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구성은 이전에 상대했던 팀들과는 달라 상양은 물론 능남과도 다르지"
"음, 확실히, 김수겸도 한 수 접어준다는 이정환이 있는 팀이니까"
"해남의 왕자라고 불린다던데?"
"그게 뭡니까? 그런 별명이라면 저도 있습니다. 북산의 천재! 강백호!"
"멍청이"
"바보"
"쪼다"
"아앗! 어째서 태섭 선배와 대만 선배도 저 사막여우에 동화되 버린 거야? 저 여우에게 홀리기라도 한 거야?"
에헤야 디야~
오늘도 여지없는 개판이구나
이 머리에 나사 몇 개는 빠진 것들이 어째 진지해진다 싶었더니 1분을 못 가는구먼
쿵!
"으윽!"
"시끄럽다. 지금 준호가 해남 전을 대비해서 전술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뭐 하는 짓이냐?"
"으윽······. 왜 나한테만······. 저기 세 명도 다 같이 떠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다른 세 명을 끌고 들어가려는 물귀신 스텐스 멋지고요
좀 경기에서 그렇게 끈덕지게 상대를 물고 늘어져 보지 그랬니 백호야
"흐음, 다들 묘하게 집중을 못하는 거 같은데 그냥 다음에 할까? 오늘은 그냥 하던 훈련이나 마무리하는 것도 난 좋은데"
절레절레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섯 명의 바보들이 동시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이러니까 무슨 미취학 아동들 가르치는 보육원 교사 같네
"그럼 한 번만 제대로 설명할 거니까 잘 들어. 이 이후에도 집중 못 하는 거 같으면 그냥 다음으로 미룰 거니까"
끄덕끄덕
격하게 고개를 움직이는 건 좋은데 그냥 말을 하라고 이 화상들아
내가 인간을 상대하는 거냐 말 잘 알아듣는 돌고래를 상대하는 게 아니잖아?
"우선 이정환, 통칭 왕자라고 불리는 해남의 3학년으로 다들 알다시피 도내 넘버 원 스타 플레이어다. 흔히 말하는 전국구지"
이정환은 주인공 버프에도 불구하고 그 강함을 증명한 캐릭터다.
만화에서는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만화책에서는 다른 지역의 선수들도 이정환을 알 정도로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네임드
원작에서 안 감독은 그런 안정환을 막기 위해 강백호를 제외한 모든 선수를 마크로 붙일 정도로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을 정도였는데 해남전에서 북산의 어느 누구도 일 대 일로는 그를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할 수밖에 없던 극약 처방이었다.
상양의 김수겸을 혼자 상대할 정도의 강함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이야기 최후에 등장하는 산왕의 신현철이나 정우성 정도나 비빌 수 있을 거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녀석은 김수겸보다 강해. 즉 박스원으로 녀석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팀에 없다는 말과 같지
"...............!!"
"너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는데 포기해. 지금 너희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적어도 지금의 너희로는 말이야."
"지금이라면 지금보다 성장하면 일 대 일로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죠. 안경 선배?"
"그렇긴 한데 적어도 너는 짧은 시간으로 어떻게 할 갭이 아니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무슨 소리예요 안경 선배! 이 천재의 저력을 무시하는 겁니까?"
"오, 그래? 그럼 백호 네가 이정환을 마크하고 싶다는 거야?"
"맡겨 주십쇼! 이 천재가 저딴 애늙은이 따위, 제대로 공도 못 잡게 꼭꼭 막아 놓겠습니다"
열정이 넘치는 건 좋은데 네 머리는 참 한결같이 그 열정을 못 따라가는구나
대충 이런 상황에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많이 겪어 봤을 텐데 아직도 이 패턴으로 넘어가네
주변에 있는 애들이 왜 널 바보 보듯이 보는지 한 번만 좀 생각해 봐라
"좋아. 그럼 우리 백호가 이정환을 막고 싶다고 했으니 내가 도와줄게"
"감솨합니다! 준호 선배!"
"그래 우선 혼자 마크를 하려면 지금보다 체력이 더 필요할 테니까 기본 훈련 D 코스를 두 세트 더 하는 거로 하고 패스와 드리블 연습을 위해 전용 훈련 C 코스 각각 두 세트, 블로킹과 리바운드를 위해 박스원 훈련을 12세트 정도 추가하면 되겠다."
"............선배?"
"막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겠지? 너도 공격 포인트를 쌓아야 이정환이 온전히 공격에만 신경 쓸 수가 없을 테니까 점프슛 훈련을 매일 2만 개씩 하도록 하자. 결과에 따라서 중거리 슛도 좀 연습해보고"
".........저기... 준호 선배?"
"당장 3점 슛은 무리가 있을지라도 중거리 슛까지는 어떻게든 정확도를 올리고 싶은데 말이야. 그러려면 시간이 좀 부족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백호야? 그냥 매일 점프 슛을 4만 개로 올리고 후반에는 중거리 슛을 집중할까?"
