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로롱~! 축하드립니다!]
'뭐야? 왜 답지 않은 짓거린데? 설마 죽을 때가 된 거야? 새로운 도우미 AI로 바뀌는 거야?'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흥! 아무리 그러셔도 계승자님의 도우미 AI는 저밖에 없다고요! 절대로 바뀌는 일 따위는 없어요!]
'그러면 앞으로 아까 같은 행동은 금지! 가뜩이나 운동한 직후라 힘든데 너 때문에 토할 뻔했다고. 이제야 겨우 운동 끝나고 토하는 신세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그 괴로운 경험을 쌓고 싶지는 않아'
[힝. 계승자님이 거칠어지셨어. 이래서 운동하는 남자는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그게 싫으면 다른 AI랑 교대하라니까'
[안 되거든요! 누구 맘대로 그렇게 해드릴 줄 아세요?]
'그것참 아쉬운 소식이네'
[아! 얄미워!]
'응 칭찬 고맙고, 그래서 무슨 일인데? 왜 생전 하지도 않은 요상한 소리를 낸 거야?'
[흥, 제가 무슨 생물인가요 생전이게? 절 봤다면 얼마나 봤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저는]
'응, 그렇게 계속 말 돌릴 거면 안 물어볼게. 숨 좀 돌렸으니 다시 운동하러 가봐야겠다'
[아아앗!]
'아 진짜, 왜? 말할 거면 빨리하고 아니면 나 다시 운동하러 간다. 너 지금 나 방해하고 있는 거 알고 있지?'
[치, 한번을 안 져주신다니까. 방금 운동으로 세부 목표를 달성하셨어요]
'어, 그래? 그게 도달할 수는 있는 목표였구나. 난 환상의 수치인 줄 알았지!'
[설마요, 만화점의 원작자님들은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답니다]
'그렇다고 딱히 쉬운 목표도 아니었던 것 같다만. 그럼 지금 내 신체 능력이 어떻게 되는지 좀 보여줘'
[네 현재 캐릭터 권준호의 신체 능력을 보여드릴게요]
네비의 말과 함께 내 시야에 익숙한 문자들이 보였다.
캐릭터 권준호 신체 능력
힘 : 32(14) (▲ 13)
민첩 : 34(10) (▲ 23)
지구력 :30(9) (▲ 18)
지력 : 35(15) (▲ 10)
지혜 : 38(17) (▼ 12)
문자를 하나하나 살피고 있자니 확실히 세부목표인 30은 다 넘었고 몇몇 수치 같은 경우에는 훨씬 초과하는 능력들도 있었다.
처음에야 하루 단위로 확인을 했지만 수치가 20을 넘어가면서부터 극악의 속도로 수치가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확인을 안 했었는 데 엄청나게 노력했었구나 나
'달성하는데 2년이라…. 빠른 건지 느린 건지 잘 모르곘네'
처음 슬랜 덩크의 세계로 들어온 지 2년, 현실로 세 번을 복귀했다가 다시 방문하고 나서야 달성한 거다.
괄호를 보니 현실 세계로 복귀하고 난 뒤에 했던 하드 트레이닝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준호 상태로 공부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저 수치는 뭐지?
설마 수업 시간에 들은 것만으로 저렇게 수치가 상승한 건가? 현실의 나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서 책 읽고, 신문 읽고, 뉴스 보면서 올린 게 저 정도인데?
[빠른 거죠. 처음에 준호의 능력이라고 해봤자 머리 쪽을 제외하곤 전부 다 바닥이었잖아요. 그걸 2년 만에 지금처럼 짱짱하게 만들었다니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그 바닥인 수치가 나보다 높았었던 것 같은데…. 뭐 지금도 현실의 내 능력보다 높기도 하고'
[그거야 뭐…. 워낙 계승자님의 본 능력이 거지 같았던 거라...]
'뭐 임마?'
[아차차, 이런 말실수를. 마음에 있는 소리를 그대로 해버리고 말았네요. 죄송해요. 계승자님]
'전혀 죄송해하는 태도가 아니잖아? 언제부터 AI에 마음이 있었던 건데? AI가 말실수도 하고 마음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SF영화도 안 봤어? 바로 인간 대 기계 전쟁 일어나는 거야 임마!'
