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한윤이다.
그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는 눈물을 흘리는 다온이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웨이터들이 모두 달려오기 시작한다.
"저..."
"...... 저 괜찮아요. 그러니까 가서 일 보세요."
웨이터들 앞에서 애써 괜찮은 척 미소를 지어 보이는 다온이다.
그 모습에 안절부절못하지만, 다시 본인들 자리로 돌아가는 웨이터들.
한윤은 그런 다온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슬픈 눈빛만 보일 뿐이다.
"다온아..."
"형들이... 태온이 형을 배신했어.. 민호 형처럼..."
"........"
"이제 나만 선택하면 되는 문제인데.. 어떻게 태온이 형을 배신할 수가 있겠어?"
"다온아...."
"우리를 여기까지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 태온이 형인데..."
"혹시... 혁 오빠도.."
"난 진짜 형이 그럴 줄 몰랐어. 어떻게.. 다 알면서 태온이 형을 버려?"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눈물은 쏙 들어가고 핏대를 세우면서 말하는 다온이다.
김혁도 똑같이 태온을 배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윤의 눈동자는 하염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혁 오빠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뭔가 잘못 알았겠지?
"..... 아니지? 혁 오빠가 그럴 리가 없어.."
"누나. 형이랑 도대체 지금 어떤 사이인 거야?"
"어떤 사이.."
어떤 사이냐고 묻는 다온의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한윤이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12년 전에 네가 알던 옆집 오빠 김혁이 아니야. 지금의 나에게서 그때의 김혁을 찾지 마.'
그때 김혁의 말에 제대로 충격을 받은 한윤이었다.
12년 전에 알던 그때의 김혁은 사라졌다는 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건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그래서 나는 다온의 말을 100% 다 믿지는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누나...?"
"........"
"내 말 안 믿는구나?"
"어...?"
정곡에 찔렸는지 무척 당황해하는 표정을 짓는 한윤이다.
다온은 꼭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다.
"안 믿기면 직접 가서 물어보든가."
"뭐...?"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직접 가서 물어보라고."
표정이 굳어지며 딱딱한 말투로 다온은 말했다.
그 말에 그저 다온을 응시할 뿐인 한윤이었다.
도대체 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
9시간 전 MUSIC SECRET ENTERTAINMENT.
다온이 오기 1시간 전.
호재의 부름에 먼저 회사에 도착한 가루비 멤버 하랑, 한울, 지후다.
갑자기 불러 급하게 회사로 모였다.
회사로 들어갔을 땐 불렀던 호재는 없고 시현이 그들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어, 다들 왔어?"
"대표님은..."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그리곤 먼저 회의실로 들어가는 시현이었고 그 뒤로 가루비 멤버들이 따라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다리를 꼬고는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현이다.
눈빛에서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러냐는 눈빛을 지으며 하랑은 말한다.
"갑자기 저희를 부른 이유가 뭐죠?"
"그러게. 내가 왜 불렀을까?"
뜸을 들이며 간을 보고 있는 시현이 꼴사나웠던 하랑이다.
계속해서 시현을 응시하면서 하랑의 표정은 굳어졌다.
"뜸 들이지 마시고 본론만 말씀하시죠? 이사님."
일부로 시현 앞에서 이사님이라고 딱딱한 말투로 말한다.
하랑의 말이 거슬렸는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혀를 찼지만, 다시 미소를 유지하는 시현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할지 아직 아예 감이 안 잡히나 봐?"
"네? 그게 무슨..."
"내가 왜 갑자기 너희를 불렀다고 생각해? 뻔한 거 아니니?"
"설마..."
"너네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 구나?"
"이사님!!!"
매일 스케줄 다녀오면 티격태격하던 태온과 지후였지만 지금 이 상황만큼은 화가 나는 지후였다.
시현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린다.
"지후는 아직도 욱하는 성격 버리지 못했나 보네?"
"......."
"아이돌이 저러면 안 되지."
"이사님!"
"어후, 얘네가 오늘 왜 이래?"
"그만하지."
그때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호재의 모습이 보인다.
호재의 등장으로 살짝 긴장하는 하랑과 한울이었다.
근엄하게 들어오는 호재로 시현은 계속해서 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다.
"너 버르장머리 없이 어디서 소리를 질러? 일단 여기 이사이기 전에 네 어머니다."
"하, 어머니..."
혀를 차며 헛웃음을 연속으로 지어 보이는 하랑이다.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버리셨어요?"
"뭐야?"
"전 아버지 얼굴만 봐도 치가 떨린다고요!!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세요?"
"김혁!!!"
김혁의 말을 입막음하기 위해 버럭 화를 내는 호재다.
자신의 입을 막으려고 화를 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김혁이다.
그래서 더 호재를 용서할 수가 없다.
어머니의 죽음이 저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여기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머니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김혁! 그만해라."
"왜요? 아버지 커리어에 스케치가 나는 게 억울하세요?"
"너 연예인 인생 그만두고 싶어?!!"
계속해서 호재에게 맞서는 김혁을 바라보며 말하는 시현이었다.