".........살려주세요. 선배! 제가 잘못했습니다!"
짜식 이럴 거면서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찔러보려고 한단 말이야.
"오냐, 앞으로 쓸데없는 나댐은 지양하길 바란다."
"네이....."
"하던 말로 돌아가서. 이정환 이 녀석은 워낙 뛰어나서 어떤 경기에든 마크가 적어도 두 명은 붙는 게 일상인 녀석이야. 이제 일 대 일로 마크가 붙으면 그걸 더 이상하게 여길 지경일 거야"
"준호야, 그럼 우리도 더블 마크로 가는 거냐?"
가만히 설명을 듣고 있던 치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 젓고 이정환이라 적혀있는 자석 주위로 새로운 자석을 붙였다.
딱, 딱, 딱!
보드 판과 자석이 붙으면서 나는 딱딱한 소리를 음미하며 일행을 바라보자 모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더블이 아니라 트리블 마크로 간다. 마크 대상자는 치수, 태섭, 태웅 이렇게 셋이야."
"............이건 너무 많지 않나? 이렇게 되면 노마크가 되는 상대들이 너무 많아지지 않아?"
대만의 당연한 말에 일행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손이 자석을 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빠져 있는 다른 두 개의 자석들을 집어 각자의 위치에 붙였다.
딱!
"말했지? 이정환에게 더블 마크는 일상이라고. 과연 트리플 마크라고 경험한 적이 없을까?"
이정환은 김수겸처럼 해남 공격의 핵이다.
이정환을 막기 위해 별의별 참신한 전략은 지난 2년간 수도 없이 많이 시도되었다.
"중요한 건 전략이 아니야. 그걸 시도하는 사람이지"
딱!
마침내 남아있던 백호와 대만의 이름이 적혀 있는 자석이 자리에 놓이자 일행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정환을 제외한 모든 해남의 선수들을 마크하는 건 강백호 너에게 맡긴다. 누구보다 빠른 네 몸과 지치지 않는 체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내가 대 해남전을 생각하며 구상하던 작전은 원작의 안 감독의 작전과 큰 틀은 동일했다.
최대한 많은 전력으로 이정환을 묶어 맘대로 코트를 휘젓지 못하게 하는 것과 월등한 체력과 순발력을 가진 강백호로 하여금 다른 4명의 선수를 마크하게 하는 식의 전술은 동일했지만 단 하나 대만의 포지션만큼은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경기에 사용될 우리 팀 비수는 대만이 바로 너다"
"어? 나?"
원작의 정대만은 천재적인 농구 센스와 슈팅 능력에 비해 너무 오래 쉰 부작용으로 체력이 모든 선수를 통틀어 가장 최하위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불꽃 남자라는 별명처럼 매 경기 불꽃처럼 불타올랐다가 금방 사그라지곤 했었지
하지만 내 자극 덕분에 지금의 대만은 알게 모르게 복귀를 생각하며 체력을 유지하는 시간을 보냈다.
전성기 때 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원작같이 촛농 마냥 녹아내리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러니 이 패를 지금 여기서 사용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대를 향해서
"미리 말해두지만 내 목표는 예선 토너먼트 우승이다"
"우승?"
"준호 너 진심······. 이구나?"
"그래, 다음 경기. 우리는 해남을 상대로 승리해서 전승으로 예선을 통과한다."
상대가 해남에서 왕자라고 불리든 공주라고 불리든 상관없다.
다음 경기의 주인공은 북산이다.
* * *
"해남, 해남, 해남"
"이정환, 이정환, 이정환"
"꽤 응원이 일방적이네"
"당연하지, 상대는 그 해남이야. 17년을 연속으로 도내 우승을 했던 팀이라고. 설립되고 처음으로 4강 전에 올라온 우리와 같을 리가 있냐?"
"준호 넌 은근히 사람 기운 빠지게 하는 버릇이 있더라"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야. 관중들이 보기에 우리는 처음인 우리보다 익숙한 해남에게 열광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쳇!"
"마지막을 보면 돼. 과연 마지막에도 저 사람들이 해남을 지금처럼 열창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제까지 보도듣도 못했던 북산이라는 팀에 열광하게 되는지. 왜? 자신 없어?"
"뭐라는 거야 이 자식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갑자기 급발진해서 흥분하는 대만이 녀석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너도 백호 물들어 가냐? 제발 그러지 마라. 저 사고뭉치는 하나로도 벅차니까. 어쨌든 자신 있다는 거지? 이번 경기, 너만 믿는다"
백호가 언급될 때 다시 한번 울컥하려던 대만은 뒤에 이어진 내 말에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치수가 기다리겠다."
대만이와 함께 라커룸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이미 모든 부원이 서서 원을 만들고 있었다.
막 안으로 들어온 우리를 확인한 치수가 손짓하길래 눈치껏 우리도 그 원에 합류했다.