[어머,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전 기계가 아니니까 괜찮아요]
'생물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면 넌 대체 정체가 뭔데?'
[만화점 도우미 AI요! 아직도 그걸 모르시는 거예요? 확실히 지능의 수치가 낮은 이유가 있는 것 같네요. 도우미 AI로써 정밀 진료를 충고드리고 싶네요. 흥!]
'이제 막 나가자는 거지? 야 네비!'
[.............]
'어쭈? 이제는 씹어? 너 내 말 다 들리는 거 알거든?'
[............]
'이게 확! 너 만화점에 말해서 바로 교체해 버린다?'
[흥! 해볼 수 있으면 해보시라죠. 한번 지정된 도우미가 그렇게 쉽게 바뀌는 줄 아나]
그 말을 끝으로 네비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살다 살다 이제는 사람도 아닌 것에 치이고 사는구나 내가
내 인생 이제 좀 피나 했더니 뭔가 심히 안 좋은 게 얽혀버렸어! 아주
[세부 목표를 완수하여 본래 세계로 복귀합니다.]
[5......4.....3......2.....1.....]
번쩍
만화로 치자면 이런 의성어가 들어갈 정도로 정말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자연스레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들어보니 시간은 5 : 40을 나타내고 있었다.
"으갸갸갸걋"
알람 1에 맞춰 일어나던 게 기적같이 느껴졌었던 게 몇 주전인데 이제는 알람보다 일찍 일어나 알람을 기다리는 게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미친 중딩 농구부가 워낙 빡쌨어야지'
말로는 태릉선수촌이다 국대 만드는 곳이라고 했지만 정말로 중딩밖에 안된 애들을 5시에 불러서 아침 연습을 시킬지는 몰랐다.
신입생 때 했던 운동은 정말 기초 운동이었다는 걸 증명하듯이 2학년이 돼서 후보로 등록이 되자마자 새벽에 소환을 당해버렸다.
'처음에야 농담 같기도 하고 반발도 들어서 안 나가려고 했는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치수가 친히 나를 데리러 집으로 오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버렸지'
자, 생각을 해보자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에 시꺼먼 고릴라가 찾아와서 내 방 창문을 두드리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될까?
어디에 신고할 겨를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뭐라도 집어 던지게 되어있다.
실제로 내가 나도 모르게 베개를 집어 던져서 그걸로 치수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었다.
신입생 때부터 후보가 돼서 자기 혼자 새벽 훈련에 참여하다가 2학년이 되고 이제 나름 절친인 나도 같이 참여할 수 있게 되자 기쁜 마음으로 왔더니 베개를 얻어맞았으니 섭섭한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만 그렇다고 그 덩치에, 그 얼굴에 상처를 받아버리면 내가 많이 어색하잖아
막 동물 학대하는 사육사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가 좀 안 좋아
어쨌든 그 죄로 반항 한번 못하고 내내 새벽 훈련을 따라다녔더니 이제 일찍 일어나는 게 몸에 배겨버렸다.
이쪽에서야 일주일밖에 안 지나서 아직 몸이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서 이 시간에 일어나지만 4시에 칼 같이 일어난다.
조금 지나면 치수가 내 방 창문을 두드리거든
괜히 이웃들이나 가족들이 보고 놀랄지도 모르니까 그만두라고 해도 4시가 넘어도 내가 안 일어나면 아주 칼 같이 두드린다.
저러다가 잘못하면 고릴라로 오인해서 주변 이웃에게 공기총 맞겠다 싶어서 나도 나름대로 사명을 가지고 그 시간에 일어나는 중이다.
"우선 운동을 하러 가야겠지?"
내가 사는 원룸은 집은 좀 그래도 주변 상권이나 편의 시설은 제법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24시간 운영하는 헬스장도 3곳이나 존재해서 가격대 성능이 가장 좋은 곳으로 3개월 회원권을 끊어놨다.
지금 생각하면 주변에 이렇게 좋은 시설이 많은데 왜 이용할 생각을 안 했을까
이전의 내 신체 능력을 생각하면 정말 저질이었는데도 말만 운동하겠다고 하고 정작 실행에 옮기지 못한 걸 보면 정말 망하는 인생은 이유가 있다는 게 이해가 간다.
