022 / 1 / 27 34 0 4986   
42 41. 미치도록 2022 / 1 / 27 31 0 7834   
41 41. 내 아내의 남친 2022 / 1 / 27 36 0 6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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