"해남을 구름 위에 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딱히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닌 일행 모두를 향한 주장의 말이었다.
다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도내에서 절대 강자로 인정받는 팀과 상대한다는 생각에 몸이 굳어 있는 게 보인다.
"손을 뻗어도, 뛰어올라도, 우리들에겐 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부원들을 향해 치수는 윽박지르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었다.
"성적으로 보면 확실히 그렇다. 과거의 성적으로 보면 해남과 우린 하늘과 땅 차이겠지"
저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는 1학년들이 보였다.
자기들도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미 늦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들의 표정이 곧 죽을 것 같이 창백해졌지만 봐줄 생각은 없다.
나중에 보자 너희들
"하지만 난.........."
조용히 독백하듯 말하던 치수가 고개를 들어 부원들을 얼굴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백호, 태웅, 태섭, 대만을 포함한 모든 부원을 거쳐 마지막에 나에게 닿은 그 시선은 분명 웃고 있었다.
"난 언제나 잠자기 전에 이 날을 생각해 왔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치수의 얼굴에도 미소가 짙어졌다.
"도내 왕자, 해남과 전국대회 출전을 걸고 싸우는 것을 매일 밤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1학년 때부터 계속 말이지"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그 뒤의 말을 이어받았다.
이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나와 치수만 아는 이야기
중학교에 입학해서 같이 하교하면서 늘 해왔던 이야기들이다.
나보고는 맨날 아직도 전국 제패를 꿈꾸냐고 타박하던 녀석이 실상 제일 간절히 그 꿈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 1학년 때부터 계속 말이지. 그러니"
웃음 짓던 표정이 변하여 전투를 앞둔 고릴라의 그것과 같이 변했다.
"반드시 이기자!"
"오우!"
"북산, 화이팅!"
치수의 연설 덕분인지 처음과 달리 긴장을 많이 내려놓은 듯한 부원들을 둘러본 나는 거리를 두고 우리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안 감독과 눈이 마주쳤다.
"..........."
뭡니까?
그래도 명색에 감독인데 와서 뭐라도 말을 좀 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라는 의도로 바라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뭐?
나보고 어쩌라고?
"다들 준비가 된 듯하니 이제 마무리를 하도록 하죠"
흥분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야 앞으로 나선 안 감독은 일행을 돌아보며 예의 그 흐뭇한 표정을 계속해서 짓고 있었다.
자기가 켄터키 할아버지야 뭐야?
"격려는 이미 주장이 훌륭히 한 것 같으니 생략하고 바로 스타팅 맴버를 발표하도록 하겠어요"
그 말에 잠시 풀어졌던 부원들의 자세가 바로 잡혔다.
비록 스타팅 맴버는 거의 고정이 됐지만 후보는 계속해서 바뀌었으니 나름대로 긴장이 되긴 하곘지
"우선 센터에 치수군"
"네!"
"이제까지와 같이 잘 부탁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음이 가네요. 다음, 포워드에 백호 군"
"음핫! 역시 나 밖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죠 영감님?"
"저 멍청한 녀석이. 백호 조용히 하지 못해?"
"뭐야 대만 선배? 내가 먼저 불려서 질투하는건가? 추하다구 천재를 향한 질투는"
"뭐라는 거야 저 멍청한 자식이"
쿵!
"지금은 감독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자리다. 장난도 자리 봐가면서 쳐"
"으······. 네······."
백호 저 자식의 머리는 어떻게 되먹은 건지
치수가 저렇게 매번 주먹으로 내려치면 벽돌이 아니라 쇠도 깨질 것 같은데 아파하는 거 빼면 멀쩡하단 말이야
"허허허, 언제나 활기차서 좋네요. 백호 군에게는 골 밑을 맡기도록 할게요. 치수 군을 도와 리바운드와 블로킹을 맡아주세요"
"맡겨 달라니까요! 으하하하... 아우... 머리 아파...."
회복이 빠른 건지 아픈 걸 잊을 정도로 바보인 건지 모르겠다.
"다음, 태섭군,"
"네, 감독님"
"태섭군은 우리 팀의 가드에요 볼의 배급과 플레이의 흐름을 제압해야 합니다. 할 수 있겠죠?"
"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태웅군"
"네"
"이번 경기의 태섭군 포지션은 포워드입니다. 태섭군 특유의 폭발력을 발휘해주세요"
"네"
언제나 짧은 단답의 태웅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장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남은 스타팅 맴버의 자리는 하나
하지만 이제까지 같이 해왔던 사람들이라면 저 자리가 누구의 자리인지 다들 알고 있었다.
"마지막 자리는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게 최적인 것 같더군요"
응?
고민?
왜 고민을 하지? 할 게 뭐가 있다고?
"준호군"
응? 뭐? 나?
"네?"
"이번 해남전의 스타팅 맴버로 합류해 주세요. 준호 군의 포지션은 가드입니다. 경기의 야전 사령관이 되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