새벽에 누구한테 잘 보일 일도 없고 해서 대충 차려입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헬스장에는 이른 새벽에도 벌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사람 몰리는 시간 피해서 한적하게 운동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출근 시간 전에 운동하려고 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 몸매가 다부지고 훈남 훈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전의 나와 비교하면 비교가 미안해질 정도로 자기 관리가 확실한 사람들이라 평균 이하의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는다.
'까먹고 있던 세부 목표를 달성한 덕에 계획에도 없던 현실 복귀를 해버렸네. 무슨 군대 휴가 나온 느낌인데?'
세부 목표가 최종 목표로 가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기초 과정이라는 내 가정이 맞는다면 난 거의 2년을 걸려 그 기초를 쌓은 거다.
거기에는 캐릭터의 설정 탓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본체인 내가 몸을 쓰는 법을 모르는 게 더 크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슬랜 덩크에서 운동을 한참 하고 복귀하고 나서는 그 기억과 경험으로 내 몸을 단련하기도 했었으니까
뭔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중학생한테 운동을 배우는 사회인의 기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휴가라면 그것에 맞게 써주면 되겠지. 어차피 회사도 휴가 기간이겠다 이번 기회에 캐릭터랑 싱크로율 좀 맞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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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 너 요즘 들어 몸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다?"
"읏챠! 내가 무거운 몸은 아니었지. 일부러 체중을 불리는데도 아직 60을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니까"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움직임이라고 할까? 뭔가 예전보다 더 빠릿빠릿해진 느낌이야.'
"이전에는 굼떴다는 말이구먼? 이거 돌려까기야?"
"오해야. 나 말고도 다른 선배들도 네가 요 며칠 사이에 몸놀림이 달라졌다고 한다고."
"그래? 뭐, 농구만 2년을 넘게 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야 차기 주장을 잘 보필할 수 있지 않겠어? 읏챠"
말을 하는 도중에도 날아온 패스를 받아서 앞으로 전진하는 동기생들에게 다시 패스해줬다
최적의 패스 루트를 익히기 위해 2학년들은 나와 패스 연습을 하는 중이다
드리블로 이동하다가 내게 패스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전력 질주 후 다시 내가 주는 공을 받는 연습이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우선 목적 자체가 팀 동료에게 패스한 틈에 적진을 파고들어서 다시 패스를 받는 형식이기 때문에 이 연습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만 앞서서 나한테 패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내게 패스를 제대로 한 다음에는 전력으로 달려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많았고 전력으로 뛰다가 자기 몸을 조절하지 못해 내가 주는 공을 못 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1학년 때부터 후보였던 치수나 3학년을 제외하면 2학년 중에는 그나마 내가 제일 패스 확률이 높고 감각이 좋아서 내가 패스 담당이 되기는 했는데 나 혼자 이 애들을 다 맡아서 하려니 죽을 맛이다
자기들이야 돌아가면서 한다지만 나는 혼자서 8명을 맡아서 일일이 패스훈련을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도 매번 성실하게도 알려줄 때마다 바로바로 잊어버리는 이 돌대가리들을 데리고 말이야
'이 정도면 권준호의 패스 교실 같은 거 열어야 하는 거 아냐? 시켜줘 우리 동네 명예 패스관'
[계승자님의 정신 상태가 점점 의심스러워진다고 제가 말씀드린 적 있던가요?]
'응, 어제도 하고 그제도 했어. 오늘 아침에도 이미 한번 했고. 아주 삼시 세끼 챙기듯이 꼬박꼬박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네요. 제가 계승자님을 돕는 임무를 망각했나 순간 불안했었어요]
'그걸 내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우미 불합격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네비야'
내 말을 못 들은 듯이 웃는 네비를 뒤로 하고 패스 훈련에나 더 집중했다.
네비는 저번에 삐진 이후 3일간 내게 말을 안 걸었지만 내 쪽에서 어떠한 제스처도 없자 결국 백기를 들고 자기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야 헬스장에서 트레이너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고 간간이 걸려오는 전화나 하다못해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면서도 대화를 할 수 있지만 네비는 내가 아니면 대화를 할 수가 없으니까
이제 막 성인과 의사소통 하는 게 문제가 없을 정도로 언어 능력이 발달하게 됐는데 벙어리 흉내를 내야 하는 게 견디기 쉬웠을 리가 없겠지
그 정도면 박찬호에게 묵언 수행 시키는 거랑 다를 게 없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