그 말에 하던 말을 멈추고는 시현을 응시하는 김혁이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연예인 생활 이대로 그만두고 싶지 않으면 정신 좀 차려.. 제발...!"
"저희를 연예인 생활 그만하게 그냥 놔두시겠어요? 대표님이?"
"그러니까 태온이 포기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렴."
이번엔 시현의 말에 버럭 화를 내는 한울이었다.
하지만 한울의 말은 여기서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을 알기에 더 이상의 화를 내지 못한다.
"현우야. 너를 여기로 데리고 와서 데뷔시켜준 게 누구지?"
"........"
"너는 우리한테 이러면 안 되지. 안 그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분한지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한울이다.
시현의 말을 모두 부정하고 싶었지만 맞는 말이라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 죄송합니다."
"네가 왜 죄송해?"
"이사님 말이 모두 맞잖아..."
"구현우! 정신 차려."
"정신 차려야 할 건 너야!"
단합해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서로 싸우기 바쁜 하랑과 한울이었다.
절대 시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하랑이었다.
분했지만 호재와 시현이 아니었으면 가수를 꿈꾸지 못했던 한울이었기에 현재는 호재와 시현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주먹을 꽉 쥐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호재와 시현을 배신하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놔야 하기 때문이었다.
태온에게는 미안했지만, 지금은 그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으니까.
"우리 지금은... 당장 앞만 보고 가자, 응?"
한울의 말에 그저 대꾸도 하지 않고 바닥만 응시할 뿐인 하랑이었다.
***
다시 현재.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직접 가서 확인해 볼래...?"
"모르겠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어...?"
"도대체 다들 태온씨한테 왜 못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신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버리고 마는 한윤이다.
왜 자꾸 그가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다.
분명 나한테는 김혁이 제일 먼저였는데 요즘에는 왜 그가 먼저 생각나는지.
"......."
"화내서 미안... 나 먼저 갈게."
그리곤 가방과 윗옷을 챙기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와버리는 한윤이다.
일단 자리를 박차고 나왔지만 당장 갈 곳은 없었다.
다온을 그렇게 혼자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계속해서 요란하게 핸드폰 벨소리는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봤지만, 핸드폰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한윤이다.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렇게 레스토랑을 나와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무작정 그렇게 한참을 걷고 발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태온이 입원 중인 레인병원 앞이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레인병원까지는 걸음으로 꽤 오래 걸리는 거리였다.
내 다리가 미쳤나 봐, 지금 거기서 여기까지 걸어온 거야?
시계를 봤을 땐 이미 11시를 향해 침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상태를 한 번 더 보고 가자는 마음으로 VIP 병실 1006호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가기 전에 작은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을 땐 태온의 모습은 어디를 가도 보이지 않았다.
태온이 또 사라졌다는 생각에 급하게 간호사를 부르려고 뒤를 돌았을 땐 병원 슬리퍼 차림을 하고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고개를 들면, 놀란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태온이었다.
"작가님....?"
고개를 들어 태온을 바라봤을 땐 울컥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 한윤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들고 있던 물통을 떨어트리는 태온.
물통은 떨어지면서 충격으로 뚜껑이 열리고 안에 들어있던 물들이 태온이 신고 있던 신발을 다 젖게 만들었다.
차가움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가 한윤을 안아주는 태온이다.
한윤은 그렇게 한참 동안 태온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멈추지 않고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작가님... 왜 그래요?"
"흐흡... 다행이다.. 다행이야..."
"네?"
"흐흡...."
다행이라는 말만 연속해서 내뱉은 뒤 계속 눈물을 흘렸다.
주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태온이 안쓰럽고 불쌍했다.
"작가님..."
마지막 말을 하곤 더 이상 그 이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한윤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태온이었다.
한윤의 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리고 한윤은 앞에서는 당당하게 맞서며 살지만, 뒷모습은 여린 모습도 있었다.
-
한참을 그렇게 태온의 품에서 울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잽싸게 태온의 품에서 나오는 한윤이다.
안고 있던 손이 어색했는지 잠시 쳐다보고는 주머니로 손을 넣는 태온이다.
서로 어색한지 한동안 허공만 바라보며 헛기침만 한다.
"으흠.."
"그.. 그게.. 어..."
"어.. 엄..."
"고... 고마워요."
"ㄴ... 네?"
"방금 일..."
"아, 아니에요."
무슨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풀어야 할지 모르겠는 두 사람.
"그... 근데 이 시간에 여긴 어쩐일이세요?"
"아... 그게..."
사실 여기 온 이유가 없었다.
무작정 걷다 보니 병원 앞이었고 그냥 들어왔다.
그래서 온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혹시... 저 걱정돼서 오신 거예요?"
"크헙.. 아니.. 뭐 꼭 그렇다고 하기도 음..."
한윤의 얼버무리는 행동을 보곤 피식 웃어 보이는 태온이다.
그의 미소에 한윤도 한번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서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보고 싶었어요."
"네...?"
무슨.. 저런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참...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야.
"말했잖아요. 나 작가님 좋아한다고요."